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湖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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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7-10 07:58 조회5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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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湖畔)의 꿈 - 2000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를 달리고
프롤로그
- 그 언제였을까, 의암호를 돌아 35킬로미터, 40킬로미터를 고통과 갈등 속에서
지친 육신을 끌고 달렸던 때가.
이제 겨우 하루, 이틀이 지났을 뿐이건만 아득한 옛 일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먼 길, 금새 승부가 나지 않는 마라톤이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달려보자고 스스로를 달래던 때가 바로 엊그제일 뿐인데 -
이른 새벽 서울의 집결지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때
오래전 한 때 상사로 모셨고 여러모로 존경해오던 직장 상사를 만났다.
그 분은 특유의 베이스 톤 목소리로,
"난 네가 마라톤을 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셨다.
이 말씀은 42.195를 달리는 동안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간헐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무슨 의미일까.
부지불식간에 던지는 별 의미 없는 말이 듣는 이에게는 아주 심각하게 들리는 수가 가끔씩
있다고 말하지만 이건 그런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솔직히 10여 년 전에 내가 상사로 그 분을 모셨을 때 불성실하게 생활했던 기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분은 그것을 상기하시고,
마라톤처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운동을 불성실했던 내가 좋아하고 또 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씀일까... 아니면,
내가 체력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보여서 하신 말씀일까...
후자라면 얼마나 다행이랴 싶었다.
10km 한 번, 하프 두 번이 전부
처음 들어서 본 춘천 공설운동장은 현란하게, 그러나 어지럽거나 무질서한 것과는 다르게,
정겨움을 주는 숱한 플랭카드와 격문들로 온 스탠드를 치장하고 우리를 맞았다.
성북구청, 서울특별시청, 포항제철, 한국전력 등 관공서 팀들도 보이고
'아름다운 춘천 베어스타운관광호텔', '태권도공원 최적지는 한반도 정중심 춘천' 등
개최지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있고.
한국야쿠르트, 오리온, 롯데칠성, 하이트맥주, 포카리스웨트 등 기업들의 이름도 낯익었다
('쵸/코/파/이'와 '포/카/리'는 이미 보통명사화 되어버려 마라톤계(?)에서는 당당히
동반자로서 대접을 받는다).
또한 한국통신 마라톤클럽을 보고 HanMir가 한국통신에서 운영하는 것임을 알았고
아시아나 항공, 안산시, 달구네, 군포시 해오름마라톤, Runner's Club...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듣기만 해도 반가운 동호회 이름들도 보았다.
달리기에 관한 한 사실 나는 왕초보이다.
99년 4월 경주 벚꽃 마라톤대회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10km를 49분에 달린 적이
한 번 있었으나 다시 까맣게 마라톤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올 해 5월의 어느 토요일.
"어이, 우과장. 내/일/ 하프마라톤에 누가 신청을 했는데 일이 생겨 못나간다네.
한 번 뛰어볼 맘 있어?"
"예? 내일요? 그래도 됩니까? 그럼 한 번 뛰어 볼까요?"
느닷없는 직장 동료의 제안에 엉겁결에 첫 출전한 게 분당탄천검푸 하프대회였다.
마라톤에 대하여 전혀 생각도 없었던 상태에서 출전한 탓에 결과는 불문가지였다.
연습은커녕 아무런 상식도 없었다.
급수대가 몇 킬로미터 간격으로 있는 것인지, 스펀지가 뭔지, 마라톤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5km 급수대를 반환점으로 알고 기뻐했었을까.
10km지점부터 탈진하여 간신히, 문자그대로 기어오다시피 하여 들어오니 2시간 4분이었다.
그러나 첫 출전에 그 정도면 잘 한 것이라는 동료들의 격려가
마라톤을 '선교'하기 위한 계책이었을 수도 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날 이후, 같이 달린 동료들 보기가 창피하여 동네 공원을 7,8킬로미터씩,
비록 주말이지만 혼자 연습을 했다.
두 번 째로 출전한 것이 8월의 SAKA 잠실하프마라톤대회였다.
(이 글은 조선일보 만남의 광장 9월18일자 5311번에 '초보의 하프마라톤 경험기'라는
이름으로 올렸다).
더위와 물 부족으로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무려 2시간 30분이나 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달리기라면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젓고 싶을 정도의 대회였다.
듣기로는 그 대회에 참가한 대다수 분들이 기록도 나쁘고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라톤의 매력은 날 놓아주지 않아
피로가 어느 정도 가신 9월 초 춘천마라톤에 참가신청을 하고
직장내의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여 조금씩 연습다운 연습을 시작하였다.
주중 2회 정도 퇴근 후 직장인근인 잠실운동장 한강변을 출발하여
짧게는 양재천변 자전거도로 왕복(정확히 12km)이나 반포대교왕복(하프에 가까움),
주말에는 여의도 왕복(30km 남짓)을 연습을 하여 제법 흉내라도 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99년 4월 10km, 2000년 5월 하프, 8월 하프의 경력과 두 세 달의 간헐적인 연습...
이게 내 마라톤 경력의 전부이니 얼마나 일천한가.
게다가 신체조건마저 키171cm, 체중77kg으로 열악한 편이었다.
특히 과체중은 달릴 때마다 날 괴롭혀 가끔씩 발바닥이 갈라지거나 아킬레스건이 아프곤 했다.
그런데 춘천에 풀코스를 신청하였다니.
드디어 출발선상에
하지만, 드디어 운동장의 트랙에 섰다.
첫 출전이지만 완주는 어떻게든 기본으로 해낼 결심을 하고 목표시간을 4시간 30분으로 잡았다.
그러나 막상 트랙의 페이스메이커들을 보니 욕심이 들어 4시간 팀에 슬그머니 끼어
자리를 잡았다.
이제 나를 포함한 1만5천명이 넘는 거대한 대열이 운동장을 나섰다.
수많은 춘천시민들께서 보내주는 환호 속에 큰길로 접어들었다.
최초 이어지는 오르막 코스에 대해서는 전 해에 참가했던 동료에게서 들은 바 있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탓에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또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16층에 있는데 매일 한 두 차례씩은 걷거나 달려서
오르내리는 훈련을 한 덕분인지 오르막은 자신도 있었고.
언덕길을 오르면서 마음속으로 묵주기도를 올렸다.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소서'.
육신에 힘을 주는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라 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돌보아 달라는 기도.
관자놀이가 쭈뼛해지며 가슴이 벅차왔다.
기도 덕분인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7,8킬로 정도를 왔다.
의암교에 이르니 콘크리트 다리 턱에 앙증맞은 계집아이들 대여섯 명이
박수를 치며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얼마나 귀여운 모습이던지.
또 밭일하는 엄마 곁에서 수숫대를 흔들던 대여섯 살 먹은 사내아이의 눈망울도 너무 맑았다.
막내아들 얼굴이 떠오르고, 콧등이 찡해왔다.
참 이상하다. 막내아이만 생각하면 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 가슴이 뭉클해오는 걸까.
10km를 향해 기운을 내는데 뒷 쪽에서 동료를 격려하는지 헛둘헛둘 구령을 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좀 언짢았다.
그분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겠지만 사람마다 호흡법과 주법이 각각 달라
큰 소리로 구령을 붙이는 것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에티겟이라면 에티켓이 아닐까.
드디어 10km 라인을 지날 때 대회진행요원이 "1시간 35초!"라고 알려주었다.
10km면 하프경주에서 반환점에 해당하는데 전혀 힘이 들지가 않다.
가볍게 물을 한 컵 마시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12km정도 됐을까,
마을 어구의 버스 정류장에서 대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손을 흔들어주셨다.
얼굴에는 티 한 점 없이 맑은 모습으로 함박웃음을 웃으면서.
달리는 우리도 '할머니 오래사세요', '감사합니다' 하기도 하고
더러는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답례를 하였다.
어느 마을에서는 농악대가 신명나는 한 판을 벌여주기도 하였다.
참으로 마을 잔치, 아니 춘천 전체의 잔치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대회였다.
길가에 늘어서서 손을 부딪치며 깔깔대는 아이들도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아직은 여유가 많다. 여기저기 흘러가는 경치를 감상하며 달린다.
단풍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코스모스는 이미 다 결실을 맺어 검고 가느다란 씨앗들이 동그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길가를 달리는 주자가 건들기라도 하면 투둑... 사방으로 흩어져 내년의 탄생을 기약한다.
간혹 5% 정도나 남아있는 갸날픈 코스모스 꽃을 보며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 생각을 하였다.
신혼 초 어느 날,
술이 얼큰해진 나는 그날도 늦은 귀가 중이었는데 길가에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한줌 꺾어다 기다림에 지쳐있는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기다림... 아내는 많은 세월을 기다려왔다. 가슴이 아프다.
항상 생각만해도 미안한 아내... 잘 해야지.
아직은 잘 달리고 있다
20km.
1시간 56분. 아아... 나는 지금 너무 잘 달리고 있다. 이미 하프를 거의 다 달렸는데도
그리 힘이 들지도 않고 정신은 명료하다.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출전하기 전에 만남의 광장을 뒤져 식이요법을 조사했었다.
얻어낸 결론으로 일주일전부터 탄수화물 축적을 위해 식이요법을 하였으며
특히 3일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꿀과 떡을 준비하여 먹었다.
그 정성 덕분일까. 정말 배고픔은 없었다.
그래도 쵸코파이 하나와 포카리스웨트를 선수처럼 달리면서 먹고 마셨다.
하프를 지나면서 또 두 번 묵주기도를 드렸다.
아울러 화살기도를 유난히 강조하던 큰 신부님 생각이 났다.
떠오르는 매 순간 순간에 커다란 지향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
부디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5km를 지나 나타난 긴 오르막 길. 두렵지 않았다.
걷거나 아주 느리게 달리는 사람들을 제법 추월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저만큼 앞에'소아암, 백혈병 어린이 부모 모임 한울타리' 라는 유니폼을 입은 두 분이
아까부터 계속 보조를 맞춰 달리고 있다. 아, 저 부모들 속은 얼마나 아플까.
내 가슴이 답답해왔다. 부디 그 용기로 모든 어려움을 훌륭히 극복하시라 빌었다.
열심히 달리는 한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How do you like this?'
'I love it!'
'Yeah, beautiful weather, beautiful scenery and good people...'
'Sure. I saw lots of people encouraging us.'
'Good! have a fun. See you!'
몇 몇 보이는 외국인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밝아 내 기분이 더 상쾌해졌다.
저 아래로는 맑은 강물이 흐른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흐른다.
강물위로 우리의 인생이 흐른다.
30km 2시간 58분.
10km 1시간, 20km 1시간 56분, 하프지점 2시간 2분에 이은 또 하나의 낭보.
너무나 순조롭게 나가는 기록에 스스로도 놀라며 잘하면 4시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절감했지만 이렇게 방심과 자만이 들어 정신력은 흐트러졌고
그 결과 마무리가 만족스럽게 되지 못했다.
나는 가끔 바둑을 두는데, 어느 정도 판이 진행되면
상대방의 태도나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의 말에서 승부(결과)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저를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상대방이 얘기를 하면 나는
'아하... 이번 게임은 이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대가 그렇게 얘기 할 때는 이미 자신의 유리한 형세를 믿고 있다는 것이며
그 순간에 이미 방심이라는 유혹이 머릿속에 들어와
판단력을 흐트러뜨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계상황에
33km지점에서 이르러 오른 쪽 발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3시간 18분 경과.
뒷꿈치는 땅에 대이기 두렵도록 아팠고 발등도 아팠다.
그러자 약해진 정신력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인도턱에 털썩 주저앉게 한다.
하나, 둘, 셋...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어떻게 지켜온 이 자린데 추월을 당하나... 일어나자, 일어나. 그러나 뛸 수는 없었다.
5분 정도를 걸었다. 입 대신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 왔다.
저 지나간 사람들을 어느 세월에 다시 잡을 수 있을까.
풍선을 높이 달고 4시간30분 목표 그룹이 연거푸 세 팀이나 짧은 간격으로 지나갔다.
어느 팀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페이스메이커를 중심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구령을 부치고 노래까지도 불렀다.
아마 '소양강 처녀'라는 곡이었을 것이다.
군가처럼 힘차게 부르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자 20여년 전 군대 구보가 연상되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비록 좀 더 고통스럽다고 해도 '생각' 속에 달리는 것이 낫다는 주의다.
어차피 분초의 기록을 다투는 맹훈련이 아니라면 그게 훨씬 더
마라톤의 묘미를 느끼게 할 것이라는 믿음 탓이다.
처음 출발하기 전 2.5km 단위로 거리표시와 급수대 등이 구별된다는 것을 알고는
시간계획을 거기에 맞추었다.
2.5km씩 둘이면 5km, 넷이면 10km... 40km면 16개가 된다.
마지막 2.195까지 포함하면 17개 구간. 각 구간마다 15분씩을 잡으면 10km에 한시간.
40km면 4시간.
그 17개 중에서 33km를 달렸으니 13개를 마친 셈이다. 그것도 정확히 시간을 지켜서.
그런데 겨우 4개 구간을 남겨놓은 이 곳에서 정신력은 떨어지고, 기력은 소진되고,
이렇게 주저앉은 것이다. 몇 분을 쉬고 몇 분을 걷고... 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
37km에서 처음으로 내가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 바보처럼... 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말했다.
"야, 광호야, 니 하나만 물어보자.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노...
난 말이야, 혼자 야산엘 오른 적이 있는데 그기(것)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던데,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곰곰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뛰었는지.
다만 전에 하프를 뛰고 나서 이렇게 썼었던 적이 있다.
[...달리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실 내 가정을 위하여'라는 명제가 그중의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내 경우 저 밑에서 치솟아 오르는 기운을 사르기 위한 이유도 크지만 달리면서
그런 (가정)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위하여...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멈추어선 안된다...쓰러져선 더욱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뛸까?
38km.
한계에 이르렀다. 벌써 4시간 경과.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나는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를 악물었다. 기왕 벌어진 일,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이대로 말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설마 발이 아프기로서니 어떻게 되기까지야 하겠느냐.
서울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정형외과에 가기로 하고 죽기로 달려보자.
셈을 세자. 하안나, 두우울, 세에엣, 네에엣... 아픈 발을 잊기 위해 뛰면서 셈을 세었다.
숫자를 세면서 달렸다. 주위에는 달리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나는 달린다.
정말 이곳에서부터 골인지점까지의 30분은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걷고싶은 유혹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극복하려 애썼다.
특히 살아오면서 범한 숱한 잘못들... 사과하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라도.
2600까지 세었다. 그리고 또 얼마를 더 세었는데 기억할 수 없다.
드디어 운동장 입구가 보였다. 터널을 이룬 사람들의 환호에 눈물이 흐르려 한다.
트랙을 밟았다. 드디어 해냈다. 감격과 온 몸의 신경이 팽팽히 당겨지는 긴장.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시간은 4시간 30분 몇 초인데, 이미 기록의 의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날 저녁 TV에서 대통령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했다. 대통령이 비서에게 묻는다.
"다음 회의까지 얼마나 남았지?"
"예, 각하. 4분 남았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중얼거린다.
"4분이라...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으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모르겠군..."
나는 생각한다.
"4분이라... 4분이면 700m 정도 달릴 수 있을까?
에필로그 - 꿈
이제는 생활로 돌아가는 길
더 이상의 고통은 없다.
아득히 먼 백 오 리 꿈길에서 깨어나
주부, 운전사, 공사감독으로 돌아가고, 더러는
보일러 이글거리는 발전소, 제철소의 일터로 간다.
허름한 남부 막국수 집
새우젓 얹은 편육에 소주 몇 잔을 걸치고
경춘가도를 달려 서울로 내려오는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꿈을 꾼다.
꿈속에서
붉은 단풍 몇 잎 띄워 세월처럼 강물이 흐르고
나는 화려한 완주를 한다.
육체의 고통은 찰나에 지나가고
수많은 관중의 환호 속에 스타디움 트랙으로 내가 들어서는.
차창 밖은 이제 칠흑 같은 어둠
버스 안에서 흔들리며 나는
꿈을 꾼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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