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한 다양성과 다수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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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식 작성일02-06-11 11:08 조회8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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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접하고 있으므로 지구 전체에 살고 있다고 착각할 경우가 많다. 마치 전세계의 사건을 다 알고 있기에 그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 되돌아보면 결국 어느 특정범위안(제한된 사회)에서만 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번 “한국을 빛낸 50인”과 “풀뿌리 51인”을 동등하게 비교한다는 자체가 억지이고 논리비약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선정대상의 범위와 선정과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의 범위는 고인에 한하여야 하나 현생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치명적인 자기오류에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선정위원들이 누구를 선정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유고한 위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그리고 선정과정에서 객관성만 전제되었다면 이것은 훌륭한 제안이었고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안의 문제가 아니라 선정과정의 문제인 것이다. 이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풀뿌리 51인은 풀뿌리 발전을 위한 제안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능동적으로 풀뿌리를 끌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보상없이 열정과 희생을 가지며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뜻을 기릴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적극적 참여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정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만 담보된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선의의 제안를 묵살한다는 것은 매일 이슬만 먹고 살아라는 무미건조한 삶이 되지 않을까.
풀뿌리는 모두이고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몰개성적이어야 하고 획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는 파시스트나 나치스나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을 알고 있다. 우리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것을. 마치 두더지게임처럼 조금이라도 나서면 가차없이 머리를 내리치는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붉은 악마’가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 국민들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문화에 대한 보다 성숙된 풀뿌리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제시되었으면 그것의 의미를 새겨보고, 이를 묵살하지 말고 과정의 합리성을 논하여 보는 것이 진정한 풀뿌리이지 아닐까.
러너스코리아가 선정할 대상의 수와 선정과정 및 절차, 그리고 명예부여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우리는 로보트가 아니다. 약하지만 생각하는 풀뿌리이다.
이용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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