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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대청마루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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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복희 작성일02-12-05 21:20 조회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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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넓은 대청 마루에 걸터 앉아 집 담너머 그리고 내를 하나 건너서 산을 바라보면 마치 태고적 부터 그랬던것 처럼 그다지 높지도 않았으면서도 어린 눈으로는 백두산보다 더 높아 보이던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밭뙤기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쪽빛 필터를 낀 카메라의 눈처럼 아니 처음으로 쎌로판지를 눈 가까이에 대고 턱없이 아름답게만 그려지던 세상을 마주 한것 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구름이 지나가다가 힘이들면 산중턱 마루에 터~억 걸터앉아 마을을 내려다 보고 소낙비라도 내릴라 치면 쉬~익쉬~익 누에고추에서 갖 뽑아낸 명주실 가닥 길게 늘여 뜨려 놓은것처럼 무리를 지어 쫓아 오듯이 줄지어 이어지던 빗줄기도 가끔씩 산마루에서는 쉬었다 가곤 했었다.

아침엔 봉창을 쥔 허락도 없이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어느 가락 하나 때묻지 않아서 더욱 날카롭게 눈자락을 시리게 했고 접었다 펴는 참새 날개밑 가슴털 까지도 새새하게 들여다 보이던 맑은 빛을 허락하던 산고랑을 돌고 돌아 나오던 햇살 이었다. 가끔씩 부부 정자나무에 걸리던 햇살도 마치 그리움에 지친듯 핼쓱한 빛으로 지나던 길손을 잠시 쉬어가게 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 했던 마을은 호젓하고도 스산스럽기도 했고 엄마의 품안처럼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누구나가 그럴까........
어쩌다가 늦가을 내리는 빗소리에 낙엽들이 촉촉이 젖은 오후 산옆 한모퉁일 끼고 돌면 말랐을땐 바스락 거리며 비명을 지르던 낙엽들도 버슥버슥 숨죽인 소리에 한줌 집어들어 가마솥에 넣고 살짝 볶아 적당한 화롯불에 끓이면 숭늉맛도 아닌것이 커피맛은 모를 때였으니 참으로 입안에 감도는 맛은 신비한 가을비 맛 이었으리라. 피해보지만 어쩔수 없이 발아래 밟히는 낙엽들은 누구의 슬픔인지도 모를 적요함으로 나를 엄습해 오곤 했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낙옆들을 보면 살짝 볶아서 자꾸만 커피봇트에 내리고만 싶어지는 충동을 어쩔수 없이 짓누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고 말거라는걸 누구보다 더 잘안다

난 그 대청마루에 열두폭 한산 세모시 치마에 적삼 차려입고 나빌래라는 할수 없을 지라도 다듬이돌 위에 소목으로 붉게 물들인 명주 올려 놓고 이리치고 저리치며 홍두께질 곱게하여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명주 만들기를 소원 했었다. 뒤란으로 돌아치면 믿돌에는 길상문이 새겨져있고 진흙으로 빚어 구워 모양새가 참으로 잘생긴 연가(굴뚝) 하나가 뒤란 수문장 처럼 우뚝 서서 지키고 있었다. 숨바꼭질 하다가도 그 굴뚝에 기대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외치며 이마를 마주 대하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듯 하던 그 훤칠하고 잘생긴 굴뚝하나. 비록 장대석 돈대위에 멀찍이 세워져 있지는 않았지만 사뿐히 고개처든 처마와 닫을듯 말듯 서있던 굴뚝은 왠지 무던한 우리 여인네들의 투박하면서도 잔정붙은 등허리 너머 저녁 연기에 때 마추어 들어오는 개구쟁이 콧잔등에 묻어오는 잔설 같기도 하고 석양의 시정(詩情)을 가슴속에 품게 한다. 그리고 그 옆으로 돌계단 끼고 올라 넓직한 뒷마당에서 다시 오밀조밀 얘깃 거리를 찾아 헤메던곳......

후원 이랄것도 없지만 솔바람 소리도 그곳에서 머물다가 가고 아카시아 잎들이 사그락 거리며 사랑을 속삭이고 벌들의 천국 이었던 산자락 풍광과 그대로 어우러져 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뒷 뜨락 이었다. 돌이끼에 침을 발라 돌맹이 하나로 한참을 문지르면 끈적끈적한 액채가 나온다. 그러면 새끼 손가락 하나에 올려놓고 한참을 있으면 봉숭아 물들인 것처럼 손톱에 노을이 내려 앉은다. 그 노을에서 나는 이끼냄새가 손톱 끝에서 은은한 향기로 다시 노을빛을 만들어 온몸을 감싸오곤 했었다. 때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눈길 피해서 엄마의 옷 매무새가 고쳐지던 곳도 바로 뒤란 연가 옆이 었으니.......

궁궁이 풀이나 곰취가 그리고 돼지감자가 부끄러운듯 아카시아 나무밑 바위틈에서 다소곳이 다북다북 자리잡고 거기에 발마춰 다산(多産)을 의미해서 우리 조상들이 길상문으로 즐겨찾던 석류나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작약이나 모란이 소담스럽게 그리고 함초롬이 피어나며 눈 또한 즐겁게 하던 뒤란 돌계단 위의 정광 이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지만 그래도 피고지고를 거듭하던 작약과 모란의 화려함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무색케 했고 왜 우리 어머니들이 그곳에서 부귀영화를 꿈 꾸었을까를 심히 알것도 같았다. 분별없던 나는 가시가 촘촘하던 해당화 꽃잎 따고 작약이나 모란 꽃잎 따서 엄마가 밤에 호롱불 밑에서 의걸이 만드신 다고 놓으신던 수실 훔쳐다가 알록달록한 수실과 함께 꽃잎을 책 갈피에 감추길 주져하지 않았다가 수실 찾던 엄마한테 들켜서 혼났던 적도 있었다.

엄마한텐 참으로 모셔야할 신이 많았던것 같았다. 봄 가을 때되면 지네는 방방마다, 장독대에 ,정재에 ,곡간에, 대청마루에, 변소에 ..... 고사 시루떡과 정한수 한그릇 떠놓고 중얼중얼 신들을 찾아대며 어쩌고 저쩌고를 읊으시곤 손을 싹싹 빌며 집안 평온과 시부모님 안녕과 아버지 안녕을 자식들의 건강을 빌고 또 빌고 계셔서 난 가끔 엄마가 당골래(무당)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끝날때가지 뒤에서서 지켜보곤 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당골래는 못 되셨던것 같다. 양지바른 우물가에 같이 있던 장독대는 뭘 그리도 매일 안방 반질 거리는것 보다 더 햇빛받아 눈사위를 찌르듯 반질 거리게 닦아 놓셨을까.....예전부터 그랬던것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고 매일 거울처럼 맹글거리게 닦아놓으면 주인닮은 오래된 장독 일수록 그 빛마져 여유롭고 품위와 위엄도 있는게 폼새가 참으로 의연 했던것 같다. 참으로 사람 느낌 이라는게 정이라는게 그런 생명채가 없는 물건하나에도 (아니지 살아서 숨쉬는 항아리 들이니까 그랬을까) 정을 담뿍담뿍 담아 주시던 우리네 어머니 들이었다. 또한 그장독대는 저녁에 팥죽을 쒀서 장독위에 올려놓고 다음날 새벽에 그 팥죽을 가져다가 서로 먹을려고 숱가락 디밀기도 했었고 그 팥죽은 꼭 장독위에 올려 놓아야만 그맛이 났던것 같았다.

제사를 자정이 지나야 지내고 나면 누군가 대문앞에서 양푼을 갖어다 놓고 문을 두드리며 "단자 왔어요" 하면 그 양푼에 제사 음식 가득 담아서 다시 대문 앞에 내 놓으면 누군가 가져다 먹곤 했었다. 그만큼 동내 경조사나 제사까지 이웃끼리 서로 알고 지내며 나눠 먹을려고 제사 음식을 풍족하니 하곤 햇었다. 요즘은 이 풍습이 없어졌나 아니면 내가 모르고 지내는 건가 그래도 정겨운 우리내 나눔의 풍습이 잊혀져 가는게 아쉽기만 하다. 맑은 기운이 돌고 청냉함으로 다가온 하늘빛을 보니 다시 옛 집안 뜨락에서 생각이 머물다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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