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곶을 향한 2000리 마라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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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신석 작성일02-12-11 09:20 조회6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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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포항하면 머리를 스치는 다섯가지가 있다.
첫째, 포항공과대학. 교수직은 아니지만 직업적인 영역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일년에 한 차례 정도씩 캠퍼스를 방문하고는 바쁜 일정으로 제대로 젊은 과학도들의 열정을 느껴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 공사를 하고 있지만 '무은재도서관'의 최신 정보서비스는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고, 그 품에 안긴 노벨상을 향한 우리 미래의 꿈을 어깨너머로 훔쳐볼 수는 있었다.
둘째, 포항공대를 방문했다 시내를 지나치면서 형상강 포구에 늘어선 굴뚝산업의 표징처럼 웅비를 자랑하는 외양을 바라보며 문득 전시대의 공화국의 예지를 탐복하고는 했다.
셋째, 이번에도 포항공대를 방문했다 회식을 하며 들렸던 죽도시장 횟집. 거의 저녁시간에 들린 이곳의 횟감은 바닷가 태생인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흡족했다. 무엇 보다도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들고는 하였다.
넷째, 이번에는 금년 2월에 안면도 오션캐슬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포항공대에 근무하는 친구가 참석한다기에 과메기를 화두에 올렸더니 일부러 장만해가지고 와서 밤늦은 시간에 숙소에서 어울려 처음 맛을 본 과메기가 새로운 포항의 이미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다섯째, 2년간의 휴식 끝에 다시 마라톤을 시작하여 지난 2년을 검토할 때 색다른 대회로 '호미곶마라톤대회'가 인상적이었다. 2001년이 첫 대회였으며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사진 한 장은 나를 매료하였다. 나는 2002년 한 해의 마무리를 '호미곶 마라톤여행'을 위해 비워 두고있었다.
포항은 내게 위의 다섯 명품으로 자리를 하고있는 셈이다.
대회 전날인 토요일은 첫 토요일이라 격주 토요일 휴무일이 적용되는 평일 처럼 근무하는 날이다. 이 날을 위해 월차 휴가를 비축해 두었다. 현지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 여섯벌의 경기복을 준비했다. 물론 모자도 여섯개에다 장갑은 세켤레 그리고 운동화는 두 켤레를 준비했다. 마치 한 회의 무대 공연을 위해 리허설 없이 1년을 준비하는 늙은 배우처럼.
이번에는 포항공대에 있는 친지에게 호미곶마라톤대회를 알리며 아내와 1박을 할 숙소를 부탁하였다. 그는 호미곶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며 포항공대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해 주었다. 11월 하순의 결혼기념일 여행을 미뤄두었는데 마침 제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7살박이 쉬츠 제니도 동행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출근길의 정체가 풀리는 9시에 우리 가족은 남쪽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있다. 시간에 쫒길 일정이 아니기에 정속으로 주로 주행선만을 이용하며 다른 차량의 흐름에 무관하게 우리 내외는 28년번째의 결혼기념일의 축제를 위해 호미곶의 축제가 있는 곳을 향해 4시간을 달려 내려갔다.
빨간 피라칸사스가 반기는 포항공대 캠퍼스를 가로질러 교수아파트의 숙소 경비실에 보관한 열쇠를 넘겨받아 5층 가의 집 현관을 열었다. 짐작으로 콘도미니엄을 연상했으나 교수사택 한 채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어 방이 4개나 되는 아파트였다. 겨울비가 내리는 베란다 창 넘어로 보이는 곳은 작은 공원으로 전원도시를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내가 집을 나서며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요기하고 내일 대회가 있을 호미곶을 방문하기로 했다. 포항 시내의 이정표만을 따라 나는 길을 달린다. 포항의 명품 가운데 하나인 포항제철을 지나고 포항공항을 지나자 왼쪽으로 열리는 파도를 훔쳐보는 사이 직진을 하여 구룡포 방면으로 달려야했다. 다행히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호미곶 대회장으로 가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시내에서 출발하여 약 1시간 약 30여 km를 달려 웅장한 풍력발전기가 한 대가 동해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있었다. 그 앞이 바로 '호미곶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호미곶해맞이광장'이고 동해를 향한 '상생의 두손' 오른 손과 왼 손이 비 바람 속에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우산은 벌써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차 창을 통해 겨울 바다를 한 참 내다 본 후 내일의 날씨가 진정되기를 기대하며 대회 코스를 따라 포항시내를 향해 차를 몰았다. 마치 북구 유럽의 낮 모를 지방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규모는 적지만 더러 과메기 덕장을 스친다. 비바람으로 차에서 내릴 엄두를 못낸다. 첫번째 언덕을 보며 아내가 근심스런 표정을 보낸다. 요행히 길지 않았지만 두 번째 언덕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10km쯤으로 짐작되는 대동배정상 언덕을 넘기며 아내를 달래느라 이게 제일 높은 산이고 남어지는 해안선을 잇는 코스일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언덕과 해안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승용차 계기판으로 보아 아직 반환점이 멀었다. 반환점인 임곡인터체인지까지 언덕으로 이어진다. 시내로 접어들며 바닷가 태생인 아내를 달래기 위해 횟감을 장만하러 죽도시장이라는 곳을 들려보자고 권하자 흔쾌히 응한다.
겨울해는 짧은 법이다. 다섯시를 넘기자 겨울비 속에 거리는 어둠에 묻혔고 초행길의 죽도시장은 멀기만했다. 그래도 요행히 죽도시장에 들려 아내가 횟감을 장만하는 사이 나는 내일 대회를 위해 약식을 샀다.
한뼘은 넘을 우럭 4마리와 광어 3마리에 2만원을 주고 횟감을 떠내고 남어지는 매운탕감으로 챙겨왔다. 숙소는 따듯하고 매운탕이 끓는 사이 우리 두 내외는 입가의 초장을 닦아가며 배를 채웠다. 내일 경기를 위해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어 매운탕으로 카보로딩을 채운 셈이다.
밤을 새며 창가를 때리는 겨울바람 소리와 베란다 넘어로 어둠 속에 비가 내린다. 평소의 수면은 채웠기에 4시에 일어나 경기 준비물을 챙긴다. 5시에 아내를 깨워 어제 저녁에 전화로 확인한 대잠성당에 새벽미사를 위해 숙소를 나선다. 지리도 어둡고 비도 내리며 조심스럽게 어둠 속을 더듬는데 우산을 쓴 사람이 지나기에 길을 물으니 마침 성당에 가시는 노인이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천주교대잠성당은 포항시 남구 대잠동 MBC 길 건너 대우자동차 옆 SK주유소 샛길의 일방통행에 있다. 김영호 알폰소 신부님의 강론이 잠든 의식을 일깨운다. 천주교에서 12월 8일은 대림제2주일로 인권주일을 겸한다. 인권이란 생명, 자유, 평등을 일컫는다. 세상의 누구도 인권을 보장 받아야하며 누구도 이를 해칠 수는 없다. 여중생 참사를 놓고 미국의 처사는 마땅히 지탄을 받아야한다. SOFA. 왜 대한민국은 미국으로 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는가. 미군은 해방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이래 년간 평균 770건의 한국인을 상대로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에 대한 처벌은 27건이며 그나마 본국 송환 조치 후 불명예 제대시키는 것이 고작이다. 미군은 한국에 주둔하며 한국으로 부터 년간 1조1천억원의 경비 지원을 받는다. 패전국인 일본에 조차 미군기지 사용료를 내며 한국에서는 한 푼도 내지않는다.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는 사용료를 올려내지않아 철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미국과 미군은 오만한가. 국민 모두가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패권주의에 젖어있는 미국을 위해 기도를 하자. 신부님의 강론은 게을러지기 시작한 내 의식을 흔들어 놓으셨다.
카보로딩으로 아침식사와 곁들여 약식과 바나나를 넉넉하게 들었다. 빗줄기는 굵지않았지만 내리지않느니만은 못하였다. 그래도 영상이라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며 대회장을 향한다. 행여 코스를 이용한 도로가 밀릴 것 같아 어제 이용한 구룡포 방면으로 대회장을 향한다.
대회 출발 1시간 전에 대회장에 도착한다. 비바람이 친다. 김재식, 김현우님을 만났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로 나선 문기숙님도 대전에서 오셨다. 대전마라톤클럽도 버스로 참석했으나 비바람으로 차 속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면티셔츠의 해병대와 군용차량이 포항이 해병대의 고장이라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겨울비바람 속에 젊은 해병대들의 경기복장이 애처로워 보인다. 출발 광장에는 드럼통에 톳불을 지핀다. 약 1800명의 참가자들의 호미곶마라톤대회에 대한 투지는 이까짓 악천후는 문제도 되지않는다는 의지를 다짐하며 일렁이는 동해의 파도 속의 상생의 두손을 향해 출발을 한다.
지난 11월 대회에서 저체온으로 고생을 하여 오늘은 하의는 하프 타이즈에 두꺼운 긴 타이즈 그리고 상의는 긴소매 등산내의, 긴소매 짚티, 방수 땀복, 다시 방수 땀복, 민소매 배번 셔츠, 비닐 우의를 껴 입고, 손에는 두꺼운 방한용 장갑에 비에 젖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장갑 위에 비닐을 덪 감았다. 모자는 고어텍스 방수 모자를 썼으나 비바람에 날릴 것 같아 자주 눌러 써야했다.
코스는 정확한 거리와 그리고 경관을 배려하여 기획된듯 하였다. 비바람만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자꾸 되내인다. 웃을 두텁게 입어 불편하지만 추위를 몰라 다행이었다. 5km를 지나 첫 언덕을 넘어 오히려 더워 비닐옷을 벗어버렸다. 두 번째 언덕도 견딜만했다. 대동배 정상 부근의 문제의 10K가 정상에 있는 해발 80여m도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내리막과 해안선을 따라 평지를 달릴 때는 간혹 우박과 짖눈가비가 얼굴을 때렸으나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언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15km 지점을 지나며 3시간 30분의 페이스메이커인 문기숙님을 만났다. 그 녀는 평소 경기를 5km에 20분 안쪽으로 달린다. 3시간 30분에 맞추려면 24분대로 달려야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다고 한다. 그녀는 전 구간을 같은 속도로 달린다지만 나는 본디 후반이 약하다. 약 1km 정도를 함께 달리다 그 녀를 앞으로 보내야 했다. 뒤에서 sub-3인 그 녀의 착지를 훔쳐 본다. 오른쪽 다리가 열려있다. 이어 샘머리가 그리고 인천마라톤의 국승오가 나를 젖히고 달려간다. 격려를 보낸다. 힘은 들어도 하프를 지나 반환점인 임곡인터체인지 약 22.4km를 무난히 돌아선다. 약 25km 지점까지는 견딜만 했다. 그 이후로는 오르막 언덕에서는 걷기를 반복한다. 30km 지점에서는 종이컵에 더운 생선묵(오뎅)과 국물로 추위를 잠시 녹인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군단을 몰고 앞으로 달려간다. 페이스메이커는 오르막언덕에서는 호각으로 격려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보내야했다.
35km 언덕은 걸어올라갔다. 땀 복 상의를 두 벌 겹쳐 입었으나 비는 살 속을 파고 들었고, 옷 소매를 타고 장갑은 흠뻑 젖어 손이 어는듯하여 물을 짜내야 했다. 그러나 아뿔사 벗은 장갑은 젖었기 때문에 다시 끼는데 한참을 고생을 해야 했다. 산을 걸어오르는데 목이 쉬도록 격려는 하는 여고생들 보기가 민망하다. 35km 지점을 지나 대동배 정상에서는 허기진이를 위해 인절미를 제공하고 있었다. 비바람 때문이지 아무 것도 먹기 싫어 쵸코파이, 바나나, 밀감, 인절미, 어묵국 가운데 어묵국만 마셨고, 음료도 이온음료만 한 모금씩 마시고는 했다.
내리막에서는 달려내려 간다. 띠동갑인 70세의 석병환선생께서 나를 치고 나가신다. 1999년에 풀을 시작한 석선생께서는 아마 50회를 넘는 풀 완주 기록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긴 우의를 입의셨고 허리 띠를 둘러 채비가 완벽해 보였다.
비바람과 우박 그리고 진누깨비를 맞으며 출발 4시간을 넘기자 골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걱정된다. 완주 예상 시간을 4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시간을 넘겼으니 걱정이 얼마난 클까.
애처로운 것은 4시간을 넘기며 민소매에 짧은 복장과 그리고 해병들의 면티셔츠 차림으로 추위에 떨며 달리는 모습이다. 간혹 장갑이 없어서 옷소매 속으로 손을 밀어넣고 달리는 사람도 보인다. 문득 한강시민마라톤대회에서 우천에 대비해 비옷을 제공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앞으로의 대회에 챙길 필수품이다. 초반에 벗어버린 비옷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마지막 1km 거리는 출발과는 달리 등대박물관을 끼고 호미곶해맞이광장을 향해 있다.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돈다. 상생의 두 손을 지나 골인한다. 4시간 18분 53초.
대형타월을 씌워주지만 추위에 턱이 덜덜거린다. 의자에 앉히고 속도기록측정 칩을 풀어준다. 기록 칩과 메달과 오징어 3마리를 교환하고 아내를 찾아 승용차에 갔으나 아내와 어긋난 모양이다. 아내는 번번히 골인 하는 나를 놓치고는 한다.
차에 올라 젖은 옷을 갈이 입고 더운 물을 마시자 몸이 풀린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육개장을 바로 인근의 대보중학교 교실에서 든다. 과메기와 소주도 제공된다. 무엇 보다도 복장도 갖추지않고 악천후 속에서 생전 처음 완주를 했을 해병대와 함께 자리를 하며 축하주를 권했고 근육통을 위한 조언을 한다. 해병 912기인 완주자들에게 해군 411인 아들을 소개하며 완주를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런다 친구들도 많이 만난다. 디카로 찍은 사진이 날씨 탓에 김이 서려 모두 꿈길 처럼 되어 버렸다.
대회 종료 30분이 지나 대회장을 떠난다. 대회 코스에는 나 보다 1시간은 더 넘게 고생을 하는 꼴지를 두 명 만났다. 경적으로 원기를 지원한다.
아내와 비 내리를 호미곶을 빠져나오며 승용차로도 힘든 코스를 왕복한 내 자신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다시 죽도시장에 들려 대게와 과메기를 사들고 숙소에 돌아왔다. 원기를 다소 되찾자 욕심이 난다. 맑은 날의 호미곶이 궁금한 생각이 든다. 내일 하루를 더 포항에 머물기로 작정한다. 월차를 하루 더 내기로 했다.
전국이 금년 겨울들어 최하의 기온과 강설로 고생을 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포항은 이틀간의 날씨와 달리 맑게 개였다. 사용한 침구를 정돈하고 세탁기를 돌려 세탁물을 널어놓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아내를 설득하여 경주 방문 때 자주 들리던 감포가 30km 거리니 들려가자고 권한다. 가는 길이니 다시 호미곶엘 들리기로 했다. 어제의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였다. 현장은 말끔히 치워졌다. 파도는 일렁이고 월요일이라 관광객 조차 거의 없다.
임곡인터체인지까지 다시 나와 방향을 감포로 잡는다. 내심 대회 안내 팜프렛에서 본 제1회호미곶월광소나타100은 2003년 음력 4월 15일 호미곶에서 감포까지의 100km를 안내하고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하얀 찔레꽃 핀 동해안을 따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오전 11시까지 15시간내 완주. 마치 유령처럼 나를 유혹한다.
감포의 해산물은 포항과는 비교가 되지않게 비싸고 품질도 좋지않고 음식도 평가 이하 이다. 아마 경주를 찾는 1회성 관광객을 위한 수준에 맞췄기 때문인 모양이다. 건어물을 약간 챙긴다.
대왕바위는 지는 해에 파도를 일렁이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경주 시내에 들려 경주역 앞 해장국 골목을 빠져나와 '황남빵' 맛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겨울 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귀가 길의 승용차 속에서 아내와의 대화는 아마 평상시 한 달 이상 나눈 대화 보다도 많을듯하다. 마라톤과 여행은 어쩌면 인생에서의 카타르시스인지도 모르겠다.
2박 3일. 포항에서의 5개명품을 모두 섭렵한 2002년 호미곶마라톤대회를 위한 2000리 마라톤 여행은 다시 일렁이는 파도와 솟아오르는 해를 기약하며 나를 부를 것이다. 그대여 나에게로 오라.
첫째, 포항공과대학. 교수직은 아니지만 직업적인 영역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일년에 한 차례 정도씩 캠퍼스를 방문하고는 바쁜 일정으로 제대로 젊은 과학도들의 열정을 느껴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 공사를 하고 있지만 '무은재도서관'의 최신 정보서비스는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고, 그 품에 안긴 노벨상을 향한 우리 미래의 꿈을 어깨너머로 훔쳐볼 수는 있었다.
둘째, 포항공대를 방문했다 시내를 지나치면서 형상강 포구에 늘어선 굴뚝산업의 표징처럼 웅비를 자랑하는 외양을 바라보며 문득 전시대의 공화국의 예지를 탐복하고는 했다.
셋째, 이번에도 포항공대를 방문했다 회식을 하며 들렸던 죽도시장 횟집. 거의 저녁시간에 들린 이곳의 횟감은 바닷가 태생인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흡족했다. 무엇 보다도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들고는 하였다.
넷째, 이번에는 금년 2월에 안면도 오션캐슬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포항공대에 근무하는 친구가 참석한다기에 과메기를 화두에 올렸더니 일부러 장만해가지고 와서 밤늦은 시간에 숙소에서 어울려 처음 맛을 본 과메기가 새로운 포항의 이미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다섯째, 2년간의 휴식 끝에 다시 마라톤을 시작하여 지난 2년을 검토할 때 색다른 대회로 '호미곶마라톤대회'가 인상적이었다. 2001년이 첫 대회였으며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사진 한 장은 나를 매료하였다. 나는 2002년 한 해의 마무리를 '호미곶 마라톤여행'을 위해 비워 두고있었다.
포항은 내게 위의 다섯 명품으로 자리를 하고있는 셈이다.
대회 전날인 토요일은 첫 토요일이라 격주 토요일 휴무일이 적용되는 평일 처럼 근무하는 날이다. 이 날을 위해 월차 휴가를 비축해 두었다. 현지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 여섯벌의 경기복을 준비했다. 물론 모자도 여섯개에다 장갑은 세켤레 그리고 운동화는 두 켤레를 준비했다. 마치 한 회의 무대 공연을 위해 리허설 없이 1년을 준비하는 늙은 배우처럼.
이번에는 포항공대에 있는 친지에게 호미곶마라톤대회를 알리며 아내와 1박을 할 숙소를 부탁하였다. 그는 호미곶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며 포항공대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해 주었다. 11월 하순의 결혼기념일 여행을 미뤄두었는데 마침 제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7살박이 쉬츠 제니도 동행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출근길의 정체가 풀리는 9시에 우리 가족은 남쪽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있다. 시간에 쫒길 일정이 아니기에 정속으로 주로 주행선만을 이용하며 다른 차량의 흐름에 무관하게 우리 내외는 28년번째의 결혼기념일의 축제를 위해 호미곶의 축제가 있는 곳을 향해 4시간을 달려 내려갔다.
빨간 피라칸사스가 반기는 포항공대 캠퍼스를 가로질러 교수아파트의 숙소 경비실에 보관한 열쇠를 넘겨받아 5층 가의 집 현관을 열었다. 짐작으로 콘도미니엄을 연상했으나 교수사택 한 채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어 방이 4개나 되는 아파트였다. 겨울비가 내리는 베란다 창 넘어로 보이는 곳은 작은 공원으로 전원도시를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내가 집을 나서며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요기하고 내일 대회가 있을 호미곶을 방문하기로 했다. 포항 시내의 이정표만을 따라 나는 길을 달린다. 포항의 명품 가운데 하나인 포항제철을 지나고 포항공항을 지나자 왼쪽으로 열리는 파도를 훔쳐보는 사이 직진을 하여 구룡포 방면으로 달려야했다. 다행히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호미곶 대회장으로 가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시내에서 출발하여 약 1시간 약 30여 km를 달려 웅장한 풍력발전기가 한 대가 동해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있었다. 그 앞이 바로 '호미곶마라톤대회'가 열리는 '호미곶해맞이광장'이고 동해를 향한 '상생의 두손' 오른 손과 왼 손이 비 바람 속에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우산은 벌써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차 창을 통해 겨울 바다를 한 참 내다 본 후 내일의 날씨가 진정되기를 기대하며 대회 코스를 따라 포항시내를 향해 차를 몰았다. 마치 북구 유럽의 낮 모를 지방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규모는 적지만 더러 과메기 덕장을 스친다. 비바람으로 차에서 내릴 엄두를 못낸다. 첫번째 언덕을 보며 아내가 근심스런 표정을 보낸다. 요행히 길지 않았지만 두 번째 언덕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10km쯤으로 짐작되는 대동배정상 언덕을 넘기며 아내를 달래느라 이게 제일 높은 산이고 남어지는 해안선을 잇는 코스일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언덕과 해안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승용차 계기판으로 보아 아직 반환점이 멀었다. 반환점인 임곡인터체인지까지 언덕으로 이어진다. 시내로 접어들며 바닷가 태생인 아내를 달래기 위해 횟감을 장만하러 죽도시장이라는 곳을 들려보자고 권하자 흔쾌히 응한다.
겨울해는 짧은 법이다. 다섯시를 넘기자 겨울비 속에 거리는 어둠에 묻혔고 초행길의 죽도시장은 멀기만했다. 그래도 요행히 죽도시장에 들려 아내가 횟감을 장만하는 사이 나는 내일 대회를 위해 약식을 샀다.
한뼘은 넘을 우럭 4마리와 광어 3마리에 2만원을 주고 횟감을 떠내고 남어지는 매운탕감으로 챙겨왔다. 숙소는 따듯하고 매운탕이 끓는 사이 우리 두 내외는 입가의 초장을 닦아가며 배를 채웠다. 내일 경기를 위해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어 매운탕으로 카보로딩을 채운 셈이다.
밤을 새며 창가를 때리는 겨울바람 소리와 베란다 넘어로 어둠 속에 비가 내린다. 평소의 수면은 채웠기에 4시에 일어나 경기 준비물을 챙긴다. 5시에 아내를 깨워 어제 저녁에 전화로 확인한 대잠성당에 새벽미사를 위해 숙소를 나선다. 지리도 어둡고 비도 내리며 조심스럽게 어둠 속을 더듬는데 우산을 쓴 사람이 지나기에 길을 물으니 마침 성당에 가시는 노인이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천주교대잠성당은 포항시 남구 대잠동 MBC 길 건너 대우자동차 옆 SK주유소 샛길의 일방통행에 있다. 김영호 알폰소 신부님의 강론이 잠든 의식을 일깨운다. 천주교에서 12월 8일은 대림제2주일로 인권주일을 겸한다. 인권이란 생명, 자유, 평등을 일컫는다. 세상의 누구도 인권을 보장 받아야하며 누구도 이를 해칠 수는 없다. 여중생 참사를 놓고 미국의 처사는 마땅히 지탄을 받아야한다. SOFA. 왜 대한민국은 미국으로 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는가. 미군은 해방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이래 년간 평균 770건의 한국인을 상대로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에 대한 처벌은 27건이며 그나마 본국 송환 조치 후 불명예 제대시키는 것이 고작이다. 미군은 한국에 주둔하며 한국으로 부터 년간 1조1천억원의 경비 지원을 받는다. 패전국인 일본에 조차 미군기지 사용료를 내며 한국에서는 한 푼도 내지않는다.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는 사용료를 올려내지않아 철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미국과 미군은 오만한가. 국민 모두가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패권주의에 젖어있는 미국을 위해 기도를 하자. 신부님의 강론은 게을러지기 시작한 내 의식을 흔들어 놓으셨다.
카보로딩으로 아침식사와 곁들여 약식과 바나나를 넉넉하게 들었다. 빗줄기는 굵지않았지만 내리지않느니만은 못하였다. 그래도 영상이라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며 대회장을 향한다. 행여 코스를 이용한 도로가 밀릴 것 같아 어제 이용한 구룡포 방면으로 대회장을 향한다.
대회 출발 1시간 전에 대회장에 도착한다. 비바람이 친다. 김재식, 김현우님을 만났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로 나선 문기숙님도 대전에서 오셨다. 대전마라톤클럽도 버스로 참석했으나 비바람으로 차 속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면티셔츠의 해병대와 군용차량이 포항이 해병대의 고장이라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겨울비바람 속에 젊은 해병대들의 경기복장이 애처로워 보인다. 출발 광장에는 드럼통에 톳불을 지핀다. 약 1800명의 참가자들의 호미곶마라톤대회에 대한 투지는 이까짓 악천후는 문제도 되지않는다는 의지를 다짐하며 일렁이는 동해의 파도 속의 상생의 두손을 향해 출발을 한다.
지난 11월 대회에서 저체온으로 고생을 하여 오늘은 하의는 하프 타이즈에 두꺼운 긴 타이즈 그리고 상의는 긴소매 등산내의, 긴소매 짚티, 방수 땀복, 다시 방수 땀복, 민소매 배번 셔츠, 비닐 우의를 껴 입고, 손에는 두꺼운 방한용 장갑에 비에 젖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장갑 위에 비닐을 덪 감았다. 모자는 고어텍스 방수 모자를 썼으나 비바람에 날릴 것 같아 자주 눌러 써야했다.
코스는 정확한 거리와 그리고 경관을 배려하여 기획된듯 하였다. 비바람만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자꾸 되내인다. 웃을 두텁게 입어 불편하지만 추위를 몰라 다행이었다. 5km를 지나 첫 언덕을 넘어 오히려 더워 비닐옷을 벗어버렸다. 두 번째 언덕도 견딜만했다. 대동배 정상 부근의 문제의 10K가 정상에 있는 해발 80여m도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내리막과 해안선을 따라 평지를 달릴 때는 간혹 우박과 짖눈가비가 얼굴을 때렸으나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언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15km 지점을 지나며 3시간 30분의 페이스메이커인 문기숙님을 만났다. 그 녀는 평소 경기를 5km에 20분 안쪽으로 달린다. 3시간 30분에 맞추려면 24분대로 달려야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않다고 한다. 그녀는 전 구간을 같은 속도로 달린다지만 나는 본디 후반이 약하다. 약 1km 정도를 함께 달리다 그 녀를 앞으로 보내야 했다. 뒤에서 sub-3인 그 녀의 착지를 훔쳐 본다. 오른쪽 다리가 열려있다. 이어 샘머리가 그리고 인천마라톤의 국승오가 나를 젖히고 달려간다. 격려를 보낸다. 힘은 들어도 하프를 지나 반환점인 임곡인터체인지 약 22.4km를 무난히 돌아선다. 약 25km 지점까지는 견딜만 했다. 그 이후로는 오르막 언덕에서는 걷기를 반복한다. 30km 지점에서는 종이컵에 더운 생선묵(오뎅)과 국물로 추위를 잠시 녹인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군단을 몰고 앞으로 달려간다. 페이스메이커는 오르막언덕에서는 호각으로 격려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보내야했다.
35km 언덕은 걸어올라갔다. 땀 복 상의를 두 벌 겹쳐 입었으나 비는 살 속을 파고 들었고, 옷 소매를 타고 장갑은 흠뻑 젖어 손이 어는듯하여 물을 짜내야 했다. 그러나 아뿔사 벗은 장갑은 젖었기 때문에 다시 끼는데 한참을 고생을 해야 했다. 산을 걸어오르는데 목이 쉬도록 격려는 하는 여고생들 보기가 민망하다. 35km 지점을 지나 대동배 정상에서는 허기진이를 위해 인절미를 제공하고 있었다. 비바람 때문이지 아무 것도 먹기 싫어 쵸코파이, 바나나, 밀감, 인절미, 어묵국 가운데 어묵국만 마셨고, 음료도 이온음료만 한 모금씩 마시고는 했다.
내리막에서는 달려내려 간다. 띠동갑인 70세의 석병환선생께서 나를 치고 나가신다. 1999년에 풀을 시작한 석선생께서는 아마 50회를 넘는 풀 완주 기록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긴 우의를 입의셨고 허리 띠를 둘러 채비가 완벽해 보였다.
비바람과 우박 그리고 진누깨비를 맞으며 출발 4시간을 넘기자 골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걱정된다. 완주 예상 시간을 4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시간을 넘겼으니 걱정이 얼마난 클까.
애처로운 것은 4시간을 넘기며 민소매에 짧은 복장과 그리고 해병들의 면티셔츠 차림으로 추위에 떨며 달리는 모습이다. 간혹 장갑이 없어서 옷소매 속으로 손을 밀어넣고 달리는 사람도 보인다. 문득 한강시민마라톤대회에서 우천에 대비해 비옷을 제공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앞으로의 대회에 챙길 필수품이다. 초반에 벗어버린 비옷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마지막 1km 거리는 출발과는 달리 등대박물관을 끼고 호미곶해맞이광장을 향해 있다.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돈다. 상생의 두 손을 지나 골인한다. 4시간 18분 53초.
대형타월을 씌워주지만 추위에 턱이 덜덜거린다. 의자에 앉히고 속도기록측정 칩을 풀어준다. 기록 칩과 메달과 오징어 3마리를 교환하고 아내를 찾아 승용차에 갔으나 아내와 어긋난 모양이다. 아내는 번번히 골인 하는 나를 놓치고는 한다.
차에 올라 젖은 옷을 갈이 입고 더운 물을 마시자 몸이 풀린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육개장을 바로 인근의 대보중학교 교실에서 든다. 과메기와 소주도 제공된다. 무엇 보다도 복장도 갖추지않고 악천후 속에서 생전 처음 완주를 했을 해병대와 함께 자리를 하며 축하주를 권했고 근육통을 위한 조언을 한다. 해병 912기인 완주자들에게 해군 411인 아들을 소개하며 완주를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런다 친구들도 많이 만난다. 디카로 찍은 사진이 날씨 탓에 김이 서려 모두 꿈길 처럼 되어 버렸다.
대회 종료 30분이 지나 대회장을 떠난다. 대회 코스에는 나 보다 1시간은 더 넘게 고생을 하는 꼴지를 두 명 만났다. 경적으로 원기를 지원한다.
아내와 비 내리를 호미곶을 빠져나오며 승용차로도 힘든 코스를 왕복한 내 자신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다시 죽도시장에 들려 대게와 과메기를 사들고 숙소에 돌아왔다. 원기를 다소 되찾자 욕심이 난다. 맑은 날의 호미곶이 궁금한 생각이 든다. 내일 하루를 더 포항에 머물기로 작정한다. 월차를 하루 더 내기로 했다.
전국이 금년 겨울들어 최하의 기온과 강설로 고생을 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포항은 이틀간의 날씨와 달리 맑게 개였다. 사용한 침구를 정돈하고 세탁기를 돌려 세탁물을 널어놓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아내를 설득하여 경주 방문 때 자주 들리던 감포가 30km 거리니 들려가자고 권한다. 가는 길이니 다시 호미곶엘 들리기로 했다. 어제의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였다. 현장은 말끔히 치워졌다. 파도는 일렁이고 월요일이라 관광객 조차 거의 없다.
임곡인터체인지까지 다시 나와 방향을 감포로 잡는다. 내심 대회 안내 팜프렛에서 본 제1회호미곶월광소나타100은 2003년 음력 4월 15일 호미곶에서 감포까지의 100km를 안내하고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하얀 찔레꽃 핀 동해안을 따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오전 11시까지 15시간내 완주. 마치 유령처럼 나를 유혹한다.
감포의 해산물은 포항과는 비교가 되지않게 비싸고 품질도 좋지않고 음식도 평가 이하 이다. 아마 경주를 찾는 1회성 관광객을 위한 수준에 맞췄기 때문인 모양이다. 건어물을 약간 챙긴다.
대왕바위는 지는 해에 파도를 일렁이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경주 시내에 들려 경주역 앞 해장국 골목을 빠져나와 '황남빵' 맛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겨울 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귀가 길의 승용차 속에서 아내와의 대화는 아마 평상시 한 달 이상 나눈 대화 보다도 많을듯하다. 마라톤과 여행은 어쩌면 인생에서의 카타르시스인지도 모르겠다.
2박 3일. 포항에서의 5개명품을 모두 섭렵한 2002년 호미곶마라톤대회를 위한 2000리 마라톤 여행은 다시 일렁이는 파도와 솟아오르는 해를 기약하며 나를 부를 것이다. 그대여 나에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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