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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달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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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번석 작성일07-12-01 13:23 조회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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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에 5분간격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는다.
앞도 뒤도 없는 모습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반복적인 일상사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달리기를 한다.

한강철교 위를 통과하는 전철을 빤히 올려다보며 달릴때라야 나는 육체적 정점에 오르고 감각을 늘 새롭게 유지할 수 있다.그 전철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달리면 혼잡과 복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달리기를 통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만족해 한다.
달리기는 단순히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인식의 과정이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 설음의 훈련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고 막연한 상태로나마 어떤 격앙상태를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그 격앙상태는 뛰는 동안 느끼게 되는 피곤 때문에 더욱 가열된다.달리기는 때로 어떤 행동속의 몰아지경인 황홀과 같다

이는 마치 자신의 밖에 있는 과녁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그 과녁과 하나가 되기에 더욱 민첩해지는 참선의 궁수(弓手)가 맛보는 세계 같은 것이다.여러가지 감각들로부터 관습적,상투적인 몫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달리기라는 세계에 던지는 시선의 진정한 변신이 가능하도록 준비해 준다.출근시간 전철안에서 내리기도 전에 타려고 하는 자,내차 옆에서 끼어들겠다고 빵빵거리는 차 내마음에 박히는 모든
화살들이 "나의 원수"입니다.그 화살을 오래 끌어안고 살수록 상처는 깊어가기 마련입니다.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달리 말해 화살을 빼라고 하신게 아닐까요? 나에게 활을 쏜 사람은 남이 아
닙니다.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내 탓이오를 정말,정말,정말 진심으로 인정할 때 박혔던 화살도 빠지고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그러할 때 달리기는 나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
져 있다는 사실 그런 모든 것이 내영혼을 청소해주고 내게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담성을 부여해주고 존재들의 광대함속에 나를 던져 넣어 내 기분 내키는 대로 거리낌없이 그것들을 조합하고 선택하
고 내것으로 만들수 있게 해준다.조금만 모자란다고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현실에 안주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기회에 기웃거리며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그러나 한강변을 달
리면서 칼바람소리와 추위를 떠올리면서 느슨해지고 게으른 마음에 채찍을 가한다면 우리 마음도 따듯하고 행복해질 겁니다.내가 어린시절 권투나 무술을 배울때는 사람들은 "눈을 뜨고 보는것"을 가장 먼
저 훈련받았다.가장 좋은 학습 기회는 대결을 할 때 공격을 당하는 그 순간이다.중요한 것은 맞는 그 순간에 아프고 화가난다고 해서 손발을 어지럽게 놀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고통속에서 또 다른 쾌감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발견과 각성의 쾌감 "그때"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나의 관점을 넘어서 상대방의 관점 전체의 관점까지 아우를 수 있는 큰 시각이 필요하고 그에 맞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이며 실마리가 잡힌다.그때 그것을 낚아 채는 것이다.달리기가 다 함께하는 줄기는 스포츠라야 하고 마라톤은 몸의 임계점을 통과하는 운동이다.심장이 파열하는 듯한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철저하고 세심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비굴한자,안락에 길들여진자,이기적인 자는 마라톤을 할 수 없다.제 몸을 통제하는자의 영혼은 고결하기 때문에서 이다.내가 자주 찾는 소래포구의 게는 뻘밭에
서 옆으로 잘 기어다닌다. 게를 옛 사람들은 참 부러워 하였다.몸에 창자가 없으므로 당장의 고통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애간장이 녹을 일이 없다." 반대로 보리나 쌀인 알곡을 먹고 살아왔기로
한국인의 소장(小腸)이 여느 다른 민족보다 80cm나 길며 이것이 각종스포츠와 노동의 뒷심을 보장하는 지구력으로 가치 형성을 해 왔다.달릴때에도 그 뱃심으로 지구력을 더 발희한다는 것이다.이봉주선수
가 스피드는 처져도 지구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도 어쪄면 그런데에 기인해서 일 것입니다.소래포구 뻘밭을 기는 게 앞서가는 어미게는 모로 가면서도 뒷따르는 자식들한테
는 똑바로 오라고 큰 소리 친다는 것입니다.잘 가기위한 몸부림일 것입니다.우리는 애간장을 녹이지 않고 살 수도 있으며,이봉주 선수와같이 지구력을 바탕으로 달리려고 하는 것은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하
며 살아왔는가의 합계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절실하게 희망해 왔는가의 합계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고 했듯이 우리들이 다 같이 추구하는 단 한가지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달리기라는 매체의 만남에서 일 것입니다.우리가 달린다는 것은 달리기로 참선의 궁수가 되려하는 내면에 비수를 꽂듯,내면을 살찌우게 하는 일정한 선을 따라 률을 지켜 갈 때 라야 우리는 진정한 달림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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