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다리를 건너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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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11-24 12:05 조회9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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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넷마님들
뉴욕에 다녀 온지 어느새 보름이넘었군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산적한 일을 처리하느라 인사를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지요,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Sports01.com 덕분에 분에 넘치는 달리기 여행을 마쳤습니다. 그 고마움에 못쓰는 글이나마 그곳에 우선적으로 올렸었습니다. 그러면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답이 될까해서요, 이제 글을 마쳤습니다. 조그만 약속도 지켰다고 생각했구요 해서 이곳에도 글을 올립니다. 저의 좁은생각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머나먼 다리를 건너서
-뉴욕마라톤-
김 건수
김포공항 모임 오전 8시..를 잠결에 되새기며 깬 시간은 새벽 5시30분, 너무 빨리 깨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다시 생각해 봐도 부족함은 없었다. 공연스레 가방을 풀었다 다시 잠근다. 그렇게 부산을 떨었는데도 시간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개최된 조선일보 마라톤대회 비디오를 틀어본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춘천대회였지만 비디오를 통해서 춘천을 감상해 본다. 40km까지 선두간의 각축은 정말로 가관이었다. 비록 대회기록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승부의 순간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름답게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담으려고 애써본다. 나도 저렇게 한번만 달려보았으면 하고 집을 나선다.
뉴욕마라톤에 대한 고민은 지난 7월 31일로 거슬러 가지 않을 수가 없다. 7월초에 서울 마라톤 사이트에서 발견한 마라톤 수기 공모(스포츠 01.COM 주최)를 위해 글을 다듬고 제출하여 당선자 발표 날짜가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편집국 조부국장이 아침회의를 마치고 성화시다. 부장들의 휴가일정을 보고해야하는데 몇몇 부장이 휴가일정을 제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가 7월25일경, 후배에게는 콘도를 부탁하였는데 또 같은 성화다. 콘도회사에 날짜를 정해 주어야하는데 빨리 휴가일정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안한 것은 아내의 휴가 독촉에도 일언반구를 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아내는 한번도 나와 함께 해외여행은 커녕 제주도 여행도 떠나보지 못했다. 나야 직업이 기자인지라 세계각국을 싫을 정도로 여행을 떠나보았지만 아내는 고생스런 IMF 동안의 생활의 고통을 제주여행을 통해서 잊고 싶었던 것이다.
공항가는 버스 속에서 차창에 투영되는 모습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 동안 나의 땀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준 대지였기 때문에 그 친숙함이 더하다. 계절은 벌써 가을. 낙엽이 포도 위에서 그 동안의 시간의 의미를 머금고 대지의 색을 닮아가고 있다.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뛰었고, 한밤중에 공원을 달리며 흘렸던 땀들, 비를 맞으면서도 뛰어왔던 시간들이 저 낙엽의 의미와 함께 대지로 침잠하고 있다.
8월2일 SPORT01.COM 사이트를 들어간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당첨자로 선정된 것이다. 혹시 해서 응모를 해본 것이지 꼭 선정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순간에 교차되는 희비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과 그리고 내가 뉴욕 베라자노다리 위를 뛰는 모습간의 충돌이었다. 한동안 나는 나쁜 남편이고 못난 아빠란 생각을 떨쳐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고, 정류장에서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에 서있었다. 참 미안하고 고맙다.
11월 3일 오전 7시40분 공항대합실에는 나같이 잠을 설쳤는지 뉴욕마라톤 한국참가단이 거의 모임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다. 참가자들과 일일이 통성명을 하는 동안 겸연쩍었다. 60대에서 20대까지 이르는 다양한 층이 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야한다. 특히 일산에서는 채수연, 한경희, 신미숙님등 여성 3인방과 최관식님과 나 모두 5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참가단 중에는 김완기 선수도 있었다. 분홍색 쉐타에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애띤 모습을 하고 비행기를 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무리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지나치는 그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김 선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어쩌면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 수필이 선정되는 날 이후 나는 3개월 동안 수많은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계 4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간스포츠 편집국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본지 사진부장 뉴욕마라톤에 참가"라는 제목하에 대문짝 만한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었다. 누구 말대로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회사 직원이 1800여명 그 중에 마라톤 완주를 해본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고작 3명, 게다가 40이 넘어서 해외마라톤을 자력으로 출전한다고 하니 무척 대단해 보이나보다. 만나는 이마다 "... 마라톤 준바는 잘되어가고 있지요..." 심지어는 회장께서도"...뉴욕 총영사도 참가한다더라 같이 잘 뛰어 봐, 완주만 해라..."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처음 며칠은 그야말로 기분이 째졌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그 격려의 말은 나의 행동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2주일을 견디지 못한 금주의 약속 불이행에 괴로워했고, 며칠 운동을 하지 못하면 마치 무슨 큰 죄를 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옆에 계신 천 일평위원은 나의 나태해지는 모습을 보고 강하고, 짧고, 냉정한 편달을 아끼지 않으셨다. 참 멋있는 선배이다. 그러며 새벽에 나와 열심히 운동을 하면 또 그간의 갈등이 언제 있었냐 싶었다. 그러나 날이 지나면서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은 문제는 그들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의 다툼이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재적이 되어 자신의 무능력한 인내심을 탓하게 되었다. 그 한계와의 다툼 속에서 나의 달리기일지는 조금씩 채워졌고 나로서는 적지 않은 거리(870K)를 달렸다.
이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싫든 좋든 떠나야하고 달려야만 한다. 시차 조정차 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멍멍하다. 내 옆자리에는 정창오(광주,신경외과)님이 부인과 함께 자리를 했다. 아내와 함께 마라톤을 뛰러 우리와 함께 합류한 것이다. 광주에서 안개 때문에 마감시간 바로 전에 도착해서인지 아직도 숨이 가쁜 것 같다. 부인은 무척 미인이시다. 첫 마라톤을 뉴욕에서 뛴다고 생각하니 역시 불안한 모습이다. 정 선생은 마라톤이외에 이번 제주 철인 3종경기 아이언맨 코스에서 13시간 30분대를 기록한 한마디로 엄청난 양반이다. 그런데 이번대회는 아내를 위해서 자기기록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뛰어 주기로 했단다. 그리고 대회 후에는 친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집에 두고 온 아내가 생각난다. 내년에는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꼭 떠나야겠다. 가도 가도 계속되는 낯이다. 수면제를 사려고 하니까 포항서 올라오신 김영우박사(한동대, 소아과)께서 포도주 한잔 마시며 잠을 청해보란다. 덕분에 몇 시간 동안의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그이는 백옥같이 맑은 피부와 인자한 모습을 지니셨다.
지리한 여행의 끝자락은 JFK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서 매듭지워진다. 뉴욕 한인 마라톤 브라운 유회장님과 나금풍도사님께서 우리 일행을 마중 나와주셨다. 나 도사님도 4월에 한국을 떠나서인지 마냥 싱글벙글 하며 달리기꾼들과의 재회를 기뻐하고, 유 회장님은 이역만리에서 마라톤을 뛰러오는 우리 무리를 보며 상기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94th 선창에 마련된 뉴욕마라톤 엑스포장. 작년에 김종생님이 말씀하신대로 합리적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그러나 마라토너들이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족집게마냥 제시해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등록과 쇼핑에 3시간이나 아까운 줄 모르고 써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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