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다리를 건너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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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11-24 13:04 조회1,0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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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다리를 건너서-3
김건수
뉴욕의 밤은 길었다.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살그머니 일어나니 룸메이트인 최관식 팀장(sports01.com)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그는 이번 대회가 첫 데뷔 무대이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 지 무척 걱정인가보다. 애써 위로를 해보지만 공염불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위로를 하랴... 우리는 서로를 달래며 야밤의 긴장을 달랬다.
브라운 유 선생님이 호텔로 오신 시간은 새벽4시 현지 안내인인 강과장님에게 부탁하여 찰밥을 우리 팀에게 제공해 주셨다. 이국에서 새벽에 찰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정성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자비를 들여가며 수 십명에게 게토레이와 사과, 망과등을 제공해 주셨다. 헌신의 모습 그 자체이다. 나도 그분의 모습을 닮고싶다.
또 다시 새벽에 맨하탄의 스카이라인과 대서양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함을 느끼며 베라자노 다리를 향해 달린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지 주태식군이 맨소래담 연고를 바르기 시작한다. 그 이는 신학을 전공하는 젊은 청년인데 그의 모습에는 요새 젊은 친구들의 그것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발견한 수가 없다. 참 맑고 깨끗한 청년이다. 나도 파스를 배에 부쳐본다.(왜냐하면 김완기 선수가 그렇게 하면 복통을 줄일 수 있다고 조용히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민방이었다.
드디어 베라자노다리 밑에 하차하여 집결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영상 5,6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이번에는 비닐 우의를 대회 관계자들이 준비를 하지 못했다. 옥의 티였다.
싸늘한 날씨에 너무 떨었다. 머나먼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기나긴 시간과 추위와의 투쟁이었다. 얼굴 모양은 다르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3만명이 모두 이심전심이다.
뉴욕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작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의 베라자노 다리를 가득 메운 채 대서양을 가로질러 질주하며 달리는 주자들의 외신 사진을 접하고 나는 묘한 충동에 빠져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 다리를 한번 달려서 건너보겠노라고... 그런데 정확히 일년이 지난 2000년 11월 5일 나는 바로 그 베라자노 다리 위에 서서 출발성을 기다리고 있다. 싸늘한 날씨조차 뜀 군들의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세계 4대 마라톤대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흥분을 삭히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올 3월에 동아 마라톤대회를 처참하게(?) 완주(04:10:49)하고 나서 마라톤을 하는 데는 철저한 내적인 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새벽 운동을 할 즈음,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금년 7월 SPORTS01.COM이란 회사에서 풀뿌리 마라톤 중흥을 위해서 수필 공모전을 연 것이다. 동아 마라톤에서 느낀 힘겨움을 써 내려간 글이 뽑혀 드디어 뉴욕 마라톤 참가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인들도 뉴욕 마라톤을 참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미국에는 1000만 명이 넘는 달리기 인구가 있다. 뉴욕만 해도 100여만 명이 달리기나 마라톤을 즐긴다. 해마다 3만 여명 정도가 그 대회를 참석하는 데, 미국인이 2만 명이고 외국인이 1만 명으로 배정되어 있어, 뉴요커들 조차도 그 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올해로 31회 대회를 맞은 뉴욕대회는 초창기에는 지금과 같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뉴요커들은 일반인 마라톤을 해괴 망칙한 일로 여겨 고층빌딩에서 돌과 병등을 던지며 마스터즈 마라토너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어느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우산을 쓰고 달리는 촌극을 벌인 적도 있었다.
드디어 출발을 알리는 대포소리에 첫 발자욱을 베라자노 다리 위에 진하게 남기며 달려나간다. 하늘에서는 수많은 헬기와 비행선이 축하 비행을 한다. 3km의 기나긴 다리를 건너는 동안 대서양을 향해 부는 바람이 세다. 모자가 날아갈 것 같은 풍력에 몸을 뒤뚱거리면서 다리를 넘는다. 저 멀리 보이는 맨하탄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제 브룩클린이다.
주자들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면 그곳에는 항상 함성이 가득하다. 서너살짜리 꼬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자에게 하이파이브를 구한다. 코너를 돌자 30여명의 성가대가 주일 예배 시간을 할애하며 거리로 나와 찬송가로 주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지난 3월 동아 마라톤대회 코스가 모 교회 앞을 지나자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신도들이 이동하는데 불편하다고 인터넷과 주관사에 코스변경을 요구하며 격한 항의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바로 이것이 문화 차이다. 누군가는 남을 위해 기도하고 찬송하며, 누구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한다.
한참 달리다 보니 내가 구경꾼인지 주자인지 헷갈린다. 이번에는 락 밴드 가족이 길가에 나와서 신나게 연주를 한다. 진풍경이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 추위에 길에 서서 연주를 하게 하는 것일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문화는 역경에서 창출된다고 하는데, 그러한 모습을 구경하며 달리는 것이 내가 마치 어떤 공연장을 찾은 것 같다. 다리가 피곤하다는 생각도 잊은 채 그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아가며 기나긴 인간 터널 길을 달려나간다.
20km 지점을 지나자 기록은 1시간 40분이다.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대로만 뛸 수만 있으면 참 좋겠다고 하는 바램뿐이다.
급수는 3마일 지점부터 첫 공급이 있었고 매 마일마다 물과 게토레이를 공급한다. 자원 봉사자들이 서로 자기 물을 받아 달라고 성화다. 진정한 참여자로서의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 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는 주최측의 성의 없는 준비로 물이 바닥나서 후반부 기록을 가진 주자들은 선두그룹이 버리고 간 물통의 남은 물로 갈증을 채워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참가비 3만원을 내고도 한 잔의 물도 못 마시며 뛴 주자가 다음에 그 마라톤대회를 참석할 것인가. 고소를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15마일에 위치한 퀸스보로 다리를 지나면 드디어 맨하탄과 만나게 된다. 맨하탄이란 말은 인디언들이 쓰던 말로 맨하타(언덕이 많은 지역)에서 유래한다. 달려고 달려도 언덕이다. 펼쳐진 8차선도로에서 시선은 4km 정도까지 가 닿는다. 그 대로가 모두 마라토너들로 가득 메워졌다. 장관이기도 하지만 고통이 스물거리는 지점의 시작이기도 했다. 밤새 엄마와 함 께 만든 쿠키와 초콜릿을 나눠주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나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30km을 지나니 기록은 2시간 30분, 지난 대회 때 보다 10분을 단축했다. 지나간 추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한 여름날 비오는 날이면 일산 호수공원으로 달려가 30km를 뛰었던 일, 점심을 거르며 짬을 내 남산에 가서 10km씩 달렸던 일, 새벽마다 삼청공원 언덕을 넘으며 거친 숨을 참아야 했던 일, 야밤에 한 것 뛰고 밤 공기에 땀을 식히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렇게 870km를 달려왔다.
38km를 지나자 한계를 맞게된다. 더 이상 뛸 수가 없다. 느릿한 달림으로 센트럴파크에 들어서니 관중들이 You can do it!이라며 격려를 보내온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제풀에 지쳐 아마 완주를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함성의 힘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것은 사랑과 우정과 땀이 뒤범벅된 함성이었다. 뉴욕에서의 3시간 38분 30초란 기록은 내 머리 속에 영원히 각인 될 것이다.
뉴욕대회를 보고 느낀 것은 수만 명의 자원 봉사자의 헌신적인 모습, 200만 명이 넘는 관중의 참여, 합리적 상업주의에 의한 1억 불이 넘는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주체가 뉴욕 로드 러너스 클럽이란 순수 민간 단체에 의해 이루어낸 걸작품이라는 점이다.
더 더욱이 소중한 결실은 마라톤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만날 때는 어색했지만 헤어질 때는 마치 친 가족이상의 관계가 되 버린 착각마저 갖게 한다. 참으로 소중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여느 국내 대회에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뉴욕마라톤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다. 모든 마라토너들에게 한 번쯤 외국 대회를 참석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 마라톤 관계자들도 이를 하나의 단순대회로 볼 것이 아니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 풀뿌리 마라톤의 발전에 혁신적 시너지효과를 창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밤을 세워도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어눌한 표현과 정확하지 않은 감상을 적은 점에 대해 뉴욕마라톤 참가자님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위의 내용의 상당 부분의 자료는 김종생님의 글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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