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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래떡 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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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7-11-12 16:23 조회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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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래떡 날 일기 (1)

안녕하십니까.

춘포
박 복진입니다.

내가 사는 서울 고덕에서 경기도 광주의 유정리까지 지도를 보니 대충 47 km 정도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모 성당에서 운영 중인 노인들을 위한 전문 요양시설인 작은 안나의 집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이 분들을 위한 자선 풍물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아직 풍물 초보
인 나도 당당히 공연자 중 한 명으로 거기에 끼이게 되었다. 즉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풍물 교습소, 국악누리 전 단원들이 북이며, 장구며, 꽹가리에 음향 시설까지 잔뜩 싣고
그곳으로 가서 한 판 벌리게 되었는데 공연 목록 중 하나에 왕초보인 나도 낑겨 넣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는 못하지만 국악누리 연습실에 조석으로 열심히 나와서 애쓰는
것을 보신 국악 선생님의 특별 배려인 듯싶다.

하얀 저고리와 바지에 검정 조끼를 걸치고 그 위에 빨간 띠로 허리를 묶고, 노란 띠로
오른쪽 어깨에서 배꼽 쪽으로 가로 질러 내려오는, 쉽게 이야기하면, 블란서 최고의 훈장
레종 도뇌르 받고 기념사진 찍을 때 어깨에 두르는 것 같은 모양으로 치장한 풍물 유니폼을
하고 공연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 나는 내 간이 벌렁, 벌렁해져 옴을 느끼었다.

내가 가지고 가야 할 내 공연 준비물인 장구와 유니폼을 어제 연습실 장판 바닥에 미리
가지런히 챙겨놓아, 이동차량으로 같이 옮겨주실 것을 부탁하고선, 나는 일요일 새벽 나
홀로 집을 나섰다. 마라톤 복장으로 뛰어서, 그 곳 공연장으로 가기로 했다. 47km 를
약 6 시간 정도로 느긋하니 계획하고서 뛰기 시작했다. 쫄쫄이 반바지에 가벼운 티. 셔츠,
그리고 그 위에 얇은 바람막이 한 벌만 걸치니, 새벽한기가 제법 쌀쌀하다. 어느 정도
뛰어서 하남시 정도 들어서면 몸은 곧 덥혀지겠지. 누가 보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
다. 공연장까지 여섯 시간을 뛰어가서, 거기서 공연을 한다? 그것도 정적인 연주가 아니
고 지극히 동적인 풍물공연을?? 그러나, 나는 거기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냥 뛰어 가면
될 거리이고, 또 뛰어가서 한 두 시간 정도 놀 에너지는 있을 것 같았다. 조석으로 뛰어서
출퇴근을 해 왔으니 그 정도 거리를 뛰는 것쯤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하남시를 벗어나서 남한산성 입구 쪽 하남 - 광주 - 곤지암 - 이천으로 이어지는 국도에
들어서자 일요일 새벽의 차량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좁은 갓길을 달리는 나를 일부러
위협하듯 바짝 달라붙어 내달린다. 그 소음에 귀에 꽂은 MP3 재생기의 죤. 세바스티안
박의 클라식 선율이 끊기다가 들리다가를 반복한다. 듣고 있는 음악이 방해를 받으면 나는
시야를 주변으로 돌려 추색이 짙은 산하를 마음껏 감상하였다. 남한산성 산 전체가 단풍
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검단산, 용마산 산허리는, 시골 이발소의 싸구려 그림에서 많이
보아온 가을 색 붉은 물감을 아예 갖다 쏟아놓은 것 같았다.

도로를 달리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도로나 도로의 교량이나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은 죄 잡혀와서 곤장으로 치도곤을 당해도 싸다. 이렇게 좋은 기후와 자연의 조건을
가진 이 환경을 그들은 거기에 값을 더 보태주지는 못 할망정 아예 싹 버려놓았다. 한 가지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산야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있다. 그 땅위에 건설되는
모든 건축물은 그 부드러운 선을 따라 순응하게 설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근간에 건설
되어지고 있는 고속도로의 모든 교량들을 보면 하나 같이 나무젓가락 같은 일자형이다.
천혜의 자원을 망가뜨려도 유분수지, 달리며 고개를 어디에 돌려보아도 보기 싫은 직각기둥
건축물 뿐, 주변의 산허리와 어울리는 곡선, 예를 들면 아치 교각은 없다. 산과 산골짜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교량은 천편일률적으로 사다리꼴이고 둥글거나 반달 같은 곡선은 아니
다. 그렇게 아름답게 설계된 아치형 다리는 마치 외국에서 죄다 특허를 내놓아 우리는
쓰지 못하게라도 되었다는 뜻인가? 정말 한심하다. 그리고 골짜기를 따라 물 흐르듯 구불
구불 정감이 가던 길은 도로 직선화 작업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아래 죄 파헤쳐 일자로 쭉
뻗쳐놓았다. 한 마디로 도로에 정이 없어졌다. 한심한 작자들의 소행이로고....

서울에서 점차 멀어지니 도로를 지나는 차량이 뜸해진다. MP3 재생기에서 들리는 음악이
방해받지 않고 내 귀로 다 들어온다. 나는 음악에 취해, 주변의 가을에 취해, 이마에 흐르
는 땀에 취해 행복한 뜀을 계속한다. 거기에 엔돌핀을 더 보태주는 것, 나는 지금 생애 처
음으로 공연을 나가는 길이잖은가? 남이 보면 정말로 하찮은 것이지만 그래도 내 꼴에 남들
앞에서 내 재주를 펼쳐 보이려가는 길이 아닌가?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다수의 대중 앞
에서... 후후훗.. 자꾸 웃음이 난다. 살다보니 그런 일도 다 있다. 내가 내 재주로 남들 앞
에 서게 되다니... 그리고 그것도 내가 그렇게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풍물을 말이다. 흥부
놈 매 맞아 돈 벌러 가는 것 같이 마음이 요상하다. 한 편으로는 돈 벌어 기분이 좋고, 다
른 한 편으로는 매 맞아 아플 것이고, 오메, 이걸 어쩐다냐? 두 사람 이상 앞에만 서면
입술이 마르고 두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게 보는 측이 더 처연할 지경인 나가, 나가, 나를 어
쩌란 말이냐??

광주읍을 지나며 길의 노오란 가로수 단풍잎이 너무 멋있어 나는 등의 배낭을 열어 디지를
카메라를 꺼내 승객 대기중이던 택시 운전수에게 사진 한 방 부탁했다. 그리고 새벽 6 시
부터 뛰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배가 고파 길 건너 김밥집에 들어가 김밥 한 줄과 들고 뛴 캔
커피로 아침 식사를 떼웠다. 김밥집 아저씨는 자꾸자꾸 물어온다. 몇 시에 나섰는데 이렇
게 서울에서부터 뛰어오는 것이냐고... 맨 날 이렇게 뛰면 어지럽지 않느냐고.... 그리고 더
살짝 물어온다. 힘들면 차도 타고 그러냐고....

나는 돈지갑을 열어 계산을 하고 주섬주섬 다시 배낭을 챙겨 등에 짊어지고 다시 길 위에
나선다. 남은 길 이제 약 10 여 km, 달리는 중간 곤지암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길가에 깔판을 깔아놓고 먹을 것 마실 것 준비하고 있다한다. 좀 먹고 쉬었다 뛰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그런 여유를 부려도 될듯하다. 그렇게 하였다. 군말하지 않고 형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간다고 하니 외출을 미루고 먹을 것 가지고 길바닥으로 나와 갈판을 깔아주는
혈육이 고맙다. 곤지암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꺾어지자 길의 폭은 더 좁아졌다. 그렇지만
시골정감이 물씬 나는 좁은 길은 나를 더 기쁘게 해 주었다. 손에 들고 온 도로 이정표
메모가 불분명해 마침 불이 켜진 도척면 못 미쳐 어느 미장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길
을 물었다. 그러고서도 또 길이 헷갈려 도척 파출소 삼거리에서 길을 헤멨지만, 거기서부터
목적지인 유정리 저수지, 작은 안나의 집은 3km 정도만 더 가면 되었다. 다 왔다.
지금 시각 12 시 남짓, 서울 떠나 6 시간의 기분 좋은 길오달 ( 길게 오래 달리기 )
이었다.

멋지게 심어진 나무 사이로 난 안나의 집 입구를 단숨에 뛰어 달려 올라가, 현관의 어느 관
계자 분에게 말을 걸었다.

“ 죄송합니다. 저, 오늘 이곳에서 공연하기로 되어있는 사람인데요... 공연팀 전부는 지금
서울에서 차로 오고 있는 중이고요, 저는 서울에서 먼저 뛰어왔습니다. 이곳에서 좀 씻
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 데 혹시 그런 마땅한 장소가 있을까요? “

땀으로 범벅인 나를 보자 황급히 나를 기다란 복도 끝의 공동 목욕탕 쪽으로 안내해주시어
육중한 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 서울에서부터 뛰어왔다고요?? 여섯 시간 뛰어왔다고요??? 오늘 공연하는 사람이라고
요???? ”

...... 계속됩니다

춘포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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