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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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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석산 작성일02-12-02 16:46 조회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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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재롱

세상을 몰랐을 때나 재롱을 부리는 것이지, 세상을 알만큼 알았을 때 그러면 징그럽다는 소리밖에 듣질 못할 것이다. 재롱을 부리는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생존하기 힘든 어린 것들이 저를 낳아준 부모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신호이다. 친근감을 표현함으로, 또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보여야만, 어른들이 그에게 매가 아닌 먹을 것과 더불어 생존에 부수적인 것들을 제공한다.
손을 내밀어 도와 달라고 애원을 하면서 험한 얼굴을 한다면,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설사 그리 한다 하더라도 빼앗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버스 안에, 얼굴에 흉터가 있는 젊은 남자가 올라탄다. 그리고 소리를 낸다. '나 좀 도와 줘' 많은 사람들은 혐오감에 얼굴을 돌리고, 심지어는 자는 척 한다. 와서 툭 치면, 요구하는 돈을 마지못해 내 놓고 얼른 눈을 감아 버릴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손이, 물론 때 자국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달달 떨면서 도와 달라고 사정을 하면, 뿌듯한 마음에 지폐를 한 장 주어도 흐뭇한 얼굴을 할 수 있다. 오늘 하루 커다란 선행을 하게 되었다고 뿌듯해 하면서.

동물의 세계는 왜 그리도 잔인한지 모르겠다. 사자의 어린 새끼는 하이에나에 의해 잡혀 먹기 일수고, 다른 수사자에 의해 죽기도 한다.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도 어리고, 약할 때는 별 수 없는 것 같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다 먹이가 될 수도 있고, 천적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세계도 왜 또 그리 잔인한지 모르겠다. 한 번 발동이 걸리기만 하면 정신 없이 내달리는 폭주족의 오토바이 마냥, 전쟁이란 이름 앞에서는 중단 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때까지는 계속 싸움이다. 그런 속에서도 연민의 정은 깊다. 작은 상처를 입은 짐승이나, 화초에 대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면으로는 잔인하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자애로운 인간. 그 인간의 집단 속에서는 대개는 어린것들에 대한 애정은 작지 않다.
생물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은 한 생명체 집단이 자신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돌보는 집단일수록 잘 번성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식이 아니더라도 어린것들을 좋아한다. 사람 만이랴? 동물의 새끼도 그럴진대.

중년의 나이가 되어 시작한 운동이 마라톤이다. 벌써 몇 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라톤 대회에도 꽤 다니게 되었다. 며칠 전 30회의 완주를 했다. 그만큼 다녔으면 웬만큼 안다고 할 법한데, 그렇지 못하다. 매번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 크게 구분한다면 좋거나, 싫거나 일 것이다. 복잡하게 따져 간다면, 이 것은 좋고, 저 것은 싫고.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고. 세상을 많이 살면 살수록 따질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어느 순간까지는 그럴 것이다. 중년의 나이가 아마도 할 얘기들이 제일 많은 것 같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마도 해도 그렇고, 안 해도 그렇고. 크게 감동의 차이가 없어 그럴까? 말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중년의 나이가 그래도 혈기 왕성한 나이라 할 얘기들이 가장 많을 때일까?
마라톤을 하면서 나름대로 경험을 되새겨 보니 그래도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마라톤 대회에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라톤을 전혀 모르거나, 알아도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길을 막았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재미있다고 응원하고. '너희들이야 뛰건 말건, 우리는 우리끼리 논다.'면서 동네 잔치 벌이면서 풍악놀이에, 춤잔치까지 벌인다. '앗싸 호랑나비...'

마라톤 대회는 개방적이면서 폐쇄적이다. 달리는 사람들이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자니, 달리는 차들을 막아 폐쇄적이다. 길가에 가는 사람들은 가도록 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장벽이 없어 개방적이다. 숨통을 열어 놓고 달리니 개방적이지만, 코스를 따라 뛰어야 하니 폐쇄적이다.
자원 봉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무토막 서 있듯 서 있으면 그만이지만 흔들, 흔들 몸을 흔들어가면서 달리는 사람들에게 리듬감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렇다면 달리는 사람은 자원 봉사자들에게 당연히 봉사만 받을 것인가?
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이들은 '수고한다. 고맙다.' 등등의 말이라도 하고 지나간다. 그런 정도면 다행이다. 가끔은 자원 봉사자를 대회 본부에서 고용된 사람으로 알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을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시대에는 언제나 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설사 내 인상이 험악하여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밝은 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피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를 언제나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내 자신이 그 것을 완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후손이 나의 뜻을 이어간다면 또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해서 꿈틀대는 나의 얼굴은 온통 미소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잘은 모른다. 청년의 시대에는 부정적 성향이 다분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 싫어 더욱 긍정적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지 모른다. 아니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개인적인 생각의 틀을 벗어나 더불어 살아 보려고 애쓰는 나이가 되어 그런 지도 모른다. 결혼과 더불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그런 지도 모른다. 자칫 잘 못 하면 가장의 자리에서 밀려나가 가정이라는 핵의 둘레를 벗어나 뱅뱅 돌고 있는 위성 같은 사람들이 꼴 보기 싫어 그리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정의 중심에 서서 큰 소리도 치고, 또 때로는 가족들을 보듬어 주고 기쁜 얼굴을 하면서 사는 것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정마저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좋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일까? 크게 남들에게 내세울 부모도 아니며, 또 그럴 것이 없어도, 웃으면서 가슴을 내밀고 다닌다. 나와 더불어 가족이 행복하다면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보지 않겠노라면 서.

축 쳐진 어깨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 아마도 곧 포기하겠다는 듯이 뒤를 자꾸 돌아보면서. 얼마나 안쓰러운가?
힘내라 악을 써도, 없는 힘이 어디 솟을까? 그리고 이미 기울어진 의욕은 곤두박질치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종이 비행기일진대. 자원 봉사하러 나온 어린 학생들은 곧 울상이다. 인생에 먹구름이 낀다. 물론 그런 사건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까마는. 잘 따지고 보면, 자라면서 읽은 책 한 권이 평생 마음의 지침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순간 스쳐가듯 바라본 모습이 평생 그들의 기억 속에 저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그들에게 마라톤이란 정말 환상적이며, 또 즐거운, 그래서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달리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고, 더불어 그들의 얼굴 속, 깨끗한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박혀 버릴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 누가 나를 따라 다니면서 그런 인상적인 모습을 찾아 주기나 하나? 내 온 몸으로 그리 해야지.

빵긋. 내 얼굴은 미소로 담뿍 버무려진 맛깔 나는 탈이다. 나의 손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승리의 표식이야 누구나 할 것이다. 좌우로 흔들어 주기도 하고, 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그들의 발과 팔의 동작에 맞추어 따라서 팔이 움직여 간다. 아, 또 있다. 두 팔을 들어 머리에 손을 댄다. 사랑의 표식인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차의 윈도우 브러쉬를 흉내 내 보기도 한다.
잠잠하던 그들은 소리를 내 지르기 시작한다. '힘내세요. 힘.' 힘이 난다. 암. 힘이 난다. 아직도 웃을 힘이 있다면 당연히 힘이 나지.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완주를 하려면 힘의 배분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달리면서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자원 봉사자들에게 재롱을 떨어 보는 것은 그만큼 힘을 잘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웃을 힘도 없고, 대꾸할 힘도 없이 달려가고 있다면 나는 감히 물어 볼 것이다. "왜 달리시냐고."
중년의 사람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 어린 학생들에게 재롱을 부리는 것은 결코 쑥스러워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마라톤이란 궁극적으로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고자 하는 것인데,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힘이 들 때, 오히려 뻣뻣하게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힘내라고 소리쳐 주는 사람이 훨씬 좋지. 그들이 힘을 내라고 해 주는 것은 어린 것이 도와 달라 떼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힘든 것은 오히려 달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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