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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 70의 중턱을 넘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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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석 작성일05-01-29 13:18 조회1,8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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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손을 잡고 철없이 들뜬 기분으로 망아지처럼 껑충껑충 뛰며 소학교 입학식에 들어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0의 중턱을 넘어 80의 언덕을 향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지만 지나온 세월이 잔잔한 시냇물처럼 유유히 흐르기도 했고, 아찔한 순간, 위험한 급류처럼 소용돌이치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와 삶의 미화 (美化)에서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것 같다.
70의 중턱까지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여 살아왔고, 80의 언덕을 바라보며 어떤 모습의 삶을 엮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돌이켜보며, 다짐하는 뜻에서 새해, 새아침의 의미는 소중한 순간일 수 있다.

이러한 심정으로 20여년을 1월 1일 아침에는 혼자 장거리를 습관처럼 달려왔다. 12월 31일 0시의 용산 미8군 5km midnight-run에 다녀와 늦잠에서 깨어나 망설일 틈도 없이 풀코스를 뛸 생각으로 2만원을 챙겨 한강으로 달려갔다.
영하 몇 도인지 모르나 제법 차갑고, 강바람이 세다. 동작대교에서 여의도를 향해 달렸다. 해마다 느려지는 한심한 기록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 시계는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저 즐겁게 달리기를 엔조이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상쾌하게 달리면서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는 희망,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과 자유, 삶의 반성과 자기정리, 건강상태의 확인, 그리고 나이를 한살 덜 먹고, 한살 젊어지자! 는 억지 같은 감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지나가는 달림이들과 새해인사를 반갑게 나누며 여의도를 돌아섰다. 몸이 풀리고 땀이 비치기 시작한다.
한강대교를 지나는 순간 이 지점에서 7회 서울마라톤 풀코스를 뛰어 비디오 카메라에 잡힌 아내의 대견스러운 모습이 떠오른다. 2년 전, 달리기 시작한지는 10년이 지났으나 평소 7~8km를 뛰고있는 아내에게 6회 대회에서 풀코스에 도전해보라고 권했더니 "당신 미쳤소! 나를 제명에 못 죽게 하려는 거냐?” 화를 내던 아내의 두 번째 완주 모습이다.
건강이 한심했던 나를 뛰게 한 것은 아내였고, 건강이 염려되던 아내를 뛰게 만든 것이 나였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부부 풀코스 완주의 오랜 소원도 이루어냈다. 골인 직전 내 손을 힘껏 잡던 아내의 감격의 손길이 70과 60의 언덕을 함께 무난히 넘게 하는 생명의 여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남은 여생을 다정한 부부로 건강하게 오래 함께하기를 기도드린다.

반포 매점에서 물 한 병을 사서 반을 마시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광진교 반환점을 향해 천천히 즐기며 달렸다. 물병을 들고 뛰니 물이 출렁거려 뛰기가 불편하다. 기울게 쥐었던 물병을 수직으로 들고, 상하의 움직임과 좌우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달리니 물이 잔잔해진다. “그렇지! 몸무게의 65%~70%가 수분이라니... 자세와 주법이 바람직하지 못하면 수분이 출렁거려 하중과 충격을 더 할 수밖에...” 자세도 조정하니 한결 가볍게 달리는 것 같아, 나이 들수록 힘보다는 요령으로 달려야한다는 이치를 다시 한번 실감해 본다.

한강의 풍경이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인다. 달리기의 물리(物理)가 뇌 생리에 생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켜 머릿속이 맑아진 탓인가 보다. 광진교 반환점에서 몸을 풀고, 돌아서는 기분은 온 천하를 다 소유한 듯 한 풍요로움이 넘친다.

내가 몇 살 때까지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지난 런던마라톤에서 94살의 할머니가 11시간 15분에, 90살 나는 할아버지가 7시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한다. 완주 자체도 놀라운 일이긴 하나 그 나이에 풀코스를 달릴 수 있게 체력과 정신력을 잘 관리했다는 사실이 보다 더 훌륭한 일이다.
오래 산다는 자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오래 살면서 얻어지는 깨달음이,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 엮어가는 삶이 소중한 것이다. 50에 깨닫지 못한 것을 60에 깨닫고, 60에 못 깨달은 것을 70에 깨닫게 되니 나이를 더해가는 것은 결코 허무하거나 쓸쓸한 것이 아니라 삶을 알차게 여물게 하는 아름다운 결실의 과정인 것이다.

삶을 통한 깨달음, 깨달음을 통한 삶의 성숙, 최선을 다한 삶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영원한 곡간에 드리어 질 수 있다면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다 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존재하며 살아가는 여정에서 육체와 정신적인 건강은 필수요건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며 오래 누리기 위해 나는 달린다.

잠실과 반포매점에서 우동으로 허기를 매우며 달렸다. 해가지며 서쪽 하늘에 노을이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빛을 밝힌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음에도 붉은 노을이 보이지 않으니 색맹인가! 아니면 착각이나 자기도취에 갇혀 앞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지금껏 오랜 시간 "인생은 80부터다!" 라고 되뇌어 왔으니 아직 황혼의 노을이 보일 리가 없겠지...

동작대교에 돌아왔으나 천천히 뛰어서 그런지 42.195km를 뛰었는데도 별로 지친 것 같지가 않다. 좀더 뛰어볼까... 생각하는 순간 발길은 다시 한남대교로 향한다. 그래 50km는 넘겨보자! 100km를 6번 도전했으나 완주를 못했으니 금년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지! 그놈의 제한시간이 원수로다.

50km를 넘겨 1km를 더 달려 혼자 신나게 골인했다.
그 순간을 아무도 지켜보는 이도,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이도 없었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감격하며 흐뭇한 감동을 느꼈다.
이 감동으로 80의 언덕을 향해 올 한해를 열심히 살아야지....!

바람직한 삶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다 인간의 생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설 때 보이지 않는 위대한 손이 빛나는 완주메달을 걸어준다면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서울마라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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