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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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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12-04 18:16 조회7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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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 , - 결심, 그리고 망설임 없는 행동 -


오늘은 온도가 많이 올라간 듯, 새벽 달리기를 나가는 바깥 기온에 한기가 없다.
한 달포 전에 이곳 한강 미사리, 팔당 달리기 길, 에스퍼란자스 길을 달리다가,
혹한기 한강 도하 훈련을 하고 있는 어둠 속 병사들이 얼굴에 방한 마스크를 하고
있는 데에서 힌트를 얻어, 나도 동대문 시장에 가서 똑같은 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를 사서
지금껏 유용하게 잘 쓰고 있는데, 오늘은 올라간 온도 때문에 굳이 방한 마스크
까지는 필요할 것 같지 않아 허리 물통 주머니 끈에 푹 찔러 넣고 달리기를 하였다.

요 며칠 전 생각해 보니 새로 구입한 이 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이상하게 달라지는 것 같다. 없던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고지 팔부 능선에 깊은 벙커를 구축 해 놓고 아래쪽에서 쳐 올라오는 적군을 감시
하는 고성능 기관총 사수처럼 , 추위야, 올테면 와라 ! 내 기꺼히 상대해 주마 !
뭐 이런 자신감이 저절로 솟는 그런 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다.

눈만 빠끔히 내놓아 얼굴 전체를 가리고, 숨쉬기만을 할 수 있도록 코와 입 주위만
세로로 칼금처럼 터진 일자 숨구멍 위장 무늬 마스크, 정말 사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금년 일년 구매 행위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품목이다.

마스크 무늬도 칠흑 어둠 속 항공 낙하, 적진 투입, 죽어도 살아서 돌아 오라 ! 는
섬뜻한 공수 부대의 위장 무늬다.
그래서, 그런 없던 용기도 저절로 나니까 은행 강도나 항공기 납치범들이 이런 종류의
마스크를 애용하나 보다. 물론 신분 노출을 막는 게 더 급하겠지만....

좌우지당간,
지난주의 그 추위에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뛰게 해준, 고마운 마스크다.
나에게도 어느 때인가는 없는 용기가 샘솟게 해줄 요술 마스크가 돼줄까 ?
물론 좋은 일에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직도 어두운 한강변을 달린다

이곳 뜀길은 정말 좋다.

아직은 걷히지 않은 어둠도 어둠 이러니와, 달리는 내내 나의 시야가 오른쪽은 한강
제방에 가려 있고, 왼쪽은 넓디넓은 한강의 강폭 때문에 강 건너 덕소, 팔당의 졸고
있는 민가의 불빛만 보일 뿐, 달리는 행동 자체에 방해가 될만한 그 어떤 사념적 방해
요소가 없어 참 좋다. 새벽 달리기 길로써는 그야말로 그만이다. 주위도 소음으로
부터 완벽하게 차단 당해, 적막, 고요 등등... 간혹 우는지, 웃는지 모를 겨울 철새들의 괴상한 짝짓기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고개를 내리고 무념 무상으로 강변에 널부러진 갈대만 보며 달릴 수도 있고,
전방에는 결코 넘지 못하리라는 위용으로 어둠 속에서도 꼿꼿하니 서 있는 예봉산,
검단산을 향해 얼굴 들어 산에 대한 우러름으로 예를 갖추며 달릴 수도 있고....


그런데 사실인 즉슨, 오늘은 나는 아까부터 줄곧 사념의 방해꾼에 시달리고 있었다.

머리 속이 비워 지질 못하고 아까부터 끈질기게 내 머리 속을 훼집는 방해꾼 !
그 동안 나는 너무 오래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지니고 있었나 보다.
나처럼 아주,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소시민의 속을 끓게 만드는 것 !
짓밟힌 자존심으로, 뭉개져 버린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으로 내 속을 무던히
끓게 만든 요즈음의 매우 중요한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무죄 사건 말이다.

이 잡것이 어이하여 오늘 새벽 나의 머리 속에 차고 들어앉아 이 선량한 달림이의
머리 속을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의 다른 그 어떤 국민도
이 문제 때문에 지금 새벽잠을 설치는 사람은 없을 듯 한데, 왜 하필 나는
이 일로 상쾌한 새벽 아침 달리기를 망치고 있을까, 한편으로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닌걸 나는 잘 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평소의 나의 행동거지로
보아 나도 무슨 행동을 보여야 할텐데...
어떤 식으로든지 분노의 표출을 해서 이 끓는 속을
다스려야 할텐데.... 그걸 하지 못해 속이 부글부글 한지 너무 오래다.

나 같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유엔본부로 가는 팀에 합류한다 ? 미 대사관 앞에서 혹한기 일인 시위를 한다 ?
분노의 글귀를 등에 적고 모든 마라톤에 참가한다 ???
한미 행협의 원본을 구해서 먼저 한번 읽어보는 게 바른 순서이겠지....

........

아침 출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밀어 넣고도 시동을 끄지못하고 잠시 더 차속에 머물렀다.
듣고 오던 음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흥겨운 리듬의 보케리니의 기타 5 중주곡이다.
제일 재미없는 요일의 중간, 수요일이지만 음악이 좋아 오늘 하루의 시작은 좋을 듯하다.

노래가 끝나자 차 시동키를 뽑아들고 차에서 내려 차 열쇠를 허공에 한번 살짝 던졌다가
재빠르게 다시 옆으로 나꿔챘다. 기분이 좋을 때 하던 버릇이다.

하루의 시작을 위해 컴퓨터를 켜는 행동대신, 나는 내 책상의 의자를 앞으로 당겨앉으며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지갑 속 신용 카드중 아침 달리기를 하며 생각한 카드 하나를 쏙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전화기의 번호를 눌렀다.
이 카드는 미국계 회사가 직접 영업하는 순수 미국계 신용 카드 회사다.

무얼 원하시면 몇 번, 무얼 원하시면 몇 번... 이런 식으로 긴 설명이 다 끝나갈 즈음,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몇 번, 하고 나오자 즉시 그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다시, 주민 등록 번호를 다시 누르라고 해서 또 그 번호를 눌렀다. 상당히
짜증 나는, 너무나 비 인간적인, 너무나 비 인간적인 친절 씨스템이었지만 꾸욱 참고
상담원의 연결을 기다렸다.
드디어 아주 잘 교육받은, 높은 봉급의 여자 상담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네, 안녕 하세요, 박 복진 님. 무얼 도와 드릴까요 ? "

말하지도 않은 내 이름을 귀신같이 불러대며 사람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자 상담원은 내 생각에, 마니러 ( 미국식 발음. 모니터 ) 에서 나의 전 신상 명세를
보면서 응답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5 년 동안의 전 거래 실적, 연체 유무, 나의 취미,
음력 생일, 양력 생일 등등... 나는 상담원 앞에 나의 전부가 까발겨 졌을 것이다.
무슨 대수인가 ? 전혀 꿇릴게 없다. 아직 아침 커피를 못한 관계로 목소리가
저절로 낮게 깔려 흘러간다

" 네, 안녕 하세요. 귀사 발행의 신용 카드 회원인데요. 이 카드를 지금 당장 말소
시키고 싶습니다. 전화로 만도 가능합니까 ? 아니면 방문 서명을 해야 합니까 ? "

"네, 박복진님 ! 아직 유효 기간도 남아 있고, 또 우수 고객 이신데 말소하시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 년 회비도 면제되어 내실 필요도
없으시고... 년 말 전에 한번만 더 사용하시면 그 동안 비축된 점수로 현금을
받으실 수도 있으시고.... 어떻게, 말소를 다시 취소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 "

그 상담원은 교육을 아주 잘 받은 것 같다. 어투에서 전혀 짜증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마니러의 화면을 바꾸어 , " 우수 고객 신용카드 말소 요청 회원의 상담
대처 요령 "을 화면에 띄어 놓고, 상황 1, 상황 2 , 등등을 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짜고짜 고객에게 , " 왜 안 쓸라고 그러는데요 ? " 라는 천박한 되물음으로 고객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잘못은 절대로 일어날리 없는 우수 상담원이다. 다시 느끼지만 상당히
고액 봉급을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무슨 대순가 ? 나는 오늘 새벽 달리기 길에서
이미 결론을 내고, 출근하자 마자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 바가 아닌가 ?
어쩌면 전혀 도움이 안되는, 너무나도 미약한 내 분노의 표출 방식인지 모르나,
어쩔 것인가, 나는 그렇게 라도 하고 싶은데...

그 상담원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 나름으로 다시 재무장을 하며 깜박이는 마니러의
커서를 응시하고 다음의 나의 반응에 따라 상황 대처를 서두를 것이다.
어쩌면 아침 첫 전화이기에 무슨 수를 써서도 말소를 취소시키려, 그 동안 받았던
미국 본사로부터 공수돼온 교육 자료를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나는 이 한마디로 그 상담원의 기를 꺽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도 섣불리 엉겨 붙어 얼룩말의 뒷발에 채이고 먹이를 놓치는 덜 세련된
멍충이, 얼간이 사자가 아니라,

일격에 얼룩말의 안쪽 목덜미를, 뒤로 누워 하늘을 보는 자세로, 얼룩말과 같은 방향으로
물고 늘어져, 절대로 얼룩말의 뒷발에 채일 리 없는 자세를 견지하며,
왕방울 만한 얼룩말 두 눈을 치껴 보면서 서서히 얼룩말의 숨통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노련한 암사자의 사냥 기술처럼, 단번에 이 상담원의
기를 꺽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서두름 없이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그 상담원의
예절 바른 질문에 내 예절을 보태 이렇게 말했다.

" 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한데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카드를 말소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미국계 회사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는 게 내 스스로 너무 창피하고 분하거든요. 이 요청은 번복되지 않을 것이니
지금 당장 말소 시켜 주세요. 저는 이곳에 지금 메모하겠습니다
지금 시각 2002 년 12 월 4 일, 아침 9 시 20 분이고요, 지금 말소 요청 전화 받으신
상담원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 그럼 지금부터 이 카드는 사용치 않겠습니다.
이 카드는 반환해야 합니까, 아니면 제가 직접 여기에서 폐기해도 됩니까 ? "

".................
네,, 박 복진 고객 님 ! 말소 처리하겠습니다. 고객 님께서 직접 폐기 하셔도 됩니다.
상담원 *** 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나는 전화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놓인 대나무 연필통속에서 가위를 꺼냈다.
길게 세로로 자르고, 그걸 엎어서 가로로 자르고, 자른 그 두 무더기를 다시 한번씩
더 잘랐다. 이것들을 번호가 있는 부분이 한데 가지 않고 골고루 섞이도록 해서
내 책상 설합 좌, 우로 나눠 넣었다. 한 무더기는 오늘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른 한 무더기는 내일 아파트 쓰레기통에 나눠서 버릴 예정이다.
그래야 누가 조각을 주워 이어 붙여 부정 사용치 못하기 때문이다

가위를 다시 대나무 연필통 안에 거꾸로 세워 넣어 놓고,
컴퓨터 모니터를 작동시키어 오늘 하루의 일을 시작하였다.
이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고덕에 사는 한 대한민국 국민의 하루가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위장 무늬 방한 마스크를 사고 나서부터 없던 용기가 나는 것 같다고
오늘 저녁 밥상에서 나의 아내에게 고백해야겠다. 그럼 뭐라고 할랑가 ?
나는 답을 안다.

" 아이고, 언제 철 나 ? "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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