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서울울트라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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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학중 작성일03-11-01 00:11 조회4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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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서울 울트라마라톤 참가기
□ 달리기의 시작
2001년 6월 21일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 달리기였습니다.
언제나 내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오면서 운동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가 [나의 건강은 내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 생각을 바꾸고 부터였죠.
내 가족을 위해서 친척, 친지, 친구, 직장동료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무원으로서 내가 건강치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민원인 인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처음에는 체육관에서 런닝머신 위주로, 그리고 일요일이면 시화방조제에서 달렸고, 첫 번째 목표는 3개월 내 방조제를 2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 해 9월 23일 추분 날 토요일 오후 첫 번째 목표를 1시간 59분으로 간신히 달성하였습니다.
다음목표는 2001년11월4일 실시한 시흥시 하프마라톤대회에서 100분(1시간40분)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는데 이때는 104분에 완주하였으므로 목표에 4분을 초과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3월 안산하프마라톤에서 98분에 완주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28일에는 인천영종마라톤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하였고 목표는 3시간30분 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습니다. 결과는 3시간 29분 57초..........................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다보니 운동에 게을러 질 수 없고 또한 지속해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금년에는 3월16일 동아마라톤을 비롯해서 풀코스마라톤 6회, 하프코스 마라톤 2회를 완주 할 수 있었습니다.
□ 얼떨결에 신청한 울트라
지난 6월1일 동아시아마라톤에서 무지무지 고생을 하고는 마라톤은 해도해도 힘이 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던 어느 날 서울 울트라마라톤계획이 발표되고 시흥시청마라톤클럽 신형구 총무가 접수했다는 말을 전해주더군요 그때만 해도 「내가 어떻게」라고 치부하고는 체육관엘 갔는데 i,mrunning팀에서 여러 사람이 접수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함께 뛰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시흥시마라톤클럽 김종성 훈련부장과 상의를 했고, 풀코스 4시간대 완주자라면 누구나 울트라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혹 하고는 덜컥 접수하고 말았습니다.
□ 설레이는 마음으로
결국 시간을 흘러 2003년10월26일은 다가왔습니다. 새벽 5시 출발이니 잠도 설치고서 2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짐을 챙기고 찰밥을 한 그릇 꿀꺽 하고는 3시에 같은 동호회원2명[김종성, 이석희] 과 함께 햇살지기님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대회장[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옆 문화예술공원 녹지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둠 컴컴한 공원 안으로 가방을 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가고 있었고 그 대열 속에 끼여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대회장에 도착시간은 4시10분전, 이미100여명 남짓한 달림이 들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커피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쾌청하여 도심의 숲 속에서도 하늘에 별이 총촘함을 느끼면서 출발준비를 했다. 흰 모자를 쓰고 긴팔 상의를 입고 748번 번호표를 앞뒤로 붙인 시흥시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덧입고 반바지를 갈아입고는 스피드칩을 운동화에 달아매고 장갑을 끼니 출발 준비가 끝났다.
□ 포성이 울리다
새벽 5시10초 전 열, 아홉, 여덜 . . . . 셋, 둘, 하나!
참가자 모두가 하나된 카운트다운, 그리고 포성과 함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드디여 출발이다.
600여명의 달림이 들이 울트라맨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그 대열 속에 함께 있는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이 세상에는 걷고싶어도 걸을 수 없는 이 그 얼마나 될까?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이는 또한 그 얼마나 될까? 그런데 지금 나는 울트라맨들의 대열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어둠 속에서 누가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들 안정된 폼으로 서두룸없이 서서히 양재천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만에 코스를 탄천으로 옮기면서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하니 주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은 맑고 동녘은 빛난다. 하천은 잘 정비 되여 있었고 넓이 3m정도 되는 자전거도로 양편으로는 갈대가 우거져 한껏 꽃술을 드리우고, 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혀있음이 늦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시원하고 상큼한 새벽공기가 이토록 향기로울수가!
□ 춘마 의 후회
이번 울트라의 나의 목표시간은 10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지금 달린 거리는 약 15km, 스피드는 11km/h, 컨디션도 좋다. 몸도 가볍다. 이대로라면 목표는 무난하리라 아니 차라리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다. 한강 둔치로 나선다. 어느새 맑은 하늘과 높은 빌딩사이로 햇살이 퍼졌다. 둔치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인라인을 제치는 사람, 부부가 함께 걷는 사람, 노인분, 어린아이 손잡고 산책하는 가족 등등
햇살에 반짝이는 한강은 마치 어부들이 고기떼를 끌어올릴 때 팔딱팔딱 뛰는 고기 비닐과도 같이 빛난다.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20km지점을 통과하고있는데 문제가 일기 시작한다. 허벅지 근육이 뻐근히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문제가 생기면 안되는데, 아직도 남은 거리가 80km나 되는데,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렇다 바로 전주 10월19일 춘천마라톤을 다녀오지 않았는가? 그때 울틀라를 생각해서 서서히 연습삼아 달렸어야 했는데.......................
금년 춘천마라톤은 정말 장관 이였다. 무려 21,000여명의 달림이 들이 참석한 국내 최대의 대회였으며, 마라토너들이 종합운동장을 나가는데 만도 35분이나 소요되고, 주로 에는 10km가 넘는 달림이 들의 물결로 화단을 이루고, 가로변에 심겨진 국화꽃향기에 취하고, 의암호의 정취에 빠지고, 아름다운 단풍에 도취되고, 마을 어르신들의 응원과 부녀회원들의 자원봉사, 그리고 군인아저씨들의 격려, 연도 시민들의 환호,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힘껏 달리도록 부추겼고 거기다가 달림이 들의 파도타기 함성까지..............
결국 연습달리기가 아닌 최선을 다한 마라톤이 되였고 3시간12분이라는 기록경신으로 이여졌다.
지금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근육은 마라톤이후 최소 2주간의 휴식을 거쳐야 하건만 불과 1주만에 또다시 울트라에 도전하고 있으니 아무리 운동으로 달련 한 다린들 당해낼 수가 있으랴! [너는 울트라를 무시해도 분수 없이 무시했으니 앞으로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느니] 마음으로부터 두려움이 밀려온다
□ 어릴 적 회상
제1관문인 53km까지는 함께 달리자 하고 지금까지 함께 한 종성씨를 먼저 보내고 속도를 늦췄다.
아! 이대로 서서히 근육이 풀려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주로 에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여 맨소래담 을 바르고 또 한참을 뛰다가 파스를 바르고 그러면서 근육의 신호를 주시했다.
주로 에는 2.5km마다 물과 이온음료를, 매5km마다 과일, 음료, 쵸코파이, 황도, 주먹김밥 등을 준비하고 달림이 들이 얼마든지 먹고, 마시고, 즐기며 달릴 수 있도록 마련하고 있었다.
새벽밥을 든든히 먹은 탓인지 주로 에 마련된 음식에는 관심도 없이 물과 음료만 조금씩 마시면서 40km를 지나고 있었다. 근육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달렸던 거리는 시화방조제를 2왕복한 44km가 최장 거리였다. 이제부터는 단 한 발짝을 더 내딛어도 나의 달리기 생활에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달려 보리라 다짐하고 속도를 한 단계 더 늦추며 어릴 적 회상에 젖어본다.
내가 태여난곳은 산으로 둘러쌓인 50호되는 조그만 시골마을로 동내 한가운데에 시내가 흐르고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징검다리는 넘치므로, 건너 마을과 내왕이 끊기기 일수다. 장마한번지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돌다리를 다시 놓았으며, 겨울이면 돌다리에 튀는 물방울이 얼어 흙을 뿌리고 다녔다. 여름이면 강대바위 아래 웅덩이에서 빨가벗고 멱을 감고 돌싸움(한번 깨트렸다 다시 붙여서 서로 부딪치기)즐기며, 겨울이면 징검다리 사이로 썰매타기에 재미 들리면 양말이 젖는 줄도 몰랐다. 한번은 마을 한가운데 있던 물레방아 속에 혼자 들어가 물방아 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일곱, 여덜살 정도 되었을 때 인 것 같은데 앞으로 걸어가면 둥그런 큰 물레바퀴가 서서히 돌아간다. 빨리 걸으면 더욱 빠르게..... 그러다 조금 뛰였는데 이런! 멈출 수가 없다. 바퀴 도는 속도가 빨라 그대로 있으면 거꾸로 구룰 것 같고, 뛰자니 바퀴는 점점 더 빨리 돌고 난감하기는 커녕 이대로 가다가는 한없이 뛰여야만 할 것 같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도는 방아를 잡아 주셨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때 아주머니가 아니였더라면 지금도 물레방아 속에 갇혀서 뛰고 있지는 안을까? 혼자서 살며시 미소지여 본다.
집에서 국민학교까지는 먼5리 약 3km 쯤 된다. 그때만 해도 아무도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보자기에 책과 공책, 필통과 도시락을 함께 쌓서 남학생은 어깨에 메고, 여학생은 허리에 차고 다녔다. 등교 때는 거의 뛰여 다녔으니 달그락 달그락 양철필통속에 연필들이 괴롭다고 야단이다. 그러니 공부시간에 필통을 열면 연필심이 부러져있기 다반수고 도시락에서 김치 국물이 흐를라 치면 책과 공책이 젖어있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이면 우와기 속에다 책보를 멘 후 마구 달린다. 그렇다고 비를 덜 맞는 것도 아니건만,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책보를 풀고 책과 공책을 널어 말려야만 했다.
토끼 사냥도 재미있다. 중, 고교시절 겨울방학이면 하루종일 산을 헤메이고 10여 군데 토끼길을 찾아 올무를 놓고, 몇 번을 반복하여 30여 군데 만들어지면 새벽마다 산을 올라 올무를 둘러본다. 그러다 산토끼 한 마리 올켰다 하면 기분 최고다. 산꼭대기에서 집에까지 한걸음에 내달린다. 한번을 하루에 산토끼 두 마리를 잡은적이 있는데 양쪽어깨에 걸머메고는 나머지 올무는 보지도 않은 채 산을 뛰여 내려온 적도 있었다. 고기 구경하기 어렵던 시절 산토끼 끓인 국은 정말 구수한 것이 일품 이였다.
□ 첫 번째 관문 통과
고통을 잊고자 어릴 적 회상에 잠겨서 달리다보니 저만치 육삼빌딩이 보인다.
저곳에 제1관문(53km지점)이 있다. 어느새 햇살이 퍼져 땀이 나기 시작한다. 긴 팔 티셔츠를 벗어야지 어서 가자 이제 절반은 왔다. 시작이 반이고 반을 왔으면 다 온 게 아닌가!
여의도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보따리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그리고는 비닐에 싼 꿀 한줌을 빨아먹고 다리 마싸지부터 한 후 춘마반팔티셔츠에 마라톤 팬티에 양말도 갈아 신고 신발끈도 다시 매고 실장갑은 벗고 오른짝만 면장갑 을 끼고 그리고 일어서려니 근육통에 일어서기가 힘들다. 앉아 일어서 를 몇 번하고 스트리칭을하고 나니 걷기는 걷는데 걸음이 영 어색하다. 뒤뚱거리는 것도 아니고 찔뚝거리는 것도 아닌 반 오리걸음으로 화장실을 들렀다. 아! 시원하다.
자! 다시 시작하자 또다시 주로 에 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달림이 들도 드문드문 하다 각자의 속도에 따라 상당한 거리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 이였다.
□ 울트라의 종류
달리다 보니 등에 양산마라톤크럽 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수염은 덥수룩한 달림이 가 보인다. 그래 이야기라도 하면서 가자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울트라 경력은 얼마나 됩니까?
그가 바로 지난 추석에 한반도 횡단(강화도∼강릉)311km를 달린 울트라맨 이였다.
100km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셨습니까?
그는 살며시 웃으며 100km를 뛴 사람은 200km, 그리고 311km도 뛸 수 있고 또 뛰고싶어 할겁니다.
꼬시지 마세요 이렇게 힘든데 ........
포기만 하지 안으시면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는 울트라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해 주웠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울트라의 종류로는 서울울트라(63.3km, 100km), 제주울트라(100km, 200km), 빛고을광주울트라(100km), 포항호미곶월광소나타울트라(100km), 청주대청호일주울트라(100km), 동아시아울트라(100km), 한반도횡단울트라(강화∼강릉간 311km), 대한민국종단울트라(태종대∼임진각간 550km), 대한민국종단울트라(땅 끝∼고성간 643km) 등 만키도 했다.
가양대교를 지난다. 60km를 뛰였다. 이제는 제법 반환점을 돌아오는 달림이 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반환점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아닌가? 저만치 종성씨 가 오고 있다. 힘! 을 외치며 서로 격려를 하며 지나친다. 그가 부럽다. 가양동 65km지점 반환점을 돌아오니 전복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됬다 죽 한 그릇 먹으면서 좀 쉬여 가야지, 주변에는 이미 여러 달림이 들이 누워서 혹은 다리를 벽에 올리고 또는 주무르며 쉬고들 있었다.
달리다 지친 상태에서 먹는 전복 죽 한 공기 맛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한 그릇 더 먹고 싶건만 배가 부르면 뛸 수가 없으니 안타깝지만 하는 수없이 참을 수밖에.....
□ 울트라맨이 되려면 고통을 즐겨야
잠시 휴식 후에 자! 또 시작하자 가지 않으면 거리는 줄어들리 없으니.........
그런데 일어서 지지가 않는다. 아니 벽을 짚고 간신히 일어서 본다. 발이 안 떨어진다. 근육이 완전히 지쳐있다는 증거다. 벽을 짚고 억지로 앉아 일어서 를 반복해본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걸음이 걸린다. 전복죽도 먹었으니 잠시만 걷자 그러면 좀 낳아 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5분을 걸었다. 이제는 뛰여야지 하며 뛰여 본다. 팔과 어깨에 힘만 들어가고 발은 걷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기를 2∼3분, 발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이 상태로 제2관문(83km지점)까지는 가야지
내가 좋아서 신청한 울트라다. 그리고 스스로가 택한 길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울트라맨이 되기가 쉬운 일이라면 모두가 울트라맨이 되었을 것이다. 울트라!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을 예상하고 신청했으며,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택했으면 차라리 고통을 즐기자!
빙그래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 졌다.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행복하지 않은가! 길옆에 자원봉사자들의 격려가 이여 진다. 지나가던 여학생 둘이서 "고생하십니다. 회이팅!" 응원이 이여 진다. "학생들 우리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아요?" "울트라를 한다면서요 그것도 100km나" "그래요 100km를 달리면서 지금 80km지점을 달리고있으니 힘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예요"
고개를 끄떡였다. 안 되였다 는 표정 같기도 하고, 참 대단들 하다는 표정 같기도 하다.
시간은 오후 2시에 육박하고 있었다. 늦가을임에도 작열하는 태양으로 인하여 땀이 난다. 간간이 오른손에 낀 면 장갑으로 이마를 흠쳐 본다. 고통을 즐기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여의도를 지나고 63빌딩 앞을 지나고 동작대교를 지나니 제2관문(83km지점)이다. 바닥에 관문통과 한계시간이 16시10분으로 인쇄하여 코팅해 붙여놓은 게 보인다. 제한시간보다는 2시간이상을 먼저 통과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아직 내 뒤에 오고있는 달림이 들이 앞에 간 달림이 들보다 많으니 그나마 여유가 있는 게 아닌가!
□ 군 생활 때의 100km행군
이제 남은 거리는 17km, 이제는 기여서라도 갈 수 있다 라고 외치며 자신감을 갖고 찔뚝거리며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 입대하고 군생활 중 추억이 없는 이 그 누구 있겠는가?
79년도 한여름 대대ATT훈련을 하고있을 때였다. 1주일간 야외훈련을 마치고 귀대할 때면 100km행군을 한다. 밤 0시에 출발하여 24시간 완전군장 행군이다. 낮12시, 50km정도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식사중단하고 행군 준비하라는 중대장님의 다급한 명령이다. 영문을 모른 체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내용인즉 사단장님께서 오후 5시에 대대정문 앞에 사단군악대를 보낸다는 것 이였고 이유 없이 시간 내에 대대에 도착하라는 명령이다. 1주간 훈련에 50km완전군장 행군에 발에 물집은 배기고 (물집에는 실꿘 바늘로 이리저리 꿔뚤어 실을 꿔여 놓았다 그러면 물집이 갈아 안고 행군하기가 훨씬 편하다. 그때 그 방법을 지금 달리기에도 사용하고 있다) 더위에 지치고 그런 상태인데도 명령이니 나머지 50km는 완전군장 구보다. 20대 창창한 나이인지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총중대 뒤를 따라 본부중대원으로는 취사병,정보병,인사병,탄약병,수색병,운전병,무전병등등을 제하다 보니 작전병 이였던 나 혼자 단독으로 중대 기를 메고 구보를 한다. 한참을 뛰다보니 긴 군복바지에 양 허벅지가 쓸려 쓰다렵다. 길가 가게에 들러 파스를 사서 붙이니 시원하다. 조금 더 뛰다 보니 붙였던 파스가 땀에 떨어져 바지가랑이사이로 흘러내린다. 할 수 없다. 그냥 가야지 30여km는 잘 뛰고 그 다음부터는 걷다 뛰다 를 반복하여 대대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7나 다 되였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산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그런데 대대문앞 을 저만치 남기고 모두가 길 양옆에 퍼져 있는 게 아닌가! 5시에 도착하겠다던 사단장과 사단 밴드가 도착이 안 도였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장군은 명령을 내릴 때 일일이 그 사항을 병사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마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던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나도 지친 몸으로 길옆에 벌렁 누워버렸다. 한여름이라 아직 강렬한 태양 빛이 남아있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길가에 늘어진 장병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의 패잔병과도 같았다.
결국 1시간이 넘도록 퍼진 상태로 기다리다가 대대로의 귀대명령이 내려졌다. 사단장은 결국 오지 안았지만 내생에 울트라이전에 가장 많이 달렸던 기록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 참 대단한 여인
고통을 즐기려, 아니 잊으려고 과거 고통스러웠던 군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한번 지친 근육은 회복을 커녕 점점 더 아파 오고 움직이기 힘들고 차라리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몸에 일부분인 근육이 내생각대로 되지 안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이제는 걷다 뛰다 를 반복한다. 너무 괴롭다 싶어 앉아서 쉬고 싶지만 한번 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걸으면 다시 뛰기 위하여 4∼5분을 찔뚝거려야 했다. 그러고도 뛰는건지 걷는건지 모를 정도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체격이 조그마한 여인이 추월해 가고 있다.
무슨소리 내가 그래도 남잔데 너는 따라가야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달려야만 했다. 핑계가 생겼다. 근육아! 예쁜 여인이 앞에 가니 제발 얼마만큼만 이라도 따라가 다오 부탁을 한다. 간신히 여인 옆으로 따라 잡았고 다리의 아픔을 잊으려 말을 붙였다.
그녀는 배번 123번의 정영숙 이였고 나이는 20대 후반정도로 보였다.
울트라 경험이 있나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다만 여름에 12시간주 에 참가했었어요
그때 뛴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99km를 뛰였어요, 참 대단하군요, 나도 울트라는 처음인데 지난주 춘천마라톤에 온힘을 다해 뛰고는 회복이 덜되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마라톤은 얼마나 했어요? 얼마 안 됬어요 이제 1년 반,
그러면 선수생활을 하셨나요? 아니요,
그러면 집안에 누군가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나요?
그냥 어머니가 활달하기는 하셨죠, 그렇다면 어머니 체질을 닮으셨나보군요? 예 그런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울트라를 뛰게 됬어요?
저는 제일은행 부산지점에 근무하는데요 은행장님이 마라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계세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지난해 춘천마라톤에서 여자부 3위를 했거든요, 다음주 중앙마라톤을 제일은행에서 후원하는데 거기에 신청을 해놓고는 저에 대한 회사의 기대 때문에 지금 고민이에요,
그렇다면 그 고민 내가 답을 드리죠, 나는 지난번 춘마때 힘껏 달리고서는 1주 후 지금 울트라를 뛰면서 후회가 막급 이예요, 근육은 최소한 2주는 숴 주워야 하는 거죠 잘못하면 부상을 입어요,
울트라를 뛰였으니 다음주 마라톤은 절대로 출전하면 안 되요
사무실에 가면 대단하겠군요 춘천마라톤 3위 입상에 울트라맨에 남자직원들이 우러러 보겠는데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녀는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완주목표 시간은요? 11시간 안에 완주해야 할텐데요, 지금이 몇시인가요?
그래요 나와함께 가면 11시간 내 완주는 힘들어요, 먼저가세요, 나는 더 이상 빨리 못 가겠어요.
그럴께요 그럼 수고하세요. 네! 꼭 성공하세요
어느덧 서울 종합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앞 하천이 양재천이니 이제 10km정도 남았다.
□ 내 몸의 한계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50분이다.
평소 연습 때 같으면 10km를 아무리 천천히 뛰여도 50분이면 충분하건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오후4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1시간 10분에는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니 지금까지 10시간정도를 뛰여 왔건만 아직도 1시간 30분 정도는 더 뛰여야 한다. 아니 뛴다는 표현보다는 간다는 표현이 맞는다.
그녀는 멀어져 갔다. 다시 혼자서 걷다 뛰다 를 반복해 본다.
90km를 넘어섰건만 10km도 안 되는 남은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의 몸 상태를 다시 점검해 본다.
발가락은 물집이 잡힌지 오래고, 발가락 마디가 아파 온다. 왼발 가운데 부분은 약간 부은듯 통증을 느끼며, 가장 가볍게 제작된 마라톤화 를 신었건만 몇만번이나 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에 발등도 아프다. 발목도 정강이도 허벅지도 이미 오래 전에 통증이 시작 되여 지금은 차라리 아픈지 어떤지 조차 구별하기 힘들다. 오른쪽 무릎관절에 이상이 있어 보인다. 제발 부상으로 이여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며 양쪽 무릎관절이 정상적으로 구부러지지 않아 반 뻐쩡다리 느낌이다. 옆구리, 배 근육, 가슴근육까지 아픔을 느낀다. 어깨는 아무리 힘을 빼려해도 굳어져 있고 팔 부분도 상박부 하박부 근육 모두가 통증을 느낀다. 차라리 허리위로 올려 뛰는자세를 취하기조차 힘들어 팔을 내리고 뛰여보니 팔은 편안한데 비하여 다리 자세가 더욱 어색해 진다.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그래도 뛰여본다.
경사도가 2∼3도 되는 양재천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니 비탈도 아니건만 이것도 경사라고 왜이리 힘이 드는지! 뛰는 시간 반, 걷는 시간 반이다. 저만치 5∼6m되는 나지막한 언덕이 보인다. 언덕을 뛰여 오를 자신이 없어 아예 10여 미터 앞에서부터 걷는다. 자원봉사자들이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고생하셨어요, 파이팅] 하면 격려를 한다. 한사람이 달려와 손을 잡아준다. 정말 고맙다.
언덕 위에는 물과 이온음료가 준비 되여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으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목이 말랐다. 물을 한 컵 시원하게 들이킨다. 이온음료도 또 한 컵 더 들이킨다. 정말 시원하다.
물을 먹고 걸으려니 오른쪽 다리 관절이 뒤틀린다. 안되겠다. 잠시 앉아서 쉬여가자 계단을 의지해 간신히 몸을 비틀고 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제발 조금만 더 견뎌다오 다리야 나는 가야 한단다.
마음속으로 하소연을 해본다. 일어서려는데 마음 같지가 않다. 마치 반신불수라도 된 듯.......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걸음조차 걸리지 안는다. 양재천 자전거 도로에는 한낮에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일요일이니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데이트하는 연인,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 중에 가방을 멘 달림이 가 참 빨리도 달린다. 나도 연습 때는 저보다 빨리 달렸을 텐데........
다시 뒤뚱거리며 뛰여본다.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허리도 다리도 힘을 뺀다. 조금은 편해지고 약간씩 달릴 수 있다. 저만치 낮 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시흥시마라톤크럽 김영남 총무와 그의 옆지기인 정수기 님, 그리고 나의 아내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여기서 만나는 아는 얼굴들이 이토록 반가울수가.....
힘이 났다. 자세를 바로잡고 천천히 뛰여 그들 앞으로 다가간다. 만나자마자 서로 얼싸안았다. 고맙다.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왠지 눈물이 난다. 그들도 격려의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짖는다. 서로가 나눈 말은 적어도 순간의 교감은 모든 감정을 다 나누고도 남았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곳까지 왔는지! 기다려준 기들이 얼마나 초조한 시간을 보냈는지! 만감이 교차하고 모든 고통과 염려가 한순간에 확 풀어지는 순간이다. 통증도 잊었다. 아니 아무데도 아프지 않다. 이것이 응원과 격려의 힘인가 보다 이제 1km밖에 남지 않았다. 총무의 동반주에 힘입어 종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힘있게 남은 거리를 달린다.
□ 고통을 마취시키는 환희!
서울교육문화회관이 보인다. 양재천 다리를 오른다. 다리에서부터 양옆으로는 서울울트라마라톤 깃발이 정렬하여 펄럭이며 나를 반긴다. 자원봉사자들과 행사관계자들, 먼저 들어온 달림이 들과 아직도 뛰여 들어오고 있을 달림이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가족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손을 흔들어 답하며, 그리고 웃으며 그들의 가운데로 마지막 힘을 다해 미소지으며 달리고 있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감사와 고마움에 눈물일까? 아니면 11시간이 넘는 긴긴 여정의 고통을 견뎌내고 그 끝에 선 회한일까? 아니면 결국 해냈다는 자부심에 대한 기쁨일까? 아니다 만감의 교차 속에 고통을 이기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 도달한 기쁨과, 어떤 어려움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한 표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눈물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다.
300여 미터를 돌아 결승점이 보인다 그 앞에는 청사초롱을 밝히고 빨간 융단을 깔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움집 해 있고 마이크로 "748번 김학중님이 들어오고 계십니다" 라는 방송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나를 환영해 준다. 세상 태여나서 이러한 단독 환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cm나되는 넓은 결승테이프가 눈앞에 있다.
온힘을 다해 고함을 질러본다 야∼아 , 아∼아
함성으로 지나온 여정속의 고통을 다 날려 버린다.
마음이 가볍다. 한없이 기쁘다. 결국 해내고 말았다.
양 주먹을 불끈 쥐여 높이 쳐들고 결승 테이프를 몸에 감는 순간 11시간22분의 대장정이 끝났다.
몸은 괴로웠어도 마음은 하늘을 날고있다.
이것이 울트라인가 보다.
도움이가 대형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고는 타월로 몸을 감싸서 기념 촬영대로 데리고 간다.
먼저 도착한 김종성 훈련부장과 2시부터 기다려준 박인수 회장님이 반겨준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상상에 맏겨 두자
완주 패를 받아들고 가로1m, 세로50cm, 높이30cm정도의 단에 올라 월계관을 쓰고 기념촬영을 한다.
주로 에 마중 나온 사람들과 통닭을 사들고 온 이근래씨가 합세했다.
모두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그 웃음 속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제는 이석희씨가 걱정된다 반환점 에서 나보다도 1시간은 더 늦었었는데, 장단지와 무릎관절이 아프다고 했는데, 혹여나 낙오는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뛰고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제발 참고 완주해 주웠으면 하고 빌어본다.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리며 혹 회수차에 실려오지는 않았는지 알아본다.
회수차에는 명단이 없다. 그렇다면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뛰고 있을 것이다.
격려 온 회원들이 마중을 나갔다.
오후 5시40분 경 전화벨이 울린다. 이석희씨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석희도 해내고 말았구나!
시흥시마라톤그럽에서 처음으로 참가한 3사람이 모두 완주를 한 것이다.
앉아서 쉬던 나도 찔뚝거리며 마중을 나갔다.
기다란 키에 두손을 높이 처들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석희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했다.
우리들은 또다시 얼싸 않았다. 참 잘했다. 고생했지?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었다.
[참고기록]
성별순위/배번호/ 성명 /Start/ 12.5km / 29.5km / 46.4km / 53km / 64.8km / 83km / Finish /RaceTime
194 / 748 /김학중/ 5:01 / 6:18 / 7:52 / 9:26 / 10:049/ 11:36 / 14:01 / 16:23 / 11:22:18
□ 교 훈
울트라는 인생이다.
초반 레이스에 자신 있다고 페이스를 오바해 달린다며 반듯이 낙오하거나 아니면 후반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반대로 초반에 늦었다고 결승선에 늦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 참고 견디여 완주를 하면 제일먼저 들어왔던, 제일 나중에 들어왔던 모두가 똑같은 완주자 이며 울트라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다른 이들 보다 잘났다고 설친다면 처음에는 그가 잘난 줄 알겠지만 결국 그는 직장에서 사회에서 오랫동안 신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존경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느리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맡은일 을 해나간다면 결국 그는 모든 이가 인정하게되고 그가 오를 수 있는 곳까지 가게 될 것이며,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혹여 다음에 울트라맨 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나열한다면
기본적으로 마라톤을 4시간 전후해서 4 ∼ 5회 이상 완주 경험을 쌓는다.
근력운동(발가락, 발목, 다리, 허리, 팔)을 주 2회 이상 4 ∼ 5개월 이상 지속한다.
대회 2개월 전부터7∼8시간 정도의 시간주나 또는 70km정도의 lsd를 2∼3회 실시한다.
대회 1개월 전에는 다른 대회에 참석해서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다.
마라톤화 중에서 쿠션이 가장 좋은 운동화를 구입하여 1개월 이상 길을 들인다.
대회 당일 입을 체육복 역시 1개월 이상 입어서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부상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아무리 작은 부상이라도 100km를 달리면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그동안 2003 서울 울트라 참가기를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3. 10. 31
김 학 중
e-mail {lokey001@naver.com]
□ 달리기의 시작
2001년 6월 21일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 달리기였습니다.
언제나 내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오면서 운동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가 [나의 건강은 내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 생각을 바꾸고 부터였죠.
내 가족을 위해서 친척, 친지, 친구, 직장동료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무원으로서 내가 건강치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민원인 인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처음에는 체육관에서 런닝머신 위주로, 그리고 일요일이면 시화방조제에서 달렸고, 첫 번째 목표는 3개월 내 방조제를 2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 해 9월 23일 추분 날 토요일 오후 첫 번째 목표를 1시간 59분으로 간신히 달성하였습니다.
다음목표는 2001년11월4일 실시한 시흥시 하프마라톤대회에서 100분(1시간40분)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는데 이때는 104분에 완주하였으므로 목표에 4분을 초과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3월 안산하프마라톤에서 98분에 완주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28일에는 인천영종마라톤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하였고 목표는 3시간30분 안에 완주하는 것 이였습니다. 결과는 3시간 29분 57초..........................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다보니 운동에 게을러 질 수 없고 또한 지속해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금년에는 3월16일 동아마라톤을 비롯해서 풀코스마라톤 6회, 하프코스 마라톤 2회를 완주 할 수 있었습니다.
□ 얼떨결에 신청한 울트라
지난 6월1일 동아시아마라톤에서 무지무지 고생을 하고는 마라톤은 해도해도 힘이 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던 어느 날 서울 울트라마라톤계획이 발표되고 시흥시청마라톤클럽 신형구 총무가 접수했다는 말을 전해주더군요 그때만 해도 「내가 어떻게」라고 치부하고는 체육관엘 갔는데 i,mrunning팀에서 여러 사람이 접수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함께 뛰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시흥시마라톤클럽 김종성 훈련부장과 상의를 했고, 풀코스 4시간대 완주자라면 누구나 울트라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혹 하고는 덜컥 접수하고 말았습니다.
□ 설레이는 마음으로
결국 시간을 흘러 2003년10월26일은 다가왔습니다. 새벽 5시 출발이니 잠도 설치고서 2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짐을 챙기고 찰밥을 한 그릇 꿀꺽 하고는 3시에 같은 동호회원2명[김종성, 이석희] 과 함께 햇살지기님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대회장[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옆 문화예술공원 녹지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둠 컴컴한 공원 안으로 가방을 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가고 있었고 그 대열 속에 끼여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대회장에 도착시간은 4시10분전, 이미100여명 남짓한 달림이 들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커피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쾌청하여 도심의 숲 속에서도 하늘에 별이 총촘함을 느끼면서 출발준비를 했다. 흰 모자를 쓰고 긴팔 상의를 입고 748번 번호표를 앞뒤로 붙인 시흥시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덧입고 반바지를 갈아입고는 스피드칩을 운동화에 달아매고 장갑을 끼니 출발 준비가 끝났다.
□ 포성이 울리다
새벽 5시10초 전 열, 아홉, 여덜 . . . . 셋, 둘, 하나!
참가자 모두가 하나된 카운트다운, 그리고 포성과 함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드디여 출발이다.
600여명의 달림이 들이 울트라맨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그 대열 속에 함께 있는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이 세상에는 걷고싶어도 걸을 수 없는 이 그 얼마나 될까?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이는 또한 그 얼마나 될까? 그런데 지금 나는 울트라맨들의 대열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어둠 속에서 누가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들 안정된 폼으로 서두룸없이 서서히 양재천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만에 코스를 탄천으로 옮기면서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하니 주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은 맑고 동녘은 빛난다. 하천은 잘 정비 되여 있었고 넓이 3m정도 되는 자전거도로 양편으로는 갈대가 우거져 한껏 꽃술을 드리우고, 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혀있음이 늦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시원하고 상큼한 새벽공기가 이토록 향기로울수가!
□ 춘마 의 후회
이번 울트라의 나의 목표시간은 10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다.
지금 달린 거리는 약 15km, 스피드는 11km/h, 컨디션도 좋다. 몸도 가볍다. 이대로라면 목표는 무난하리라 아니 차라리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다. 한강 둔치로 나선다. 어느새 맑은 하늘과 높은 빌딩사이로 햇살이 퍼졌다. 둔치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인라인을 제치는 사람, 부부가 함께 걷는 사람, 노인분, 어린아이 손잡고 산책하는 가족 등등
햇살에 반짝이는 한강은 마치 어부들이 고기떼를 끌어올릴 때 팔딱팔딱 뛰는 고기 비닐과도 같이 빛난다.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20km지점을 통과하고있는데 문제가 일기 시작한다. 허벅지 근육이 뻐근히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문제가 생기면 안되는데, 아직도 남은 거리가 80km나 되는데,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렇다 바로 전주 10월19일 춘천마라톤을 다녀오지 않았는가? 그때 울틀라를 생각해서 서서히 연습삼아 달렸어야 했는데.......................
금년 춘천마라톤은 정말 장관 이였다. 무려 21,000여명의 달림이 들이 참석한 국내 최대의 대회였으며, 마라토너들이 종합운동장을 나가는데 만도 35분이나 소요되고, 주로 에는 10km가 넘는 달림이 들의 물결로 화단을 이루고, 가로변에 심겨진 국화꽃향기에 취하고, 의암호의 정취에 빠지고, 아름다운 단풍에 도취되고, 마을 어르신들의 응원과 부녀회원들의 자원봉사, 그리고 군인아저씨들의 격려, 연도 시민들의 환호,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힘껏 달리도록 부추겼고 거기다가 달림이 들의 파도타기 함성까지..............
결국 연습달리기가 아닌 최선을 다한 마라톤이 되였고 3시간12분이라는 기록경신으로 이여졌다.
지금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근육은 마라톤이후 최소 2주간의 휴식을 거쳐야 하건만 불과 1주만에 또다시 울트라에 도전하고 있으니 아무리 운동으로 달련 한 다린들 당해낼 수가 있으랴! [너는 울트라를 무시해도 분수 없이 무시했으니 앞으로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느니] 마음으로부터 두려움이 밀려온다
□ 어릴 적 회상
제1관문인 53km까지는 함께 달리자 하고 지금까지 함께 한 종성씨를 먼저 보내고 속도를 늦췄다.
아! 이대로 서서히 근육이 풀려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주로 에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여 맨소래담 을 바르고 또 한참을 뛰다가 파스를 바르고 그러면서 근육의 신호를 주시했다.
주로 에는 2.5km마다 물과 이온음료를, 매5km마다 과일, 음료, 쵸코파이, 황도, 주먹김밥 등을 준비하고 달림이 들이 얼마든지 먹고, 마시고, 즐기며 달릴 수 있도록 마련하고 있었다.
새벽밥을 든든히 먹은 탓인지 주로 에 마련된 음식에는 관심도 없이 물과 음료만 조금씩 마시면서 40km를 지나고 있었다. 근육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달렸던 거리는 시화방조제를 2왕복한 44km가 최장 거리였다. 이제부터는 단 한 발짝을 더 내딛어도 나의 달리기 생활에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달려 보리라 다짐하고 속도를 한 단계 더 늦추며 어릴 적 회상에 젖어본다.
내가 태여난곳은 산으로 둘러쌓인 50호되는 조그만 시골마을로 동내 한가운데에 시내가 흐르고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징검다리는 넘치므로, 건너 마을과 내왕이 끊기기 일수다. 장마한번지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돌다리를 다시 놓았으며, 겨울이면 돌다리에 튀는 물방울이 얼어 흙을 뿌리고 다녔다. 여름이면 강대바위 아래 웅덩이에서 빨가벗고 멱을 감고 돌싸움(한번 깨트렸다 다시 붙여서 서로 부딪치기)즐기며, 겨울이면 징검다리 사이로 썰매타기에 재미 들리면 양말이 젖는 줄도 몰랐다. 한번은 마을 한가운데 있던 물레방아 속에 혼자 들어가 물방아 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일곱, 여덜살 정도 되었을 때 인 것 같은데 앞으로 걸어가면 둥그런 큰 물레바퀴가 서서히 돌아간다. 빨리 걸으면 더욱 빠르게..... 그러다 조금 뛰였는데 이런! 멈출 수가 없다. 바퀴 도는 속도가 빨라 그대로 있으면 거꾸로 구룰 것 같고, 뛰자니 바퀴는 점점 더 빨리 돌고 난감하기는 커녕 이대로 가다가는 한없이 뛰여야만 할 것 같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도는 방아를 잡아 주셨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때 아주머니가 아니였더라면 지금도 물레방아 속에 갇혀서 뛰고 있지는 안을까? 혼자서 살며시 미소지여 본다.
집에서 국민학교까지는 먼5리 약 3km 쯤 된다. 그때만 해도 아무도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보자기에 책과 공책, 필통과 도시락을 함께 쌓서 남학생은 어깨에 메고, 여학생은 허리에 차고 다녔다. 등교 때는 거의 뛰여 다녔으니 달그락 달그락 양철필통속에 연필들이 괴롭다고 야단이다. 그러니 공부시간에 필통을 열면 연필심이 부러져있기 다반수고 도시락에서 김치 국물이 흐를라 치면 책과 공책이 젖어있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이면 우와기 속에다 책보를 멘 후 마구 달린다. 그렇다고 비를 덜 맞는 것도 아니건만,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책보를 풀고 책과 공책을 널어 말려야만 했다.
토끼 사냥도 재미있다. 중, 고교시절 겨울방학이면 하루종일 산을 헤메이고 10여 군데 토끼길을 찾아 올무를 놓고, 몇 번을 반복하여 30여 군데 만들어지면 새벽마다 산을 올라 올무를 둘러본다. 그러다 산토끼 한 마리 올켰다 하면 기분 최고다. 산꼭대기에서 집에까지 한걸음에 내달린다. 한번을 하루에 산토끼 두 마리를 잡은적이 있는데 양쪽어깨에 걸머메고는 나머지 올무는 보지도 않은 채 산을 뛰여 내려온 적도 있었다. 고기 구경하기 어렵던 시절 산토끼 끓인 국은 정말 구수한 것이 일품 이였다.
□ 첫 번째 관문 통과
고통을 잊고자 어릴 적 회상에 잠겨서 달리다보니 저만치 육삼빌딩이 보인다.
저곳에 제1관문(53km지점)이 있다. 어느새 햇살이 퍼져 땀이 나기 시작한다. 긴 팔 티셔츠를 벗어야지 어서 가자 이제 절반은 왔다. 시작이 반이고 반을 왔으면 다 온 게 아닌가!
여의도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보따리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그리고는 비닐에 싼 꿀 한줌을 빨아먹고 다리 마싸지부터 한 후 춘마반팔티셔츠에 마라톤 팬티에 양말도 갈아 신고 신발끈도 다시 매고 실장갑은 벗고 오른짝만 면장갑 을 끼고 그리고 일어서려니 근육통에 일어서기가 힘들다. 앉아 일어서 를 몇 번하고 스트리칭을하고 나니 걷기는 걷는데 걸음이 영 어색하다. 뒤뚱거리는 것도 아니고 찔뚝거리는 것도 아닌 반 오리걸음으로 화장실을 들렀다. 아! 시원하다.
자! 다시 시작하자 또다시 주로 에 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달림이 들도 드문드문 하다 각자의 속도에 따라 상당한 거리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 이였다.
□ 울트라의 종류
달리다 보니 등에 양산마라톤크럽 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수염은 덥수룩한 달림이 가 보인다. 그래 이야기라도 하면서 가자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울트라 경력은 얼마나 됩니까?
그가 바로 지난 추석에 한반도 횡단(강화도∼강릉)311km를 달린 울트라맨 이였다.
100km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셨습니까?
그는 살며시 웃으며 100km를 뛴 사람은 200km, 그리고 311km도 뛸 수 있고 또 뛰고싶어 할겁니다.
꼬시지 마세요 이렇게 힘든데 ........
포기만 하지 안으시면 됩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는 울트라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해 주웠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울트라의 종류로는 서울울트라(63.3km, 100km), 제주울트라(100km, 200km), 빛고을광주울트라(100km), 포항호미곶월광소나타울트라(100km), 청주대청호일주울트라(100km), 동아시아울트라(100km), 한반도횡단울트라(강화∼강릉간 311km), 대한민국종단울트라(태종대∼임진각간 550km), 대한민국종단울트라(땅 끝∼고성간 643km) 등 만키도 했다.
가양대교를 지난다. 60km를 뛰였다. 이제는 제법 반환점을 돌아오는 달림이 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반환점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아닌가? 저만치 종성씨 가 오고 있다. 힘! 을 외치며 서로 격려를 하며 지나친다. 그가 부럽다. 가양동 65km지점 반환점을 돌아오니 전복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됬다 죽 한 그릇 먹으면서 좀 쉬여 가야지, 주변에는 이미 여러 달림이 들이 누워서 혹은 다리를 벽에 올리고 또는 주무르며 쉬고들 있었다.
달리다 지친 상태에서 먹는 전복 죽 한 공기 맛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한 그릇 더 먹고 싶건만 배가 부르면 뛸 수가 없으니 안타깝지만 하는 수없이 참을 수밖에.....
□ 울트라맨이 되려면 고통을 즐겨야
잠시 휴식 후에 자! 또 시작하자 가지 않으면 거리는 줄어들리 없으니.........
그런데 일어서 지지가 않는다. 아니 벽을 짚고 간신히 일어서 본다. 발이 안 떨어진다. 근육이 완전히 지쳐있다는 증거다. 벽을 짚고 억지로 앉아 일어서 를 반복해본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걸음이 걸린다. 전복죽도 먹었으니 잠시만 걷자 그러면 좀 낳아 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5분을 걸었다. 이제는 뛰여야지 하며 뛰여 본다. 팔과 어깨에 힘만 들어가고 발은 걷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기를 2∼3분, 발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이 상태로 제2관문(83km지점)까지는 가야지
내가 좋아서 신청한 울트라다. 그리고 스스로가 택한 길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울트라맨이 되기가 쉬운 일이라면 모두가 울트라맨이 되었을 것이다. 울트라!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을 예상하고 신청했으며,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택했으면 차라리 고통을 즐기자!
빙그래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가벼워 졌다.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행복하지 않은가! 길옆에 자원봉사자들의 격려가 이여 진다. 지나가던 여학생 둘이서 "고생하십니다. 회이팅!" 응원이 이여 진다. "학생들 우리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아요?" "울트라를 한다면서요 그것도 100km나" "그래요 100km를 달리면서 지금 80km지점을 달리고있으니 힘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예요"
고개를 끄떡였다. 안 되였다 는 표정 같기도 하고, 참 대단들 하다는 표정 같기도 하다.
시간은 오후 2시에 육박하고 있었다. 늦가을임에도 작열하는 태양으로 인하여 땀이 난다. 간간이 오른손에 낀 면 장갑으로 이마를 흠쳐 본다. 고통을 즐기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여의도를 지나고 63빌딩 앞을 지나고 동작대교를 지나니 제2관문(83km지점)이다. 바닥에 관문통과 한계시간이 16시10분으로 인쇄하여 코팅해 붙여놓은 게 보인다. 제한시간보다는 2시간이상을 먼저 통과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아직 내 뒤에 오고있는 달림이 들이 앞에 간 달림이 들보다 많으니 그나마 여유가 있는 게 아닌가!
□ 군 생활 때의 100km행군
이제 남은 거리는 17km, 이제는 기여서라도 갈 수 있다 라고 외치며 자신감을 갖고 찔뚝거리며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 입대하고 군생활 중 추억이 없는 이 그 누구 있겠는가?
79년도 한여름 대대ATT훈련을 하고있을 때였다. 1주일간 야외훈련을 마치고 귀대할 때면 100km행군을 한다. 밤 0시에 출발하여 24시간 완전군장 행군이다. 낮12시, 50km정도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식사중단하고 행군 준비하라는 중대장님의 다급한 명령이다. 영문을 모른 체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내용인즉 사단장님께서 오후 5시에 대대정문 앞에 사단군악대를 보낸다는 것 이였고 이유 없이 시간 내에 대대에 도착하라는 명령이다. 1주간 훈련에 50km완전군장 행군에 발에 물집은 배기고 (물집에는 실꿘 바늘로 이리저리 꿔뚤어 실을 꿔여 놓았다 그러면 물집이 갈아 안고 행군하기가 훨씬 편하다. 그때 그 방법을 지금 달리기에도 사용하고 있다) 더위에 지치고 그런 상태인데도 명령이니 나머지 50km는 완전군장 구보다. 20대 창창한 나이인지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총중대 뒤를 따라 본부중대원으로는 취사병,정보병,인사병,탄약병,수색병,운전병,무전병등등을 제하다 보니 작전병 이였던 나 혼자 단독으로 중대 기를 메고 구보를 한다. 한참을 뛰다보니 긴 군복바지에 양 허벅지가 쓸려 쓰다렵다. 길가 가게에 들러 파스를 사서 붙이니 시원하다. 조금 더 뛰다 보니 붙였던 파스가 땀에 떨어져 바지가랑이사이로 흘러내린다. 할 수 없다. 그냥 가야지 30여km는 잘 뛰고 그 다음부터는 걷다 뛰다 를 반복하여 대대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7나 다 되였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산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그런데 대대문앞 을 저만치 남기고 모두가 길 양옆에 퍼져 있는 게 아닌가! 5시에 도착하겠다던 사단장과 사단 밴드가 도착이 안 도였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장군은 명령을 내릴 때 일일이 그 사항을 병사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마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던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나도 지친 몸으로 길옆에 벌렁 누워버렸다. 한여름이라 아직 강렬한 태양 빛이 남아있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길가에 늘어진 장병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의 패잔병과도 같았다.
결국 1시간이 넘도록 퍼진 상태로 기다리다가 대대로의 귀대명령이 내려졌다. 사단장은 결국 오지 안았지만 내생에 울트라이전에 가장 많이 달렸던 기록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 참 대단한 여인
고통을 즐기려, 아니 잊으려고 과거 고통스러웠던 군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한번 지친 근육은 회복을 커녕 점점 더 아파 오고 움직이기 힘들고 차라리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몸에 일부분인 근육이 내생각대로 되지 안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이제는 걷다 뛰다 를 반복한다. 너무 괴롭다 싶어 앉아서 쉬고 싶지만 한번 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걸으면 다시 뛰기 위하여 4∼5분을 찔뚝거려야 했다. 그러고도 뛰는건지 걷는건지 모를 정도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체격이 조그마한 여인이 추월해 가고 있다.
무슨소리 내가 그래도 남잔데 너는 따라가야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달려야만 했다. 핑계가 생겼다. 근육아! 예쁜 여인이 앞에 가니 제발 얼마만큼만 이라도 따라가 다오 부탁을 한다. 간신히 여인 옆으로 따라 잡았고 다리의 아픔을 잊으려 말을 붙였다.
그녀는 배번 123번의 정영숙 이였고 나이는 20대 후반정도로 보였다.
울트라 경험이 있나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다만 여름에 12시간주 에 참가했었어요
그때 뛴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99km를 뛰였어요, 참 대단하군요, 나도 울트라는 처음인데 지난주 춘천마라톤에 온힘을 다해 뛰고는 회복이 덜되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마라톤은 얼마나 했어요? 얼마 안 됬어요 이제 1년 반,
그러면 선수생활을 하셨나요? 아니요,
그러면 집안에 누군가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나요?
그냥 어머니가 활달하기는 하셨죠, 그렇다면 어머니 체질을 닮으셨나보군요? 예 그런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울트라를 뛰게 됬어요?
저는 제일은행 부산지점에 근무하는데요 은행장님이 마라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계세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지난해 춘천마라톤에서 여자부 3위를 했거든요, 다음주 중앙마라톤을 제일은행에서 후원하는데 거기에 신청을 해놓고는 저에 대한 회사의 기대 때문에 지금 고민이에요,
그렇다면 그 고민 내가 답을 드리죠, 나는 지난번 춘마때 힘껏 달리고서는 1주 후 지금 울트라를 뛰면서 후회가 막급 이예요, 근육은 최소한 2주는 숴 주워야 하는 거죠 잘못하면 부상을 입어요,
울트라를 뛰였으니 다음주 마라톤은 절대로 출전하면 안 되요
사무실에 가면 대단하겠군요 춘천마라톤 3위 입상에 울트라맨에 남자직원들이 우러러 보겠는데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녀는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완주목표 시간은요? 11시간 안에 완주해야 할텐데요, 지금이 몇시인가요?
그래요 나와함께 가면 11시간 내 완주는 힘들어요, 먼저가세요, 나는 더 이상 빨리 못 가겠어요.
그럴께요 그럼 수고하세요. 네! 꼭 성공하세요
어느덧 서울 종합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앞 하천이 양재천이니 이제 10km정도 남았다.
□ 내 몸의 한계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50분이다.
평소 연습 때 같으면 10km를 아무리 천천히 뛰여도 50분이면 충분하건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오후4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1시간 10분에는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니 지금까지 10시간정도를 뛰여 왔건만 아직도 1시간 30분 정도는 더 뛰여야 한다. 아니 뛴다는 표현보다는 간다는 표현이 맞는다.
그녀는 멀어져 갔다. 다시 혼자서 걷다 뛰다 를 반복해 본다.
90km를 넘어섰건만 10km도 안 되는 남은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의 몸 상태를 다시 점검해 본다.
발가락은 물집이 잡힌지 오래고, 발가락 마디가 아파 온다. 왼발 가운데 부분은 약간 부은듯 통증을 느끼며, 가장 가볍게 제작된 마라톤화 를 신었건만 몇만번이나 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안에 발등도 아프다. 발목도 정강이도 허벅지도 이미 오래 전에 통증이 시작 되여 지금은 차라리 아픈지 어떤지 조차 구별하기 힘들다. 오른쪽 무릎관절에 이상이 있어 보인다. 제발 부상으로 이여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며 양쪽 무릎관절이 정상적으로 구부러지지 않아 반 뻐쩡다리 느낌이다. 옆구리, 배 근육, 가슴근육까지 아픔을 느낀다. 어깨는 아무리 힘을 빼려해도 굳어져 있고 팔 부분도 상박부 하박부 근육 모두가 통증을 느낀다. 차라리 허리위로 올려 뛰는자세를 취하기조차 힘들어 팔을 내리고 뛰여보니 팔은 편안한데 비하여 다리 자세가 더욱 어색해 진다.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그래도 뛰여본다.
경사도가 2∼3도 되는 양재천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니 비탈도 아니건만 이것도 경사라고 왜이리 힘이 드는지! 뛰는 시간 반, 걷는 시간 반이다. 저만치 5∼6m되는 나지막한 언덕이 보인다. 언덕을 뛰여 오를 자신이 없어 아예 10여 미터 앞에서부터 걷는다. 자원봉사자들이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고생하셨어요, 파이팅] 하면 격려를 한다. 한사람이 달려와 손을 잡아준다. 정말 고맙다.
언덕 위에는 물과 이온음료가 준비 되여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으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목이 말랐다. 물을 한 컵 시원하게 들이킨다. 이온음료도 또 한 컵 더 들이킨다. 정말 시원하다.
물을 먹고 걸으려니 오른쪽 다리 관절이 뒤틀린다. 안되겠다. 잠시 앉아서 쉬여가자 계단을 의지해 간신히 몸을 비틀고 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제발 조금만 더 견뎌다오 다리야 나는 가야 한단다.
마음속으로 하소연을 해본다. 일어서려는데 마음 같지가 않다. 마치 반신불수라도 된 듯.......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걸음조차 걸리지 안는다. 양재천 자전거 도로에는 한낮에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일요일이니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데이트하는 연인,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 중에 가방을 멘 달림이 가 참 빨리도 달린다. 나도 연습 때는 저보다 빨리 달렸을 텐데........
다시 뒤뚱거리며 뛰여본다.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허리도 다리도 힘을 뺀다. 조금은 편해지고 약간씩 달릴 수 있다. 저만치 낮 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시흥시마라톤크럽 김영남 총무와 그의 옆지기인 정수기 님, 그리고 나의 아내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여기서 만나는 아는 얼굴들이 이토록 반가울수가.....
힘이 났다. 자세를 바로잡고 천천히 뛰여 그들 앞으로 다가간다. 만나자마자 서로 얼싸안았다. 고맙다.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왠지 눈물이 난다. 그들도 격려의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짖는다. 서로가 나눈 말은 적어도 순간의 교감은 모든 감정을 다 나누고도 남았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곳까지 왔는지! 기다려준 기들이 얼마나 초조한 시간을 보냈는지! 만감이 교차하고 모든 고통과 염려가 한순간에 확 풀어지는 순간이다. 통증도 잊었다. 아니 아무데도 아프지 않다. 이것이 응원과 격려의 힘인가 보다 이제 1km밖에 남지 않았다. 총무의 동반주에 힘입어 종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힘있게 남은 거리를 달린다.
□ 고통을 마취시키는 환희!
서울교육문화회관이 보인다. 양재천 다리를 오른다. 다리에서부터 양옆으로는 서울울트라마라톤 깃발이 정렬하여 펄럭이며 나를 반긴다. 자원봉사자들과 행사관계자들, 먼저 들어온 달림이 들과 아직도 뛰여 들어오고 있을 달림이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가족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손을 흔들어 답하며, 그리고 웃으며 그들의 가운데로 마지막 힘을 다해 미소지으며 달리고 있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감사와 고마움에 눈물일까? 아니면 11시간이 넘는 긴긴 여정의 고통을 견뎌내고 그 끝에 선 회한일까? 아니면 결국 해냈다는 자부심에 대한 기쁨일까? 아니다 만감의 교차 속에 고통을 이기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 도달한 기쁨과, 어떤 어려움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한 표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눈물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다.
300여 미터를 돌아 결승점이 보인다 그 앞에는 청사초롱을 밝히고 빨간 융단을 깔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움집 해 있고 마이크로 "748번 김학중님이 들어오고 계십니다" 라는 방송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나를 환영해 준다. 세상 태여나서 이러한 단독 환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cm나되는 넓은 결승테이프가 눈앞에 있다.
온힘을 다해 고함을 질러본다 야∼아 , 아∼아
함성으로 지나온 여정속의 고통을 다 날려 버린다.
마음이 가볍다. 한없이 기쁘다. 결국 해내고 말았다.
양 주먹을 불끈 쥐여 높이 쳐들고 결승 테이프를 몸에 감는 순간 11시간22분의 대장정이 끝났다.
몸은 괴로웠어도 마음은 하늘을 날고있다.
이것이 울트라인가 보다.
도움이가 대형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고는 타월로 몸을 감싸서 기념 촬영대로 데리고 간다.
먼저 도착한 김종성 훈련부장과 2시부터 기다려준 박인수 회장님이 반겨준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상상에 맏겨 두자
완주 패를 받아들고 가로1m, 세로50cm, 높이30cm정도의 단에 올라 월계관을 쓰고 기념촬영을 한다.
주로 에 마중 나온 사람들과 통닭을 사들고 온 이근래씨가 합세했다.
모두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그 웃음 속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진다.
이제는 이석희씨가 걱정된다 반환점 에서 나보다도 1시간은 더 늦었었는데, 장단지와 무릎관절이 아프다고 했는데, 혹여나 낙오는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뛰고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제발 참고 완주해 주웠으면 하고 빌어본다.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리며 혹 회수차에 실려오지는 않았는지 알아본다.
회수차에는 명단이 없다. 그렇다면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뛰고 있을 것이다.
격려 온 회원들이 마중을 나갔다.
오후 5시40분 경 전화벨이 울린다. 이석희씨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석희도 해내고 말았구나!
시흥시마라톤그럽에서 처음으로 참가한 3사람이 모두 완주를 한 것이다.
앉아서 쉬던 나도 찔뚝거리며 마중을 나갔다.
기다란 키에 두손을 높이 처들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석희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했다.
우리들은 또다시 얼싸 않았다. 참 잘했다. 고생했지?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었다.
[참고기록]
성별순위/배번호/ 성명 /Start/ 12.5km / 29.5km / 46.4km / 53km / 64.8km / 83km / Finish /RaceTime
194 / 748 /김학중/ 5:01 / 6:18 / 7:52 / 9:26 / 10:049/ 11:36 / 14:01 / 16:23 / 11:22:18
□ 교 훈
울트라는 인생이다.
초반 레이스에 자신 있다고 페이스를 오바해 달린다며 반듯이 낙오하거나 아니면 후반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반대로 초반에 늦었다고 결승선에 늦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 참고 견디여 완주를 하면 제일먼저 들어왔던, 제일 나중에 들어왔던 모두가 똑같은 완주자 이며 울트라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다른 이들 보다 잘났다고 설친다면 처음에는 그가 잘난 줄 알겠지만 결국 그는 직장에서 사회에서 오랫동안 신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존경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느리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맡은일 을 해나간다면 결국 그는 모든 이가 인정하게되고 그가 오를 수 있는 곳까지 가게 될 것이며,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혹여 다음에 울트라맨 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나열한다면
기본적으로 마라톤을 4시간 전후해서 4 ∼ 5회 이상 완주 경험을 쌓는다.
근력운동(발가락, 발목, 다리, 허리, 팔)을 주 2회 이상 4 ∼ 5개월 이상 지속한다.
대회 2개월 전부터7∼8시간 정도의 시간주나 또는 70km정도의 lsd를 2∼3회 실시한다.
대회 1개월 전에는 다른 대회에 참석해서 전력질주를 하지 않는다.
마라톤화 중에서 쿠션이 가장 좋은 운동화를 구입하여 1개월 이상 길을 들인다.
대회 당일 입을 체육복 역시 1개월 이상 입어서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부상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아무리 작은 부상이라도 100km를 달리면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그동안 2003 서울 울트라 참가기를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3. 10. 31
김 학 중
e-mail {lokey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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