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아! 2007년도 서울울트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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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헌 작성일07-11-19 19:31 조회7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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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국악반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데 오전에 국악공연을 학교에서 열기 때문에 와이프와 학교로 향했다. 이미 행사는 시작되었고 학생들을 포함한 학부형들도 많이 와 관람 중이었다. 원래 음악에는 문외한인데도 우리의 것은 왠지 좋다. 흥이 절로 난다.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여…….
오후에는 와이프와 서울(내가 사는 곳은 용인)에 들러 장인어른을 모시고 토지 경작 일로 충북 제천에 갔다 와야 했다. 이때 시각이 오후 2시가 넘어서 급히 차를 몰아 분당을 빠져 나가는 시각이 토요일 한참 막히는 시각이라 3시가 넘어서고…….
내일이 울트라 마라톤 하는 날인데 걱정이 앞선다. 서울 들러서 제천 갖다 오면 몇 시에 집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이왕 나섰으니 갖다 오기로 했다. 제천 가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토요일 주말의 정체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주적주적 겨울비는 내리고, 그냥 고속도로에서 빠져 되돌아갈까? 날은 저물어 꺼뭇꺼뭇하고 지금 가야 내가 가는 목적을 달성 못할게 뻔하고.
결국 오늘은 제천 토지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올 맘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난 대가로 주변이 많이 변화되어 한참을 해맨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도착한 시각에는 이미 컴컴한 밤중이라 시커먼 먹구름 사이에 희미한 초승달만이 주변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 다음엔 일찍 길을 나서 확인하기로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제천에 있는 삼탄이라는 시골 식당에 동태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맛이 꼭 어렸을 적 어머님이 해주었던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다. 찌개도 반찬은 풍성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배불리 먹고 이젠 갈일이 아득하다. 올 때 보다는 덜 막히겠지만 서울 들러 다시 용인 집에 오려면 빨라도 밤 12시 정도에 들어갈 것 같다.
요 몇 일새 울트라 마라톤으로 많은 걱정을 했다. 그까짓 거 포기하면 걱정할 일도 없을 텐데…….
장인어른을 모셔 드리고 집에 도착하니 밤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내일 울트라 마라톤은 포기하느냐 아니면 내일 울트라 마라톤을 위해서 준비하고 자느냐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중앙마라톤 후 울트라 연습주가 기껏해야 헬스장에서 2~3일에 런링 머신 5km, 금요일 15km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고 무릎도 안 좋고 또 오늘 장거리 출타에 내일(일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날 일이 꿈만 같다.
내일 일을 결정하기 전에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낙엽이 다 떨어진 단풍나무 가지가 휘어지고, 측백나무 가지가 부러질 듯 거센 바람에 요동을 친다. 비만 내리면 포기할거라고 마음먹었는데 비는 안 온다. 그래 내일 서울울트라 마라톤을 위해 준비하고 자자고 결정했다. 배번 달고, 신발 챙기고, 칩 챙기고, 여차하면 일어나자마자 입고 나갈 수 있게 정리해 두었다.
이제 숙면 시간은 땡하고 눈감고 자야 2시간 반 정도 자는 시간이 된다. 빨리 자야지…….
자리에 누우니 내일 얼마나 추울까, 아까 베란다 밖 보니까 바람도 많이 불고 일기예보에서도 내일 온도가 떨어져 체감온도는 뭐 더 춥다고?
빨리 자야 하는데 별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고 껌껌한 방안에 눈만 똘망똘망해진다. 빨리 자야하는데 왜 이리 잠은 안 오고……. 1에서 10000까지 세어볼까? 피로해질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버텨볼까?
어찌해서 잠은 들었었고 덜거덕 거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시계에 먼저 눈이 간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먼저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자기 전 거세게 불던 바람이 아직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비는 안 오는 게 다행이었다. 자기 전 준비한 옷을 챙겨 입고 잠도 못자고 지어준 아침을 먹으려니 도통 무얼 먹는지 밥맛도 없다. 누룽지를 끓여 줄까? 깨작깨작 먹는 게 영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누룽지 언제 끓이고 먹을 소냐. 그냥 차려준 밥 꾸역꾸역 배에 밀어 넣고 가는 길에 바나나, 영양 갱이라도 먹어야지 생각한다. 집 나서기 전 비타민도 먹어두고.
올림픽 공원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년에는 와이프가 대회장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요번에도 데려다 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다. 어제 늦게까지 먼 길 갖다 와서 데려다 달라고 하기가 싫었다.
현관문을 나서니 와이프는 힘들면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잘 하라고…….
새벽녘의 도로는 한산하기보다 을씨년스럽다. 도로가 이렇게 차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이 울트라 3번째 참가인데 이전 2번 모두 시간에 쫓겨 준비운동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급히 출발했던 터라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자 최대한 속력을 내서 도착하니 4시 20분이 안 되었다. 시간은 충분한 것 같다. 남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문을 여니 차 안에 훅 차가운 바람이 낙엽을 밀어 넣는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너무 춥다. 대회장으로 가다가 너무 추워 차로 되돌아가 두터운 운동복을 껴입고 오는데 탈의실까지 오는데 덜덜덜 추위가 밀려와 뼈 속까지 차가와지는 느낌이다.
탈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참가자 및 가족들이 북적거린다. 대회장에서 제공한 이른 아침을 먹는 분, 옷을 갈아입는 분, 추위에 대비 방한 비닐을 입는 분, 추위를 피해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분.
천막 텐트 안은 참가자 및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상의를 보니 반팔 및 짧은 런링 팬티를 입으려고 준비 했는데 날씨를 보니 이걸 입고 뛰면 동태되기 십상이겠다. 그래서 여벌로 준비해준 타이즈 및 긴팔 셔츠를 2개나 껴입었다. 배번을 긴팔 티셔츠에 옮겨 달아야 하는데 손이 곱아 잘 달아 지지도 않는다. 밖에서는 출발 5분전이라고 멘트가 나온다. 부랴부랴 추위에 대비한 완전무장을 하고 출발 전까지 준비 운동을 해 본다. 주위를 둘러봐도 짧은 런링복 차림을 한 참가자는 별로 없다. 춥긴 추운가 보다.
새벽 5시!
출발이다.
아직 이곳 올림픽 공원의 하늘은 북적거림이 없는 새벽녘의 고요한 아침이다. 거세계 부는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한다. 그렇지만 캄캄한 새벽녘에 뛰는 참가자들의 발검음은 모두가 경쾌한 발검음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라 하더라도 적어도 서울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 달림이들에게는 추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리.
허연 입김을 허공에 내뿜으며 올림픽 공원을 내달으니 벌써 들어오는 달림이가 있는 것인가? 시간에 쫓겨 급히 오는 참가자인 모양이다. 완주하라는 대회관계자의 힘찬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성내 천을 향한다.
그리고 매번 느끼지만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를 잘 조절하자고 되새겨 본다. 한강변까지 나오는 동안 추위 말고는 몸 상태는 좋은 듯하다. 무릎이 새삼 걱정이 되는데 말이다. 암사동쪽 반환점을 향하는 데는 바람을 등지고 뛰기 때문에 추운 것을 모르고 그래서 조금 속력도 내 본다.
반환점을 되돌아서 오는 길.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여기까지 오는데 약간의 땀이 비닐에 달라붙은 것이 추위에 얼어붙어 만지면 버그럭 거린다. 걱정이 점점 많아진다. 여의도 반환점까지 계속 이 맞바람을 맞아 가면서 가야 하는데 온 몸에 부닥치는 바람은 가고자 하는 나의 길을 자꾸만 시샘하여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웬만하면 거추장스러운 입고 있던 비닐을 벗어던져 버렸을 터인데 방한 비닐이 오늘처럼 요긴하게 쓸 줄이야. 뛰는 동안 적어도 여의도 반환 지점까지는 입고 가야 할 듯하다. 아마 당초 예정했던 짧은 런링복에 방한 비닐을 안 했더라면 한강변 나올 때 쯤 도중 포기했으리라. 맞바람을 맞으며 뛰는 달림이들 역시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그렇지만 자연환경을 이겨보려고 이따위 맞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자위해본다.
얼마간을 가니 종합운동장쪽에서 양재 천을 따라 가는 길이 나온다.
아아!! 이곳에 접어드니 정말 살맛나네. 맞바람은 어느덧 사라지고 평상시의 기온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 구간 정도의 주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생각과 똑같았을까. 힘든 구간을 지나오고 보니 이곳 구간을 달릴 때는 정말로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힘을 비축해서 후반에 잘 활용해야지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가끔 이곳 양재 천을 새벽녁에 다녀보면 안개가 잘 끼는 것을 본다. 작년 대회 때도 자욱한 안개가 꼈었는데 오늘은 그런대로 시계가 좋다. 중간 중간에 고여 있는 물이 얼어붙어 살얼음이 되어 미끈거린다. 다들 조심해야 할 텐데…….
이곳 양재천을 뛰다보면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게 있다. 유혈목이 꽃뱀인데 2006년도 울트라 마라톤시 주로 앞 바로 2m 정도 앞을 획 횡단해가는 바람에 한쪽 주로만 달리다 놀라 갑자기 옆으로 피하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속력을 내며 바로 뒤따라오던 분이 나와 충돌을 피하려고 브레이크를 잡는 통에 한 바퀴 굴러 넘어졌고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얼핏 보아도 고가의 자전거라는 느낌이 드는 자전거 페달이 못쓸 정도로 휘어져 버린 일이 있는데 울트라 대회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싸이클복 안쪽에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무일 없다는 듯 오히려 완주하라고 힘을 북돋아 준 일도 있다.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유혈목이 꽃뱀을 도심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양제천이 많이 제 모습을 찾아 가는 듯싶다.
서울문화회관 반환점에 도달하여 감로수 같은 꿀물과 간식을 먹고 되돌아 나올 땐 이미 어둑어둑했던 하늘 녘은 허옇게 벗어지고 있었다. 양재천에 간간히 있는 갈대에서는 부는 바람으로 사각거리고 고여 있는 나지막한 물에는 투명한 살얼음이 얼렸다.
종합운동장쪽으로 나오니 급식대가 반갑게 기다려 준다. 양재천으로 들어 갈 때는 음료 및 바나나가 차갑다고만 느꼈는데 되돌아 나올 때는 스포츠 음료는 살얼음이 얼어 사각거리고 바나나도 차갑게 살짝 얼어 있다. 찬 음식을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먹어 두는 게 좋을 듯싶어 우걱우걱 먹어둔다. 따뜻한 물로 상큼하게 입가심을 하고 한강변으로 나와 이제 반환점까지 내달려야 한다. 그것도 차갑고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면서…….
양재천을 달릴 때는 바람이 없어 땀이 나 있는 상태인데 한강변으로 나오니 어느 정도 지나 비닐에 묻은 땀이 얼어붙고, 옷에 배어 있는 땀이 식어 한기가 오싹 든다. 한기로 자꾸 몸서리가 난다. 차가운 바람이 땀이 밴 상의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닐 위아래를 꼭 묵어 둔다. 그리고 모자 쓴 머리에는 방한복 후드를 쓰고 꼭꼭 끈을 동여맨다.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에 덮어쓴 후드에 부딪혀서 후우 후! 다다닥! 둑 두 드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신경이 쓰이기도 한데 벗으면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엄습할 듯싶어 벗을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바람소리를 들어보며 가기로 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바람소리인가. 처마 밑에 휘돌아 도는 맑은 바람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며 내는 청아한 바람소리.
한강의 고운 바람소리를 들어 보라고 후우 후! 다다닥! 둑 두 드드득! 하는 소리를 낸 모양이다. 후드를 벗고 바람 소리를 들어본다.
이른 아침의 바람소리는 간밤의 긴 시름을 날려 보내는 듯 한 바람소리 마냥 탁한 바람소리 같다.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바람소리는 빛의 산란을 받아 일곱 가지 음색을 들려주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한 낮의 바람소리는 주변의 풍광과 강열하고 웅장한 자태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하다. 듣기에 따라서 소음이 음악으로 음악이 소음으로 들리는 듯 하고…….
한참을 가다가 앞뒤를 살펴본다. 청담대교를 보니 전동차가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성수대교를 지나니 바람이 더 거세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 염려했던 일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왼쪽 무릎에서의 통증이 서서히 내 몸과 싸우다 통증을 이겨줘야 할 놈이 점차 힘을 잃어 통증이 나의 점차 지쳐가는 몸을 차근차근히 침범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알리는가 보다.
실은 작년에 나도 모르게 무리를 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뜀박질을 많이 했다. 무식할 정도로…….
이게 무리가 갔을까 춘천마라톤 후의 가을부터 왼쪽 무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올 봄에 깁스를 해야 했다. 한 달 반 동안 관절 부분에 깁스를 하니 정말이지 운동을 안했으면 안했지 깁스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몇 번을 되뇌였다. 그 불편함이란……. 물론 완치를 위해서라면 그것보다도 더한 혹독한 일도 감내해야겠지만 틈만 나면 뜀박질을 하던 내게는 이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였다. 깁스를 풀던 날 의사로부터 등산, 조깅을 포함한 무리하지 않는 약간의 운동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쁨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점점 무릎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주의를 해가며 운동을 했으나, 이전 상태로는 되돌리기에는 무리다라는 생각이 내 뇌리 속에 자리 잡았고, 무리하다 또 다치면 이후에는 뜀박질을 더 이상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엄포 아닌 엄포를 의사가 말한 터인지라.
영동대교에서 바라다 보이는 성수대교가 왜 이렇게 멀리 보이는지. 매번 느끼는데 교각 사이 거리가 긴 곳이 4곳 있는데 다른 데가 더 긴데도 이상하게 이 구간이 멀게만 느껴지는 건 뭘까? 이런 생각이 드니 발걸음이 무뎌지기만 한다. 멀리 30km 푯말이 보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내가 뛸 거리에 거의 반씩이나 와 있다. 급식대에서 몸을 추슬러 본다. 서서히 전달해 오는 무릎의 통증이 제일 걱정이 되고, 중간 중간 먹어 두었던 찬 음료와 간식으로 배는 더부룩해 지고, 달리는 내내 코 찔찔이도 아닌데 맞바람과 추위로 코언저리에 콧물이 흘러 장갑으로 연신 훔쳐내는 통에 코 밑은 손을 대면 까끌까끌 아픔이 저며 들고, 방한 비닐 안쪽은 땀이 얼어붙어 만지면 바스락거리고, 구글은 시력에 맞게 해 놨는데 자꾸 초점이 안 맞는 거 같아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하고……. 정말이지 마라톤을 하면서 최악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물론 혹한기 대회도 마찬가지이지만 혹한기 대회는 그에 맞게 준비하게 때문에 이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서 스스로 마사지를 하고 나니 무릎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어느 정도지 조금 지나니 자꾸 무릎이 아프다 한다. 갈 길도 먼데, 앞을 바라다보니 63빌딩도 안 보인다. 자꾸 마음이 약해져 간다. 달리면서 히말라야 등정을 했던 다큐멘터리 산(山)을 떠올려 본다.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한발 한발 내디뎌 그것이 모아져 정상에 도달하지 않는가? 몇 십 미터를 몇 시간에 걸쳐 등정하는데 이까짓쯤은 우습다고 스스로 여겨 본다. 가다보면 지까짓께 나오겠지. 그럼……. 쉽게 생각해야지.
한강변을 달리면서 앞만 보고, 길 바닥만 보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러 보이는 한강과 바람에 일렁이는 그 물결, 바람소리, 해살에 반짝이는 강변의 옹기종기한 집들, 시원스럽게 하얀 물결을 헤치고 질주하는 모터보트, 겨우살이를 위해 따뜻한 이부자리를 준비한 화초들, 조기 축구하는 축구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한강 둑의 갈색의 풀잎, 그리고 응지녘의 진녹색의 잡초가 추위에 오돌오돌 흔들리며 떠는 모습을 본다.
멀리서 뿌옇게 63빌딩이 눈앞에 보인다. 직선거리로도 아득하게 보이는데 꾸불텅꾸불텅 가려면 한참 걸리는데. 그래도 시야에 들어 왔으니 가다보면 도달하겠지.
어느덧 여의도에 도달하고 83빌딩 앞에는 긴긴 길을 달리느라 피로에 지친 달림이들에게 아침 햇살을 듬뿍 받아 에너지를 충진 시켜 주는 듯 환한 황금빛을 발산해 주었다. 반환점이 가까워서 그런가! 아! 힘이 불쑥 솟는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여의도 반환점에서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 준 나의 몸, 그중에서도 아픈 다리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 준다. “왜 아프고 난리야”라고 구박하는 것보단 좋지 않을까 해서…….
이제는 바람을 등지고 가게 된다. 아무렴 올 때 보단 훨씬 힘이 덜 들겠지. 사실 그랬다. 심신이 지친 상태지만 내 몸을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올 때는 그리도 원망스럽더니 갈 때는 바람이란 놈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다 같이 올 때는 달림이들의 뒷모습만 보며 달려 표정을 알 수 없었으나, 반환점을 돌아 갈 때는 달림이들의 표정이 보이는지라. 이놈의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든 모습들이 다들 역력하고, 고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메 바람을 등지고 가는 내 자신이 왠지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울트라 마라톤을 하다보면 매번 보았던 얼굴들을 달리면서 자주 보곤 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눈에 익은 달림이를 못 보아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오는 길에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의 열성적인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한편으론 대회 출전한 달림이들은 뛰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덜 느끼겠지만 이른 새벽부터 계속 똑같은 위치에서 혹독한 한강의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면서 덜덜 떠는 모습이 역력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과 대회 관계자 분들에게 진정으로 고맙고, 격려를 해 주시는 이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오는 길은 바람이 등 뒤를 밀어 주고, 햇살이 점점 따스함을 주어서 그래도 힘은 덜 들었으나 아른 무릎은 이러한 좋은 조건을 점점 잠식하여 나를 붙들었다. 앞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무릎이 아프면 걷고, 오르막길이 나오면 걷기로 했다. 이것이 내겐 최상인 것 같다.
아! 아까 지나왔던 성수대교~영동대교 구간이 나오네. 이를 어찌할꼬!
노래를 부르며 갈까? 그래 노래 들으며 노래하며 가자.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귀에 꼽았다. 노래를 틀으니 박상민의 중년이란 노래가 나온다. 흥얼거려 본다. 들으면서 내 나이 중년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걸 했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울트라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대견스러운 생각이 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왜 그렇게 나이 먹으면서 몸으로 때우는 힘든 운동을 하냐고 묻는다. 좀 고급스러운 운동을 하라고…….
그런데 나는 이들에게 반문한다. 당신은 이런 운동을 해서 성취감을 맛본 적이 있냐고? 극한 상황에서 당신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당신 자신을 시험해본 적이 있냐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 합당한 논리를 말하려고 한다. 나도 그러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오는 중에 무릎의 아픔은 점점 더해져서 다리는 자꾸 쉬어 가자고 재촉한다. 오는 중에 벤치가 보이면 차갑더라도 누워서 쉬어보기도 하고 무릎을 주물러 준다. 그리고 이젠 엉덩이 부분에 자꾸 손이 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몸만 쉬면 뭐 하냐고 신발이 항의한다. 신발도 벗어 통풍도 시켜주고, 양말도 벗어 말려주었더니 신발, 양말이 좋댄다.
시원하게 흐르는 한강도 조금만 가면 뒤로하게 된다. 빨간 산타 옷을 입은 북치는 소녀들이 둥둥둥! 퉁땅! 퉁땅! 신나게 북을 두드려 준다. 힘이 절로 난다.
어느덧 쉬다 달리다를 반복하니 눈앞에 아산병원이 보이고 마지막 급식대에서 꿀물을 달갑게 마시고 몸을 다시 한 번 추슬러 본다. 이제 남은 거리 10리다. 과장해서 엎어져서 기어가도 될 듯싶은 거리다. 혹자는 말한다. 포기할 때에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다고. 한참 힘든 상황에서는 중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쉽게 포기를 못하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 한번 포기하면 다음번 이보다 덜 힘든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할까봐 중도 포기를 못하는 것이다.
아침의 어둑했던 길을 지금은 한 낮의 따스함과 시원함을 느끼며 출발시에는 지금 출발하면 언제 이 길을 다시 오나 생각을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주로를 여유스럽게 달리고 있다.
드디어 올림픽 공원에 입성!
무릎은 아프다고 자꾸만 아우성치는데 조금만 참으라고 무릎에게 이야기 한다. 구불구불 공원 내 길을 돌면서 아침에 못 본 공원들을 이리 저리 보면서 간다. 낮에 보니 낮 익은 풍경이고 다들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휭하니 부는 바람에 낙엽들이 휩쓸려 다닌다. 외투를 껴입고 산책 나온 사람은 이 추위에 뭐하는 짓인가 하는 모습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공원 나지막한 고개 너머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만 넘으면…….
이제 평화의 문도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빨간 카펫을 밟고 어떤 모습으로 갈까하는 여유가 생긴다. 한두 번 하니까 이력이 생겨서일까?
드디어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다. 오늘 하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실은 이번 대회에 튼튼한 몸 하나 믿고 어느 정도 연습하면 되겠지 안이한 마음으로 울트라 마라톤에 3번째 도전했고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연습도 터무니없이 적었으며 이를 이유로 핑계거리가 있으면 대회 출전 전 포기하려는 마음이 많았던지라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이번에도 잘해냈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울트라 마라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울트라 마라톤은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대회다.
매서운 바람,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력을 시험해본 대회!
그리고 초겨울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대회관계자, 자원봉사자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아! 2007년도 서울울트라 마라톤!
오후에는 와이프와 서울(내가 사는 곳은 용인)에 들러 장인어른을 모시고 토지 경작 일로 충북 제천에 갔다 와야 했다. 이때 시각이 오후 2시가 넘어서 급히 차를 몰아 분당을 빠져 나가는 시각이 토요일 한참 막히는 시각이라 3시가 넘어서고…….
내일이 울트라 마라톤 하는 날인데 걱정이 앞선다. 서울 들러서 제천 갖다 오면 몇 시에 집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이왕 나섰으니 갖다 오기로 했다. 제천 가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토요일 주말의 정체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주적주적 겨울비는 내리고, 그냥 고속도로에서 빠져 되돌아갈까? 날은 저물어 꺼뭇꺼뭇하고 지금 가야 내가 가는 목적을 달성 못할게 뻔하고.
결국 오늘은 제천 토지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올 맘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난 대가로 주변이 많이 변화되어 한참을 해맨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도착한 시각에는 이미 컴컴한 밤중이라 시커먼 먹구름 사이에 희미한 초승달만이 주변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 다음엔 일찍 길을 나서 확인하기로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제천에 있는 삼탄이라는 시골 식당에 동태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맛이 꼭 어렸을 적 어머님이 해주었던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다. 찌개도 반찬은 풍성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배불리 먹고 이젠 갈일이 아득하다. 올 때 보다는 덜 막히겠지만 서울 들러 다시 용인 집에 오려면 빨라도 밤 12시 정도에 들어갈 것 같다.
요 몇 일새 울트라 마라톤으로 많은 걱정을 했다. 그까짓 거 포기하면 걱정할 일도 없을 텐데…….
장인어른을 모셔 드리고 집에 도착하니 밤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내일 울트라 마라톤은 포기하느냐 아니면 내일 울트라 마라톤을 위해서 준비하고 자느냐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중앙마라톤 후 울트라 연습주가 기껏해야 헬스장에서 2~3일에 런링 머신 5km, 금요일 15km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고 무릎도 안 좋고 또 오늘 장거리 출타에 내일(일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날 일이 꿈만 같다.
내일 일을 결정하기 전에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낙엽이 다 떨어진 단풍나무 가지가 휘어지고, 측백나무 가지가 부러질 듯 거센 바람에 요동을 친다. 비만 내리면 포기할거라고 마음먹었는데 비는 안 온다. 그래 내일 서울울트라 마라톤을 위해 준비하고 자자고 결정했다. 배번 달고, 신발 챙기고, 칩 챙기고, 여차하면 일어나자마자 입고 나갈 수 있게 정리해 두었다.
이제 숙면 시간은 땡하고 눈감고 자야 2시간 반 정도 자는 시간이 된다. 빨리 자야지…….
자리에 누우니 내일 얼마나 추울까, 아까 베란다 밖 보니까 바람도 많이 불고 일기예보에서도 내일 온도가 떨어져 체감온도는 뭐 더 춥다고?
빨리 자야 하는데 별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고 껌껌한 방안에 눈만 똘망똘망해진다. 빨리 자야하는데 왜 이리 잠은 안 오고……. 1에서 10000까지 세어볼까? 피로해질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버텨볼까?
어찌해서 잠은 들었었고 덜거덕 거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시계에 먼저 눈이 간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먼저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자기 전 거세게 불던 바람이 아직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비는 안 오는 게 다행이었다. 자기 전 준비한 옷을 챙겨 입고 잠도 못자고 지어준 아침을 먹으려니 도통 무얼 먹는지 밥맛도 없다. 누룽지를 끓여 줄까? 깨작깨작 먹는 게 영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누룽지 언제 끓이고 먹을 소냐. 그냥 차려준 밥 꾸역꾸역 배에 밀어 넣고 가는 길에 바나나, 영양 갱이라도 먹어야지 생각한다. 집 나서기 전 비타민도 먹어두고.
올림픽 공원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년에는 와이프가 대회장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요번에도 데려다 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다. 어제 늦게까지 먼 길 갖다 와서 데려다 달라고 하기가 싫었다.
현관문을 나서니 와이프는 힘들면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잘 하라고…….
새벽녘의 도로는 한산하기보다 을씨년스럽다. 도로가 이렇게 차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이 울트라 3번째 참가인데 이전 2번 모두 시간에 쫓겨 준비운동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급히 출발했던 터라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자 최대한 속력을 내서 도착하니 4시 20분이 안 되었다. 시간은 충분한 것 같다. 남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문을 여니 차 안에 훅 차가운 바람이 낙엽을 밀어 넣는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너무 춥다. 대회장으로 가다가 너무 추워 차로 되돌아가 두터운 운동복을 껴입고 오는데 탈의실까지 오는데 덜덜덜 추위가 밀려와 뼈 속까지 차가와지는 느낌이다.
탈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참가자 및 가족들이 북적거린다. 대회장에서 제공한 이른 아침을 먹는 분, 옷을 갈아입는 분, 추위에 대비 방한 비닐을 입는 분, 추위를 피해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분.
천막 텐트 안은 참가자 및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상의를 보니 반팔 및 짧은 런링 팬티를 입으려고 준비 했는데 날씨를 보니 이걸 입고 뛰면 동태되기 십상이겠다. 그래서 여벌로 준비해준 타이즈 및 긴팔 셔츠를 2개나 껴입었다. 배번을 긴팔 티셔츠에 옮겨 달아야 하는데 손이 곱아 잘 달아 지지도 않는다. 밖에서는 출발 5분전이라고 멘트가 나온다. 부랴부랴 추위에 대비한 완전무장을 하고 출발 전까지 준비 운동을 해 본다. 주위를 둘러봐도 짧은 런링복 차림을 한 참가자는 별로 없다. 춥긴 추운가 보다.
새벽 5시!
출발이다.
아직 이곳 올림픽 공원의 하늘은 북적거림이 없는 새벽녘의 고요한 아침이다. 거세계 부는 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한다. 그렇지만 캄캄한 새벽녘에 뛰는 참가자들의 발검음은 모두가 경쾌한 발검음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라 하더라도 적어도 서울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 달림이들에게는 추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리.
허연 입김을 허공에 내뿜으며 올림픽 공원을 내달으니 벌써 들어오는 달림이가 있는 것인가? 시간에 쫓겨 급히 오는 참가자인 모양이다. 완주하라는 대회관계자의 힘찬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성내 천을 향한다.
그리고 매번 느끼지만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를 잘 조절하자고 되새겨 본다. 한강변까지 나오는 동안 추위 말고는 몸 상태는 좋은 듯하다. 무릎이 새삼 걱정이 되는데 말이다. 암사동쪽 반환점을 향하는 데는 바람을 등지고 뛰기 때문에 추운 것을 모르고 그래서 조금 속력도 내 본다.
반환점을 되돌아서 오는 길.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여기까지 오는데 약간의 땀이 비닐에 달라붙은 것이 추위에 얼어붙어 만지면 버그럭 거린다. 걱정이 점점 많아진다. 여의도 반환점까지 계속 이 맞바람을 맞아 가면서 가야 하는데 온 몸에 부닥치는 바람은 가고자 하는 나의 길을 자꾸만 시샘하여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웬만하면 거추장스러운 입고 있던 비닐을 벗어던져 버렸을 터인데 방한 비닐이 오늘처럼 요긴하게 쓸 줄이야. 뛰는 동안 적어도 여의도 반환 지점까지는 입고 가야 할 듯하다. 아마 당초 예정했던 짧은 런링복에 방한 비닐을 안 했더라면 한강변 나올 때 쯤 도중 포기했으리라. 맞바람을 맞으며 뛰는 달림이들 역시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그렇지만 자연환경을 이겨보려고 이따위 맞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자위해본다.
얼마간을 가니 종합운동장쪽에서 양재 천을 따라 가는 길이 나온다.
아아!! 이곳에 접어드니 정말 살맛나네. 맞바람은 어느덧 사라지고 평상시의 기온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 구간 정도의 주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생각과 똑같았을까. 힘든 구간을 지나오고 보니 이곳 구간을 달릴 때는 정말로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힘을 비축해서 후반에 잘 활용해야지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가끔 이곳 양재 천을 새벽녁에 다녀보면 안개가 잘 끼는 것을 본다. 작년 대회 때도 자욱한 안개가 꼈었는데 오늘은 그런대로 시계가 좋다. 중간 중간에 고여 있는 물이 얼어붙어 살얼음이 되어 미끈거린다. 다들 조심해야 할 텐데…….
이곳 양재천을 뛰다보면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게 있다. 유혈목이 꽃뱀인데 2006년도 울트라 마라톤시 주로 앞 바로 2m 정도 앞을 획 횡단해가는 바람에 한쪽 주로만 달리다 놀라 갑자기 옆으로 피하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속력을 내며 바로 뒤따라오던 분이 나와 충돌을 피하려고 브레이크를 잡는 통에 한 바퀴 굴러 넘어졌고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얼핏 보아도 고가의 자전거라는 느낌이 드는 자전거 페달이 못쓸 정도로 휘어져 버린 일이 있는데 울트라 대회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싸이클복 안쪽에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무일 없다는 듯 오히려 완주하라고 힘을 북돋아 준 일도 있다.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유혈목이 꽃뱀을 도심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양제천이 많이 제 모습을 찾아 가는 듯싶다.
서울문화회관 반환점에 도달하여 감로수 같은 꿀물과 간식을 먹고 되돌아 나올 땐 이미 어둑어둑했던 하늘 녘은 허옇게 벗어지고 있었다. 양재천에 간간히 있는 갈대에서는 부는 바람으로 사각거리고 고여 있는 나지막한 물에는 투명한 살얼음이 얼렸다.
종합운동장쪽으로 나오니 급식대가 반갑게 기다려 준다. 양재천으로 들어 갈 때는 음료 및 바나나가 차갑다고만 느꼈는데 되돌아 나올 때는 스포츠 음료는 살얼음이 얼어 사각거리고 바나나도 차갑게 살짝 얼어 있다. 찬 음식을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먹어 두는 게 좋을 듯싶어 우걱우걱 먹어둔다. 따뜻한 물로 상큼하게 입가심을 하고 한강변으로 나와 이제 반환점까지 내달려야 한다. 그것도 차갑고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면서…….
양재천을 달릴 때는 바람이 없어 땀이 나 있는 상태인데 한강변으로 나오니 어느 정도 지나 비닐에 묻은 땀이 얼어붙고, 옷에 배어 있는 땀이 식어 한기가 오싹 든다. 한기로 자꾸 몸서리가 난다. 차가운 바람이 땀이 밴 상의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닐 위아래를 꼭 묵어 둔다. 그리고 모자 쓴 머리에는 방한복 후드를 쓰고 꼭꼭 끈을 동여맨다.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에 덮어쓴 후드에 부딪혀서 후우 후! 다다닥! 둑 두 드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신경이 쓰이기도 한데 벗으면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엄습할 듯싶어 벗을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바람소리를 들어보며 가기로 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바람소리인가. 처마 밑에 휘돌아 도는 맑은 바람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며 내는 청아한 바람소리.
한강의 고운 바람소리를 들어 보라고 후우 후! 다다닥! 둑 두 드드득! 하는 소리를 낸 모양이다. 후드를 벗고 바람 소리를 들어본다.
이른 아침의 바람소리는 간밤의 긴 시름을 날려 보내는 듯 한 바람소리 마냥 탁한 바람소리 같다.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바람소리는 빛의 산란을 받아 일곱 가지 음색을 들려주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한 낮의 바람소리는 주변의 풍광과 강열하고 웅장한 자태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하다. 듣기에 따라서 소음이 음악으로 음악이 소음으로 들리는 듯 하고…….
한참을 가다가 앞뒤를 살펴본다. 청담대교를 보니 전동차가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성수대교를 지나니 바람이 더 거세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 염려했던 일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왼쪽 무릎에서의 통증이 서서히 내 몸과 싸우다 통증을 이겨줘야 할 놈이 점차 힘을 잃어 통증이 나의 점차 지쳐가는 몸을 차근차근히 침범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알리는가 보다.
실은 작년에 나도 모르게 무리를 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뜀박질을 많이 했다. 무식할 정도로…….
이게 무리가 갔을까 춘천마라톤 후의 가을부터 왼쪽 무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올 봄에 깁스를 해야 했다. 한 달 반 동안 관절 부분에 깁스를 하니 정말이지 운동을 안했으면 안했지 깁스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몇 번을 되뇌였다. 그 불편함이란……. 물론 완치를 위해서라면 그것보다도 더한 혹독한 일도 감내해야겠지만 틈만 나면 뜀박질을 하던 내게는 이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였다. 깁스를 풀던 날 의사로부터 등산, 조깅을 포함한 무리하지 않는 약간의 운동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쁨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점점 무릎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주의를 해가며 운동을 했으나, 이전 상태로는 되돌리기에는 무리다라는 생각이 내 뇌리 속에 자리 잡았고, 무리하다 또 다치면 이후에는 뜀박질을 더 이상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엄포 아닌 엄포를 의사가 말한 터인지라.
영동대교에서 바라다 보이는 성수대교가 왜 이렇게 멀리 보이는지. 매번 느끼는데 교각 사이 거리가 긴 곳이 4곳 있는데 다른 데가 더 긴데도 이상하게 이 구간이 멀게만 느껴지는 건 뭘까? 이런 생각이 드니 발걸음이 무뎌지기만 한다. 멀리 30km 푯말이 보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내가 뛸 거리에 거의 반씩이나 와 있다. 급식대에서 몸을 추슬러 본다. 서서히 전달해 오는 무릎의 통증이 제일 걱정이 되고, 중간 중간 먹어 두었던 찬 음료와 간식으로 배는 더부룩해 지고, 달리는 내내 코 찔찔이도 아닌데 맞바람과 추위로 코언저리에 콧물이 흘러 장갑으로 연신 훔쳐내는 통에 코 밑은 손을 대면 까끌까끌 아픔이 저며 들고, 방한 비닐 안쪽은 땀이 얼어붙어 만지면 바스락거리고, 구글은 시력에 맞게 해 놨는데 자꾸 초점이 안 맞는 거 같아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하고……. 정말이지 마라톤을 하면서 최악의 조건임에 틀림없다. 물론 혹한기 대회도 마찬가지이지만 혹한기 대회는 그에 맞게 준비하게 때문에 이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서 스스로 마사지를 하고 나니 무릎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어느 정도지 조금 지나니 자꾸 무릎이 아프다 한다. 갈 길도 먼데, 앞을 바라다보니 63빌딩도 안 보인다. 자꾸 마음이 약해져 간다. 달리면서 히말라야 등정을 했던 다큐멘터리 산(山)을 떠올려 본다.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한발 한발 내디뎌 그것이 모아져 정상에 도달하지 않는가? 몇 십 미터를 몇 시간에 걸쳐 등정하는데 이까짓쯤은 우습다고 스스로 여겨 본다. 가다보면 지까짓께 나오겠지. 그럼……. 쉽게 생각해야지.
한강변을 달리면서 앞만 보고, 길 바닥만 보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러 보이는 한강과 바람에 일렁이는 그 물결, 바람소리, 해살에 반짝이는 강변의 옹기종기한 집들, 시원스럽게 하얀 물결을 헤치고 질주하는 모터보트, 겨우살이를 위해 따뜻한 이부자리를 준비한 화초들, 조기 축구하는 축구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한강 둑의 갈색의 풀잎, 그리고 응지녘의 진녹색의 잡초가 추위에 오돌오돌 흔들리며 떠는 모습을 본다.
멀리서 뿌옇게 63빌딩이 눈앞에 보인다. 직선거리로도 아득하게 보이는데 꾸불텅꾸불텅 가려면 한참 걸리는데. 그래도 시야에 들어 왔으니 가다보면 도달하겠지.
어느덧 여의도에 도달하고 83빌딩 앞에는 긴긴 길을 달리느라 피로에 지친 달림이들에게 아침 햇살을 듬뿍 받아 에너지를 충진 시켜 주는 듯 환한 황금빛을 발산해 주었다. 반환점이 가까워서 그런가! 아! 힘이 불쑥 솟는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여의도 반환점에서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 준 나의 몸, 그중에서도 아픈 다리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 준다. “왜 아프고 난리야”라고 구박하는 것보단 좋지 않을까 해서…….
이제는 바람을 등지고 가게 된다. 아무렴 올 때 보단 훨씬 힘이 덜 들겠지. 사실 그랬다. 심신이 지친 상태지만 내 몸을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 올 때는 그리도 원망스럽더니 갈 때는 바람이란 놈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다 같이 올 때는 달림이들의 뒷모습만 보며 달려 표정을 알 수 없었으나, 반환점을 돌아 갈 때는 달림이들의 표정이 보이는지라. 이놈의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든 모습들이 다들 역력하고, 고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메 바람을 등지고 가는 내 자신이 왠지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울트라 마라톤을 하다보면 매번 보았던 얼굴들을 달리면서 자주 보곤 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눈에 익은 달림이를 못 보아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오는 길에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의 열성적인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한편으론 대회 출전한 달림이들은 뛰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덜 느끼겠지만 이른 새벽부터 계속 똑같은 위치에서 혹독한 한강의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면서 덜덜 떠는 모습이 역력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과 대회 관계자 분들에게 진정으로 고맙고, 격려를 해 주시는 이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오는 길은 바람이 등 뒤를 밀어 주고, 햇살이 점점 따스함을 주어서 그래도 힘은 덜 들었으나 아른 무릎은 이러한 좋은 조건을 점점 잠식하여 나를 붙들었다. 앞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무릎이 아프면 걷고, 오르막길이 나오면 걷기로 했다. 이것이 내겐 최상인 것 같다.
아! 아까 지나왔던 성수대교~영동대교 구간이 나오네. 이를 어찌할꼬!
노래를 부르며 갈까? 그래 노래 들으며 노래하며 가자.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귀에 꼽았다. 노래를 틀으니 박상민의 중년이란 노래가 나온다. 흥얼거려 본다. 들으면서 내 나이 중년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걸 했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울트라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대견스러운 생각이 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왜 그렇게 나이 먹으면서 몸으로 때우는 힘든 운동을 하냐고 묻는다. 좀 고급스러운 운동을 하라고…….
그런데 나는 이들에게 반문한다. 당신은 이런 운동을 해서 성취감을 맛본 적이 있냐고? 극한 상황에서 당신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당신 자신을 시험해본 적이 있냐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 합당한 논리를 말하려고 한다. 나도 그러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오는 중에 무릎의 아픔은 점점 더해져서 다리는 자꾸 쉬어 가자고 재촉한다. 오는 중에 벤치가 보이면 차갑더라도 누워서 쉬어보기도 하고 무릎을 주물러 준다. 그리고 이젠 엉덩이 부분에 자꾸 손이 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몸만 쉬면 뭐 하냐고 신발이 항의한다. 신발도 벗어 통풍도 시켜주고, 양말도 벗어 말려주었더니 신발, 양말이 좋댄다.
시원하게 흐르는 한강도 조금만 가면 뒤로하게 된다. 빨간 산타 옷을 입은 북치는 소녀들이 둥둥둥! 퉁땅! 퉁땅! 신나게 북을 두드려 준다. 힘이 절로 난다.
어느덧 쉬다 달리다를 반복하니 눈앞에 아산병원이 보이고 마지막 급식대에서 꿀물을 달갑게 마시고 몸을 다시 한 번 추슬러 본다. 이제 남은 거리 10리다. 과장해서 엎어져서 기어가도 될 듯싶은 거리다. 혹자는 말한다. 포기할 때에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다고. 한참 힘든 상황에서는 중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쉽게 포기를 못하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 한번 포기하면 다음번 이보다 덜 힘든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할까봐 중도 포기를 못하는 것이다.
아침의 어둑했던 길을 지금은 한 낮의 따스함과 시원함을 느끼며 출발시에는 지금 출발하면 언제 이 길을 다시 오나 생각을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주로를 여유스럽게 달리고 있다.
드디어 올림픽 공원에 입성!
무릎은 아프다고 자꾸만 아우성치는데 조금만 참으라고 무릎에게 이야기 한다. 구불구불 공원 내 길을 돌면서 아침에 못 본 공원들을 이리 저리 보면서 간다. 낮에 보니 낮 익은 풍경이고 다들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휭하니 부는 바람에 낙엽들이 휩쓸려 다닌다. 외투를 껴입고 산책 나온 사람은 이 추위에 뭐하는 짓인가 하는 모습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공원 나지막한 고개 너머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만 넘으면…….
이제 평화의 문도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빨간 카펫을 밟고 어떤 모습으로 갈까하는 여유가 생긴다. 한두 번 하니까 이력이 생겨서일까?
드디어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다. 오늘 하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실은 이번 대회에 튼튼한 몸 하나 믿고 어느 정도 연습하면 되겠지 안이한 마음으로 울트라 마라톤에 3번째 도전했고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연습도 터무니없이 적었으며 이를 이유로 핑계거리가 있으면 대회 출전 전 포기하려는 마음이 많았던지라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이번에도 잘해냈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울트라 마라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울트라 마라톤은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대회다.
매서운 바람,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력을 시험해본 대회!
그리고 초겨울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대회관계자, 자원봉사자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아! 2007년도 서울울트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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