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시작 그리고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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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한 작성일07-11-21 14:17 조회6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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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가 동기
이번 서울 울트라 마라톤은 처음 참가 했던 강화 햄 울트라대회(’07.8.25)에서 제한시간 안에 골인하지 못하고 30분을 초과해 골인한 것에 대한 오기가 발동해서 신청한 대회다. 처음 출전했던 강화 대회는 한여름에 치러진 대회다. 무더위와 싸우며 수없이 길 위에 널 부러 지고, 발바닥이 벗어지고, 아스팔트의 열기가 턱까지 차오르던 대회로 내 나름대로는 안간힘을 썼건만 15시간 30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록 기록은 제한시간 15시간을 초과했지만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대회였다. 경외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던 울트라 마라톤을 내가 내발로 완주한 것 이기에 마음 한 켠에는 자부심이 있었고,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을 실감한 대회였다. 뜻을 이루고 못 이루고의 차이는 “시작”이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서울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제한 시간 안에 골인하는 것이 나의 목표요 과제였다. 그래서, 3만원이나 하는 완주 기념패도 미리 신청했다. 그 만큼 각오는 대단 했었다.
2. 연습과정
지난 연초에 회사 간부사원 집합교육 시에 선언 했던 Iron man 입문을 위하여, 9월 목동클럽에 가입하고 Road bike(사이클)을 구입하였다. 이때 부터 달리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수영과 사이클이 주 연습종목에 되고 말았다. 춘마는 포기하고 중마를 선택해서 5분 페이스로 달렸는 데, 연습량이 부족했는 지 종아리엔 쥐 두 마리가 놀다가 가고, 36km 지점부터는 엉덩이 좌측과 좌측무릎의 통증으로 걷다가 뛰다를 반복하여 겨우 골인하였다. 이때부터 달리기는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실내 자전거로 대체훈련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강화 울트라 이후 달린 거리는 377km로 월평균 120여km 정도였다.
3. 대회 전
전날 10시 2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긴장 탓인지 깊은 잠을 못 잤다. 아직 집사람이 운동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수준이 못되어 혼자 일어나 준비하여야 한다. 3시 40분에 일어나 집사람이 챙겨주는 아침을 개 눈 감추듯이 먹고, 소염진통제를 먹었다. 아직도 개운치 않은 무릎 왼쪽과 좌측 엉덩이를 의식해서였다. 올림픽 주경기장 가는 차선은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뚤러 있었다. 오늘 주로에서도 이렇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하니 여기 저기 사람이 몸을 풀고 있는 데, 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이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는 되는 듯하다. 당초 가볍게 입고 비닐을 둘러 쓰려 생각 했는 데, 중무장으로 복장 계획을 변경하였다.
- 상의 : 여름용 운동복, 안에 떨이 있는 긴 팔, 바람막이
- 하의 : 패드가 얇게 달린 철인 경기복(주요부위 보호 목적), 긴 타이즈
- 신발 : 트레일화 (나중에 후회 막심 : 너무 딱딱하여 무릎에 충격 전달)
- 기타 : 빵모자, 스키용 장갑, 목장갑, 비상용품이 든 베낭,
그리고, 주최측에서 제공한 몸통을 감쌀 수 있는 비닐.
4. 주로에서 부닥친 내면의 갈등
한강의 바람은 보통이 아니었다. 전에 여러 번 경험한 적은 있었지만 강바람소리와 주자들이 착용한 비닐 옷에서 나는 소리가 주로를 가득 메운다. 사이클 연습할 때 쓰는 드래프팅(공기저항을 피하기 위해 선두주자를 바짝 따라가기)를 할 요량으로 앞사람 뒤에 따라가다가 미안한 생각에 강바람 쪽에 서서 당당히 달렸다. 얼마를 가다 보니 회사 마라톤 클럽의 문의수님이 몇 명의 선두에서 그룹을 이끌 고 있다.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힘차게 달렸다. 잠실운동장 근처를 지나 탄천 그리고 양재천! 이 곳은 직장 근처로 일과 후 가끔 달리던 곳이라 몸이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반환점을 지나 영동4교쯤 달리는 데 무릎이 이상하다. 그러나 속도만 약간 늦추고 계속 달렸다. 통증이 더 심해진다. 영동대교 아래 보급소에서 진통제를 복용했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내리막에서 더욱 심한 것 같아 경사진 곳에서는 무조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된다.”
“간다. 끝까지!”
“걸어서라도 가겠다.”
완주 기념패도 신청하지 않았는 가?
목표는 정해졌고, 시작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의 싸움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차가운 강바람이 속도를 떨어 뜨리고 있을 뿐이다.”
지난 여름 강화도에선 한여름 아스팔트 열기와 싸우지 않았던가?
지금 이 추위는 한 여름 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쩌면 하느님은 2분법 적으로 세상을 만들고 통제하고 시험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남과 여, 낮과 밤, 양지와 음지, 앞과 뒤, 위 아래, 좌우,…….
나의 의지는 두 편으로 갈라져 내 몸을 콘트롤 하고 있다.
무릎과 좌측 엉덩이 통증에 의한 약한 마음. 그리고, 해내야겠다는 내 면의 의지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나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난 여기에 뛰고 있다.
“간다. 끝까지!”
“반환점을 돌아 올림픽공원으로 가 골인의 순간을 맛보고 싶다.”
수없이 나 자신을 쇄뇌시키며 한걸음 한 걸음을 내 딛었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한다.
영동대교를 지나니 목동철인클럽 황준오님이 허리를 감싸고 밀어준다. 반갑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내고 만다. 강바람과 싸우며 언덕을 만나면 걷고, ㄸ 많은 사람을 보내고…..를 수없이 반복하니, 65km 주자자가 반환점을 돌아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또 다른 생각이 밀려 온다. 이 상태에서 100km를 뛸 수 있을 까? 저들처럼 65km만 뛸까? 또 다시 2을 놓고 갈등한다. 그러나, 왠지 65km는 내키지 않았다.
“100km는 돼야 울트라라고 할 수 있지!”
“ 그리고 난 100km을 신청하지 않았던가?” 그리곤, 잊기로 했다.
회수 차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100km를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다시 달렸다.
여의도를 지나고 성수대교를 지나니 바람이 잠잠하다. 아니 더웠다. 바람막이 복장을 풀어 헤치고 달렸다. 다리 상황은 더 안 좋아 가로등 10개를 달리고 1개는 빨리 걷는 방식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목동철인클럽의 심연수 씨가 보인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동반주를 했다. 목동교에서는 김병두 국가대표님이 동반주를 해주신다. 너무 고마웠다. 안양천을 돌아 올 때 많은 목동철인의 환호로 과속을 했다. 가양대교, 방화대교 방향의 바람은 더 거세다. 다리의 통증은 계속되어 진통제를 추가 복용했다. 가로등 5개를 뛰고 1개 걷기로 작전을 바꿨다. 가양대교와 방화대교가 그렇게 먼 곳인 줄은 예전엔 알지 못했다.
65km 반환점에 이르니, 텐트가 있고 사람이 가득하다. 도움이 들이 주는 죽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출발하였다. 뒷 바람이 발 걸음을 가볍게 했다. 발에 통증이 많이 가시는 듯 했다. 저속으로 달리는 주자를 따라 계속 달려 보았다. 부담이 적어 방화대교에서 성산대교 전까지는 쉬지 않고 달렸다. 안양천을 지나오는 데 황준오님이 뒤어서 따라 붙으신다. 65km지점에서 충분히 쉬신 모양이다. 동반주를 하다가 다리에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로등 10개 달리고 1개 걷기 전략으로 바꿨다. 바람의 저항이 없어 전반보다는 수월한 느낌이었으나, 지친 몸은 더욱 몸을 힘들게 했다. 진통제 2알을 추가로 복용하고 막판 달리기에 집중했다. 80Km → 83km(반포대교 전) → 85km → 90km . 속도는 떨어 졌지만 약의 힘을 빌려 지속주를 하였다. 잠실대교가 보이고, 현대아산병원 옆 뚝방으로 오른다. 나머지 4km! 해는 서산으로 지고 올림픽공원이 보인다.
가로등이 밝혀지면서 평화의 문 골인지점을 통과하였다.
어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Finish Line을 통과하였다.
해냈다. 12시간 39분 43초. 목표, 시작 그리고 의지! 오늘 나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날이다. 그리고, 수많은 갈등을 잠재웠다.
5. 회복
월계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식권으로 식사를 하고, 올림픽 파크텔 싸우나에 들려 찬물 찜질을 하려 했으나, 몸에 한기 때문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가 또 배가 고픈 듯하여 문의수님과 칼국수집에 들렀다. 식사 후에도 배가 계속 고픔 듯하였다. 아니 쓰렸다. 집에 와서 간단히 맛사지를 하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 났는 데 배는 계속 쓰리다. 대변을 보니 젖먹이 어린아이의 변처럼 곱디 고운데 색깔을 아주 검었다. 약국에 들러 물으니 장에서 출혈이 있나 보다고 하면서 위장약을 준다. 진통제는 복용하지 말고 바르기만 하란다. 위장약을 먹으니 속이 편하다. 점심때는 회사 Gymnasium에 들러 실내자전거에 올랐다. Level 3를 놓고도 쉽지 않았다. 회사의 많은 사람이 사유를 묻는다. “무릎을 조금 다쳤어”라고 대답한다. 내 삶의 중요한 행동강령이 될 “폭표와 시작 그리고 의지”를 되 내이면서…..
6. 감사의 말
영하의 날씨 속에 치러진 서울 울트라 마라톤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심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주자는 달리느라 고생했지만, 도우미는 주자가 달릴 수 있도록 그 추위에서 싸우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응원 나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성공리 대회를 주최해주신 주최측에도 감사 드린다.
이번 서울 울트라 마라톤은 처음 참가 했던 강화 햄 울트라대회(’07.8.25)에서 제한시간 안에 골인하지 못하고 30분을 초과해 골인한 것에 대한 오기가 발동해서 신청한 대회다. 처음 출전했던 강화 대회는 한여름에 치러진 대회다. 무더위와 싸우며 수없이 길 위에 널 부러 지고, 발바닥이 벗어지고, 아스팔트의 열기가 턱까지 차오르던 대회로 내 나름대로는 안간힘을 썼건만 15시간 30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록 기록은 제한시간 15시간을 초과했지만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대회였다. 경외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던 울트라 마라톤을 내가 내발로 완주한 것 이기에 마음 한 켠에는 자부심이 있었고,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을 실감한 대회였다. 뜻을 이루고 못 이루고의 차이는 “시작”이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서울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제한 시간 안에 골인하는 것이 나의 목표요 과제였다. 그래서, 3만원이나 하는 완주 기념패도 미리 신청했다. 그 만큼 각오는 대단 했었다.
2. 연습과정
지난 연초에 회사 간부사원 집합교육 시에 선언 했던 Iron man 입문을 위하여, 9월 목동클럽에 가입하고 Road bike(사이클)을 구입하였다. 이때 부터 달리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수영과 사이클이 주 연습종목에 되고 말았다. 춘마는 포기하고 중마를 선택해서 5분 페이스로 달렸는 데, 연습량이 부족했는 지 종아리엔 쥐 두 마리가 놀다가 가고, 36km 지점부터는 엉덩이 좌측과 좌측무릎의 통증으로 걷다가 뛰다를 반복하여 겨우 골인하였다. 이때부터 달리기는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실내 자전거로 대체훈련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강화 울트라 이후 달린 거리는 377km로 월평균 120여km 정도였다.
3. 대회 전
전날 10시 2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긴장 탓인지 깊은 잠을 못 잤다. 아직 집사람이 운동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수준이 못되어 혼자 일어나 준비하여야 한다. 3시 40분에 일어나 집사람이 챙겨주는 아침을 개 눈 감추듯이 먹고, 소염진통제를 먹었다. 아직도 개운치 않은 무릎 왼쪽과 좌측 엉덩이를 의식해서였다. 올림픽 주경기장 가는 차선은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뚤러 있었다. 오늘 주로에서도 이렇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하니 여기 저기 사람이 몸을 풀고 있는 데, 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바람이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는 되는 듯하다. 당초 가볍게 입고 비닐을 둘러 쓰려 생각 했는 데, 중무장으로 복장 계획을 변경하였다.
- 상의 : 여름용 운동복, 안에 떨이 있는 긴 팔, 바람막이
- 하의 : 패드가 얇게 달린 철인 경기복(주요부위 보호 목적), 긴 타이즈
- 신발 : 트레일화 (나중에 후회 막심 : 너무 딱딱하여 무릎에 충격 전달)
- 기타 : 빵모자, 스키용 장갑, 목장갑, 비상용품이 든 베낭,
그리고, 주최측에서 제공한 몸통을 감쌀 수 있는 비닐.
4. 주로에서 부닥친 내면의 갈등
한강의 바람은 보통이 아니었다. 전에 여러 번 경험한 적은 있었지만 강바람소리와 주자들이 착용한 비닐 옷에서 나는 소리가 주로를 가득 메운다. 사이클 연습할 때 쓰는 드래프팅(공기저항을 피하기 위해 선두주자를 바짝 따라가기)를 할 요량으로 앞사람 뒤에 따라가다가 미안한 생각에 강바람 쪽에 서서 당당히 달렸다. 얼마를 가다 보니 회사 마라톤 클럽의 문의수님이 몇 명의 선두에서 그룹을 이끌 고 있다.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힘차게 달렸다. 잠실운동장 근처를 지나 탄천 그리고 양재천! 이 곳은 직장 근처로 일과 후 가끔 달리던 곳이라 몸이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반환점을 지나 영동4교쯤 달리는 데 무릎이 이상하다. 그러나 속도만 약간 늦추고 계속 달렸다. 통증이 더 심해진다. 영동대교 아래 보급소에서 진통제를 복용했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내리막에서 더욱 심한 것 같아 경사진 곳에서는 무조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된다.”
“간다. 끝까지!”
“걸어서라도 가겠다.”
완주 기념패도 신청하지 않았는 가?
목표는 정해졌고, 시작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나와의 싸움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차가운 강바람이 속도를 떨어 뜨리고 있을 뿐이다.”
지난 여름 강화도에선 한여름 아스팔트 열기와 싸우지 않았던가?
지금 이 추위는 한 여름 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쩌면 하느님은 2분법 적으로 세상을 만들고 통제하고 시험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남과 여, 낮과 밤, 양지와 음지, 앞과 뒤, 위 아래, 좌우,…….
나의 의지는 두 편으로 갈라져 내 몸을 콘트롤 하고 있다.
무릎과 좌측 엉덩이 통증에 의한 약한 마음. 그리고, 해내야겠다는 내 면의 의지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나 정답일 수 있다.
그러나, 난 여기에 뛰고 있다.
“간다. 끝까지!”
“반환점을 돌아 올림픽공원으로 가 골인의 순간을 맛보고 싶다.”
수없이 나 자신을 쇄뇌시키며 한걸음 한 걸음을 내 딛었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한다.
영동대교를 지나니 목동철인클럽 황준오님이 허리를 감싸고 밀어준다. 반갑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내고 만다. 강바람과 싸우며 언덕을 만나면 걷고, ㄸ 많은 사람을 보내고…..를 수없이 반복하니, 65km 주자자가 반환점을 돌아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또 다른 생각이 밀려 온다. 이 상태에서 100km를 뛸 수 있을 까? 저들처럼 65km만 뛸까? 또 다시 2을 놓고 갈등한다. 그러나, 왠지 65km는 내키지 않았다.
“100km는 돼야 울트라라고 할 수 있지!”
“ 그리고 난 100km을 신청하지 않았던가?” 그리곤, 잊기로 했다.
회수 차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100km를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다시 달렸다.
여의도를 지나고 성수대교를 지나니 바람이 잠잠하다. 아니 더웠다. 바람막이 복장을 풀어 헤치고 달렸다. 다리 상황은 더 안 좋아 가로등 10개를 달리고 1개는 빨리 걷는 방식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목동철인클럽의 심연수 씨가 보인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동반주를 했다. 목동교에서는 김병두 국가대표님이 동반주를 해주신다. 너무 고마웠다. 안양천을 돌아 올 때 많은 목동철인의 환호로 과속을 했다. 가양대교, 방화대교 방향의 바람은 더 거세다. 다리의 통증은 계속되어 진통제를 추가 복용했다. 가로등 5개를 뛰고 1개 걷기로 작전을 바꿨다. 가양대교와 방화대교가 그렇게 먼 곳인 줄은 예전엔 알지 못했다.
65km 반환점에 이르니, 텐트가 있고 사람이 가득하다. 도움이 들이 주는 죽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출발하였다. 뒷 바람이 발 걸음을 가볍게 했다. 발에 통증이 많이 가시는 듯 했다. 저속으로 달리는 주자를 따라 계속 달려 보았다. 부담이 적어 방화대교에서 성산대교 전까지는 쉬지 않고 달렸다. 안양천을 지나오는 데 황준오님이 뒤어서 따라 붙으신다. 65km지점에서 충분히 쉬신 모양이다. 동반주를 하다가 다리에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로등 10개 달리고 1개 걷기 전략으로 바꿨다. 바람의 저항이 없어 전반보다는 수월한 느낌이었으나, 지친 몸은 더욱 몸을 힘들게 했다. 진통제 2알을 추가로 복용하고 막판 달리기에 집중했다. 80Km → 83km(반포대교 전) → 85km → 90km . 속도는 떨어 졌지만 약의 힘을 빌려 지속주를 하였다. 잠실대교가 보이고, 현대아산병원 옆 뚝방으로 오른다. 나머지 4km! 해는 서산으로 지고 올림픽공원이 보인다.
가로등이 밝혀지면서 평화의 문 골인지점을 통과하였다.
어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Finish Line을 통과하였다.
해냈다. 12시간 39분 43초. 목표, 시작 그리고 의지! 오늘 나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날이다. 그리고, 수많은 갈등을 잠재웠다.
5. 회복
월계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식권으로 식사를 하고, 올림픽 파크텔 싸우나에 들려 찬물 찜질을 하려 했으나, 몸에 한기 때문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가 또 배가 고픈 듯하여 문의수님과 칼국수집에 들렀다. 식사 후에도 배가 계속 고픔 듯하였다. 아니 쓰렸다. 집에 와서 간단히 맛사지를 하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 났는 데 배는 계속 쓰리다. 대변을 보니 젖먹이 어린아이의 변처럼 곱디 고운데 색깔을 아주 검었다. 약국에 들러 물으니 장에서 출혈이 있나 보다고 하면서 위장약을 준다. 진통제는 복용하지 말고 바르기만 하란다. 위장약을 먹으니 속이 편하다. 점심때는 회사 Gymnasium에 들러 실내자전거에 올랐다. Level 3를 놓고도 쉽지 않았다. 회사의 많은 사람이 사유를 묻는다. “무릎을 조금 다쳤어”라고 대답한다. 내 삶의 중요한 행동강령이 될 “폭표와 시작 그리고 의지”를 되 내이면서…..
6. 감사의 말
영하의 날씨 속에 치러진 서울 울트라 마라톤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심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주자는 달리느라 고생했지만, 도우미는 주자가 달릴 수 있도록 그 추위에서 싸우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응원 나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성공리 대회를 주최해주신 주최측에도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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