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마라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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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06-05 17:55 조회6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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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멍청한 옹고집에,
도저히 예쁘게 봐 줄 수 없는 마라톤에 대한
대책 없는 저돌성에 제동이 걸렸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매일 아침 진료 전에 간호사들과 함께 기도를 하는
제법 뚱뚱한 정형외과 원장이,
앉은뱅이 진료 의자에 앉아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멋 적게 앉아 있는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본다. 책상 위의 진료카드와 함께 번갈아 가면서...
그 원장은 나를 여러 번 진료해서 나를 잘 안다.
공 차다가 다리가 두 번 부러져서 이곳을 들락 거렸고,
또 공 차다가 왼쪽 위쪽에서 아래로 네 번째 갈비가 나가서
현대 중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하고,
그 회복 땜에 또 이곳 동네 정형외과를 들락 거렸으니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얼굴도 저절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내가 이제 축구를 그만 두고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기 두 세 달 전, 과도한 달리기로 발목 부상을 입어
진료 차 왔을 때, 나에게 마라톤을 말린 적도 있었다.
아주 진지한 설득조로.....
방금 전 마시고 탁자에 딱 ! 내려놓은 우유 컵 맨 위 우유 흘러내림처럼,
히뿌연 X - Ray 사진 탐독기에 걸쳐진 내 오른 쪽 발목 뼈 사진을
보고 그 제법 뚱뚱한 원장은 말했다.
" 이제, 마라톤은 그만하고 수영 쪽으로 바꿔 보시죠.
이제 헐 수 없이 그래야 되겠네요. "
내가 듣지 못 했거나, 뜻을 알아채지 못해 대꾸가 없다고
생각한 듯, 다시 또 말한다.
" 발목 연골이 닳아서 0.5 mm 정도 내려앉았습니다.
여기 이 사진 보시죠 !
마라톤을 계속 하다보면 나중에는 보행도 어려워집니다 "
그래도 대꾸가 없이,
콩밭 매러 보리 밭길 지나 가다가
동네 선 머슴한테 벼락 같이 당한 새침때기 아줌마처럼
멍하니 얼이 빠진 것 같은 나를 다시 한번 보더니 또 덧붙인다.
" 최악의 경우는, 보행만이라도 생각 할 경우에, 발목에 인공 연골 삽입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내 말은 최악의 상황 일 경우 에란 말입니다.
그렇게 까지 가서는 안되겠지요..... "
나는 진료를 위해 벗었던 오른쪽 양말을 신으려고
포장 뜯은 콘돔 모양 돌돌 말린 양말을 발 앞구리에 풀어 넣으려다가
그냥 맨 발을 구두에 반쯤 넣고 쩔룩거리며 진료실을 나왔다.
제법 뚱뚱한 원장의 책상 위에는 이미 다른 환자의 진료 카드가 올려지고,
원장의 오른손에는 오래된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뱅뱅 돌려지고 있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나온 간호사가 다시 나를 앞질러 복도 끝까지 가서,
문이 없이 커튼만 있는 조그만 방의 커튼을 홱 ! 거칠게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막힘 없는 설명을 토해 놓는다.
" 여기는 물리 치료실 8 호실입니다. 여기 누워 계시면 물리 치료사가 와서
치료를 시작 할 겁니다.
시간은 약 45 분 정도 소요되고요, 다 마치시면 접수대에 가셔서
돈을 내시고 약을 타시고, 내일 진료 시간을 예약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치료중에 너무 뜨겁거나, 기계의 작동으로 너무 아프면, " 8 호실 !!! " 이라고
크게 소리 치시면 간호사가 달려와서 기계를 약하게 해 주거나 찜질 수건을
갈아줍니다 "
나는 시키는 데로 허름하니 조그맣고 낡은 침대 위에 올라가 엉성하게 몸을 뉘였다.
침대보 일부가 젖어 그곳을 피해 누운 것처럼 영 폼이 나지 않는 자세로 몸을 뉘였다 .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물리치료사의 입장을 기다렸다.
주위에 이상하게 정적이 감돌았다.
벌건 대낮에 내가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하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 이건 현실이었다.
푹신한 베개 한쪽 끝이 내 귀에 걸려있는 안경 뒷다리를 밀어 올리는지,
콧등 위의 안경테가 원래보다 한쪽으로 더 붕 떠서, 나는 목을 뒤척이어
안경의 위치를 다시 제대로 자리잡아 보았다 .
아직 물리 치료사는 입장하지 않았다.
원장의 처방을 다시금 곰곰 생각해 보려 하나,
왠 일인지 정신 집중이 안되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누굴 찾는지, 무슨 의료기구를 가지러 왔는지,
하얀 까운을 입은 한 간호사가 치익 !! 하고 커튼을 젖히고 들어와.
나 누워 있는 곳을 이리 저리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하얀 까운 겉으로 뇌살적인 둔부의 움직임이 너무 선명하다.
나가는 그 간호사의 발걸음 움직임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하얀 까운 속의 엉덩이의 크기가 내 음흉한 머리 속에 과장돼 살아있다
내 누운 침대 밑을 두리번거릴 때 잠깐 비친 그 간호사 가슴의 계곡이
내 눈에 잔상으로 남아 떠나가질 않는다.
어쩌다 본 포르노의 음흉한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벌건 대낮, 하얀 칠의 치료실, 하얀 까운의 간호사. 드리워진 커튼..
내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
나의 한심함에 나 자신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물리치료사는 입장하지 않았다.
나에게 조금 더 생각의 시간이 주어졌다.
가만, 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좀 더 진지하고 심각해져 보자.
나는 이제 뛸 수 가 없게 되는 걸까 ??
내가 정말 무모하게 덤빈 것일까 ?
마라톤의 참 의미를 망각하고 천방지축 날 뛴 것일까 ?
그렇친 않았잖는가 ?
70 살, 80 살까지 뛰자고, 진정한 뜀꾼이 되자고,
생각하는 뜀꾼이 되자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
주위 친구들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핀잔을 들으며 술도 멀리하고,
뛰는 도중 내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자연과 가슴을 열어 속삭이며,
그토록 진지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내 육체가 허락하는 힘의 안배에도 귀를 기울이며
겸손한 달리기의 참 정신을 구현하려 나름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
연골이 닳아서 이제는 못 뛴다고 ? 뼈가 0.5 mm 내려앉았다고 ??
도대체 내려앉았으면 내려앉은 체로 뛰면 안 되는 것일까 ?
아니야 , 무슨 수 가 있을꺼야.
연골을 새로 만들어 넣던지, 무얼 부어 넣으면 될꺼야 !
좀 두고 보자.
연골의 성분이 무언가 ?
그래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자.
한글 사전에 안 나오면 대영 백과 사전을 찾아보자.
연골은 , 연골은, 무슨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으면 다시 생길꺼야 , 아마 !
하루에 20 km 씩 뛴다고 닳다니...
이 봉주는 50 km 씩 을 매일 뛰는데,
저기 옆방에 왔다 갔다는 소리는 못 들었쟎아 ?
연골은, 연골은 , 어쩌면
그냥 내가 집에서 어떻게 식이요법으로 만들 수도 있을랑가 몰라 ...
아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꺼야 !
아직도 물리 치료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야 !
아마, 원장의 말씀이 맞을 런지도 몰라.
연골은 그렇게 쉽게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꺼야 !
아마, 생각하기는 싫지만, 나는 이제 마라톤은 끝난 것인지도 몰라 !
그러면 어떻게 되나, 이제 ??
그래도 나는 실내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방이 막힌, 폐쇄된 공간의 원이나 사각을 빙빙 도는
그런 무료한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콱 막힌 공간, 할 수 없이 몇 개의 창문을 내 주어
죽지 않을 정도의 공기, 눈을 잃지 않을 정도의 빛만 구걸 당하는
실내에서의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두 볼을 간지리는 바람을 맞아야 하며,
나는 내 두 눈을 살며시 감기우는 따스한 태양을 내 몸에 발라야 하며
내 두 다리는 대지를 밟고 차 넘어야 한다.
나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변화를 내 직접 눈으로, 코로, 양 볼로
비비며 맛을 보아야 하고,
그것들의 진한 액을 내 추억의 낱장에 차곡차곡 끼어 넣어야 한다.
감정이 없는 유리방 안에서 , 날개 없는 몸으로 헛 땀방울을 흘려서는 안된다.
만일 연골이 닳아 없어져 두 다리 운동이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난 내 팔로, 내 어께로 당당히 밝은 태양 앞으로 나갈 것이다
바퀴의자 마라톤 ?
손 자전거 마라톤 ?
또 뭐가 있더라 ?
아니야 !
이건 말도 안돼 !
어찌 그것이 성한 두 다리로 뛰는 마라톤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어찌 그것이 목까지 차고 올라오는 벅찬 숨 헐떡거림이 주는
희열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어찌 그것이 흐르고, 또 흐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 그 위에 또 흐르는
소금 끼 어린 땀이 보상해주는 기쁨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래, 한번 쉬어 보자 !
한번 쉬어 보자 !
한 두어 달 쉬어 보자 !
죽은 듯이 쉬어 보자 !
그리고 그 동안 혹사 받은 육체에 잘못도 빌어 보자 !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를 내 몸에서 짜내 보자 !
그리고 겸허하니 다시 시작해 보자 !
나의 마라톤 첫 완주 때의 그 가슴 벅찼던 감흥을 잠시 접어 보자.
그래, 그렇게 겸손하게, 쉬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그러면 무슨 수 가 있을꺼야 !
아직도 물리 치료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지금부터 마라톤이다.
뛰고 싶어 온 세포가 들고 일어 나는 그 욕망을 내리 누르는
기나긴 인고의 마라톤 여정이다.
얼마나 괴로운 매일 아침이 다가 올 것인가, 이제 .
얼마나 참기 어려운 욕정의 짓누름을 나는 견뎌야 할까 , 이제 .
매일 새벽 한동안, 나는 자명종이 없어도 그 시각에 절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용 마라톤화는 신지 않게 될 것이다, 적어도 상당한 기간에는...
나의 애용품, 목뒤와 귀 언저리를 펄럭거리며 덮는 사막 마라톤용 모자도 쓰지 않고,
내 허리를 한바퀴 돌아 앞배에 딸깍 ! 하고 채워지는 물통 혁띠도 차지 않고,
아마 나는 한동안,
밝아 오는 새벽의 상큼한 기운을
한 손은 베란다 창틀 위에 높이 쳐들고,
오른 다리는 서 있는 왼다리를 비비꼬아, 발 뒷축을 세우고,
그냥 그대로 그렇게 서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제목만 대강 훑고, 홀연히 바깥으로 나가며 소파 위에 던졌진 신문을
이제 꼬박 꼬박 정독하며 새벽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하고 싶은 욕망을 내리 누르는 ,
내리 눌러야만 하는 기나긴 인내의 여행을 할 것이다
뜀질이 없는 마라톤, 머리 속의 마라톤, 나가자고 용을 쓰는 세포를 달래는
나 자신을 억 누르는 의지와의 아주 힘든 마라톤을 할 것이다.
내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이 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리고 기적같이 다시 일어나,
다시 또 그 밝은 태양 속으로 나의 벗은 알몸을 내 던지게 될 것이다.
자, 오늘부터, 지금부터 출발이다.
총성을 울려다오, 대포를 쏘아다오. 나의 비장한 새로운 마라톤 출발에
신호를 올려다오.
그러자 입구에서 " 치-익 "하고 주름 커튼이 젖혀지더니
간호사가 일러준 물리치료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주문에 착한 아이처럼
나는 나의 다리 한 짝을 진료용 찜질 베개 위에 철푸덕 ! 하고 올려놓았다.
바깥은, 바깥은 아주 화창한,
마라톤하기 아주 좋아 보이는,
5 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요일 태양이 젖혀진 커튼 사이로
누운 나를 이상하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도저히 예쁘게 봐 줄 수 없는 마라톤에 대한
대책 없는 저돌성에 제동이 걸렸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매일 아침 진료 전에 간호사들과 함께 기도를 하는
제법 뚱뚱한 정형외과 원장이,
앉은뱅이 진료 의자에 앉아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멋 적게 앉아 있는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본다. 책상 위의 진료카드와 함께 번갈아 가면서...
그 원장은 나를 여러 번 진료해서 나를 잘 안다.
공 차다가 다리가 두 번 부러져서 이곳을 들락 거렸고,
또 공 차다가 왼쪽 위쪽에서 아래로 네 번째 갈비가 나가서
현대 중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하고,
그 회복 땜에 또 이곳 동네 정형외과를 들락 거렸으니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얼굴도 저절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내가 이제 축구를 그만 두고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오기 두 세 달 전, 과도한 달리기로 발목 부상을 입어
진료 차 왔을 때, 나에게 마라톤을 말린 적도 있었다.
아주 진지한 설득조로.....
방금 전 마시고 탁자에 딱 ! 내려놓은 우유 컵 맨 위 우유 흘러내림처럼,
히뿌연 X - Ray 사진 탐독기에 걸쳐진 내 오른 쪽 발목 뼈 사진을
보고 그 제법 뚱뚱한 원장은 말했다.
" 이제, 마라톤은 그만하고 수영 쪽으로 바꿔 보시죠.
이제 헐 수 없이 그래야 되겠네요. "
내가 듣지 못 했거나, 뜻을 알아채지 못해 대꾸가 없다고
생각한 듯, 다시 또 말한다.
" 발목 연골이 닳아서 0.5 mm 정도 내려앉았습니다.
여기 이 사진 보시죠 !
마라톤을 계속 하다보면 나중에는 보행도 어려워집니다 "
그래도 대꾸가 없이,
콩밭 매러 보리 밭길 지나 가다가
동네 선 머슴한테 벼락 같이 당한 새침때기 아줌마처럼
멍하니 얼이 빠진 것 같은 나를 다시 한번 보더니 또 덧붙인다.
" 최악의 경우는, 보행만이라도 생각 할 경우에, 발목에 인공 연골 삽입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내 말은 최악의 상황 일 경우 에란 말입니다.
그렇게 까지 가서는 안되겠지요..... "
나는 진료를 위해 벗었던 오른쪽 양말을 신으려고
포장 뜯은 콘돔 모양 돌돌 말린 양말을 발 앞구리에 풀어 넣으려다가
그냥 맨 발을 구두에 반쯤 넣고 쩔룩거리며 진료실을 나왔다.
제법 뚱뚱한 원장의 책상 위에는 이미 다른 환자의 진료 카드가 올려지고,
원장의 오른손에는 오래된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뱅뱅 돌려지고 있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나온 간호사가 다시 나를 앞질러 복도 끝까지 가서,
문이 없이 커튼만 있는 조그만 방의 커튼을 홱 ! 거칠게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막힘 없는 설명을 토해 놓는다.
" 여기는 물리 치료실 8 호실입니다. 여기 누워 계시면 물리 치료사가 와서
치료를 시작 할 겁니다.
시간은 약 45 분 정도 소요되고요, 다 마치시면 접수대에 가셔서
돈을 내시고 약을 타시고, 내일 진료 시간을 예약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치료중에 너무 뜨겁거나, 기계의 작동으로 너무 아프면, " 8 호실 !!! " 이라고
크게 소리 치시면 간호사가 달려와서 기계를 약하게 해 주거나 찜질 수건을
갈아줍니다 "
나는 시키는 데로 허름하니 조그맣고 낡은 침대 위에 올라가 엉성하게 몸을 뉘였다.
침대보 일부가 젖어 그곳을 피해 누운 것처럼 영 폼이 나지 않는 자세로 몸을 뉘였다 .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물리치료사의 입장을 기다렸다.
주위에 이상하게 정적이 감돌았다.
벌건 대낮에 내가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하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 이건 현실이었다.
푹신한 베개 한쪽 끝이 내 귀에 걸려있는 안경 뒷다리를 밀어 올리는지,
콧등 위의 안경테가 원래보다 한쪽으로 더 붕 떠서, 나는 목을 뒤척이어
안경의 위치를 다시 제대로 자리잡아 보았다 .
아직 물리 치료사는 입장하지 않았다.
원장의 처방을 다시금 곰곰 생각해 보려 하나,
왠 일인지 정신 집중이 안되어 조금은 안타까웠다.
누굴 찾는지, 무슨 의료기구를 가지러 왔는지,
하얀 까운을 입은 한 간호사가 치익 !! 하고 커튼을 젖히고 들어와.
나 누워 있는 곳을 이리 저리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하얀 까운 겉으로 뇌살적인 둔부의 움직임이 너무 선명하다.
나가는 그 간호사의 발걸음 움직임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하얀 까운 속의 엉덩이의 크기가 내 음흉한 머리 속에 과장돼 살아있다
내 누운 침대 밑을 두리번거릴 때 잠깐 비친 그 간호사 가슴의 계곡이
내 눈에 잔상으로 남아 떠나가질 않는다.
어쩌다 본 포르노의 음흉한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벌건 대낮, 하얀 칠의 치료실, 하얀 까운의 간호사. 드리워진 커튼..
내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
나의 한심함에 나 자신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물리치료사는 입장하지 않았다.
나에게 조금 더 생각의 시간이 주어졌다.
가만, 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좀 더 진지하고 심각해져 보자.
나는 이제 뛸 수 가 없게 되는 걸까 ??
내가 정말 무모하게 덤빈 것일까 ?
마라톤의 참 의미를 망각하고 천방지축 날 뛴 것일까 ?
그렇친 않았잖는가 ?
70 살, 80 살까지 뛰자고, 진정한 뜀꾼이 되자고,
생각하는 뜀꾼이 되자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
주위 친구들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핀잔을 들으며 술도 멀리하고,
뛰는 도중 내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자연과 가슴을 열어 속삭이며,
그토록 진지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내 육체가 허락하는 힘의 안배에도 귀를 기울이며
겸손한 달리기의 참 정신을 구현하려 나름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
연골이 닳아서 이제는 못 뛴다고 ? 뼈가 0.5 mm 내려앉았다고 ??
도대체 내려앉았으면 내려앉은 체로 뛰면 안 되는 것일까 ?
아니야 , 무슨 수 가 있을꺼야.
연골을 새로 만들어 넣던지, 무얼 부어 넣으면 될꺼야 !
좀 두고 보자.
연골의 성분이 무언가 ?
그래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자.
한글 사전에 안 나오면 대영 백과 사전을 찾아보자.
연골은 , 연골은, 무슨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으면 다시 생길꺼야 , 아마 !
하루에 20 km 씩 뛴다고 닳다니...
이 봉주는 50 km 씩 을 매일 뛰는데,
저기 옆방에 왔다 갔다는 소리는 못 들었쟎아 ?
연골은, 연골은 , 어쩌면
그냥 내가 집에서 어떻게 식이요법으로 만들 수도 있을랑가 몰라 ...
아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꺼야 !
아직도 물리 치료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야 !
아마, 원장의 말씀이 맞을 런지도 몰라.
연골은 그렇게 쉽게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꺼야 !
아마, 생각하기는 싫지만, 나는 이제 마라톤은 끝난 것인지도 몰라 !
그러면 어떻게 되나, 이제 ??
그래도 나는 실내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방이 막힌, 폐쇄된 공간의 원이나 사각을 빙빙 도는
그런 무료한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콱 막힌 공간, 할 수 없이 몇 개의 창문을 내 주어
죽지 않을 정도의 공기, 눈을 잃지 않을 정도의 빛만 구걸 당하는
실내에서의 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두 볼을 간지리는 바람을 맞아야 하며,
나는 내 두 눈을 살며시 감기우는 따스한 태양을 내 몸에 발라야 하며
내 두 다리는 대지를 밟고 차 넘어야 한다.
나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변화를 내 직접 눈으로, 코로, 양 볼로
비비며 맛을 보아야 하고,
그것들의 진한 액을 내 추억의 낱장에 차곡차곡 끼어 넣어야 한다.
감정이 없는 유리방 안에서 , 날개 없는 몸으로 헛 땀방울을 흘려서는 안된다.
만일 연골이 닳아 없어져 두 다리 운동이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난 내 팔로, 내 어께로 당당히 밝은 태양 앞으로 나갈 것이다
바퀴의자 마라톤 ?
손 자전거 마라톤 ?
또 뭐가 있더라 ?
아니야 !
이건 말도 안돼 !
어찌 그것이 성한 두 다리로 뛰는 마라톤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어찌 그것이 목까지 차고 올라오는 벅찬 숨 헐떡거림이 주는
희열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어찌 그것이 흐르고, 또 흐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 그 위에 또 흐르는
소금 끼 어린 땀이 보상해주는 기쁨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래, 한번 쉬어 보자 !
한번 쉬어 보자 !
한 두어 달 쉬어 보자 !
죽은 듯이 쉬어 보자 !
그리고 그 동안 혹사 받은 육체에 잘못도 빌어 보자 !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를 내 몸에서 짜내 보자 !
그리고 겸허하니 다시 시작해 보자 !
나의 마라톤 첫 완주 때의 그 가슴 벅찼던 감흥을 잠시 접어 보자.
그래, 그렇게 겸손하게, 쉬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그러면 무슨 수 가 있을꺼야 !
아직도 물리 치료사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지금부터 마라톤이다.
뛰고 싶어 온 세포가 들고 일어 나는 그 욕망을 내리 누르는
기나긴 인고의 마라톤 여정이다.
얼마나 괴로운 매일 아침이 다가 올 것인가, 이제 .
얼마나 참기 어려운 욕정의 짓누름을 나는 견뎌야 할까 , 이제 .
매일 새벽 한동안, 나는 자명종이 없어도 그 시각에 절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용 마라톤화는 신지 않게 될 것이다, 적어도 상당한 기간에는...
나의 애용품, 목뒤와 귀 언저리를 펄럭거리며 덮는 사막 마라톤용 모자도 쓰지 않고,
내 허리를 한바퀴 돌아 앞배에 딸깍 ! 하고 채워지는 물통 혁띠도 차지 않고,
아마 나는 한동안,
밝아 오는 새벽의 상큼한 기운을
한 손은 베란다 창틀 위에 높이 쳐들고,
오른 다리는 서 있는 왼다리를 비비꼬아, 발 뒷축을 세우고,
그냥 그대로 그렇게 서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제목만 대강 훑고, 홀연히 바깥으로 나가며 소파 위에 던졌진 신문을
이제 꼬박 꼬박 정독하며 새벽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하고 싶은 욕망을 내리 누르는 ,
내리 눌러야만 하는 기나긴 인내의 여행을 할 것이다
뜀질이 없는 마라톤, 머리 속의 마라톤, 나가자고 용을 쓰는 세포를 달래는
나 자신을 억 누르는 의지와의 아주 힘든 마라톤을 할 것이다.
내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이 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리고 기적같이 다시 일어나,
다시 또 그 밝은 태양 속으로 나의 벗은 알몸을 내 던지게 될 것이다.
자, 오늘부터, 지금부터 출발이다.
총성을 울려다오, 대포를 쏘아다오. 나의 비장한 새로운 마라톤 출발에
신호를 올려다오.
그러자 입구에서 " 치-익 "하고 주름 커튼이 젖혀지더니
간호사가 일러준 물리치료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주문에 착한 아이처럼
나는 나의 다리 한 짝을 진료용 찜질 베개 위에 철푸덕 ! 하고 올려놓았다.
바깥은, 바깥은 아주 화창한,
마라톤하기 아주 좋아 보이는,
5 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요일 태양이 젖혀진 커튼 사이로
누운 나를 이상하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서울
고덕 달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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