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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은 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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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창수 작성일02-12-04 18:12 조회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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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은 반칙이다.

요즘 생선을 먹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꽁치도 그렇고 고등어도 그렇고 옛날에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생선들이 이상하게 모두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어렸을 때 본 꽁치 그대로이고, 고등어 그대로인데 먹어보면 비슷하기는 한 데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생선 한 마리를 다 먹어본 기억이 최근에 없는 듯 합니다.

참 옛날의 생선들은 그렇게 맛있었는데 왜 지금은 맛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처럼 후라이판에 기름 두르고 튀기지 않고 연탄불 위에 석쇠로 소금 뿌려가면서 구워서일까 아니면 형제들과 젓가락 쌈질해가면서 먹어서일까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오염이 안 된 바다에서 건져서일까 하였튼 옛날의 생선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옛 기억에 오븐달린 렌지도 장만하고 정성스럽게 손질하여 구워도 보았지만 역시 예전의 생선 맛은 더 이상 맛볼 수가 없습니다. 세월따라 입맛이 떠난 것인지 생선이 변한 것인지 여하튼 요즘 생선은 확실히 맛이 없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버스에서 내려 한 20분간 걸어야 사업장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ㄱ’기억자로 꺽어 가는 것이 멀다 싶어 항상 바닥이 질퍽한 수산시장을 가로질러 갈 때가 더 많습니다. 이곳 수산시장은 100여 개의 작은 점포들로 이루어졌는데 과거에는 주택가 가정집으로 사용하던 집들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시장입니다. 각 점포는 거의 점포의 평수 만한 대형냉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에 장이 열리고 오전 점심시간 전에 장이 끝나는 곳입니다. 일반소비자보다는 횟집이나 생선가게 혹은 생선트럭들을 상대로 한 도매형태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로 서울의 동북부 지역의 주민들에게 수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형성되어진 수산 시장입니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요즘 제철인 생선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점포 밖 도로에 진열된 생선들을 보면 꽁치 철이구나 생태 철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진열된 생선 상자를 보면 예전의 나무로 거칠게 만든 상자가 아니라 스치로폴로 만든 상자들이며 대개 생물인 경우는 거의 홋가이도 지도가 상표로 그러진 일본산입니다. 다른 형태로 진열된 생선 상자도 함께 있는데 이 생선 상자는 상자라기 보다는 라면박스처럼 골반지 상자로 되어있으며 이것은 대개가 생물 형태가 아닌 냉동 상태로 진열되어있고 거의가 중국산입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국내산은 조개나 굴과 같은 어패류 종류 일뿐 거래되는 수산물 거의 모두가 외국산이며 일본산은 생물 상태로 중국산은 냉동 상태로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점포마다 한결같이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등어 자반 만들기입니다. 물을 한 가득 받은 커다란 고무 다라에 냉동된 고등어를 넣어 일정 시간 녹이고 난 다음 한 마리씩 건져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후 소금을 채우면서 자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들 익숙한 솜씨로 만드는데 약 10초정도면 자반 한 마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빠르게 만들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냉동 동태나 냉동 조기들은 언 상태로 있는 상자를 번쩍 들어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한 마리씩 분리하는 데 가끔 걷다가 깜짝깜짝 놀라기가 일쑤입니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 거의 모두가 이 곳에서 취급되어지고 있으며 모두가 냉동입니다. 냉동꽁치, 냉동고등어, 냉동갈치, 냉동꽃게, 냉동조기, 냉동이면수 그리고 냉동의 대명사 격인 동태 등 거의가 냉동이며 또 중국산입니다. 적게나마 생물 생선들도 취급하는데 그 가격은 냉동 생선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바로 냉동보관창고들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냉동창고들이 고속도로 주변에 유난히 많이 있는 것은 유통하기 편리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도로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 말고 새 건물을 짓는다 하면 거의 태반이 냉동창고입니다.

냉동은 음식물이 상하지 않게 보관 오랫동안 보관한다는 기본 목적도 있지만 지금의 냉동창고가 하는 일은 그 보다는 싼 철에 사두었다가 마진이 좋은 때를 기다렸다 내놓을 목적으로 더 많이 이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언제가 될지 모르게 장시간 보관해야 하니 창고들은 더 커지고 또 여기저기에 마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냉동식품에는 커다란 단점이 있는데 얼고 녹는 과정에서 식품 다시 말해서 생선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 수분 또한 함께 얼고 녹으면서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선이 지닌 고유수분은 이 과정에서 다 빠져 나가고 모양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냉동생선에는 수분억제제와 같은 물질을 첨가하기 마련인데 이는 생선의 맛을 보호하기 보다는 언제 소비자에게 팔려 녹게될 지 모르는 생선의 유통기한을 무한에 가깝게 보관하기 위해서가 더 맞을지 모릅니다.

사실 냉동생선의 유통기한은 없는 듯 합니다. 얼었으니까 말입니다. 꽁꽁 언 상태가 1년 전인지 3년 전인지 아니면 몇 일 전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꽁꽁 얼었으니까 말입니다. 라면이나 과자처럼 제조 년월일이 봉지에 겉 표면에 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바코드-리더를 생선 지느러미에 대봤자 얘가 언제 잡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고작해야 생산지 표시로 국내산 중국산 표시가 전부입니다. 하였튼 얼었다 하는 것은 그 시간까지도 함께 얼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산업이 발달되어서 집집마다 냉장고가 없는 집이 없지만 저 어렸을 때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흔한 가전은 아니었습니다. 가끔씩 1년이 넘은 돼지고기를 냉동실에서 꺼내 버리기 아까워 요리를 해 먹지만 솔직히 찝찝한데다가 맛도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옛날에 먹었던 돼지고기는 무척 맛이 있었습니다. 대개 엄마의 심부름으로 돼지고기 사려 정육점에 가면 푸줏간 아저씨가 낼름 썰어 신문지에 똘똘 말아 싸주지 않았습니까. 물컹물컹했지요. 그걸 보면 그 당시 냉동이 아닌 냉장 돼지고기였습니다. 김치찌게를 먹다보면 가끔 파란 도장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돼지 껍데기가 잡힐 때도 있지만 하였튼 무지 맛있었습니다.

그 당시 생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에 나가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생선을 팔던 아저씨 혹은 아줌마들이 계셨는데 시장 파할 때가 되면 더 소리지르며 다 못 판 생선을 팔고는 했지요. ‘자~ 떠리요, 떠리~’, ‘거져 가져 가슈~’

그렇습니다. 옛날 생선들은 분명 유통기한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냉동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날 생선을 다 팔지 못하면 하루 넘겨 생선이 상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를 쓰고 생선을 팔아치우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였지요. 그러다가 결국 못 팔고 만 고등어는 마지 못해 자반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쉬 상하기 쉬운 생물 고등어를 그 날 다 못 팔았기 때문에 자반을 만든 것이지 지금처럼 냉동을 풀어 자반을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잡힌 날부터 저절로 유통기한이 있었던 옛날의 생선과 언제 처박아 둔 것인지 모르는 지금의 생선과는 그 차이가 분명한 만큼 그 생선의 맛도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단언합니다. 요즘 생선 정말 맛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냉동 때문입니다.

냉동이 주는 피해는 또 있습니다. 마구 잡아 건져 올린다는 것입니다. 잡아 올려 그냥 냉동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1년이고 2년이고 간에 말입니다. 손가락 만한 조기고 새끼고 마구 마구 잡아 올리고 얼리는 것입니다. 잡아 올리는 게 임자입니다. 거의 씨를 말릴 정도로 걷어올립니다. 만일 냉동이 없다면 없다면 말입니다. 쉬 상해서 먹지도 못할 것을 이렇게까지 마구잡이로 남획할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맛 없는 생선들을 보면 재료가 아까울 지경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마구 남획하면서 맛 없게 만들어 놓는지 정말 아깝기만 합니다.

냉동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냉동은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흉악하고 욕심꾸러기와 같은 우리의 치졸한 마음을 그대로 밖으로 들어낸 형이하학적 작품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 다시 말해 냉동이 없었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습니까. 집에서 돼지를 잡으면 그 집 안의 식구들이 그 돼지를 다 먹지 못합니다. 그러면 돼지고기는 며칠이 지나 상하고 말겠지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짜피 다 못 먹어 상할 것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쪽 집에서 잡으면 그 때 또 함께 나누어 먹고 말이지요. 이렇듯 냉동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덕(德)’이라는 훌륭한 냉동장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웃과 함께한 훌륭한 덕은 이제 온데간데 없고 오직 안으로만 챙기려하는 욕심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있는 자들은 더 챙기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옳은 방법입니다. 작년 호미곶에서 과메기를 박스로 들고 가신 분 반성하세요. 제가 과메기 한 점도 못 먹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번에 못 먹을까봐 미리 연막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어느 마라톤 대회에서 쭈쭈-바 통채로 가져 가신 분! 뭘 잘했다고 ㅋㅋㅋ하고 계십니까. 똑 같은 사람입니다. 같이 반성하세요!

이번에 또 과메기를 통채로 가져 가시는 분이 발견 되면 가만히 안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빨리 들어와야지 가져기는 것 보기라도 할텐데. 하였튼 말입니다. 한 점 만이라도 놔두고 가져가기 바랍니다.



hur. 개 허창수였습니다.


p.s. 문우열님께서 허창수 글이 짧아진다고 우려하시길래 쪼금 길게 썼습니다. 당연히 진사어른께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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