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주(樂走)와 낙주(樂酒)의 어려움- 주도유단(走道有段)을 통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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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2-02-03 08:20 조회4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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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에 입문한 지 지난 1월말로 어느듯 1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에 맛보고 이룬 변화와 성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드라매틱하고도 직핍(直逼)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신체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마라톤에 입문하기 직전인 지난 2000년 10월의 제 몸무게는 70KG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키가 170CM이니 심각한 과체중상태는 아니라 하겠지만 간혹 어쩌다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계단오르기(5호선 이후에 건설된 지하역사까지의 계단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혹자는 만성적인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도시철도공사가 배려를 했대나 어쨌대나...)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도가니(무릎)에 직접적인 압박과 통증을 느낌은 물론 호흡은 또 얼마나 가쁘던지, 숨을 한참동안 몰아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마라톤 입문 6개월후에는 62KG까지 줄어든 체중 덕분에 계단을 날렵하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35-6인치를 오락가락하던 허리사이즈도 31인치로 줄어든 덕분에 허리끈을 상당부분 잘라내어야 했고 바지는 허리부분을 접어서 입게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비스듬히 누워 있으면 복둔불분(腹臀不分:배와 엉덩이가 구분이 되지 않음)이라 아내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몸맵시도 날씬하게 되었고 주식시장 관련 인터뷰로 텔레비젼에 얼굴이 비치면 화면이 모자랄 지경이라 '얼큰이'라고 방송국 카메라 기자에게 구박아닌 구박을 받던 얼굴도 씰데 없는 살이 달아나 브라운관안으로 알맞게 복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많이 달리면 되는 줄 알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식하게 달렸습니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질 때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처음 입문부터 반달에서 하프를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달에 300KM이상을 목표로 용맹정진하였고 그 후 점차 거리를 늘여 1일 20Km, 월 600KM이상으로 목표를 상향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일일부주(一日不走)면 족중생형극(足中生荊棘)이라,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돋을까 염려되어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미명(未明)의 새벽과 칠흑같은 밤의 적막을 깨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상은 커녕 발바닥에 물집 한 번 잡혀 본 적이 없었으니 더욱 만용을 부리게 되었는지도 모를일입니다.
새벽같이 나가 뛰다가 이른바 '런너스 하이'에 걸려 출근시간을 놓치고 아내가 뜀박질하는 장소로 찾아 오는 경우도 서너번 경험했습니다. 과천 대공원 부근과 한강변을 오가며 달리는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고자 전국의 유명한 달리기 코스를 원정, 섭렵하는 극성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화방조제, 백운호수, 고향과 가까운 합천의 황강변, 부산의 동백섬과, 다대포 바닷가, 대관령의 임도(林道), 대구의 신천 둔치, 포항의 호미곶등 등, 지리(地理)의 원근(遠近)과 연고(緣故)의 유무(有無)에 구애됨이 없이 돌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언덕훈련을 한답시고 남태령을 넘나들다 매연에 혼이 난 뒤에는 신 새벽에 대공원 동물원안으로 잠입하여 고요히 잠에 취해 있는 동물가족들의 단잠을 깨워 놓아 대공원안이 이들의 짜증섞인 울음소리로 가득차게 한 적도 몇번이나 됩니다. 술을 한 잔하고 마음이 울적할때는 퇴근길에 여의도에서 남산까지 걸어가서 신사복 차림에 구두발로 남산의 순환도로를 달리는 웃지 못할 기행을 한 적도 있습니다. 꿈에도 마라톤시합에 출전하여 기록을 단축하려고 용을 쓰다 가위에 몇번 눌리기도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공부했으면 고시 몇개는 쉽게 패스 했을 거라'며 혀를 차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어느듯 돌이킬 수 없는 중독증세를 자각한 것은 마라톤 입문후 꼭 1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조일 춘천마라톤을 마친 후 였습니다. 당시는 이미 몇 차례 풀코스 시합에 참가하여 완주를 하였고 엄청난 훈련과 완벽한 식이요법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터라 내심 서브쓰리는 아니지만 40대 후반 보스턴 참가자격기록인 3시간 25분안으로는 들어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레이스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골인지점을 힘들고 괴로움을 못이겨 하는 귀면(鬼面)의 나찰형상을 하고 통과하였지만 기록은 3시간 34분 06초, 같이 간 달리기 동무들의 환영을 받으며 애써 태연 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엄습하는 낭패감과 무력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풀코스 완주 후 항상 체험하는 바이지만 한없이 피곤한 육체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명료해지는 정신의 언밸런스(이것도 '런너스 하이' 증상의 일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는 어쩔 수 없이 술을 찾게 만듭니다. 그것도 독주로. 집에 돌아온 시각이 거의 12시가 다 되었지만 독주를 연거푸 큰 잔으로 서너잔 한 뒤에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부터 찾아드는 허무함과 공허함은 정말 생경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어떤 지독한 실연의 후유증도 휑한 가슴속을 파고드는 그 스산한 바람을 설명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별러왔던 큰 대회에서 목표한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아쉬움과 무상함떄문이려니하고 몸을 어느 정도 추스린 다음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나 가슴속에 이는 그 스산한 바람은 날이 갈수록 세차게 밀려들었습니다. 자연히 달리기가 시들해지고 술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일찍이 호주(好酒)의 단계를 넘어 호주(豪酒)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라 혼자서 하는 술자리지만 점입가경으로 질펀해졌습니다. 가까운 연배의 달리기 동무들을 LSDT하자고 꾀어내어 달리기는 대충하고 뒷풀이판의 술에만 충실했습니다.일요일 정오가 채 되지 않아서 시작한 술자리가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한달 가깝게 그렇게 허허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호미곶대회를 앞둔 12월 초순이었습니다. 대회에 참가신청은 이미 해 놓았고 아내는 친정나들이를 겸해서 동행하기로 했으니 몸을 다시 추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미곶마라톤 코스는 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곳으로 크고 작은 언덕만 30여개가 됩니다. 대회를 주최한 포항 그린넷마의 오주석 회장께서도 코스가 힘들고 험한만큼 기록에 연연해하지 말고 주위의 좋은 풍광을 즐기며 낙주(樂走;FUN RUN)를 당부하시더군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저에게 포항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레이스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저에게 FUN RUN이라는 어휘는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냐 내 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유년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며 천천히 즐기며 달리리라' 다짐을 하며 출발을 하였지만 그 다짐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몸도 만들지 않은 주제에 쓸데없는 호승심(好勝心)과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자연히 몸에 힘이 들어가며 정말 낙주하는 주자들을 보란듯이 추월하기도 하며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유년의 기억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조일 춘천마라톤의 기록을 당겨보자는 가당치도 않은 음흉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기록갱신의 헛된 꿈은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무참하게 꺽여버렸습니다. 다시 낙주로 방향을 바꾸고 비굴한 쓴웃음과 함께 애써 자위를 해 보았지만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겠습니까! 결승점 가까이 되니까 시간은 거의 4시간에 육박하였고 이번에는 Sub-4는 해야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더군요. 죽을 힘을 다해 골인을 하니 3시간 57분36초, 만사휴의(萬事休矣)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레이스를 마치고 씁쓸한 심정으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꾸짖더군요.
'네 이제 갓 주졸(走卒;달리기 초보)의 단계에 들어 선 자가 언감생심 낙주를 생각하느뇨. 가당치도 않은 놈 같으니'
그러자 이번에는 해풍이 언 뺨을 매섭게 때리며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이르기를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자에게 낙주란 없으니 그 경지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기나 하느냐!'
그렇습니다. 흔히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 '낙주(Fun Run)나 하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낙주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더군요.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기록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는 일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낙주'라는 화두의 어슴프레한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지난 일요일 우리 클럽 회원들끼리 가진 풀코스 달리기 모임이었습니다. 박영석 회장님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이 풀코스 반환점과 반달하프 반환점의 급수대에서 손수 물을 따라주시며 격려를 해 주시더군요. 시합때와는 달리 매 5KM급수가 불가능한 지라 주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바쁘신 박영석 화장님은 홍길동 처럼 여의도 출발점으로 어느 새 이동하셔서 연양갱과 사탕 그리고 음료수를 손수 건네 주시면서 힘을 주셨습니다. 그떄 저는 회장님과 자원봉사자들의 맑은 얼굴에서 '저분들은 몸은 비록 서 있지만 마음으로는 낙주를 하고 계시는 구나'하는 느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즐길 수 있음은 무엇에 무작정 탐닉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버릴 줄 아는 여유로움과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 있어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않고 진정한 술꾼은 술과 싸우지 않음이니 무릇 낙주를 하려하는 자는 욕심을 버리고 기록과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여전히 어렵고도 힘든 것이 낙주(樂走)와 낙주(樂酒)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낙주(樂走)와 낙주(樂酒)의 경지는 범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은 단계에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오래전에 제가 올려 기억속에서 아스라한 '주도유단(走道有段)'이라는 글을 다시 음미하며 진정한 낙주(樂走)와 낙주(樂酒)의 경지와 의미를 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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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유단(走道有段)-2001년 1월
일찍이 조 지훈 선생은 주도유단(酒道有段) 이란 수필을 통 하여 그 사람의 주정(酒酊) 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 (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고 설파 하신 바 있습니다. 즉 술을 마시는 것도 일 종의 도(道)인 만큼 그 깊이와 높이에 따라 주도(酒 道)에도 엄연히 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술 을 마신 연륜과 같이 술을 마신 친구, 술을 마신 기회와 동기, 술 버릇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모두 18 단계로 그 경지를 나눈바 있습니다.
술 (酒)과 달리기(走), 언뜻 보면 이 둘 사이에는 발음이 같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다는 중독성과 빠져나올 때 겪게 되는 고통스런 금단현상을 들 수 있겠지요.
올 겨울 눈이 많이 와서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못하자 달릴 장소를 찾는 의견들이 우리클럽 ‘만남의 광장’에도 몇 편인가 올라 온 적이 있습니다. 풍귀터널, 을지로 지하보도, 하다못해 간선도로의 인도까지 얼지 않은 주로(走路)로 추천된 적인 있었지요.
또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며칠 술을 마시지 못하면 안절부절 하듯이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들도 한 일주일 달리지 못하면 공연히 불안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엄청난 주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거리 완주 후 들이키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가 주는 청량감은 그것이 체력회복에는 좋지 않은 것을 잘 알지만 쉽게 뿌리치기가 어려운 유혹입니다. 어쨌든 술(酒)과 달리기(走)는 몇 가지 공통점과 예사롭지 않은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조 지훈 선생 이 주장하신대로 주도 (酒道)에 단이 있다면 주도(走道)에도 단이 있다할 수 있겠지요. 달리기를 한 연륜, 그 동기 , 주법(走法), 달리기를 할 때의 버릇 등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주력(走歷)과 함께 주력(走力)을 알 수 있지 않을 까요. 마라톤보급이 날로 확산되어 명실공히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작 금의 상황에 접하여 아직 초보자 주제에 외람되지만 대 시인의 주장을 감히 차용(借用 )하여 아직은 일천한 달리기 생활을 통해 겪은 소회(所懷)의 일단을 피력하니 이름 하여 주도유단 (走道有段 )이라해 봅니다.
(1)불주(不酒 ;不走)는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 마찬가지로 달리기를 아주 모르진 않으나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주 초보자여서 달리기(마라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레 겁을 먹거나 잘못 된 달리기로 부상등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한 뒤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겠다고 철석 같은 맹세를 한 사람들이 이 단계에 속합니다.
(2) 외주(畏酒; 畏走)는 술을 마시긴 하나 술을 겁내는 사람으로 달리기에서는 달리기(마라톤)에 대한 막 연한 공포심(대부분이 거리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 가볍게 걷는 다거나 조깅수준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단계입니다. 조금 단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가끔 ‘새가슴’이라는 비아냥거 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3)민주(憫酒 ;憫走)는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을 이르는 단계입니다. 달리기를 한 경험도 있고 겁내지도 않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런닝팬츠(겨울철에는 ‘통아저씨’를 방불케하는 타이즈차림)바람으로 뜀박질을 하는 것이 특히 골프나 테니스와 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어딘가 점잖치 못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4)은주( 隱酒 ;隱走)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 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달리기는 어차피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은밀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 주위 사람이 알까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므로 결코 동호인 모임등에 가입하는 법이 없습니다.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잘 모르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5)상주 (商酒;商走)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 달리기를 잘 알고 좋아하면서도 크게는 각종대회의 상금이나 기록, 작게는 기념품, 메달 등에 집착하여 달리기생활을 하는 사람.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는 법이 없고 대회에만(그것도 큰 공식대회)참석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접대골프와 같이 접대달리기같은 것이 나올 날도 있지 않을까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란히 한강변을 달리면서 상담도 하고 계약을 한다면 그야말로 상주(商走)가 되겠지요.
(6)색주 (色酒;色走) 는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달리기가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선주성 님이 쓴 ‘런맨의 헬스리포트: 달리기를 하면 밤이 기다려진다’ 조선일보 이 메일클럽 2001년 2월 1일자 참조).유산소운동인 달리기는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신체적인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성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달리기생활을 통해 얻어진 자신감이 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섹스 그 자체만을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겠지요.
(7)수주(睡酒 ;睡走)는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거의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이룬 경험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지요.
(8)반주(飯酒 飯走)는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솟구치는 식욕은 우리가 매번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울마라톤 클럽에 가입하고 처음 반달모임에 나가서 엉겹결에 고수들을 따라 하프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하게 되었습니다.(기록은 비밀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제가 골인할 때까지 상당시간을 기다렸다는 사실만 밝혀드립니다.) 당시 반환점에서 박 영석 회장님께서 건네주신 생수 한 잔과 사탕 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과천에 살고 있는 저는 매일 아침 과천대공원 호수 순환도로를 10Km달린 후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아침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달리기를 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양의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게 되어 체중이 오히려 늘어날까 봐 집사람의 눈살이 찌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9)학주(學酒; 學走)는 술의 진경(珍景) 을 배우는 사람으로 주졸(酒卒)의 단계입니다. 달리기의 묘미를 터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단계의 사람을 말합니다. 웬만한 달리기관련 서적이나 이론서는 섭렵을 하고 국내외를 막론한 마라톤 관련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핑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물론 훈련일지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작성하지요. 각종 공식대회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참가하게 됩니다. 당연히 기록향상을 위한 과학적인 훈련법을 배우고 익히느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입니다. 동호회에도 가입하게 되고 열심히 활동합니다. 달리기 관련 용품을 구입하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또 고수들을 찾아 한수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훈련요령과 레이스 운영방법등이 정립되어 있고 주법이나 자세등도 안정되어 있는 단계입니다. 물론 자기만의 마라톤철학도 구비하고 있지요. 새로운 이론이나 용품 같은 것이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터득하거나 구입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마라톤이 항상 생활의 중심에 있으며 그 무엇도 이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담배는 물론 그 좋아하는 술도 달리기를 위해서는 절제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끊어버리는 단계입니다. 한마디로 달리기를 위해서 수도승과 같은 일상을 보내게 되는 단계입니다.
(10) 애주(愛酒;愛走 )는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으로 주도(酒徒)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달리기에서는 학주(學走)의 경지에서 진일보한 상태로 나름대로 달리기관(觀)을 정립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공식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다양한 코스를 섭렵하고 골고루 실전경험을 쌓아나갑니다. 마침내 국외의 코스에 까지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달려본 코스 하나하나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어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습니다. 잦은 대회출전(국외대회 포함)으로 가족들의 원망스런 눈총을 받을 때가 많아지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미안해하지만 겉으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단계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달리기 전도사’라고 할 만큼 주위사람에게 달리기의 좋은 점을 알리고 권유하는데도 적극적입니다.
(11) 기주(嗜酒; 嗜走) 술의 진미 에 반한 사람으로 주객(酒客) 이라고도 합니다. 달리기 묘미에 깊숙하게 빠져든 사람 , 중증의 중독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취미, 특기란에 서슴없이 달리기라고라고 적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지요.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자신은 생각할 수도 없는 단 계입니다. 일상의 어떤 행동보다 달리기는 우선합니다. ‘달리기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좌우명이 됩니다. 가끔 무의식(Runner's High)상태에서 아침 달리기를 하다가 직장에 지각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공식대회에서는 기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레이스를 망치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러나 그 쓰라린 실패 자체도 즐기는 단계입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참가가 꿈이고 Sub-3를 거쳐 Sub-2를 목표로 넘보게 됩니다.
(12) 탐주 (眈酒;眈走) 는 술의 진경 (珍景)을 체득한 사람으로 가히 주호(酒豪 )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입니다. 달리기에서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정규 마라톤코스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국내외 울트라마라톤, 테트라마라톤, 24시간, 48시간, 72시간 지속주, 국토동서횡단, 국토남북종단,등에 기꺼이 참가하여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 됩니다. 가끔 종목을 바꿔 철인3종경기로 전향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레이스에는 모두 참가한 경험을 가지게 됩니다. 기록도 물론 중요시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인내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이른 바 한계상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흥분과 설레임, 그리고 고통 그 자 체를 즐기게 됩니다. 하수(下手)들은 거의 자학(自虐)에 가까운 이들의 처절을 극한 몸짓에 전율하며 무한한 외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13) 폭주( 暴酒;暴走)는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으로 주광( 酒狂)이라고도 합니다.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입니다. 탐주의 경지를 지나 달리기에 완전히 몰입하는 단계입니다. 무술을 수련하듯이 온갖 주법(走法)을 모두 익히고 실제로 레이스에 적용합니다.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의 주법과 기록도 벤치마크로 삼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심리, 호승심(好勝心)으로 가슴은 항상 불타오르고 눈동자는 이글거리게 됩니다. 당연히 훈련량도 많아지지요, 스피드훈련, 인터벌훈련, 언덕훈련, 계단오르기등 전천후훈련에 돌입, 훈련과 실전을 구분하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세계대회 출전을 앞둔 국가대표선수의 강훈(强訓)을 능가합니다. 형편만 되면 요즈음같이 이상기후로 달리기환경이 좋지 않은 때는 국내외 전지훈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러 만약 달리기에도 골프처럼 프로 입문과정이 있다면 기꺼이 직장생활은 청산을 하고 전업마라토너(?)로 나서게 됩니다. 직장에서의 그 어떠한 만류나 유혹, 그리고 가족이나 친지들의 격렬한 반대도 그를 잡지는 못합니다. 또, 달리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실전적인 경험을 통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14)장주(長酒;長走 )는 주도삼매(酒道三昧)에 빠진 사람으로 주선(酒仙)의 경지에 오른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며 삼매경에 빠져드는 단계입니다.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함부로 달리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려 즐거움을 낚는 유유자적함과 함께 남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극한 상황에서 간혹 경이적인 기록을 내 보여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驚歎)케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내면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는 불꽃같은 치열함을 하수들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15)석주(惜酒 惜走)는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으로 주현(酒賢)이라 고도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달리기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함부로 달리기에 나서지도 않고 달릴 기회를 아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달리기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실제로 참가하는 대회보다 자원 봉사하는 대회 수가 훨씬 많습니다. 레이스 운영도 하수들이 보기에는 답답하리만치 신중하고 치밀하게 합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경쟁심리도 없어지고 결코 기록을 의식하는 법이 없지만 항상 좋은 기록을 낳게 됩니다.
(16) 낙주(樂酒;樂走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으로 주성(酒聖)이라 칭합니다. 안 달려도 달린 것 같고 달려도 안 달린 것 같은 단계입니다. 기록의 변화, 달리기 세계의 번잡한 일상사에서 초월하여 사소한 일로 결코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법이 없습니다. 후진 양성과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17)관주 (觀酒;觀走) 는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으로 주종( 酒宗)이라 칭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누렸던 달리기 생활에서 체득한 무상(無常)한 기록변화와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반추(反芻)하며 그 자체를 즐거워하되 육체적, 정신적, 혹은 기록적으로 이미 달관하여 더 이상 달리기 대회에 참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단계입니다.
(18) 폐주 (廢酒:廢走) 는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으로 열 반주(涅槃酒)의 단계라고도 합니다 .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겪은 갖가지 경험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성내고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달리기로 인하여 장렬히 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달리기세상을 찾아 먼 길을 떠나게 된 사람을 이릅니다. 아무쪼록 영면(永眠)하시라.
이중 불주, 외주 , 미주, 은주는 아직 술의 진경 ,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같이 달리기의 진미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요 .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를 모르는 단계로 달리기에서도 작은 목적을 위해 뛰다가 걷다가 하며 희로애락을 되풀이하는 단계라 하겠습니다.
조 지훈 선생은 학주의 자리 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이라는 칭호를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반주는 2 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불주가 9급이라 , 그 이하는 술과 달리기를 아예 배척하거나 반주당 (反走黨)이라 할지니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겠지요 .
애주, 기주 , 탐주, 폭주는 술과 달리기의 진미 , 진경을 스스로 깨우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 관주는 술과 달리기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생 께서는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徒)란 칭호를 줄 수 있다 하셨으니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 가 9단으로 명인급(名人級)입니다 . 그 이상은 이미 이승사람들이 아니라 단을 매 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을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하셨습니다. 다만 술에 있어서나 달리기에 있어서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우선 수업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요, 정신적, 육체적 수행연한이 또한 기 십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간혹 각종 달리기 비무대회(比武大會)에서는 약관의 나이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는 강호들이 있는 것이 사실 이나 이는 예외로 칠 수밖에요. 기량 만으로만 따진다면 고단자(高段者)들이 우리 주위에도 즐비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주도(走道)의 단(段)은 그것이 엄연한 도(道)인 이상 단순히 기량만으로 매길 수 없는데 그 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도(道)이든지 진정으로 배우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이 어렵고 그 때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깨우쳐나가는 재미와 즐거움 또한 그 무엇에도 비견할 바 없이 큼을 간파하신 선생께서는 음주유단, 고단도 많지만 학주(學酒)의 경(境)이 최고경지라고 글을 맺으셨는데 달리기에서도 학주(學走) 혹은 주졸(走卒)의 단계가 가장 빛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본격적인 달리기 시즌을 앞두고 조석으로 달리기에 여념이 없으신 전국의 동호인 여러분, 여러분의 주도(走道)는 하단(何段)에 처(處)해 있으며 지향하시는 단은 또 어디인지요? 까마득한 초보인 저는 오로지 학주 혹은 주졸의 경지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오늘도 열심히 달리렵니다. 그 이상은 저한테는 가당치도 않고 능력에도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고단(高段)을 목표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하시는 것은 좋으나 부디 열반주(涅槃走)의 경지에 도달함은 피하소서.
모닝스타 정 병선
마라톤에 입문하기 직전인 지난 2000년 10월의 제 몸무게는 70KG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키가 170CM이니 심각한 과체중상태는 아니라 하겠지만 간혹 어쩌다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계단오르기(5호선 이후에 건설된 지하역사까지의 계단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혹자는 만성적인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도시철도공사가 배려를 했대나 어쨌대나...)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도가니(무릎)에 직접적인 압박과 통증을 느낌은 물론 호흡은 또 얼마나 가쁘던지, 숨을 한참동안 몰아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마라톤 입문 6개월후에는 62KG까지 줄어든 체중 덕분에 계단을 날렵하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35-6인치를 오락가락하던 허리사이즈도 31인치로 줄어든 덕분에 허리끈을 상당부분 잘라내어야 했고 바지는 허리부분을 접어서 입게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비스듬히 누워 있으면 복둔불분(腹臀不分:배와 엉덩이가 구분이 되지 않음)이라 아내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몸맵시도 날씬하게 되었고 주식시장 관련 인터뷰로 텔레비젼에 얼굴이 비치면 화면이 모자랄 지경이라 '얼큰이'라고 방송국 카메라 기자에게 구박아닌 구박을 받던 얼굴도 씰데 없는 살이 달아나 브라운관안으로 알맞게 복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많이 달리면 되는 줄 알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식하게 달렸습니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질 때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처음 입문부터 반달에서 하프를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달에 300KM이상을 목표로 용맹정진하였고 그 후 점차 거리를 늘여 1일 20Km, 월 600KM이상으로 목표를 상향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일일부주(一日不走)면 족중생형극(足中生荊棘)이라,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돋을까 염려되어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미명(未明)의 새벽과 칠흑같은 밤의 적막을 깨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상은 커녕 발바닥에 물집 한 번 잡혀 본 적이 없었으니 더욱 만용을 부리게 되었는지도 모를일입니다.
새벽같이 나가 뛰다가 이른바 '런너스 하이'에 걸려 출근시간을 놓치고 아내가 뜀박질하는 장소로 찾아 오는 경우도 서너번 경험했습니다. 과천 대공원 부근과 한강변을 오가며 달리는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고자 전국의 유명한 달리기 코스를 원정, 섭렵하는 극성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화방조제, 백운호수, 고향과 가까운 합천의 황강변, 부산의 동백섬과, 다대포 바닷가, 대관령의 임도(林道), 대구의 신천 둔치, 포항의 호미곶등 등, 지리(地理)의 원근(遠近)과 연고(緣故)의 유무(有無)에 구애됨이 없이 돌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언덕훈련을 한답시고 남태령을 넘나들다 매연에 혼이 난 뒤에는 신 새벽에 대공원 동물원안으로 잠입하여 고요히 잠에 취해 있는 동물가족들의 단잠을 깨워 놓아 대공원안이 이들의 짜증섞인 울음소리로 가득차게 한 적도 몇번이나 됩니다. 술을 한 잔하고 마음이 울적할때는 퇴근길에 여의도에서 남산까지 걸어가서 신사복 차림에 구두발로 남산의 순환도로를 달리는 웃지 못할 기행을 한 적도 있습니다. 꿈에도 마라톤시합에 출전하여 기록을 단축하려고 용을 쓰다 가위에 몇번 눌리기도 했습니다.
보다 못한 아내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공부했으면 고시 몇개는 쉽게 패스 했을 거라'며 혀를 차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어느듯 돌이킬 수 없는 중독증세를 자각한 것은 마라톤 입문후 꼭 1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조일 춘천마라톤을 마친 후 였습니다. 당시는 이미 몇 차례 풀코스 시합에 참가하여 완주를 하였고 엄청난 훈련과 완벽한 식이요법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터라 내심 서브쓰리는 아니지만 40대 후반 보스턴 참가자격기록인 3시간 25분안으로는 들어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레이스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골인지점을 힘들고 괴로움을 못이겨 하는 귀면(鬼面)의 나찰형상을 하고 통과하였지만 기록은 3시간 34분 06초, 같이 간 달리기 동무들의 환영을 받으며 애써 태연 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엄습하는 낭패감과 무력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풀코스 완주 후 항상 체험하는 바이지만 한없이 피곤한 육체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명료해지는 정신의 언밸런스(이것도 '런너스 하이' 증상의 일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는 어쩔 수 없이 술을 찾게 만듭니다. 그것도 독주로. 집에 돌아온 시각이 거의 12시가 다 되었지만 독주를 연거푸 큰 잔으로 서너잔 한 뒤에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부터 찾아드는 허무함과 공허함은 정말 생경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어떤 지독한 실연의 후유증도 휑한 가슴속을 파고드는 그 스산한 바람을 설명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별러왔던 큰 대회에서 목표한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아쉬움과 무상함떄문이려니하고 몸을 어느 정도 추스린 다음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나 가슴속에 이는 그 스산한 바람은 날이 갈수록 세차게 밀려들었습니다. 자연히 달리기가 시들해지고 술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일찍이 호주(好酒)의 단계를 넘어 호주(豪酒)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라 혼자서 하는 술자리지만 점입가경으로 질펀해졌습니다. 가까운 연배의 달리기 동무들을 LSDT하자고 꾀어내어 달리기는 대충하고 뒷풀이판의 술에만 충실했습니다.일요일 정오가 채 되지 않아서 시작한 술자리가 월요일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한달 가깝게 그렇게 허허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호미곶대회를 앞둔 12월 초순이었습니다. 대회에 참가신청은 이미 해 놓았고 아내는 친정나들이를 겸해서 동행하기로 했으니 몸을 다시 추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미곶마라톤 코스는 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곳으로 크고 작은 언덕만 30여개가 됩니다. 대회를 주최한 포항 그린넷마의 오주석 회장께서도 코스가 힘들고 험한만큼 기록에 연연해하지 말고 주위의 좋은 풍광을 즐기며 낙주(樂走;FUN RUN)를 당부하시더군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저에게 포항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레이스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저에게 FUN RUN이라는 어휘는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냐 내 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유년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며 천천히 즐기며 달리리라' 다짐을 하며 출발을 하였지만 그 다짐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몸도 만들지 않은 주제에 쓸데없는 호승심(好勝心)과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자연히 몸에 힘이 들어가며 정말 낙주하는 주자들을 보란듯이 추월하기도 하며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유년의 기억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조일 춘천마라톤의 기록을 당겨보자는 가당치도 않은 음흉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기록갱신의 헛된 꿈은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무참하게 꺽여버렸습니다. 다시 낙주로 방향을 바꾸고 비굴한 쓴웃음과 함께 애써 자위를 해 보았지만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겠습니까! 결승점 가까이 되니까 시간은 거의 4시간에 육박하였고 이번에는 Sub-4는 해야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더군요. 죽을 힘을 다해 골인을 하니 3시간 57분36초, 만사휴의(萬事休矣)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레이스를 마치고 씁쓸한 심정으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바다를 바라보니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꾸짖더군요.
'네 이제 갓 주졸(走卒;달리기 초보)의 단계에 들어 선 자가 언감생심 낙주를 생각하느뇨. 가당치도 않은 놈 같으니'
그러자 이번에는 해풍이 언 뺨을 매섭게 때리며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이르기를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자에게 낙주란 없으니 그 경지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기나 하느냐!'
그렇습니다. 흔히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 '낙주(Fun Run)나 하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낙주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더군요.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기록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는 일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낙주'라는 화두의 어슴프레한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지난 일요일 우리 클럽 회원들끼리 가진 풀코스 달리기 모임이었습니다. 박영석 회장님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이 풀코스 반환점과 반달하프 반환점의 급수대에서 손수 물을 따라주시며 격려를 해 주시더군요. 시합때와는 달리 매 5KM급수가 불가능한 지라 주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바쁘신 박영석 화장님은 홍길동 처럼 여의도 출발점으로 어느 새 이동하셔서 연양갱과 사탕 그리고 음료수를 손수 건네 주시면서 힘을 주셨습니다. 그떄 저는 회장님과 자원봉사자들의 맑은 얼굴에서 '저분들은 몸은 비록 서 있지만 마음으로는 낙주를 하고 계시는 구나'하는 느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즐길 수 있음은 무엇에 무작정 탐닉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버릴 줄 아는 여유로움과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 있어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않고 진정한 술꾼은 술과 싸우지 않음이니 무릇 낙주를 하려하는 자는 욕심을 버리고 기록과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여전히 어렵고도 힘든 것이 낙주(樂走)와 낙주(樂酒)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낙주(樂走)와 낙주(樂酒)의 경지는 범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은 단계에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오래전에 제가 올려 기억속에서 아스라한 '주도유단(走道有段)'이라는 글을 다시 음미하며 진정한 낙주(樂走)와 낙주(樂酒)의 경지와 의미를 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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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유단(走道有段)-2001년 1월
일찍이 조 지훈 선생은 주도유단(酒道有段) 이란 수필을 통 하여 그 사람의 주정(酒酊) 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 (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고 설파 하신 바 있습니다. 즉 술을 마시는 것도 일 종의 도(道)인 만큼 그 깊이와 높이에 따라 주도(酒 道)에도 엄연히 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술 을 마신 연륜과 같이 술을 마신 친구, 술을 마신 기회와 동기, 술 버릇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모두 18 단계로 그 경지를 나눈바 있습니다.
술 (酒)과 달리기(走), 언뜻 보면 이 둘 사이에는 발음이 같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다는 중독성과 빠져나올 때 겪게 되는 고통스런 금단현상을 들 수 있겠지요.
올 겨울 눈이 많이 와서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못하자 달릴 장소를 찾는 의견들이 우리클럽 ‘만남의 광장’에도 몇 편인가 올라 온 적이 있습니다. 풍귀터널, 을지로 지하보도, 하다못해 간선도로의 인도까지 얼지 않은 주로(走路)로 추천된 적인 있었지요.
또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며칠 술을 마시지 못하면 안절부절 하듯이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들도 한 일주일 달리지 못하면 공연히 불안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엄청난 주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거리 완주 후 들이키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가 주는 청량감은 그것이 체력회복에는 좋지 않은 것을 잘 알지만 쉽게 뿌리치기가 어려운 유혹입니다. 어쨌든 술(酒)과 달리기(走)는 몇 가지 공통점과 예사롭지 않은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조 지훈 선생 이 주장하신대로 주도 (酒道)에 단이 있다면 주도(走道)에도 단이 있다할 수 있겠지요. 달리기를 한 연륜, 그 동기 , 주법(走法), 달리기를 할 때의 버릇 등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주력(走歷)과 함께 주력(走力)을 알 수 있지 않을 까요. 마라톤보급이 날로 확산되어 명실공히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작 금의 상황에 접하여 아직 초보자 주제에 외람되지만 대 시인의 주장을 감히 차용(借用 )하여 아직은 일천한 달리기 생활을 통해 겪은 소회(所懷)의 일단을 피력하니 이름 하여 주도유단 (走道有段 )이라해 봅니다.
(1)불주(不酒 ;不走)는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 마찬가지로 달리기를 아주 모르진 않으나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주 초보자여서 달리기(마라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레 겁을 먹거나 잘못 된 달리기로 부상등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한 뒤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겠다고 철석 같은 맹세를 한 사람들이 이 단계에 속합니다.
(2) 외주(畏酒; 畏走)는 술을 마시긴 하나 술을 겁내는 사람으로 달리기에서는 달리기(마라톤)에 대한 막 연한 공포심(대부분이 거리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 가볍게 걷는 다거나 조깅수준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단계입니다. 조금 단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가끔 ‘새가슴’이라는 비아냥거 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3)민주(憫酒 ;憫走)는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을 이르는 단계입니다. 달리기를 한 경험도 있고 겁내지도 않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런닝팬츠(겨울철에는 ‘통아저씨’를 방불케하는 타이즈차림)바람으로 뜀박질을 하는 것이 특히 골프나 테니스와 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어딘가 점잖치 못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4)은주( 隱酒 ;隱走)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 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달리기는 어차피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은밀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 주위 사람이 알까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므로 결코 동호인 모임등에 가입하는 법이 없습니다.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잘 모르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5)상주 (商酒;商走)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 달리기를 잘 알고 좋아하면서도 크게는 각종대회의 상금이나 기록, 작게는 기념품, 메달 등에 집착하여 달리기생활을 하는 사람.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는 법이 없고 대회에만(그것도 큰 공식대회)참석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접대골프와 같이 접대달리기같은 것이 나올 날도 있지 않을까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란히 한강변을 달리면서 상담도 하고 계약을 한다면 그야말로 상주(商走)가 되겠지요.
(6)색주 (色酒;色走) 는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달리기가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선주성 님이 쓴 ‘런맨의 헬스리포트: 달리기를 하면 밤이 기다려진다’ 조선일보 이 메일클럽 2001년 2월 1일자 참조).유산소운동인 달리기는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신체적인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성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달리기생활을 통해 얻어진 자신감이 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섹스 그 자체만을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겠지요.
(7)수주(睡酒 ;睡走)는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거의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이룬 경험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지요.
(8)반주(飯酒 飯走)는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솟구치는 식욕은 우리가 매번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울마라톤 클럽에 가입하고 처음 반달모임에 나가서 엉겹결에 고수들을 따라 하프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하게 되었습니다.(기록은 비밀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제가 골인할 때까지 상당시간을 기다렸다는 사실만 밝혀드립니다.) 당시 반환점에서 박 영석 회장님께서 건네주신 생수 한 잔과 사탕 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과천에 살고 있는 저는 매일 아침 과천대공원 호수 순환도로를 10Km달린 후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아침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달리기를 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양의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게 되어 체중이 오히려 늘어날까 봐 집사람의 눈살이 찌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9)학주(學酒; 學走)는 술의 진경(珍景) 을 배우는 사람으로 주졸(酒卒)의 단계입니다. 달리기의 묘미를 터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단계의 사람을 말합니다. 웬만한 달리기관련 서적이나 이론서는 섭렵을 하고 국내외를 막론한 마라톤 관련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핑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물론 훈련일지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작성하지요. 각종 공식대회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참가하게 됩니다. 당연히 기록향상을 위한 과학적인 훈련법을 배우고 익히느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입니다. 동호회에도 가입하게 되고 열심히 활동합니다. 달리기 관련 용품을 구입하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또 고수들을 찾아 한수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훈련요령과 레이스 운영방법등이 정립되어 있고 주법이나 자세등도 안정되어 있는 단계입니다. 물론 자기만의 마라톤철학도 구비하고 있지요. 새로운 이론이나 용품 같은 것이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터득하거나 구입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마라톤이 항상 생활의 중심에 있으며 그 무엇도 이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담배는 물론 그 좋아하는 술도 달리기를 위해서는 절제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끊어버리는 단계입니다. 한마디로 달리기를 위해서 수도승과 같은 일상을 보내게 되는 단계입니다.
(10) 애주(愛酒;愛走 )는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으로 주도(酒徒)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달리기에서는 학주(學走)의 경지에서 진일보한 상태로 나름대로 달리기관(觀)을 정립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공식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다양한 코스를 섭렵하고 골고루 실전경험을 쌓아나갑니다. 마침내 국외의 코스에 까지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달려본 코스 하나하나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어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습니다. 잦은 대회출전(국외대회 포함)으로 가족들의 원망스런 눈총을 받을 때가 많아지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미안해하지만 겉으로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단계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달리기 전도사’라고 할 만큼 주위사람에게 달리기의 좋은 점을 알리고 권유하는데도 적극적입니다.
(11) 기주(嗜酒; 嗜走) 술의 진미 에 반한 사람으로 주객(酒客) 이라고도 합니다. 달리기 묘미에 깊숙하게 빠져든 사람 , 중증의 중독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취미, 특기란에 서슴없이 달리기라고라고 적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지요.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자신은 생각할 수도 없는 단 계입니다. 일상의 어떤 행동보다 달리기는 우선합니다. ‘달리기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좌우명이 됩니다. 가끔 무의식(Runner's High)상태에서 아침 달리기를 하다가 직장에 지각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공식대회에서는 기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레이스를 망치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러나 그 쓰라린 실패 자체도 즐기는 단계입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참가가 꿈이고 Sub-3를 거쳐 Sub-2를 목표로 넘보게 됩니다.
(12) 탐주 (眈酒;眈走) 는 술의 진경 (珍景)을 체득한 사람으로 가히 주호(酒豪 )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입니다. 달리기에서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정규 마라톤코스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국내외 울트라마라톤, 테트라마라톤, 24시간, 48시간, 72시간 지속주, 국토동서횡단, 국토남북종단,등에 기꺼이 참가하여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 됩니다. 가끔 종목을 바꿔 철인3종경기로 전향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레이스에는 모두 참가한 경험을 가지게 됩니다. 기록도 물론 중요시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인내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이른 바 한계상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흥분과 설레임, 그리고 고통 그 자 체를 즐기게 됩니다. 하수(下手)들은 거의 자학(自虐)에 가까운 이들의 처절을 극한 몸짓에 전율하며 무한한 외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13) 폭주( 暴酒;暴走)는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으로 주광( 酒狂)이라고도 합니다.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입니다. 탐주의 경지를 지나 달리기에 완전히 몰입하는 단계입니다. 무술을 수련하듯이 온갖 주법(走法)을 모두 익히고 실제로 레이스에 적용합니다.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의 주법과 기록도 벤치마크로 삼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심리, 호승심(好勝心)으로 가슴은 항상 불타오르고 눈동자는 이글거리게 됩니다. 당연히 훈련량도 많아지지요, 스피드훈련, 인터벌훈련, 언덕훈련, 계단오르기등 전천후훈련에 돌입, 훈련과 실전을 구분하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세계대회 출전을 앞둔 국가대표선수의 강훈(强訓)을 능가합니다. 형편만 되면 요즈음같이 이상기후로 달리기환경이 좋지 않은 때는 국내외 전지훈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러 만약 달리기에도 골프처럼 프로 입문과정이 있다면 기꺼이 직장생활은 청산을 하고 전업마라토너(?)로 나서게 됩니다. 직장에서의 그 어떠한 만류나 유혹, 그리고 가족이나 친지들의 격렬한 반대도 그를 잡지는 못합니다. 또, 달리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실전적인 경험을 통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14)장주(長酒;長走 )는 주도삼매(酒道三昧)에 빠진 사람으로 주선(酒仙)의 경지에 오른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며 삼매경에 빠져드는 단계입니다.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함부로 달리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려 즐거움을 낚는 유유자적함과 함께 남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극한 상황에서 간혹 경이적인 기록을 내 보여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驚歎)케 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내면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는 불꽃같은 치열함을 하수들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15)석주(惜酒 惜走)는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으로 주현(酒賢)이라 고도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달리기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함부로 달리기에 나서지도 않고 달릴 기회를 아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달리기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실제로 참가하는 대회보다 자원 봉사하는 대회 수가 훨씬 많습니다. 레이스 운영도 하수들이 보기에는 답답하리만치 신중하고 치밀하게 합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경쟁심리도 없어지고 결코 기록을 의식하는 법이 없지만 항상 좋은 기록을 낳게 됩니다.
(16) 낙주(樂酒;樂走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으로 주성(酒聖)이라 칭합니다. 안 달려도 달린 것 같고 달려도 안 달린 것 같은 단계입니다. 기록의 변화, 달리기 세계의 번잡한 일상사에서 초월하여 사소한 일로 결코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법이 없습니다. 후진 양성과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17)관주 (觀酒;觀走) 는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는 없는 사람으로 주종( 酒宗)이라 칭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누렸던 달리기 생활에서 체득한 무상(無常)한 기록변화와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반추(反芻)하며 그 자체를 즐거워하되 육체적, 정신적, 혹은 기록적으로 이미 달관하여 더 이상 달리기 대회에 참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단계입니다.
(18) 폐주 (廢酒:廢走) 는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으로 열 반주(涅槃酒)의 단계라고도 합니다 .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겪은 갖가지 경험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성내고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달리기로 인하여 장렬히 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달리기세상을 찾아 먼 길을 떠나게 된 사람을 이릅니다. 아무쪼록 영면(永眠)하시라.
이중 불주, 외주 , 미주, 은주는 아직 술의 진경 ,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같이 달리기의 진미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요 .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를 모르는 단계로 달리기에서도 작은 목적을 위해 뛰다가 걷다가 하며 희로애락을 되풀이하는 단계라 하겠습니다.
조 지훈 선생은 학주의 자리 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이라는 칭호를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반주는 2 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불주가 9급이라 , 그 이하는 술과 달리기를 아예 배척하거나 반주당 (反走黨)이라 할지니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겠지요 .
애주, 기주 , 탐주, 폭주는 술과 달리기의 진미 , 진경을 스스로 깨우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 관주는 술과 달리기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생 께서는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徒)란 칭호를 줄 수 있다 하셨으니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 가 9단으로 명인급(名人級)입니다 . 그 이상은 이미 이승사람들이 아니라 단을 매 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을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하셨습니다. 다만 술에 있어서나 달리기에 있어서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우선 수업료도 만만치 않을 것이요, 정신적, 육체적 수행연한이 또한 기 십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간혹 각종 달리기 비무대회(比武大會)에서는 약관의 나이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는 강호들이 있는 것이 사실 이나 이는 예외로 칠 수밖에요. 기량 만으로만 따진다면 고단자(高段者)들이 우리 주위에도 즐비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주도(走道)의 단(段)은 그것이 엄연한 도(道)인 이상 단순히 기량만으로 매길 수 없는데 그 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도(道)이든지 진정으로 배우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이 어렵고 그 때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깨우쳐나가는 재미와 즐거움 또한 그 무엇에도 비견할 바 없이 큼을 간파하신 선생께서는 음주유단, 고단도 많지만 학주(學酒)의 경(境)이 최고경지라고 글을 맺으셨는데 달리기에서도 학주(學走) 혹은 주졸(走卒)의 단계가 가장 빛나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본격적인 달리기 시즌을 앞두고 조석으로 달리기에 여념이 없으신 전국의 동호인 여러분, 여러분의 주도(走道)는 하단(何段)에 처(處)해 있으며 지향하시는 단은 또 어디인지요? 까마득한 초보인 저는 오로지 학주 혹은 주졸의 경지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오늘도 열심히 달리렵니다. 그 이상은 저한테는 가당치도 않고 능력에도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고단(高段)을 목표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하시는 것은 좋으나 부디 열반주(涅槃走)의 경지에 도달함은 피하소서.
모닝스타 정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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