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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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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12-25 23:58 조회3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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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추억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제가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탄절은
아마도 여덟 혹은 아홉 살 때 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승용차로 단 오 분도 안 걸리는 포장길이지만
그 당시에는 먼지 풀풀 나는 시골 자갈길 신작로를 걸어 형들을 따라서,
성탄절이라고 떡을 나눠준다는 교회를 가본 게 제가 성탄절과 만난 첫 인연
이었습니다

그 때 교회, 아마 당시에는 예배당이라고 한 걸로 기억합니다, 에 가면
굉장했습니다. 시골 촌구석 우리 마을에서는 일 년 삼 백 육십 오일을 다가도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울긋불긋 색종이가 예배당 천장 여기저기에 걸려있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우리 집 가마솥 솥뚜껑 만한 크기로 축 성탄이라고
예배당 입구 문 전면과 옆 창문 유리에 크게 글씨가 붙어 있고,
보는 사람마다 무언지 모르게 즐거운 기분으로 들떠 있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연애한다고 소문 날까봐 좀처럼 둘이 같이 있는걸 보기 힘든 동네의 형과 누나도
그날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예배당 종루 밑에 같이 나란히 앉아 어설픈
친근감을 나누는 장면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 날은 눈이 많이 왔습니다

동네 형들 손에 이끌리어 떡 얻어먹을 생각으로 ,
그리고 야릇하니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예배당엘 갔습니다
날씨는 오그라지게 추워 대충대충 집에 있는 광목 짜투리 목도리로 목도 감싸고
갔습니다

겨울 하늘에 별들은 총총, 눈보라 북풍은 쌩쌩,
시커먼 천으로 만든 형편없는 내 신발 발 밑에 밟히는 뽀드득, 뽀드득 눈 소리는
발갛게 언 내 발등을 자꾸자꾸 더 춥게, 더 춥게 만들어 가고......

아무리 빠른 걸음을 걸어도 형들과는 자꾸만 멀어져 총총 걸음으로 뛰다시피 해야
겨우 동네 형들의 달 그림자라도 붙잡고 갈 수가 있었지요.
뒤에 처지면 금방이라도 멍석 귀신이 덥썩 날 싸안고 뒤로 내 뺄 것만 같아
죽을힘을 다해 걷는 내 머리 뒤 꼭지는 불안감으로 인해 자꾸만 뻣뻣해 졌고요

지루한 찬송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2 절 3 절 , 4 절까지 이어지고,
분명 아까 보았던 옆 동네 그 아저씨 같은데
코밑에 이불솜을 달고 나와 앞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이제 별로 일 때쯤
잘 모르는 나도 짐작할 수 있는 반가운 마지막 노래,

" 돌아갑시다, 돌아갑시다 ! 일 대, 이 대, 삼 대 , 사 대, 돌아갑시다 ......"

라는 노래가 나오고 사람들은 두꺼운 옷가지를 챙겨 몸에 걸치며
예배당 입구 현관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궁금했습니다
오늘 떡을 나눠준다고 했는데... 줄랑가 ? 안줄랑가 ??

오늘의 하일 라이트, 나의 최대 관심사인 떡, 이것이 문제이었습니다

아 ! 다행히 앞쪽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인사소리가 들리고
무엇이 공짜로 생기었을 때의 시골 사람들의 귀에 익은 환한 말 몇 마디가
들려 왔습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의 손에 아직도 온기가 있는 하얀 가래 떡
몇 조각이 누리끼리한 " 뇨소 비료 " 푸대 종이에 싸여 건네진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습니다

단번에 그걸 전부 한 입에 털어 넣고 양 볼따구니가 찢어지도록 먹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습니다. 집에 있는 동생이 생각나서 같이 나눠먹으려고
시커먼 내 광목 윗도리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유리 구슬치기한다고 무거운 구슬을 담고 다녀서 언제고 불룩하니 벌어져 있었던
주머니는 떡 몇 조각을 냉큼 받아 저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장 앞으로 다가가서 내 신발을 찾았습니다
예배당은 나무 마루판으로 바닥이 되어 있음으로 사람들은 모두 신발을 벗고
신발은 입구 신발장에 올려놓고 맨발로 들어갔었지요

그런데, 그런데.....
어쩔꺼나 ? 어쩔꺼나 ? 내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모두 가버리고, 처음에는 같이 걱정해주며 자기 신발을 벗어줄 것
같이하며 나를 달래주던 사람도 모두 가버렸습니다
나 하나 달랑 남았을 때도 내 신발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소유의 신발을 잃어버린 나는 내 또 다른 소유물인 떡 몇 조각도 잃을까 봐
한 손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떡을 꼭 움켜쥔 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내려 쌓여 복상 씨 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신작로 길을
걸어 맨발로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걱정이 되어 먼저 가다가 도중에 나를 기다리던 동네형을 만나 등에 업히고
나머지 길을 오면서도 나는 내내 울었습니다

없어진 내 신발 때문에 억울하고 분해서,
그리고 그 당시 신발 한 컬레의 값어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어린 나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무서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성탄절의 첫 경험,
어찌나 큰 충격인지 저는 지금도 그 때를 너무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때 이 후로 저는 아직 예배당, 교회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해 마다 성탄절이면 생각이 나는, 내 주머니 속의 가래 떡,
그리고 잃어버려서 눈 구덩이를 맨 발로 걸어 와야만 했던 내 신발.
너무나도 궁핍해서 떡 하나 공짜라면 만리라도 달려갔던 아득한 그 시절,

지금은 그저 너무나도 소중하기만 한 저의 유년기 성탄절의 추억입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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