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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쓸데 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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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11-29 15:11 조회7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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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오래 전에 나는 왜 독립군인가? 라는 글을 올렸다가 안 독립군( ? )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많이 속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너무 심하다! 라고 생각되는 악성 댓글을 단 어느 특정 분에게는 결투를 신청해서 밤 12 시 광화문 이 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서 만나, 치고 박고 한 바탕 코피 칠갑으로 같이 죽자, 살자 나뒹구는 환상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 달 계속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누구인지 어데 사시는지, 어떻게 결투를 신청해야 하는지 접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길 잘했지요. 만일 알았다면 나는 또 일을 저질러서 이제 간신히 지나간 저의 범죄 경력,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즉결심판의 집행유예 기간을 또 다시 연장해야만 했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못 나서 그렇지만, 그 후로도 상당기간 나의 새벽 뜀 길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함을 내립다 지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 댔었던 기억도 납니다. 정말로 말씀드리는데 어찌나 분 삭이기가 힘들던지요. 아무리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간이지만 어떻게 그런 몰인격적인 언사를 보일까라고 생각을 하고 또 해도 분이 안 풀렸던 그 때, 나는 낮 근무 시간에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그 분의 목을 찾아 조르거나 일격에 베어 날리는 환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져 감을 피부로 느끼었었지요. 그러면 나는 신발신고 뛰어 나가 한강변을 뛰며 어서 빨리 시간아 흘러라! 시간아 흘러라! 라고 쉴 사이 없이 뛰면서 중얼거렸지요.

우리가 선진국, 선진 민주시민이라고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그 첫 번째 척도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인격적으로 상호 대하는가를 두고 싶습니다.

80 년 대 초, 그 당시에 내가 근무하는 무역회사 말고 한국의 다른 회사들도 거의 다 마찬가지였겠지만, 커다란 사무실에 어느 직원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만일 그 직원이 통화 중이라면, 그 전화를 받은 상급자, 차장이나 부장은 전화기의 보류 단추를 누르자마자 소리칩니다. “ 어이! X 주임! 전화 받어! ”. 그러나 말단 직원 X 주임은 이미 다른 전화로 통화중입니다. 아직 마무리를 못한 X 주임은 대기 중인 전화를 금방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석간신문을 쫙 펴고 읽고 있던 부장은 버럭 신경질적으로 또 소리칩니다. “ 아! 뭐해? 김 주임? 전화 받으라니까? ”

80 년 대 초, 한국의 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내가 그 당시 영국에 처음 출장 가서 그곳 거래처 사무실에서 목도했던 똑같은 상황에서의 그곳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한국에는 회사라고 하면 큰 사무실에 책상을 직급 순서대로 열을 맞춰 수직 계열로 배열하는, 지금과 같은 파티션이나 칸막이 등 개인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그 어떤 장치도 없었고 또 의식도 없었을 때이었지요.

영국 거래처 그 사무실에 전화가 왔는데, 전 직원들이 전화통에 매달리거나 다른 고객과의 상담 준비로 미처 사무실 전화를 받지 못하자, 나랑 이야기 나누던 그 회사 사장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누구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버럭 소리를 질러 그 직원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는 그 담당자의 책상 쪽을 바라보더니 그 담당자가 통화 중인 것을 알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기 책상 서랍을 열어 종이쪽지 ( 나중에 알았는데 그게 3M 스티커라고 하는 것이더군요 ) 를 꺼내 메모를 적어 통화 중인 자기 부하직원 책상 옆으로 가서 조용히 그 분의 통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살짝 건네주고 오더군요.

지금에야 이런 정도는 한국의 거의 모든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흔하디흔한 일이 돼 버렸지만, 그 당시의 한국 내 실정으로는 아주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이 장면이 아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 와서 조금 더 그 사태를 주의 깊게 눈 여겨 보았습니다. 다시 그 사장하고 나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해당 직원이 금방 그 전화를 받지 못하고 보류단추의 불이 계속해서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다 라고 느껴지자 그 사장은 나에게 다시 양해를 구하고서는 그 전화의 대기상태를 해제시켜 전화를 건 외부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말하더군요.

“ 찾고 계신 OOO 씨에게 전화가 왔음을 알려 드렸습니다. OOO 씨가 계속 통화중이신데 전할 말씀 있으시면 제가 받아 전해 드릴까요?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리시겠습니까. 기다리시어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오늘 아침 일기예보를 못 들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내일 일기예보를 들으셨으면 저에게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내일 아내 생일이어서 연극 보러 가는데 옷 차림을 아직 결정 못해서요.. 하하하.. “

이 정도도 지금 우리 한국의 그 어느 사무실에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예의 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지금으로부터 이십 사 오 년 전에는 아주 보기 드믄 일이었지요.
아까부터 주의 깊게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대충 사태를 짐작했었지만 그래도 물어보기로 맘을 먹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니 물어보기가 조금 쑥스러워서 실실 돌려가며 우리네 실정을 설명하고서는 왜 바쁜데 종이를 꺼내 일일이 써서 갖다 주는가? 통화중이라 하더라도 전화 받으라고 소리 한 번 내지르면 될 것을.. 그러자 그 사장은, 지금 우리가 들으면 아주 당연한 말씀이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해서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 전화가 걸려 온 것을 알려 주는 것은 내 몫이지만 그 전화를 받는 것은 그 직원이 판단해야 할 일이다. 지금 받고 있는 전화가 중요한지, 새로 걸려 온 전화가 중요한지, 혹은 전화가 아니더라도 지금 열중해서 하고 있는 게 더 중요한지, 이 모든 것은 그 직원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서 처리 할 일이다. 내가 사장이라고 그 직원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전화 받으라고 소리 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

이렇게 아무리 말단 직원이지만 그의 인격을 지켜주고 그의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행동을
보장해 주는 영국 사회의 높은 문화적 수준에 나는 그저 혀만 내두르고 말았지요. 하급 직원에 대한 처신도 인상 깊었지만,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전화 건 사람에게도 이렇듯 인격적으로 자기 입장처럼 사려 깊게 대해 주던 그 영국 사람들의 수준 높은 선진 민주 의식이
참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지요.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이제 그 수준 혹은 그 이상이 되어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일부 극소수를 제하고 말입니다.

갑자기 내가 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꺼내느냐면, 최근 모 마라톤 싸이트 상의 어느 분들의 사려 깊지 못한 사이버 상의 악성 댓 글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퍼져서 한 말씀 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익명이니 알 수 없다고 해서, 어떻게 그렇게 막 말을 해대는지 그 분은 우주의 떠돌이 다른 별에서 오신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같은 한글을 쓰고 있는 같은 민족, 같은 동포라는 형제애 때문에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혼자서 소속 없이 홀로 뛰는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을 자칭 독립군이라고 지칭
하기 시작하는데, 딱딱하고 도전적인 독립군이라는 말보다, 홀로 스스로 뛰는 사람, 즉
“ 홀스람 ” 이라는 줄인 말로 부르면 어떨까요? 재미없을까요?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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