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아버지는 이렇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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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덕모 작성일04-03-16 18:20 조회5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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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14일 토요일 날 서울경찰청으로 부터 경정,경감급 인사이동이 발령됨에 따라 나는 양천경찰서 경무과장에서 송파경찰서 경무과장으로 발령을 명 받고 자리를 옮겨온 다음 날 숨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당직을 서야 했으나 당직을 했다고 쉴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 였기에 16, 17, 18일 계속하여 업무파악 및 당면 업무를 추진하느라고 밤늦은 퇴근이 이어졌고 작은 우주라고 지칭하는 내 몸둥아리는 무리를 한다 싶으면 수시로 고통을 전해오는 치통의 아픔을 겪고 있을 때인 19일 오후 3시가 지날 무렵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청장님의 치안 현장 방문이 20일 오전으로 예정 됐으니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장님을 비롯 과장들과 경무계 직원들은 업무보고를 준비한다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자정을 넘겨야 했다.
그러나 나는 또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었으니 그것은 이미 계획 되어있는 심야순시를 돌아야 했기에 몸은 지쳐 있었지만 24:00~02:00까지 2개소의 지구대와 1개소의 치안센터를 순시 후 경찰서로 돌아와 02:30에야 겨우 녹초가 된 몸은 안식의 시간을 얻었다. 다음날은 서울청장님께서 우리 송파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긴장한 가운데 청장님을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하였고 그 덕분에 청장님으로 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니 하룻밤의 고생은 값진 보람이 됐으며 직원들 모두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직장분위기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일간 계속된 격무로 인하여 쌓인 피로는 청년시절에 복싱을 할 때 흑인 선수와 스파링을 하다가 코뼈가 삐뚤어지도록 카운터 펀치를 맞았으나 코피가 나지 않는 나였고 경찰에 투신하여 승진시험 공부를 할 적에도 동료들은 2~3번씩이나 코피를 흘렸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왜 코피가 안 날까 하고 스스로 안달했던 자신이었는데 세월 따라 늙어 감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친 육신은 드디어 오른쪽 콧구멍에서 핏덩어리가 나오더니 다음날은 왼쪽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 누적된 신체적 피로의 현실을 체험하며 다가오는 3월 7일의“서울마라톤대회가 나를 걱정스럽게 하였다.
그러한 상황속의 나였지만 지난해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 실천한 그 첫 번째 결심은 담배는 2003년 11월 8일부터 끊었지만 술은 마라톤대회가 있기 3개월 전부터 후배경찰들은 금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 좋은 행동을 본받지 못하고 세월을 잃고 있다가 2004년 2월 7일부터 서울마라톤이 있는 3월 7일까지 1개월간 금하기로 작정하고 잘 견디어 오다가 인사이동에 따른 환영회 등으로 결국은 금주의 결심이 깨어져 2월 15, 19, 20, 23, 25, 26, 28, 29일까지 8일간 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달리기연습도 2월에는 걷기와 등산을 포함해 15일밖에 못했으며 3월 역시 시합일 7일까지 3일밖에 못했을 뿐 아니라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완주를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여 괴로움을 안겨줬지만 포기 할 수 없다는 집념과 의지가 나를 요지부동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이 치과의원에서 3번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치통은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 10월“조선일보춘천마라톤”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4시간 45분 46초로 완주한 체험기를 며칠 동안 공들여 써놓고 컴퓨터작동을 잘못하여 모두 날려 버리는 바람에 체험기 쓰기를 포기했다가 서울마라톤대회 일자가 다가 옴에 따라 춘천이야기를 써야만 이번의 서울마라톤대회도 완주를 할 수 있고 완주기도 쓸 수 있게 된다는 새로운 의욕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춘천에서의 메모글을 토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며칠 간에 쓴 끝에 나는 달린다”라고 제목을 붙인 조선일보춘천마라톤 완주기를 3월 6일날 드디어 완성하여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그리고 우리경찰서 홈폐이지와 경찰게시판에 올린 후 22:00경 귀가하여 서울마라톤클럽에서 보내준 유니폼에 배 번호표1623번과 서울송파경찰서란 표지와 해병193기 윤덕모라고 적힌 표지를 등과 배에 붙이는 바느질을 끝낸 뒤 “의지가 불타는 한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마음에 새기며 잠 길을 열었다.
드디어 2004년 3월 7일은 밝아왔고 나는 평소보다 1시간 더 잠을 잔 뒤 07:00 에 기상하여 기온을 확인하니 서울은 5.6도 라고 했다. 치통은 계속되었지만 먹어야 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육계장을 차려준 아내에게 감사하며 씹지도 못하고 억지로 식사를 한 다음 출전을 만류하는 아들의 권유를 못들은 척 하고 아내와 아들의 인사를 받고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대회장에 도착하니 100년만에 내린 3월의 눈은 한강 바람과 함께 체감온도를 더 낮게 떨어뜨렸지만 다행이 해병대 후배인 성실의 표본자라고 내가 별명을 붙이고 자랑해온 박노문 후배와 충남공주에서 이번 대회출전을 위해 상경한 박후배의 친동생 부부가 나를 반겨줘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추리닝위에 유니폼을 껴입고 F그룹에 합류하여 기도를 하면서 출발을 했다.
내가 드린 기도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다리에 쥐가 나서 못 뛰게 되거나 관절의 이상으로 못 달리거나 발가락에 뛰지 못할 심한 상처가 나지 않는 한 나는 절대로 포기 할 수 없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걷지 않는 내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욕심을 버리고 기록에는 상관치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 까닭은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날씨 또한 달리기에는 순조롭지 않는 상황이라 5시간을 예상하고 끝까지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잔득 기대 했던 페이스메이커가 없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5km, 10km를 지나면서 마음은 편안해졌고 치통의 고통도 어찌된 영문인지 사라져 하나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완주는 가능하겠다는 가능성을 예상하며 달리고 달려 반환점을 돌아서니 작년에 춘천길을 함께 했던 양천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는 손춘용 경사가 자원 봉사를 나와서 수고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아주며 간식을 챙겨 주었고 그때 또 나를 보고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면서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있었으니 그는 우리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시며 경찰특공대 선배가 되신 분으로 마라톤 풀 코스를 67회나 완주한 집념과 의지의 사람 최동선님 이었다. 두 분께 큰 힘이 되었다고 다시금 고마움을 전해 들리고 싶다.
뿐이랴, 힘든 경찰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틈나는 시간을 할애하여 남을 위해 봉사하는 손경사와 최과장님의 희생 정신을 높이 평가 해야하리라. 염려했던 마의 거리 30km를 지나면서부터 외롭다는 생각도 들고 힘에 겹다는 두려움까지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춘천에서 착안했던“기도의 능력”을 생각해내고 이렇게 기도하며 달렸다.“하나님 제가 완주해야만 아들이 4월 18일에 시행하는 순경필기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노래하는 사랑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하나님 제가 완주해야만 큰딸 은혜가 3월 14일에 있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걷을 수 있고 훌륭한 음악가로 성공을 합니다.”“하나님 제가 완주를 해야만 막내딸 은총이의 병이 완치되고 병으로부터 해방되어 밝고 아름다운 삶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끝까지 지켜 보살펴 주소서”라고 수도 없이 되뇌이며 기도를 하다보니 35km를 통과하였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은 나는 또 이렇게 외쳤다.“나는 이긴다.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반드시 완주한다.”라고 마음으로 외치며 달리고 달린 끝에 63빌딩이 보이는가 싶더니 63빌딩을 지나쳤고 드디어 골인지점에 들어서는 순간 세계최고의 마라토너가 바로 나자신인양 50후반의 나이도 온 몸을 괴롭혔던 고통도 내일에 대한 염려도 모두 잊은 채 달리기에 몰두한 내 자신은 공중을 나르는 새가되어 테이프를 끊었고 그 때 주체측에서는 이렇게 방송을 해 주었다.“송파경찰서 해병대 1623번 윤덕모”4시간 39분 08초로골인 이라고 말이다.
숨을 몰아쉬며 결승점을 통과하니 삼성생명으로부터 찬조 받아 마련한 대형 보온 타올로 내 어깨를 봉사요원이 감싸줄 때 나는 또 한번 세계최고의 마라토너가 된 감격을 안았으니 어리석다고 나를 흉본들 무슨 상관인가. 내 멋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의 골인을 기다렸다가 맛있는 돼지갈비와 인정 넘치는 소주잔을 기울이게 해주면서 두 번째 완주를 축하 해준 박노문 후배와 그 동생 부부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
달리면서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은 내 아버님과 어머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힘은 기적을 낳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두 분 이지만 두 분의 살과 피와 뼈를 물려받은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니 얼마나 위대한 역사적 사실인가?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강인한 정신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하면 된다는 신념과 튼튼한 육체를 유산으로 받았으니 이 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죽어서 영혼까지 감사하며 감사 할 일 이어라. 음식물을 먹는 장소에서 잠시 머무는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걷지 않았던 나였고 상처라고는 양쪽 발가락 중 넷째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 것이 전부였으며 아직까지 군살 없는 신체를 유지하고 있으니 부모님 은덕에 감사 할 뿐이다.
그리고 서울마라톤 대회는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화합과 단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하여 개최된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며일 뒤 선배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직위원장님을 위시하여 대회를 빛내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자원봉사로 헌신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서울마라톤클럽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아들 인섭과 큰딸 은혜, 작은딸 은총에게 고하고 싶은 한 마디는 우리네 인생도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과 같은거라고 말하고 싶다. 힘이 솟아나는 기쁨과 즐거움이 이어지다가도 고통의 시간이 오는 법이니. 너희도 삶을 살 때에 순탄만 생각하지 말고 고난이 닥칠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최선을 다하는 나날을 걸어주기를 당부하면서 아버지는 두번째 도전에서도 이겼노라고 환호하며 제7회 서울마라톤 완주기를 여기서 접는다. 끝.
그러나 나는 또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더 있었으니 그것은 이미 계획 되어있는 심야순시를 돌아야 했기에 몸은 지쳐 있었지만 24:00~02:00까지 2개소의 지구대와 1개소의 치안센터를 순시 후 경찰서로 돌아와 02:30에야 겨우 녹초가 된 몸은 안식의 시간을 얻었다. 다음날은 서울청장님께서 우리 송파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긴장한 가운데 청장님을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하였고 그 덕분에 청장님으로 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으니 하룻밤의 고생은 값진 보람이 됐으며 직원들 모두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직장분위기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일간 계속된 격무로 인하여 쌓인 피로는 청년시절에 복싱을 할 때 흑인 선수와 스파링을 하다가 코뼈가 삐뚤어지도록 카운터 펀치를 맞았으나 코피가 나지 않는 나였고 경찰에 투신하여 승진시험 공부를 할 적에도 동료들은 2~3번씩이나 코피를 흘렸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왜 코피가 안 날까 하고 스스로 안달했던 자신이었는데 세월 따라 늙어 감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친 육신은 드디어 오른쪽 콧구멍에서 핏덩어리가 나오더니 다음날은 왼쪽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 누적된 신체적 피로의 현실을 체험하며 다가오는 3월 7일의“서울마라톤대회가 나를 걱정스럽게 하였다.
그러한 상황속의 나였지만 지난해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 실천한 그 첫 번째 결심은 담배는 2003년 11월 8일부터 끊었지만 술은 마라톤대회가 있기 3개월 전부터 후배경찰들은 금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 좋은 행동을 본받지 못하고 세월을 잃고 있다가 2004년 2월 7일부터 서울마라톤이 있는 3월 7일까지 1개월간 금하기로 작정하고 잘 견디어 오다가 인사이동에 따른 환영회 등으로 결국은 금주의 결심이 깨어져 2월 15, 19, 20, 23, 25, 26, 28, 29일까지 8일간 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달리기연습도 2월에는 걷기와 등산을 포함해 15일밖에 못했으며 3월 역시 시합일 7일까지 3일밖에 못했을 뿐 아니라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완주를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여 괴로움을 안겨줬지만 포기 할 수 없다는 집념과 의지가 나를 요지부동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이 치과의원에서 3번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치통은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 10월“조선일보춘천마라톤”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4시간 45분 46초로 완주한 체험기를 며칠 동안 공들여 써놓고 컴퓨터작동을 잘못하여 모두 날려 버리는 바람에 체험기 쓰기를 포기했다가 서울마라톤대회 일자가 다가 옴에 따라 춘천이야기를 써야만 이번의 서울마라톤대회도 완주를 할 수 있고 완주기도 쓸 수 있게 된다는 새로운 의욕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춘천에서의 메모글을 토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며칠 간에 쓴 끝에 나는 달린다”라고 제목을 붙인 조선일보춘천마라톤 완주기를 3월 6일날 드디어 완성하여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그리고 우리경찰서 홈폐이지와 경찰게시판에 올린 후 22:00경 귀가하여 서울마라톤클럽에서 보내준 유니폼에 배 번호표1623번과 서울송파경찰서란 표지와 해병193기 윤덕모라고 적힌 표지를 등과 배에 붙이는 바느질을 끝낸 뒤 “의지가 불타는 한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마음에 새기며 잠 길을 열었다.
드디어 2004년 3월 7일은 밝아왔고 나는 평소보다 1시간 더 잠을 잔 뒤 07:00 에 기상하여 기온을 확인하니 서울은 5.6도 라고 했다. 치통은 계속되었지만 먹어야 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육계장을 차려준 아내에게 감사하며 씹지도 못하고 억지로 식사를 한 다음 출전을 만류하는 아들의 권유를 못들은 척 하고 아내와 아들의 인사를 받고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대회장에 도착하니 100년만에 내린 3월의 눈은 한강 바람과 함께 체감온도를 더 낮게 떨어뜨렸지만 다행이 해병대 후배인 성실의 표본자라고 내가 별명을 붙이고 자랑해온 박노문 후배와 충남공주에서 이번 대회출전을 위해 상경한 박후배의 친동생 부부가 나를 반겨줘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추리닝위에 유니폼을 껴입고 F그룹에 합류하여 기도를 하면서 출발을 했다.
내가 드린 기도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다리에 쥐가 나서 못 뛰게 되거나 관절의 이상으로 못 달리거나 발가락에 뛰지 못할 심한 상처가 나지 않는 한 나는 절대로 포기 할 수 없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걷지 않는 내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욕심을 버리고 기록에는 상관치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 까닭은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날씨 또한 달리기에는 순조롭지 않는 상황이라 5시간을 예상하고 끝까지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잔득 기대 했던 페이스메이커가 없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5km, 10km를 지나면서 마음은 편안해졌고 치통의 고통도 어찌된 영문인지 사라져 하나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완주는 가능하겠다는 가능성을 예상하며 달리고 달려 반환점을 돌아서니 작년에 춘천길을 함께 했던 양천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는 손춘용 경사가 자원 봉사를 나와서 수고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아주며 간식을 챙겨 주었고 그때 또 나를 보고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면서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있었으니 그는 우리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시며 경찰특공대 선배가 되신 분으로 마라톤 풀 코스를 67회나 완주한 집념과 의지의 사람 최동선님 이었다. 두 분께 큰 힘이 되었다고 다시금 고마움을 전해 들리고 싶다.
뿐이랴, 힘든 경찰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틈나는 시간을 할애하여 남을 위해 봉사하는 손경사와 최과장님의 희생 정신을 높이 평가 해야하리라. 염려했던 마의 거리 30km를 지나면서부터 외롭다는 생각도 들고 힘에 겹다는 두려움까지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춘천에서 착안했던“기도의 능력”을 생각해내고 이렇게 기도하며 달렸다.“하나님 제가 완주해야만 아들이 4월 18일에 시행하는 순경필기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노래하는 사랑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하나님 제가 완주해야만 큰딸 은혜가 3월 14일에 있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걷을 수 있고 훌륭한 음악가로 성공을 합니다.”“하나님 제가 완주를 해야만 막내딸 은총이의 병이 완치되고 병으로부터 해방되어 밝고 아름다운 삶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끝까지 지켜 보살펴 주소서”라고 수도 없이 되뇌이며 기도를 하다보니 35km를 통과하였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은 나는 또 이렇게 외쳤다.“나는 이긴다. 나는 자신 있다. 나는 반드시 완주한다.”라고 마음으로 외치며 달리고 달린 끝에 63빌딩이 보이는가 싶더니 63빌딩을 지나쳤고 드디어 골인지점에 들어서는 순간 세계최고의 마라토너가 바로 나자신인양 50후반의 나이도 온 몸을 괴롭혔던 고통도 내일에 대한 염려도 모두 잊은 채 달리기에 몰두한 내 자신은 공중을 나르는 새가되어 테이프를 끊었고 그 때 주체측에서는 이렇게 방송을 해 주었다.“송파경찰서 해병대 1623번 윤덕모”4시간 39분 08초로골인 이라고 말이다.
숨을 몰아쉬며 결승점을 통과하니 삼성생명으로부터 찬조 받아 마련한 대형 보온 타올로 내 어깨를 봉사요원이 감싸줄 때 나는 또 한번 세계최고의 마라토너가 된 감격을 안았으니 어리석다고 나를 흉본들 무슨 상관인가. 내 멋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의 골인을 기다렸다가 맛있는 돼지갈비와 인정 넘치는 소주잔을 기울이게 해주면서 두 번째 완주를 축하 해준 박노문 후배와 그 동생 부부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
달리면서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은 내 아버님과 어머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힘은 기적을 낳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두 분 이지만 두 분의 살과 피와 뼈를 물려받은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니 얼마나 위대한 역사적 사실인가?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강인한 정신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하면 된다는 신념과 튼튼한 육체를 유산으로 받았으니 이 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죽어서 영혼까지 감사하며 감사 할 일 이어라. 음식물을 먹는 장소에서 잠시 머무는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걷지 않았던 나였고 상처라고는 양쪽 발가락 중 넷째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 것이 전부였으며 아직까지 군살 없는 신체를 유지하고 있으니 부모님 은덕에 감사 할 뿐이다.
그리고 서울마라톤 대회는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화합과 단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하여 개최된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며일 뒤 선배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직위원장님을 위시하여 대회를 빛내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자원봉사로 헌신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서울마라톤클럽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아들 인섭과 큰딸 은혜, 작은딸 은총에게 고하고 싶은 한 마디는 우리네 인생도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과 같은거라고 말하고 싶다. 힘이 솟아나는 기쁨과 즐거움이 이어지다가도 고통의 시간이 오는 법이니. 너희도 삶을 살 때에 순탄만 생각하지 말고 고난이 닥칠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최선을 다하는 나날을 걸어주기를 당부하면서 아버지는 두번째 도전에서도 이겼노라고 환호하며 제7회 서울마라톤 완주기를 여기서 접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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