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림이의 비행기 일등석 탑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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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03-04 10:15 조회9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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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림이의 비행기 일등석 탑승기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어제, 그제 서울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나와 나란히 서있던 카나다 에드민턴에서
왔다는 코쟁이는 내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어서 깜짝 놀랬습니다
말을 나눠보니 내가 언젠가 홍콩에서 서울로 귀국 하다가 기내의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내가 그때 만났던 그 사람과 친척은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일등석을
탔던 그 비행기, 타이 항공 TG628, 그 황홀했던 몇 년 전의 기억을 이 분을 통해
다시 더듬어 볼 수 있었으니, 정말 마라톤의 좋은 점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그 때의 일기를 뒤져보니 이런 내용이 있어 여기 옮겨 봅니다.
달림이 여러분, 저와 함께 비행기 일등석을 타 보시지요 !
+++
영희야, 종화야 !
타이 항공 TG628 비행기가 홍콩 공항의 교통 체증 때문에 예정보다 15 분 늦게
이륙하였으나 내 기분은 지금 최상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귀국 길, 서울로 가는 비행기 탑승 대합실을 향하다가
출국장 면세점을 지나가려 하니 내 발길을 붙잡는 게 있었다.
빨간 입술 연지를 파는 곳이었는데
당신에게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지갑을 열었다
입국 할 때 바꿨던 홍콩 돈 중 남은 돈을 다 꺼내어 두 번, 세 번을 헤어도
그 빨간 입술 연지를 사기에는 4 달라 40 쎈트가 모자랐다
그렇다고 빳빳한 미국 돈 100 불 짜리를 새로 또 깨기는 아깝고, 어떡하나 ??
아무리 자주 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귀국 길에 달랑 맨손으로 들어가면 서운할 것이고
아주 ,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골라 놓은 빨간 입술 연지를 만지작거리며
바지 주머니 속 지갑을 열고, 닫고 , 보고 또 보고...
몇 종류의 동전을 손바닥에 죄다 펴놓고 세어 보고 또 세어 보고..
나는 면세점 여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값을 깎아 보기로 했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매우 황당한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기 상관에게
다가가서 저기 저 사람이 화장품 면세점 정찰제를 파괴하려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면세점 근무 15 년이지만 나 같이 황당한 사람은 처음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코끝이 동그랗게 뭉친 그 여 상관은 사람을 알아봤다.
그냥 이번만 해 주라는 듯 턱짓을 해 주었고, 나는 4 달라 40 쎈트를 깎고
그 빨간 입술 연지를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홍콩 공항 면세점의 정찰제를 파괴한 사나이 !
일단 내 구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나는 그 여직원에게
호기를 부려봤다. 즉 나는 이곳을 자주 들락거리니 다음에 올 때 그 돈을
갚아 주겠다고... 그랬더니 그 여직원은
" 됐습니다 ! 이제 전표 정리가 됐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 라고 말했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 탑승구 15 번 서울행 을 향해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갔었는데,
이게 또 왠 행운인지 ?? 38A 날개 위 창가 보통석 자리를 끊고 간 나에게
태국 항공 지상 여직원은 상냥하고 제법 정확한 발음의 영어로,
" 손님, 혼자 여행하십니까 ? 괜챦으시면 일등석을 드릴까요 ? "
라고 말해서 나를 하마뜨면 너무 좋아 졸도까지 할 뻔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기뻐, 내 두 눈의 흰 창이 가오리 연 만큼 커져 갈 때,
그 직원은 나에게서 보통석 이코노미 탑승권을 날름 받아 그 자리에서
쭈욱 찢어 버리고 일등석 탑승권을 새로 내어 주었다 .
웨메 ?? 이거이 시방 먼 조화다냐, 잉 ?
젊잖은 체면상 표현은 못하고,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내 가슴은 콩당 콩당 뛰어대고....
최대한 침착함으로 나는 그 타이 항공 지상 요원에게 내가 가끔씩 일등석을
타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억지 태연함을 쥐어 짜 보았다
20 여 년 항공 출장 중 단 한번도 타보지 못한 일등석 여행을
매우 익숙한 듯 보이게 하려고 약간은 과장 섞인 거드름을 또 한번 더 피워 보았다.
일등석 탑승권을 손에 쥔 나는 이미 만년 이코노미, 그 옛날의 인생이 아니었다
꾀죄죄 삼등석 인생 신분에서 담박에 수직 상승을 하여 두 어께에 바람이 붕 ! 들어갔다
세상이 바뀌었다. 어깨 위 모가지가 걷잡을 수 없이 뻣뻣해졌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의 구두 발자국 때문에 더렵혀진 보통석 탑승 브릿지의 카팻을
우측으로 놔두고 나는 빨간 일등석 전용 카펫을 밟으며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오늘따라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이 정말 유감이었다
나를 알아 본 사람이 나 몰래 소문 좀 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복진이, 생김새는 그래도 비행기는 맨 날 일등석만 탄다고...
지금 이 순간을 아내가 보았으면 좋겠다. 멋진 남편 !
지금 이 모습을 아들, 종화가 보았으면 좋겠다. 멋진 아빠 !
그리도 궁색으로 찌들어 불세 ( 전기세 ) 나간다고 전구 하나도 함부로 못 켜는
쫌씨 남편, 구식 아빠가 비행기 일등석을 타다니.....
태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일등석 여 승무원이 입구에서 나의 일등석 탑승권을 확인하더니
앞장서서 친절하게, 매우 세련된 몸놀림으로 내 좌석까지 안내해 줬다. 좌석 번호 17A.
짙은 곤색 바탕에 연한 보라색 땡땡이 무늬 점박이가 박혀있는 카펫을 즈려 밟고서
내 자리, 생전에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내 돈주고는 못 앉아보는 일등석 내 자리에
나는 공연 끝난 발레리나의 무대 인사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영희야, 종화야 ! 아빠는 이 순간을 아주, 아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가방에서
샤프 연필을 꺼내어 지금 내가 앉은 이 일등석 자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일등석 자리는 내가 그 동안 탔던 보통석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우선 의자 팔걸이의 폭이, 내가 직접 재어 보니, 들고있는 샤프 연필 전체 길이에서
나와있는 꼭다리의 지우게 뚜껑을 뺀 길이만큼 넓어서 내 가는 팔의 팔걸이로는 너무
호사스럽다. 의자는 내 궁둥이 두 짝을 폭 감싸고도 남아 좌우로 호텔 베개를
하나씩 세워 놓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고,
통로도 세 사람이 한꺼번에 비켜 지나갈 정도로 넓어 뉴스 위크지나 TV에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잠든 승객에게 담요 덮어주는 장면처럼 주변 공간에 여유가 있다.
일등석 담당 여 승무원은 내가 무얼 부탁하려고 부를 때마다 , Sir ! Sir ! 를 한번도
빼먹지 않고 꼬박 꼬박 붙여주어 나는 그 재미에 소용도 없는 일에도 한번 더 불러 보았다.
이곳 일등석의 여승무원 복장도 보통석과 달라, 아주 귀티 나는 금장 띠를 어깨에 두르고
호출하면 봉사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 절절 넘치는 미소를 얼굴 가득히 하고
가까이 다가와 내 눈 높이로 자기 두 눈을 갖다 대주며 특별한 고객에게만 그렇게 하라고
교육받은 짙은 애정을 숨김없이 다 표해 준다
자리는 발을 있는대로 다 뻗어도 남아돌고, 옆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듯한 마실것들,
샴페인, 카둘라 (이것 먹어 보니 갈리아노 보다 덜 끈적거리고 향은 거의 똑같다), 적포도주,
백포도주 등등 온갖 고급스런 마실것들이 찬장에 가지런히 나의 목마름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비행기는 이륙하고 일등석 여 승무원의 식사 접대가 나의 눈길을 끄는데,
우선 무엇을 마실 건지 일일이 목록을 받아 적어간다.
그냥 있는 것 중 하나씩 앵겨 주는 보통석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내 앞 식탁에 정갈하게 세탁되어 잘 다림이질 된 식탁보를 깔아주더니,
식사 전에 음료수 주문 받아 간 그대로 갖다 주는데, 나는 처음에는 보통석 습성대로
진토닉을 주문했다가 다시 샴페인으로 바꾸어 주문했다. 일등석에서 진토닉 이라니???
샴페인도 보통석의 프라스틱이나 일회용 용기가 아니고 정통 샴페인 잔에 " Thai " 라고
고급스럽게 음각된 잔 받침에 받혀서 갖다준다.
그걸 마시니 다음은 셀러드. 보통석의 말라비틀어진 배추 꼬랑이가 아니고 양배추를
가로 , 세로 사 등분해서 배추 속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지런히 보여 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방장의 지극한 정성이 그대로 내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들을 먹는 고급
포크, 나이프가 두 벌씩이나 제공되어 나왔다. 셀러드용과 주 요리용으로, 아주 격식을
갖춘 고급 식당, 한국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처럼 말이다.
주 요리는 페퍼 소스를 얹힌 고급 부위 쇠고기 요리에다가 국수, 야채 삶은 것,
아주 잘 구운 뜨끈뜨끈한 롤 빵 두 개, 마늘 빵 한 개, 건조한 검은 빵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맘껏 골라서 드시라고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제공되고
버터는 물론 치즈에 딸기 잼, 꿀, 크랙커까지 나왔다
나는 백포도주를 곁들여 아주 맛있게 한 조각, 한 첨 , 한 부스러기까지
의식을 치르듯 정과 성을 다해 먹었으며, 먹을 때마다 씹고 나서
앞 턱 치마를 이용하여 입 양쪽 가장자리를 닦아 내곤 하며 위엄을 갖추었다
백 포도주는 불란서 1993 년도 산 Pouilly Fuisse 를 선택해서 먹었으며 후식으로는
진한 밤색 쵸콜랫에다가 카듈라 리큐어 한 잔을 시켜 마셨다.
아 근데, 이 글을 쓰다가 너무 좋아 혼자 히죽거리다가 손으로 술잔을 툭 쳐서
카듈라 반 이상을 엎질러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어이없는 이 실수,
맨 날 일등석 타는 내가 이런 실수를... 쯧쯧쯧...
먹을 만큼은 다 먹어서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허둥대는 나의 모습이라니...
달려온 여 승무원은 오히려 자기에게 또 다시 봉사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모습으로
식탁을 새로운 식탁보로 다시 깔아주고 의자 위의 술 흔적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닦고 또 닦아주었다.
일등석 여 승무원이 가고 나서 앞 바지 밑이 끈적거려 보니 카듈라 한방울이 바지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물수건으로 그걸 닦으려다가 말고 나는 놀랐다.
지금 나의 복장이 일등석 승객의 복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음을 알았다
20 년이 넘은 빛 바랜 청바지에다가 누가 보아도 짜가임이 분명한 피에르 카르뎅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시장 바닥의 하얀 양말, 주공 7 단지 새마을 야시장에서 산,
10 년은 족히 넘은 누런 반팔 티 셔츠.....
어딜보나 나는 일등석 손님 같지 않다는 나의 깨우침이 있자 나는 그 동안의 환상에서
깨어나 스멀 스멀 어깨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어색해 지기 시작하고
주위의 다른 승객들의 수근거림이 내 귀 뒤에서 들리는 듯 했다
지금까지의 그 일등석 여 승무원의 나에 대한 친절은, 오늘 보통석 손님을 일등석
손님으로 한번 테스트 해 보아 자기의 승객에 대한 친절도를 시험해 보는 대상이었을 것
이라고 느껴졌다.
아 ! 나는 나의 보통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20 여 년 넘게 정이 든 내 본연의
자리, 보통석 이코노미석으로....
비좁아서 비척거리고 , 코고는 놈 있어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것 같은
특유의 정감이 있는 곳, 이코노미 클라스로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저런 오만 잡생각을 떨쿠려고 창 밖을 보니 서쪽 하늘의 빨간 놀이 아주 매혹적이다.
해가 막 지구 저쪽 지평선 , 지구 반대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 시각
오후 6 시 50 분, 지난 주 이 시각은 아내 영희랑 검단산을 내려왔었는데...
괜시리 생각이 아내 영희와 아들에게 미치자
내 두 눈가에 이슬 같은 눈물이 소리 없이 맺히기 시작한다
허구한날 해외 출장으로 쏘다니고, 툭하면 주말을 같이 보내지 못한지가 벌써 몇 해 던가 ?
.... 어이쿠 ! 자꾸 눈물이 굵어지고 이어져 끊일 줄을 모른다. 큰일 났네,
내릴 시각이 가까워 오는데.. 빨리 감정을 수습하자. 정신을 차리자.
어서 내릴 준비를 하자.. 그래 어서 가서 공항 터미날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영희를 만나 힘껏 안아주자. 아들의 볼에 힘껏 뽀뽀를 해 주자.
까짓거, 일등석이 뭐 말라 비틀어진거냐, 마음이 편하면 제일이지.
이제 다시는 일등석을 타지 않겠다. 공짜로 줘도 사양하겠다
다시는 이곳에 타지 않겠다. 이곳은 나와 내 주위와 차이가 너무 나는 관계로
오히려 내 이웃 그들에 대한 죄스러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4 시간 여 내 시선을 빼앗았던 그 일등석 여 승무원이 착륙 점검을 위해
통로를 걸어오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또 상냥하게 말을 걸어온다.
" Sir ? Everything was okay ? "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렇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화답을 해 주고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며 비행기의 기수가 착륙을 위해 낮추어짐을 느끼며
혼자서 가만히 속으로 뇌였다. 말이 입밖에 세어 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 Yeah, every thing seems to be okay ..... "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어제, 그제 서울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나와 나란히 서있던 카나다 에드민턴에서
왔다는 코쟁이는 내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어서 깜짝 놀랬습니다
말을 나눠보니 내가 언젠가 홍콩에서 서울로 귀국 하다가 기내의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내가 그때 만났던 그 사람과 친척은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일등석을
탔던 그 비행기, 타이 항공 TG628, 그 황홀했던 몇 년 전의 기억을 이 분을 통해
다시 더듬어 볼 수 있었으니, 정말 마라톤의 좋은 점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그 때의 일기를 뒤져보니 이런 내용이 있어 여기 옮겨 봅니다.
달림이 여러분, 저와 함께 비행기 일등석을 타 보시지요 !
+++
영희야, 종화야 !
타이 항공 TG628 비행기가 홍콩 공항의 교통 체증 때문에 예정보다 15 분 늦게
이륙하였으나 내 기분은 지금 최상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귀국 길, 서울로 가는 비행기 탑승 대합실을 향하다가
출국장 면세점을 지나가려 하니 내 발길을 붙잡는 게 있었다.
빨간 입술 연지를 파는 곳이었는데
당신에게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지갑을 열었다
입국 할 때 바꿨던 홍콩 돈 중 남은 돈을 다 꺼내어 두 번, 세 번을 헤어도
그 빨간 입술 연지를 사기에는 4 달라 40 쎈트가 모자랐다
그렇다고 빳빳한 미국 돈 100 불 짜리를 새로 또 깨기는 아깝고, 어떡하나 ??
아무리 자주 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귀국 길에 달랑 맨손으로 들어가면 서운할 것이고
아주 ,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골라 놓은 빨간 입술 연지를 만지작거리며
바지 주머니 속 지갑을 열고, 닫고 , 보고 또 보고...
몇 종류의 동전을 손바닥에 죄다 펴놓고 세어 보고 또 세어 보고..
나는 면세점 여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값을 깎아 보기로 했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매우 황당한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기 상관에게
다가가서 저기 저 사람이 화장품 면세점 정찰제를 파괴하려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면세점 근무 15 년이지만 나 같이 황당한 사람은 처음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코끝이 동그랗게 뭉친 그 여 상관은 사람을 알아봤다.
그냥 이번만 해 주라는 듯 턱짓을 해 주었고, 나는 4 달라 40 쎈트를 깎고
그 빨간 입술 연지를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홍콩 공항 면세점의 정찰제를 파괴한 사나이 !
일단 내 구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나는 그 여직원에게
호기를 부려봤다. 즉 나는 이곳을 자주 들락거리니 다음에 올 때 그 돈을
갚아 주겠다고... 그랬더니 그 여직원은
" 됐습니다 ! 이제 전표 정리가 됐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 라고 말했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 탑승구 15 번 서울행 을 향해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갔었는데,
이게 또 왠 행운인지 ?? 38A 날개 위 창가 보통석 자리를 끊고 간 나에게
태국 항공 지상 여직원은 상냥하고 제법 정확한 발음의 영어로,
" 손님, 혼자 여행하십니까 ? 괜챦으시면 일등석을 드릴까요 ? "
라고 말해서 나를 하마뜨면 너무 좋아 졸도까지 할 뻔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기뻐, 내 두 눈의 흰 창이 가오리 연 만큼 커져 갈 때,
그 직원은 나에게서 보통석 이코노미 탑승권을 날름 받아 그 자리에서
쭈욱 찢어 버리고 일등석 탑승권을 새로 내어 주었다 .
웨메 ?? 이거이 시방 먼 조화다냐, 잉 ?
젊잖은 체면상 표현은 못하고,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내 가슴은 콩당 콩당 뛰어대고....
최대한 침착함으로 나는 그 타이 항공 지상 요원에게 내가 가끔씩 일등석을
타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억지 태연함을 쥐어 짜 보았다
20 여 년 항공 출장 중 단 한번도 타보지 못한 일등석 여행을
매우 익숙한 듯 보이게 하려고 약간은 과장 섞인 거드름을 또 한번 더 피워 보았다.
일등석 탑승권을 손에 쥔 나는 이미 만년 이코노미, 그 옛날의 인생이 아니었다
꾀죄죄 삼등석 인생 신분에서 담박에 수직 상승을 하여 두 어께에 바람이 붕 ! 들어갔다
세상이 바뀌었다. 어깨 위 모가지가 걷잡을 수 없이 뻣뻣해졌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의 구두 발자국 때문에 더렵혀진 보통석 탑승 브릿지의 카팻을
우측으로 놔두고 나는 빨간 일등석 전용 카펫을 밟으며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오늘따라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이 정말 유감이었다
나를 알아 본 사람이 나 몰래 소문 좀 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복진이, 생김새는 그래도 비행기는 맨 날 일등석만 탄다고...
지금 이 순간을 아내가 보았으면 좋겠다. 멋진 남편 !
지금 이 모습을 아들, 종화가 보았으면 좋겠다. 멋진 아빠 !
그리도 궁색으로 찌들어 불세 ( 전기세 ) 나간다고 전구 하나도 함부로 못 켜는
쫌씨 남편, 구식 아빠가 비행기 일등석을 타다니.....
태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일등석 여 승무원이 입구에서 나의 일등석 탑승권을 확인하더니
앞장서서 친절하게, 매우 세련된 몸놀림으로 내 좌석까지 안내해 줬다. 좌석 번호 17A.
짙은 곤색 바탕에 연한 보라색 땡땡이 무늬 점박이가 박혀있는 카펫을 즈려 밟고서
내 자리, 생전에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내 돈주고는 못 앉아보는 일등석 내 자리에
나는 공연 끝난 발레리나의 무대 인사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영희야, 종화야 ! 아빠는 이 순간을 아주, 아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가방에서
샤프 연필을 꺼내어 지금 내가 앉은 이 일등석 자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일등석 자리는 내가 그 동안 탔던 보통석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우선 의자 팔걸이의 폭이, 내가 직접 재어 보니, 들고있는 샤프 연필 전체 길이에서
나와있는 꼭다리의 지우게 뚜껑을 뺀 길이만큼 넓어서 내 가는 팔의 팔걸이로는 너무
호사스럽다. 의자는 내 궁둥이 두 짝을 폭 감싸고도 남아 좌우로 호텔 베개를
하나씩 세워 놓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고,
통로도 세 사람이 한꺼번에 비켜 지나갈 정도로 넓어 뉴스 위크지나 TV에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잠든 승객에게 담요 덮어주는 장면처럼 주변 공간에 여유가 있다.
일등석 담당 여 승무원은 내가 무얼 부탁하려고 부를 때마다 , Sir ! Sir ! 를 한번도
빼먹지 않고 꼬박 꼬박 붙여주어 나는 그 재미에 소용도 없는 일에도 한번 더 불러 보았다.
이곳 일등석의 여승무원 복장도 보통석과 달라, 아주 귀티 나는 금장 띠를 어깨에 두르고
호출하면 봉사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 절절 넘치는 미소를 얼굴 가득히 하고
가까이 다가와 내 눈 높이로 자기 두 눈을 갖다 대주며 특별한 고객에게만 그렇게 하라고
교육받은 짙은 애정을 숨김없이 다 표해 준다
자리는 발을 있는대로 다 뻗어도 남아돌고, 옆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듯한 마실것들,
샴페인, 카둘라 (이것 먹어 보니 갈리아노 보다 덜 끈적거리고 향은 거의 똑같다), 적포도주,
백포도주 등등 온갖 고급스런 마실것들이 찬장에 가지런히 나의 목마름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비행기는 이륙하고 일등석 여 승무원의 식사 접대가 나의 눈길을 끄는데,
우선 무엇을 마실 건지 일일이 목록을 받아 적어간다.
그냥 있는 것 중 하나씩 앵겨 주는 보통석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내 앞 식탁에 정갈하게 세탁되어 잘 다림이질 된 식탁보를 깔아주더니,
식사 전에 음료수 주문 받아 간 그대로 갖다 주는데, 나는 처음에는 보통석 습성대로
진토닉을 주문했다가 다시 샴페인으로 바꾸어 주문했다. 일등석에서 진토닉 이라니???
샴페인도 보통석의 프라스틱이나 일회용 용기가 아니고 정통 샴페인 잔에 " Thai " 라고
고급스럽게 음각된 잔 받침에 받혀서 갖다준다.
그걸 마시니 다음은 셀러드. 보통석의 말라비틀어진 배추 꼬랑이가 아니고 양배추를
가로 , 세로 사 등분해서 배추 속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지런히 보여 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방장의 지극한 정성이 그대로 내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들을 먹는 고급
포크, 나이프가 두 벌씩이나 제공되어 나왔다. 셀러드용과 주 요리용으로, 아주 격식을
갖춘 고급 식당, 한국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처럼 말이다.
주 요리는 페퍼 소스를 얹힌 고급 부위 쇠고기 요리에다가 국수, 야채 삶은 것,
아주 잘 구운 뜨끈뜨끈한 롤 빵 두 개, 마늘 빵 한 개, 건조한 검은 빵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맘껏 골라서 드시라고 바구니에 잔뜩 담아서 제공되고
버터는 물론 치즈에 딸기 잼, 꿀, 크랙커까지 나왔다
나는 백포도주를 곁들여 아주 맛있게 한 조각, 한 첨 , 한 부스러기까지
의식을 치르듯 정과 성을 다해 먹었으며, 먹을 때마다 씹고 나서
앞 턱 치마를 이용하여 입 양쪽 가장자리를 닦아 내곤 하며 위엄을 갖추었다
백 포도주는 불란서 1993 년도 산 Pouilly Fuisse 를 선택해서 먹었으며 후식으로는
진한 밤색 쵸콜랫에다가 카듈라 리큐어 한 잔을 시켜 마셨다.
아 근데, 이 글을 쓰다가 너무 좋아 혼자 히죽거리다가 손으로 술잔을 툭 쳐서
카듈라 반 이상을 엎질러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어이없는 이 실수,
맨 날 일등석 타는 내가 이런 실수를... 쯧쯧쯧...
먹을 만큼은 다 먹어서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허둥대는 나의 모습이라니...
달려온 여 승무원은 오히려 자기에게 또 다시 봉사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모습으로
식탁을 새로운 식탁보로 다시 깔아주고 의자 위의 술 흔적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닦고 또 닦아주었다.
일등석 여 승무원이 가고 나서 앞 바지 밑이 끈적거려 보니 카듈라 한방울이 바지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물수건으로 그걸 닦으려다가 말고 나는 놀랐다.
지금 나의 복장이 일등석 승객의 복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음을 알았다
20 년이 넘은 빛 바랜 청바지에다가 누가 보아도 짜가임이 분명한 피에르 카르뎅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시장 바닥의 하얀 양말, 주공 7 단지 새마을 야시장에서 산,
10 년은 족히 넘은 누런 반팔 티 셔츠.....
어딜보나 나는 일등석 손님 같지 않다는 나의 깨우침이 있자 나는 그 동안의 환상에서
깨어나 스멀 스멀 어깨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어색해 지기 시작하고
주위의 다른 승객들의 수근거림이 내 귀 뒤에서 들리는 듯 했다
지금까지의 그 일등석 여 승무원의 나에 대한 친절은, 오늘 보통석 손님을 일등석
손님으로 한번 테스트 해 보아 자기의 승객에 대한 친절도를 시험해 보는 대상이었을 것
이라고 느껴졌다.
아 ! 나는 나의 보통석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20 여 년 넘게 정이 든 내 본연의
자리, 보통석 이코노미석으로....
비좁아서 비척거리고 , 코고는 놈 있어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것 같은
특유의 정감이 있는 곳, 이코노미 클라스로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저런 오만 잡생각을 떨쿠려고 창 밖을 보니 서쪽 하늘의 빨간 놀이 아주 매혹적이다.
해가 막 지구 저쪽 지평선 , 지구 반대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 시각
오후 6 시 50 분, 지난 주 이 시각은 아내 영희랑 검단산을 내려왔었는데...
괜시리 생각이 아내 영희와 아들에게 미치자
내 두 눈가에 이슬 같은 눈물이 소리 없이 맺히기 시작한다
허구한날 해외 출장으로 쏘다니고, 툭하면 주말을 같이 보내지 못한지가 벌써 몇 해 던가 ?
.... 어이쿠 ! 자꾸 눈물이 굵어지고 이어져 끊일 줄을 모른다. 큰일 났네,
내릴 시각이 가까워 오는데.. 빨리 감정을 수습하자. 정신을 차리자.
어서 내릴 준비를 하자.. 그래 어서 가서 공항 터미날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영희를 만나 힘껏 안아주자. 아들의 볼에 힘껏 뽀뽀를 해 주자.
까짓거, 일등석이 뭐 말라 비틀어진거냐, 마음이 편하면 제일이지.
이제 다시는 일등석을 타지 않겠다. 공짜로 줘도 사양하겠다
다시는 이곳에 타지 않겠다. 이곳은 나와 내 주위와 차이가 너무 나는 관계로
오히려 내 이웃 그들에 대한 죄스러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4 시간 여 내 시선을 빼앗았던 그 일등석 여 승무원이 착륙 점검을 위해
통로를 걸어오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또 상냥하게 말을 걸어온다.
" Sir ? Everything was okay ? "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렇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화답을 해 주고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며 비행기의 기수가 착륙을 위해 낮추어짐을 느끼며
혼자서 가만히 속으로 뇌였다. 말이 입밖에 세어 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 Yeah, every thing seems to be okay ..... "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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