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다! 슬프도록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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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경석 작성일04-10-06 15:23 조회4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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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다! 슬프도록 파랗다!
이경석
어제 나의 갈비뼈가 몸살로 누워버렸다. 아이들이 난리다. “아빠! 엄마 체온이 38.5도예요!” 내일 마라톤에 함께 출전해야하는데,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침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오후에 갑자기 누워버리니 믿기어지지 않았다. 체온계를 꺼내서 다시 재어보니 정말 그랬다. 유자차를 끓여 30분 간격으로 먹였다. 오한이 가시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오한이 멈추었다. 아이들과 나는 갈비뼈를 두고 한강으로 갔다. 대회 하루 전날의 워밍업을 위해서였다. 스모그가 옅은 맑은 주말 오후였다. 성산대교 남단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잔잔한 한강,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그리고 깨끗한 가을 햇살.... 녀석들은 1km를 달리더니 혓바닥을 늘어뜨린다. ‘허~억, 허~억!’
어둠이 짙어가면서, 갈비뼈의 증세에도 차도의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서 내일 경기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신청한 것이니 가야겠다고 우긴다. 은근히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10km에 처음으로 도전하는데, 쉽게 꺾여서는 안 될 터였다. 또한 올해의 새해 다짐을 지키도록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갈비뼈의 년초 다짐 중에 하나가 운동이었다. 실제로 1월의 차거운 북풍에도 이른 새벽 효창운동장을 함께 돌곤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매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운동이 그렇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을! 그래서 쉽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을 쉽게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운동을 여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다시 시작했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가족과 함께 달리기를 즐겼다. 즐기는 것은 쉽게하는 둘째 방법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낯설은 행사에 참가하는 것, 혹은 익숙하지 않은 길을 달려보는 것 등... 즐거움과 새로움을 체험하려는 이 즈음, 대회 하루전날 몸살 감기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이른 아침, 갈비뼈는 나보다 먼저 어둠을 밝혔다. 감기를 털고 일어선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몸은 아니지만 도전의 의지가 살아난 것이다. 갈비뼈는 어제 저녁식사와 오늘 아침식사를 건너뛰었다. 그러나 의지만은 단단했다. 강아지들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6시 50분 문산행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을 갈랐다. 아침 서울의 날씨가 섭씨 8도, 달리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날이 밝아오면서 파아란 가을 하늘이 선명해 진다. 기울다 지친 달님이 아직도 북녘 하늘에 걸려있다. 깨어서 아침을 맞는 기분이란! 항상 그러하듯이 마라토너들이 모인 자리는 축제다. 느슨한 몸이 팽팽해진 느낌이다. 몸속의 엔돌핀이 솟구치는 시간이다.
파이팅을 외치고, 주변의 달림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기분을 한껏 돋운다. 그리고 약간은 격앙된 기운으로 출발한다. 너도 나도 완주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일상의 이웃들이 모두 이들과 같다면, 이 땅이 쉽게 천국이 될 터인데... 살아서 못만들 천국, 죽어선들 거저 얻을 천국이 있을까? 출발부터 당분간은 기운과 기대, 기개가 넘친다. 이때를 조심해야한다. 너무 쓰면, 나중에 허기지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조절은 어렵다. 그래서 아마추어인가보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프로이고 싶다. 오늘은 ‘기’를 나누어서 배분해야지 다짐해본다. 오늘 레이스의 전략이라? 30km를 2시간 15분 정도에 맞추고, 나머지는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달려 3시간 30분에 여정을 마무리 지으려한다. 11월 7일 중앙마라톤을 위한 연습경기로 말이다.
시계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페이스를 조절해야하는데,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과속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참을 달리다가 숨이 차면 속도를 늦추곤 했다. 가을 들녘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대회에 3회째 참석이다. 대회의 취지를 담아 적어도 하루 동안,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는 민족의 공존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달리려했다. 오늘도 그렇다. 우연히 개천절과 맞물려 더욱 그 의미는 깊다. 일상의 관심에서 벗나 있는 북녘의 동포형제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몫이 있고, 나는 나의 몫이 있을 터, 그것이 무엇일까?
‘허~억, 허~억’ 어느 순간에 감정이 격앙되어 정신을 차리니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다. 너무 깊은 생각에 몰입해 있었나보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랗다. 슬프도록 파랗다. 갑자기 즐겨 부르던 동요가 흘러나온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 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예요 / 산도 들도 마음도 파란 빛으로 /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누렇게 익어가는 벼, 울긋 불긋 피어나는 코스모스,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함께 빚어내는 ‘오늘’이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이다. 하마터면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놓칠 뻔 했다. 다시 숨을 고른다. 이제 파주 종합운동장을 왼편에 두고, 언덕을 오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었다. 20km를 1시간 30분대에 통과한 듯하다. 2년 전 이곳 오르막을 오르고 나서 내리막을 달리다 부상을 입었다. 그땐 정말 주법이고 뭐고 그냥 힘 있는 대로 달리던 때였다. 부상을 통해서 경험하는 바가 크다. 몸으로 배운 것이니 잊을리 없다. 23km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이다. 58년 개띠 마라토너가 앞서간다. 이제까지 나를 추월하는 주자가 없었는데..... 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나의 페이스를 지키련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사고의 늪에 빠진다. 이제까지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경쟁이 심화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올림픽 구호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살벌한 경쟁에 뿌리를 둔 정글의 법칙이 얼마나 급속하게 심화되어왔는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면 경쟁은 파괴적이다. 따라서 게임 후에는 상처뿐이다. 승자는 의기양양할지 모르지만 패자는 항상 분하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승복하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주 확인한다. 가진 자에 대한 반감에서도 확인된다. 잘못 방향지워진 가치의 궤도를 돌려야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단 한사람이 승리하는 경기보다는 모두가 승리하는 경기로! 마라토너는 모두가 승리자다. 그래서 마라톤을 사랑한다.
우리는 줄세우기를 좋아한다. 때로는 점수로, 때로는 나이로, 사회적 직위로,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항상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말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최근에는 대학에서 고등학교에 등급을 매겨 줄을 세워서, 재학생들을 줄세우지 않는가? 나 또한 달리기를 하면서 몇 등, 몇 시간에 완주했는지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학교의 어떤 동료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아냥 거리는 어투로)“마라톤을 왜 하는거요?”
(마지못한 심정으로)“건강을 위해서? 도전을 위해서? 뭐, 여러 가지가 있지요.”
“그렇다면 왜 기록이 그렇게 중요하는 거요?”
“기록은 구체적인 목표이고, 그 목표가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더욱 기세등등하게)“아~ 결국, 기록 때문에 하는거구나!”
부조리연극의 한 대사 토막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를 위해서 말을 거는 것이 아니었을 터였으니까!
마음의 장애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어두운 구석만 보려고 하는 마음,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 등...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억압과 편견, 무지, 그리고 두려움에 갇혀 사는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을 터이니까. 억압은 사람을 오무라들게 한다. 기를 죽인다. 무지와 편견은 대화의 장애물이다. 타협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도전에 몸을 떤다. 화를 잘 낸다. 무서우니까! 내 안에도 이런 장애들이 있을 터, 부지런히 쫓아내야겠다. 그리하여 자아를 해방시켜야겠다. 해방이 무엇인가? 구원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장애로부터 벗어나, 자유하는 것! 이것이 해방이요, 구원이 아닐까?
휴~ 또 너무 깊이 들어갔나 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30km 급수대가 코앞에 있다. 한참을 쉬었다. 시간을 물어보니, 2시간 20분이 흘렀다. 예정시간보다 5분이 늦었다. 바나나 반조각, 오! 예스 한조각, 그리고 음료수 한잔을 천천히 먹고 마셨다. 너무 오래 쉬었나? 몸이 풀어졌다. 너무 오래쉬면 녹이 슨다고 했는데.... 천천히 가자. 이제부터는 전략수정이다. 가다보면 골인하는 것이다. 터벅터벅 걷기도 하다가 달리기도 하다가 했다. 오르막이 나오면 걷고, 내리막에선 조금 달렸다. 나를 지나쳐 앞서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개의치 않았다. 오늘의 레이스 전략상 이 지점에서는 ‘Slow, slow, quick, quick!'이다. 그래도 지쳤나보다. 힘이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35km의 급수대가 왜 이렇게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30km 이후에 급속하게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매번 느낀다. 신기할 정도이다. 페이스가 무너지면서 온 몸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듯한 경험. 게을렀던 온몸의 세포들이 총동원해서 열심히 나의 몸을 움직이려하지만 한번 무너진 균형 앞에 허탈해하는 기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풀코스를 달릴 때마다 같은 체험을 되풀이 한다.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대목이다.
35km의 급수대에서는 더욱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고개를 늘어뜨린 들녘의 누런 벼 잎사귀들도 보고, 지나가는 주자들도 구경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니라 구경꾼처럼...... 혼자 달렸다면 아마 레이스를 멈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달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입장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냥 쉬엄 쉬엄 거닐 수가 없었다. 함께함의 힘이 나를 움직인다. 여러해 전, 형제같은 친구의 사제서품식에 젊은 수도자들이 떼로 모여 북치며 불렀던 노래가 슬며서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사랑 속에 형제 모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형제의 손 맞잡고 /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 어기어차 넘어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 어기어차 건너주자 /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 서로 일으켜주고 /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38km 지점에서 지나가는 주자에게 다시 시간을 물었다. 12시 43분이었다. 1시까지는 골인할 셈이었는데, 약간 어려운 듯했다. 2km를 열심히 달렸다.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금방 숨이 차 올랐다. 하는 수없이 속도를 늦추었다. 참 묘하다.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이 난다. 갈비뼈는 몸도 편치 않으니 10km를 달리고 난 후에 일찍 집에 가라고 했다. 동네 동호회원들, 그리고 일터의 동료들도 하프코스 주자들은 일찍 귀가하라했다. 골인하는데, 아무도 날 반겨주는 이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더 쓸쓸해야한다. 더 고독해야한다. 이것이 나를 더욱 더 강인하게 단련해준다는 것을 나는 안다. 3시간 36분 56초의 짧지만 깊었던 여정이었다. 여전히 가을 하늘은 슬프도록 파랬다.
대회명: 제 6회 통일마라톤(문화일보 주최)
장 소 : 임진각 일대
일 시: 2004. 10. 3. 09:30~
참가부문: Full course
기 록: 3:36:56(배번 1017)
이경석
어제 나의 갈비뼈가 몸살로 누워버렸다. 아이들이 난리다. “아빠! 엄마 체온이 38.5도예요!” 내일 마라톤에 함께 출전해야하는데,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침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오후에 갑자기 누워버리니 믿기어지지 않았다. 체온계를 꺼내서 다시 재어보니 정말 그랬다. 유자차를 끓여 30분 간격으로 먹였다. 오한이 가시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오한이 멈추었다. 아이들과 나는 갈비뼈를 두고 한강으로 갔다. 대회 하루 전날의 워밍업을 위해서였다. 스모그가 옅은 맑은 주말 오후였다. 성산대교 남단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잔잔한 한강,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그리고 깨끗한 가을 햇살.... 녀석들은 1km를 달리더니 혓바닥을 늘어뜨린다. ‘허~억, 허~억!’
어둠이 짙어가면서, 갈비뼈의 증세에도 차도의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서 내일 경기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신청한 것이니 가야겠다고 우긴다. 은근히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10km에 처음으로 도전하는데, 쉽게 꺾여서는 안 될 터였다. 또한 올해의 새해 다짐을 지키도록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갈비뼈의 년초 다짐 중에 하나가 운동이었다. 실제로 1월의 차거운 북풍에도 이른 새벽 효창운동장을 함께 돌곤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매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운동이 그렇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을! 그래서 쉽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을 쉽게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운동을 여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다시 시작했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가족과 함께 달리기를 즐겼다. 즐기는 것은 쉽게하는 둘째 방법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낯설은 행사에 참가하는 것, 혹은 익숙하지 않은 길을 달려보는 것 등... 즐거움과 새로움을 체험하려는 이 즈음, 대회 하루전날 몸살 감기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이른 아침, 갈비뼈는 나보다 먼저 어둠을 밝혔다. 감기를 털고 일어선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몸은 아니지만 도전의 의지가 살아난 것이다. 갈비뼈는 어제 저녁식사와 오늘 아침식사를 건너뛰었다. 그러나 의지만은 단단했다. 강아지들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6시 50분 문산행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을 갈랐다. 아침 서울의 날씨가 섭씨 8도, 달리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날이 밝아오면서 파아란 가을 하늘이 선명해 진다. 기울다 지친 달님이 아직도 북녘 하늘에 걸려있다. 깨어서 아침을 맞는 기분이란! 항상 그러하듯이 마라토너들이 모인 자리는 축제다. 느슨한 몸이 팽팽해진 느낌이다. 몸속의 엔돌핀이 솟구치는 시간이다.
파이팅을 외치고, 주변의 달림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기분을 한껏 돋운다. 그리고 약간은 격앙된 기운으로 출발한다. 너도 나도 완주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일상의 이웃들이 모두 이들과 같다면, 이 땅이 쉽게 천국이 될 터인데... 살아서 못만들 천국, 죽어선들 거저 얻을 천국이 있을까? 출발부터 당분간은 기운과 기대, 기개가 넘친다. 이때를 조심해야한다. 너무 쓰면, 나중에 허기지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조절은 어렵다. 그래서 아마추어인가보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프로이고 싶다. 오늘은 ‘기’를 나누어서 배분해야지 다짐해본다. 오늘 레이스의 전략이라? 30km를 2시간 15분 정도에 맞추고, 나머지는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달려 3시간 30분에 여정을 마무리 지으려한다. 11월 7일 중앙마라톤을 위한 연습경기로 말이다.
시계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페이스를 조절해야하는데,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과속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참을 달리다가 숨이 차면 속도를 늦추곤 했다. 가을 들녘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대회에 3회째 참석이다. 대회의 취지를 담아 적어도 하루 동안,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는 민족의 공존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달리려했다. 오늘도 그렇다. 우연히 개천절과 맞물려 더욱 그 의미는 깊다. 일상의 관심에서 벗나 있는 북녘의 동포형제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몫이 있고, 나는 나의 몫이 있을 터, 그것이 무엇일까?
‘허~억, 허~억’ 어느 순간에 감정이 격앙되어 정신을 차리니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다. 너무 깊은 생각에 몰입해 있었나보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파랗다. 슬프도록 파랗다. 갑자기 즐겨 부르던 동요가 흘러나온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 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예요 / 산도 들도 마음도 파란 빛으로 /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누렇게 익어가는 벼, 울긋 불긋 피어나는 코스모스,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함께 빚어내는 ‘오늘’이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이다. 하마터면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놓칠 뻔 했다. 다시 숨을 고른다. 이제 파주 종합운동장을 왼편에 두고, 언덕을 오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었다. 20km를 1시간 30분대에 통과한 듯하다. 2년 전 이곳 오르막을 오르고 나서 내리막을 달리다 부상을 입었다. 그땐 정말 주법이고 뭐고 그냥 힘 있는 대로 달리던 때였다. 부상을 통해서 경험하는 바가 크다. 몸으로 배운 것이니 잊을리 없다. 23km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이다. 58년 개띠 마라토너가 앞서간다. 이제까지 나를 추월하는 주자가 없었는데..... 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나의 페이스를 지키련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사고의 늪에 빠진다. 이제까지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경쟁이 심화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올림픽 구호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살벌한 경쟁에 뿌리를 둔 정글의 법칙이 얼마나 급속하게 심화되어왔는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면 경쟁은 파괴적이다. 따라서 게임 후에는 상처뿐이다. 승자는 의기양양할지 모르지만 패자는 항상 분하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승복하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주 확인한다. 가진 자에 대한 반감에서도 확인된다. 잘못 방향지워진 가치의 궤도를 돌려야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단 한사람이 승리하는 경기보다는 모두가 승리하는 경기로! 마라토너는 모두가 승리자다. 그래서 마라톤을 사랑한다.
우리는 줄세우기를 좋아한다. 때로는 점수로, 때로는 나이로, 사회적 직위로,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항상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말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최근에는 대학에서 고등학교에 등급을 매겨 줄을 세워서, 재학생들을 줄세우지 않는가? 나 또한 달리기를 하면서 몇 등, 몇 시간에 완주했는지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학교의 어떤 동료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아냥 거리는 어투로)“마라톤을 왜 하는거요?”
(마지못한 심정으로)“건강을 위해서? 도전을 위해서? 뭐, 여러 가지가 있지요.”
“그렇다면 왜 기록이 그렇게 중요하는 거요?”
“기록은 구체적인 목표이고, 그 목표가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더욱 기세등등하게)“아~ 결국, 기록 때문에 하는거구나!”
부조리연극의 한 대사 토막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를 위해서 말을 거는 것이 아니었을 터였으니까!
마음의 장애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어두운 구석만 보려고 하는 마음,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 등...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억압과 편견, 무지, 그리고 두려움에 갇혀 사는 사람을 식별해 낼 수 있을 터이니까. 억압은 사람을 오무라들게 한다. 기를 죽인다. 무지와 편견은 대화의 장애물이다. 타협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도전에 몸을 떤다. 화를 잘 낸다. 무서우니까! 내 안에도 이런 장애들이 있을 터, 부지런히 쫓아내야겠다. 그리하여 자아를 해방시켜야겠다. 해방이 무엇인가? 구원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장애로부터 벗어나, 자유하는 것! 이것이 해방이요, 구원이 아닐까?
휴~ 또 너무 깊이 들어갔나 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30km 급수대가 코앞에 있다. 한참을 쉬었다. 시간을 물어보니, 2시간 20분이 흘렀다. 예정시간보다 5분이 늦었다. 바나나 반조각, 오! 예스 한조각, 그리고 음료수 한잔을 천천히 먹고 마셨다. 너무 오래 쉬었나? 몸이 풀어졌다. 너무 오래쉬면 녹이 슨다고 했는데.... 천천히 가자. 이제부터는 전략수정이다. 가다보면 골인하는 것이다. 터벅터벅 걷기도 하다가 달리기도 하다가 했다. 오르막이 나오면 걷고, 내리막에선 조금 달렸다. 나를 지나쳐 앞서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개의치 않았다. 오늘의 레이스 전략상 이 지점에서는 ‘Slow, slow, quick, quick!'이다. 그래도 지쳤나보다. 힘이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35km의 급수대가 왜 이렇게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30km 이후에 급속하게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매번 느낀다. 신기할 정도이다. 페이스가 무너지면서 온 몸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듯한 경험. 게을렀던 온몸의 세포들이 총동원해서 열심히 나의 몸을 움직이려하지만 한번 무너진 균형 앞에 허탈해하는 기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풀코스를 달릴 때마다 같은 체험을 되풀이 한다.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대목이다.
35km의 급수대에서는 더욱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고개를 늘어뜨린 들녘의 누런 벼 잎사귀들도 보고, 지나가는 주자들도 구경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니라 구경꾼처럼...... 혼자 달렸다면 아마 레이스를 멈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달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입장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냥 쉬엄 쉬엄 거닐 수가 없었다. 함께함의 힘이 나를 움직인다. 여러해 전, 형제같은 친구의 사제서품식에 젊은 수도자들이 떼로 모여 북치며 불렀던 노래가 슬며서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사랑 속에 형제 모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형제의 손 맞잡고 /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 어기어차 넘어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 어기어차 건너주자 /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 서로 일으켜주고 /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38km 지점에서 지나가는 주자에게 다시 시간을 물었다. 12시 43분이었다. 1시까지는 골인할 셈이었는데, 약간 어려운 듯했다. 2km를 열심히 달렸다.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금방 숨이 차 올랐다. 하는 수없이 속도를 늦추었다. 참 묘하다.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이 난다. 갈비뼈는 몸도 편치 않으니 10km를 달리고 난 후에 일찍 집에 가라고 했다. 동네 동호회원들, 그리고 일터의 동료들도 하프코스 주자들은 일찍 귀가하라했다. 골인하는데, 아무도 날 반겨주는 이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더 쓸쓸해야한다. 더 고독해야한다. 이것이 나를 더욱 더 강인하게 단련해준다는 것을 나는 안다. 3시간 36분 56초의 짧지만 깊었던 여정이었다. 여전히 가을 하늘은 슬프도록 파랬다.
대회명: 제 6회 통일마라톤(문화일보 주최)
장 소 : 임진각 일대
일 시: 2004. 10. 3. 09:30~
참가부문: Full course
기 록: 3:36:56(배번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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