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사전에서 M16소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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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2-07-26 11:52 조회5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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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7, 8년전
여름방학을 앞둔 대학 2학년 시절
방학때는 하숙집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통례였으나
그 해는 설악산 종주를 하기로 하고 동향 친구 네명이 모의를 하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거사에 필요한 자금확보였지만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그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한달 하숙비가 15,000원 정도 한 걸로 기억하는데
1인당 2만원정도는 있어야
종주후 해수욕도 즐길 수 있는 군자금이 될 듯하였다.
총각냄새 무성한 하숙방에 옹기종기 네 놈이 모여 머리를 짰다.
담배마져 다 떨어져 재털이를 뒤져 장초를 찾으면 인디언들 처럼 돌아가면서
한모금씩 빨던 중 세명의 시선이 갑자기 한 친구에게로 집중되었다.
시골에서 농사와 목축업을 크게 하고 있어 그중 가정 형편이 나은 친구인 박군이었다.
그와는 중학교부터 동창이었는데 부모한테 돈 타내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찍이 중학교 1학년 입학하자 마자 영어사전 산다고 돈을 세번이나 타내어
같이 군것질을 맛있게 한 기억이 있는데
처음에는 영어사전, 두번째는 딕셔너리,
세번째는 콘사이스(당시 영어사전을 그렇게 불렀다)산다고 돈을 우려 낸 것이다.
박군의 눈빛에 비장한 결의 같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한번 더 해 보까?" 그러면서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교련시간에 필요한 M1소총 산다고 거금 5만원을 지난 1학년때 타 썼다는 것이다.
내가 지나 가는 소리로 말했다.
"임마 M16산다 캐라. M1은 구식이라 점수가 잘 안나온다고 말씀드리고..."
"가격은 얼마라고 하까?" 박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최신식이니께 한 10만원쯤 불러봐라. 괜찮을끼구마."
박군이 서둘러 전화가 있는 주인집 안방으로 달려갔다.
사흘 뒤 박군앞으로 거금 10만원짜리 우편환이 담긴 등기가 왔다.
"M16 소총 제일 좋은 걸로 사서 교련점수 100점 받으라"는 박군 부친의 격려가 담긴
편지와 함께...
그돈으로 술에 굶주렸던 우리는 맥주 먹으러 명동으로 향했다.
레뵌브로이, 카이저호프를 돌면서 생맥주로 배를 채운 뒤
토플리스 차림의 아가씨가 서빙을 해주는 레드옥스로 가서
문학과 인생과 설악산을 위해 꼭지가 돌도록 마셨다.
설악산 종주도 하긴 했는데 거의 거지꼴로 무전여행에 가깝게 했다.
그날 저녁 맥주값으로 군자금의 절반이상을 날려버린 탓이다.
대학 졸업후 건설 회사에 취직하여 오랬동안 중동현장에 나가 있던
박군은 귀국하여
신부가 되겠다고 원주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 뒤는 알길이 없다.
어느 시골 성당에 숨어서 조용히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안다.
그 때 박군 부친께서 비록 배우신 것은 많지 않았지만 아들의 터무니 없는
간계에 순순히 넘어가신 척 한 것은
암울했던 그 시절, 젊은 자식 기 꺽이지 않게 배려 하신 것임을.
여름이 한창이라 학창시절의 한 편린이 불현 듯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
모닝스타 정병선
여름방학을 앞둔 대학 2학년 시절
방학때는 하숙집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통례였으나
그 해는 설악산 종주를 하기로 하고 동향 친구 네명이 모의를 하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거사에 필요한 자금확보였지만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그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한달 하숙비가 15,000원 정도 한 걸로 기억하는데
1인당 2만원정도는 있어야
종주후 해수욕도 즐길 수 있는 군자금이 될 듯하였다.
총각냄새 무성한 하숙방에 옹기종기 네 놈이 모여 머리를 짰다.
담배마져 다 떨어져 재털이를 뒤져 장초를 찾으면 인디언들 처럼 돌아가면서
한모금씩 빨던 중 세명의 시선이 갑자기 한 친구에게로 집중되었다.
시골에서 농사와 목축업을 크게 하고 있어 그중 가정 형편이 나은 친구인 박군이었다.
그와는 중학교부터 동창이었는데 부모한테 돈 타내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찍이 중학교 1학년 입학하자 마자 영어사전 산다고 돈을 세번이나 타내어
같이 군것질을 맛있게 한 기억이 있는데
처음에는 영어사전, 두번째는 딕셔너리,
세번째는 콘사이스(당시 영어사전을 그렇게 불렀다)산다고 돈을 우려 낸 것이다.
박군의 눈빛에 비장한 결의 같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한번 더 해 보까?" 그러면서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교련시간에 필요한 M1소총 산다고 거금 5만원을 지난 1학년때 타 썼다는 것이다.
내가 지나 가는 소리로 말했다.
"임마 M16산다 캐라. M1은 구식이라 점수가 잘 안나온다고 말씀드리고..."
"가격은 얼마라고 하까?" 박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최신식이니께 한 10만원쯤 불러봐라. 괜찮을끼구마."
박군이 서둘러 전화가 있는 주인집 안방으로 달려갔다.
사흘 뒤 박군앞으로 거금 10만원짜리 우편환이 담긴 등기가 왔다.
"M16 소총 제일 좋은 걸로 사서 교련점수 100점 받으라"는 박군 부친의 격려가 담긴
편지와 함께...
그돈으로 술에 굶주렸던 우리는 맥주 먹으러 명동으로 향했다.
레뵌브로이, 카이저호프를 돌면서 생맥주로 배를 채운 뒤
토플리스 차림의 아가씨가 서빙을 해주는 레드옥스로 가서
문학과 인생과 설악산을 위해 꼭지가 돌도록 마셨다.
설악산 종주도 하긴 했는데 거의 거지꼴로 무전여행에 가깝게 했다.
그날 저녁 맥주값으로 군자금의 절반이상을 날려버린 탓이다.
대학 졸업후 건설 회사에 취직하여 오랬동안 중동현장에 나가 있던
박군은 귀국하여
신부가 되겠다고 원주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그 뒤는 알길이 없다.
어느 시골 성당에 숨어서 조용히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안다.
그 때 박군 부친께서 비록 배우신 것은 많지 않았지만 아들의 터무니 없는
간계에 순순히 넘어가신 척 한 것은
암울했던 그 시절, 젊은 자식 기 꺽이지 않게 배려 하신 것임을.
여름이 한창이라 학창시절의 한 편린이 불현 듯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
모닝스타 정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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