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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작은 흑백사진속에 머물다온 며칠동안의 기억의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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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복희 작성일04-11-27 18:10 조회6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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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그랬을까요? 뭉개 구름이라고... 한 여름엔 구름도 가마솥 더위에 포실거리고 쪄지나 봅니다. 황토밭에서 갖 케낸 감자를 늙은 가마솥에 쪄냈을 때 포실포실 올라와 있는 속살 터짐 같은 구름들이 몽실몽실 하다 못해 한 입 배어 물면 입안에 감자분이 그득 할것만 같습니다. 가까이 손을 내밀면 카시미론 이불솜을 양손으로 쭈~욱 찢어서 산마루에 걸쳐 놓은 듯한 구름 또한 눈을 어지럽게 합니다.

7월초부터 새로 고속버스 노선이 신설되어 친정의 어렸을적 텃밭을 무시로 드나들며 솜털 보송거린 오이를 따 먹던 그곳으로 단숨에 달음박질 하지 않아도 6시간 10분만에 회진읍에 내려 놓고 떠납니다.(아마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고속버스 노선중 가장 장시간 여행가는 코스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잠시 여행을 나선다는 기쁨과 함께 새로난 해안 도로를 끼고 한참을 달리는데 지척에서 손에 잡힐 듯 금당도와 소록도가 보입니다. 사실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그 곳은 초행길이라고 하면서 잘못 들어선 길이었는데 오히려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이건 정말 혼자 여행하다 만나는 즐거움 중에 으뜸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경비를 따로 지출하지 않고도 해안도로 관광을 했으니... 얼마나 큰 행운 입니까?

바로 손을 뻗으면 잡힐듯 놓여있는 소록도, 해가 떠 오르기 시작하면 금빛 물결처럼 파도와 함께 춤을 추는듯 놓여있는 금당도...내가 모른 섬들을 함께 고속버스 안에 여행하던 승객이 이건 무슨섬이고 저건 무슨섬이라고 알려주는데 모두 기억할수 없음이 한계였습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아버지 산소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려야 할곳이 있어 택시를 불러 탔는데 또 해안 도로를 끼고 6~7분 정도 달려 가서 삭금리 마을에 내려주니... 이런줄 알았으면 그냥 배낭 짊어지고 뛰어가는 건데... 지리를 몰라서 불렀던 택시는 6,000원입니다. 그래서 그러려고 했지요. 다시 제 자리로 데려다 주실래요? 그럼 뛰어가게...^^

잠시 들려 인사를 하고 다시 예전 텃밭에 아직도 오이가 남아 있을 분토마을로 발길을 옮겨 봅니다. 서울에서 휴가라고 내려와 있던 친구 차에 동승하고 오래전 제가 20리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던 도로가 새로 포장이 되어서, 헤질대로 헤져서 묵은 광목자락 같은 추억은 포장된 도로에 함께 뭍혀 버린듯 하지만 여우와 함께 놀던 그 도로는 여전히 여우고개(지젓재)로 남아 있어 여우는 오간데 없고 까투리 새끼만 한가롭게 횡단 합니다. 그런데 그 까투리 이곳이 오래전 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가 놀던 길이었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는 그곳은 까투리 나와바리라는 듯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번에도 해질 무렵 아버지 산소에 올라 생전에 즐기시던 반주 한잔 올리고 한참을 정담을 나눴습니다. 당신이 기다렸다는듯 해 지고 바람드는 시원함으로 절 맞이해 주십니다. 아부지... 저 왔어요. 작년에 제가 그랬지요? 내년에 다시 아부지 뵈러 오겠다고... 생전 같으면 그려셨을 테지요. 너무 멀다... 오지 말고 전화나 하거라... 그럼 저는 지금은 예전처럼 멀미도 하지 않고 혼자 여행 할 수 있으니 저도 많이 컸지요?

점심 부터 밥을 해 놓고 기다린다고 어디냐고 전화를 몇 번씩 주시던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는 해 떨어져 산에서 내려오는 제가 걱정이 되신 건지 자꾸만 전화로 독촉을 하십니다. 어서 내려오라고... 왠지 연로하신 작은아버지 내외분을 뵈니 아부지와 작은아부진 형제분들이 참으로 우애가 좋아서 서로가 아끼셨던 기억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다음날 새벽산행을 위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 30분 쯤 천관산(전남 도립공원) 진입로에서부터 오르기 시작 합니다. 새로 조성된 장흥 지방에 현존해 있는 한승원 작가님과 여러분들을 기리는 문학공원이 산비탈로 돌탑을 이루면서 4키로 정도가 오르는길 내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참 정성들여서 싸놓은 돌탑이 장관입니다.

탑산사에서 올라 구룡봉에 오르니 제 발자욱 소리만 산을 진동 합니다. 놀라 깨어난 산 숲의 새들과 군데군데 커다랗게 억새져 버린 야생차 나무들은 아직도 이슬을 거둬 들이려면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 무인도들이 께어나려면 해무가 병풍처럼 가리고 있기에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저벅거린 제 발자욱 소리에 놀라 께어난 그들에게 미안타... 미안타... 만 중얼거리며 올를 수 밖에 없었지요.

구룡봉은 아홉마리의 용이 신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서로 뒤엉켜 싸우는 형상인데 바위 위에 지금도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발자국처럼 파인 홈에 그것도 산 정상의 바위에서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를 않는다니 그 또한 신비로울수 밖에요. 그날도 그 작은 구룡 못에 비단개구리 한마리가 망중한을 즐기듯 한가로이 수영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내려다 보니 비단개구리 수영하는 모습이 꼭 제가 어렸을때 동네 냇가에서 수영하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피식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구룡봉에서 내려다본 다도해는 저도 모르게 아~! 이럴수가...?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지금 막 새벽 해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다도해의 아름다운 자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요. 한참을 앉아서 중얼 거리다가 능선을 타고 부부봉을 거쳐 연대봉을 오릅니다. 3키로의 능선이 억새로 덮여있어 가을에는 억새 축제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직 피지 않은 제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억새숲에 갖혀보는 맛도 괜찮았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에 비하면 제 자신은 한낮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억새 사이로 찾아드니 저는 오간데 없고 순간적으로 저 또한 억새가 되어버린듯 몸에서 어~~ㄱ 새~ 하며 억새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어~ 억~ 새~! 하고... 옆꾸리에 끼고 갔던 많은 생각들을 억새바람 사이에 묻어두고 뒤돌아 내려오는 발길은 한층 가벼워 질수가 있었지요.

억새밭을 지나는데 군데군데 야생동물 배설물이 있습니다. 발길로 헤집어 놓은 곳도 몇군데 있구요... 아직도 야생동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 이기도 해서 반갑기 마져 했지만 한편 겁도 조금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예전 생각해서 여우라도 나오면 " 너 나 알아? 내가 오래전 너네 엄마랑 쪼그 밑에서 놀았던 사람이야... 니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남기라는 유언 한마디 쯤은 남기시지 않던?" 하려고 기다렸지만 나타나 주진 않더군요.

연지마을 지나 탑산사에서 올라 관산읍으로 넘어오니 읍내로 이어지는 길이 더 지루 합니다. 머리위의 뙤약볕은 이글거리기 시작한지 오래고 급한 마음에 소롯길로 접어 들었는데 막다른 길입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나락들은 수줍은듯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16살 처녀모습 같기만 합니다.

급한 볼일을 봐야 하지만 시외버스정류장은 어디나 비슷한 청결 문제로 특히 여름철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대접 받아 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곳이 관청이지요. 면사무소 들어가 시원한 생수를 벌컥거리고 몇잔을 마시니 아가씨가 멀건히 쳐다 봅니다. 쳐다본 아가씨에게 다가가 화장실은 어디지요? 깨끗하게 정리된 화장실로 들어가 몸 단장 하고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합니다. 아~! 물론 아가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는 했지요.^^

골동품으로나 봐야할 시외버스는 당연히 에어컨 시설이 없기에 사방이 자연풍입니다. 열려 있는 창으로 들어온 뜨거운 바람도 오랜 기억속의 바람으로 덥게 느껴 지지가 않습니다. 우측 창가에 앉아 오랜 흑백사진속의 기억을 더듬으며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는 여행지에서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 없이 얘기를 주고 받을수 있으며 모두가 친절하다는 겁니다.

천관산에서 해가 이글거리기 전에 하산을 하기위해 관산 장천재쪽으로 내려가는길을 찾아 보았습니다. 몇년전 연지마을에서 한번 산행을 했다가 다시 그곳 탑산사쪽으로 내려갔기에 관산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처음이라 이정표를 보고 어디로 내려가나.. 망설이고 있는데 멀리 부부봉을 지나 연대봉 중간쯤에서 두사람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저도 반가워 손을 흔들고 관산읍내쪽으로 내려가려면 어느쪽으로 내려가야 하느냐고 소리질러 물었더니 자기네들 있는 쪽으로 건너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뛰어가다시피 가까이 가니 부자인듯한 두분이 자기네들도 관산으로 내려가다고 하여 함께 동행을 했지요..

관계가 어찌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와 아들이랍니다. 아버진 서울 k대에 계시고 이번에 제대한 아들과 남도쪽 여행을 일주일 계획하고 하는 중이라며 그날이 4일째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반문합니다. 녜... 저도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관산으로 내려 갑니다. 도란도란 얘길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에서는 저는 분명 이방인 인지라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서둘러 앞서서 내려와야 했지요. 그분들 그러시더군요. 여자분이 어찌 혼자서 새벽산행을 하느냐...하지만 마음 먹기에 다르지 않을까요?

장흥까지 가는 군내버스는 오래전 흑백사진속의 버스처럼 반갑기가 그지 없이 정스럽고 예스러워서 한참을 오르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오른편 앞쪽으로는 의자가 두개는 뜯겨져 나가고 모든 창문은 허락치도 않았는데 지맘대로 바람이 여기저기 들락 거리며 더운 여름철 에어컨이 나오지 않은 버스속 승객들을 교태어린 몸짓으로 지분 거리며 구석구석 바람으로 간지럽 태우듯 온몸을 더듬고 붙들어 옆에 앉혀두고 얘기 한마디 건내기도 전에 저쪽 산마루 구름 언저리 타고 앉아 다도해로 도망가기 바빠서 덥다는 생각을 덜어내게 해주었지요.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달리는 버스안에서 가로수 나뭇잎도 불러 들이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모든 군민들과 안부를 물어가며 승하차를 하는 모습들이 60년대를 연상하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은 뒤로 되돌아 가는듯한 착칵을 불러 들였습니다. 우리가 요즘 버스를 타면 어디 가당키나 한 짓인가요? 모두가 에어컨으로 도배를 해 놨으니 문을 여는것도 실례가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버스 운전기사의 선그라스는 도저히 그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최신 유행패턴인지라 저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실실 흘러 나오지 뭐겠습니까?.

장흥에서 순천까지 가는 내내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요즘 사람들 개념없는 사람들이라느니... 우리나라 최고지도자가 개념없는 사람이라 개념없는 정치를 해서 나라 살림이 이 모양이라느니... 참 개념있으신 두분 앉아서 개념있는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이 개념있는 상황이었지요(?) 할아버진 저를 건너다 보며 "샥시~! 어디까지 가시우?" 하고 또 제게 개념있는 질문을 해 오시니 만약 무시를 하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간 요즘 젊은 샥시들이 개념이 없다는 말로 한동안 저까지 안주 삼으실것 같아 " 아~! 녜... 순천을 거쳐서 여수까지 갑니다..." 하고 대답을 해드렸더니 그때부터 제게 이젠 개념있는 대화를 하시자고 합니다. ㅋㅋ 몇마디 대꾸를 해드리고 차장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할아버지 눈치가 있으신 건지 제게 하시던 말씀을 할머니와 계속 이어가십니다.

휴계소에서 잠시 내릴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홍삼드링크를 4병 사오셔서 운전기사와 제게 한병씩 권합니다. 제가 사서 대접을 해야 하는데 죄송 합니다.. 했더니 아니라고 자꾸만 권해서 받지 않은것도 실례가 될것 같아 받아서 배낭에 넣어둬야 했지요. 또 다시 할아버지의 개념있는 대화가 순천까지 오는 내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십니다. 할아버지 젊은시절 발전소 근무하던 이야기까지 하시니... 에고 순천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그 고속버스타고 부산까지 갔다가는 잠시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들수가 없어서 난감할뻔 했습니다.

순천 터미널에서 근처 사우나를 찾아들어 땀에 절은 몸을 잠시 쉬고 옷을 갈아 입고 있으니 여수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선배언니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독일에서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한달정도 남편과 함께 친정에 머물러온 친구는 남편은 일주일 머물다가 밥벌이 하러 다시 독일로 들어가고 선배언니가 남원에서 픽업을해와서 만나니 외지에서 만나는 기쁨은 서울에서 만나는 기쁨보다 몇배가 배가되어 반갑기 그지 없었지요. 친구 남편이 독일 사람인지라 한국의 산야을 별로 돌아다녀보질 않았다는 얘기에 독일 들어가기전 북한산 산행을 함께 해 줬더니 독일 들어가서 경보대회때 일등을 했다고 모두 제덕이라 감사하다는 얘기도 전해져 오니 우리산하를 소개했다는 기분에 순간적으로 의쓱 해집니다.

다시 왔던길을 뒤돌아 보성 녹차밭으로 발길을 돌려 이글거리는 한낮의 햇볕 아래서도 우린 씩씩하게 녹차밭 산책로를 걸어 올라갔지요. (아~! 그런데 너무 덥다... )혹여나 보성 녹차밭 다녀오지 않은사람~? 여그 줄서~! 할까봐 우린 줄을 서서 녹차밭에서 현장검식도 하고 녹차생밀크쉐이크를 마셔보지 않은사람? 여그 줄서~! 똑바로 스란 말이얏~! 할것같아 또 그 쉐이크 맛도 봐야 했습니다. 근데 정말 더운 여름에 얼음보시기에 얼음 갈아서 만든 그 "녹차얼음갈아만든보시기"(녹차밀크쉐이크를 순수한 우리말로 만들어 본것)는 등줄기에서 줄줄 흐르던 땀방울을 잡아 내기엔 충분하더라구요.

여수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일 마레"라는 까페의 전망은 환상이었지만 바쁜 일정에 낙조를 보고 오지 못함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건 어찌 우리에게 수다가 빴겠는가... 넓은 방 하나에 여섯명이 함께 모여 앉아 수다는 이어지고...

수다 때문에 한시간여를 자고 다음날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해변을 달리지 않을수가 없어서 마라톤 복장을 하고 혼자 나가 보았습니다. 해변을 끼고 달리는 기쁨을 어찌 마다 하겠어요? 여기 여수까지 왔는데...(친구들은 너 미쳤니? 하면서 깔깔 웃더군^^)



김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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