회원로그인




 

만남의광장

우리부부의 울트라 완주를 영혼이된 친구에게 바치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조혁 작성일07-12-14 12:40 조회970회 댓글0건

본문

11월 19일 어둠이 깊어갈 무렵 첫눈이 왔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모든것을 덮어 버릴량 첫눈은 펑펑 많이도 내렸다. 이제 막 한줌의 재로 산속에 홀로 누운 친구에게 첫눈은 따뜻한 이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장일아.. 이제 편히 쉬어라.......

대회 전날아침 나는 친구의 부음을 받았다. 50년 지기의 느닷없는 죽음은 나의 뒷머리를 흔들었다. 내일이 대회인데 이무슨 청천병력 이란 말인가. 대회 준비를 뒤로 미룬채 우리부부는 급히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이미 육신은 한줌의 재로 치환된채 귀국한 친구의 영혼을 보며 나에겐 눈물에 앞서 두렵고 공허한 마음이 스쳐갔다. 죽음은 늘 우리곁에 있다. 유족과 함께 인천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거리엔 유난히도 낙엽이 많았다
붉은색,노란색,갈색등 바람과 함께 휘몰아 다니는 낙엽들 그속엔 이미 친구의 모습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다 부질없는 우리네 삶... 나는 아내를 피해 눈을 창가로 돌렸다.

50년전 초등학교를 같이 입학한후 줄곳 가까이 지내온 친구는 인천에서 개인사업을 하
다가 6년전 중국 청도에 공장을 확보하고 수시로 드나들며 고생을 많이도 하였다. 친구들은 어려운일을 자처하지말고 정리하도록 권유도 하였으나 최근엔 안정이 되어 자리가 잡혔노라고 친구들을 안심시켰던 터라 더욱 충격이 컸다. 친구는 편안함을 이룬 동시에 그간의 자기혹사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운명을 했다.

늦은 밤 우리부부는 친구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앞세운체 소리없는 눈물로 영정과 인사를 나누고 서울로 출발했다. 오며 우리는 서로 아무말은 없었지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친구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오는 이길 한걸음 한걸음을
너와 함께해 힘든 울트라 꼭 완주해 보답하겠노라고"...

우리부부는 평소 취미생활을 항상 같이하자는 모토아래 마라톤도 함께해왔다. 기록은 좋은 편은 아니지만 5키로 10키로 하프 풀코스순으로 동반주를 해왔다. 나는 풀코스 20회가 넘었지만 아내와의 동반주는 제10회서울마라톤을 포함해 8번째이다. 현소속 동호회에서는 부부첫팀으로 조성우님의 적극권유로 이번엔 100키로에 도전하게 되었다. 내심 과연 100키로 완주 성공할수 있을까의 물음엔 우린 불가능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친구를 생각하며 완주의 투지를 불태운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한시 불야불야 출전준비에 들어갔다. 혼란스럽고 산란한 마음에 이것저것 잡았다 놓았다 시간만 간다 이제 조금만이라도 눈을 붙이자
100키로 라는 어마어마한 산을 정복하려면 체력비축을위해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하자.
새벽2시 우린겨우 등을 붙혔다. 그러나 서로 뒤척이며 말똥말똥 친구의 생각과 출전의 두려움에 잠이 오질 않는다 결국 우린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새벽3시에 회원들 모이는 장소로 이동하고 일행에 발맞추어 올림픽공원으로 출발했다.

평화의 문앞 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나 심한바람과 추위로 텐트속에만 모여있었다. 추위속에서 모두들 움추리고 있지만 무언가 어렵고도 새로운 일을 이루겠다는 각오는 서로가 눈빛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신호 .. 바삭바삭 처벅처벅 비닐옷소리에 발마추어 새벽을 뚫는다.. "여보" "천천히" 우린 살아남기 위해 힘을 아끼며 맨뒤에서 가자 그래서 끝까지 완주해야 해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둔치를 지나 첫번째 5키로지점 강바람이 칼바람이다. 이제 겨우 20분의 1을 왔는데 이를 어쩌나 광진교를 돌아 잠실철교를 오니 바람이 아니고 시베리아 광풍이다. 우리가 끝이라 뒤에는 아무도 없는데 앞도 안보인다. 이러다 길을 잃을것 같다. 조금 속도를 내자 그러나 바람에 밀려 고개를 숙인채 달린다.

10키로를 지날무렵 아내가 제안을 해왔다. 우리 10키로 단위로 통과할 때마다 뽀뽀를 하잔다. 나는 아무말을 안했다. 내가 왜 이 추운 날씨속에 이 미친짓을 하고 있나 친구의 영정을 지키지도 않은채 다시 마음이 무겁다.
우린 그이후 말없이 달리기만 했다. 심한 강바람에 도저히 말을 할수가 없기도 했다. 밝아오는 여명속에 청담대교가 보이고 양재천으로 접어들었다. 바람도 잦아들고 한결 편하다. 양재반환점을 가까이 가며 우리 동호회 회원들을 많이 만났다. 부부완주 화이팅! 우린 힘이 솟구친다. 이젠 날이 밝았다. 몸도 풀리고 살것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영동대교를 바라보며 다시 강바람 칼바람..!! 아 ! 힘들다 그러나 아직 살만하다 우린 풀코스 8번 같이 뛰었으니 절반은 가겠지. 계속 나란히 뛰다 내가 앞장을 섰다 아내에게 바람을 막아주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다. 옆바람도 세다.

드디어 40키로 통과다 "여보 괜찮아" " 아직은요" 야 대단한 나의 반쪽이다 50키로만 통과하면 반은 성공이다 보너스주어야지 드디어 안양천에 들어섰다. 우린 이제 절반을 통과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린 50대부부니까 50키로통과 기념으로 뽀뽀해줄께" 하고 거리에서 뽀뽀를 했다. 그리고 는 하늘을 봤다 " 친구여 우린 너와의 약속을 이제 절반은 지꼈다 계속 지켜봐다오"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60키로지점 방화대교를 향할즈음.. 아내에게 첫번째 한계가 왔다. 갑자기 속도가 느리고 진전이 안된다 회원들은 내려오며 조금만가면 전복죽이 있다고 알려준다 우린 전복죽보다는 옷갈아입고 잠시 쉬고 싶다 비닐속에 차가운 옷이 더욱힘들다. 아내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로 65키로에 도착 옷을 갈아 입으며 재충전을 했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뽀송뽀송한 옷을 갈아 입어서 그런지 아내도 조금은 회복이 된것 같다. 올라갈땐 지류천을 거치지 않아 한결 수월하다.

80키로 지점 아내가 2차 한계가 왔다. 뛰는 것이 거의 걷는 수준이다 "여보 이제 하프거리 남았다" "힘들면 걸을까? "아내는 대답대신 손사례를 친다. 이때 응원나온 김정호회원님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나와 구령과 함께 독려해준다
컷통과 제2관문까지 거리 약 3키로 40분남았다. 이대로 가야지 여기서 걸으면 탈락이다 우린 다시 응원에 힘입어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드디어 10분 남기고 제2관문통과.. 강희문님 이창형님 이병탁님 윤인효님의 마중.. 다시 힘이 살아난다. 이병탁부회장님의 동반주 시작 아내는 찡그림속에서도 속도는 죽지 않았다

90키로지점 강번석회장님과 채승훈님의 마중 또다른 동반주 합세.. 힘찬 구령..우린
잠시 또 손을 슬며시 잡았다 놓았다 최후의 10키로 우린 꼭 성공한다는 암시적인 마음의 뜻이다 이제 어둠이 깔리고 멀리 올림픽대교의 불빛이 보인다. 아!! 드디어 출발시 5키로 둔치.. 서서히 가슴이 울렁거린다 부부완주의 성공 눈앞이 보인다 나머지 1키로 너무도 길다 동반주 회원들도 옆으로 피해준다.. 500미터 300미터 불밝힌 평화의 문이 보인다. 붉은 카펫 약속이나 한듯 손을 다시 맞잡았다. 13시간 35분 제한시간내 완주다.. 마이크소리 함성소리 아!! 고마운 아내여 우린 해냈다.. 반겨주는 회원과 응원나온 가족들의 함성소리 우린 함께 껴안고 추위를 잊었다 친구야 보았지? 너와 함께 해냈다...

다음날 새벽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인천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교회 권사인 친구는 교회장으로 집전을 마치고 청평 대성리 북한산공원 납골당으로 향했다. 공원은 산정상 8부능선에 있었다. 주위의 앙상한 나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친구의 단자함은 많은 유족과 지인들의 흐느낌속에 납골당에 안치됐다.

마라톤은 인생과 같다 빨리가는 화려함보다는 천천히 오래 확실히 가는 것이다
친구여 밤늦게 올 첫눈이 내린단다. 너를 생각하고 100키로 인생을 완주한 축하를 네가 내려 주는 것같구나.. 너 또한 눈을 덮고 편히 쉬거라.. 친구야..

추운날씨에 매키로마다 따뜻한 음식과 응원해주신 서울마라톤 진행요원과 자봉하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7년 11월19일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