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강에 흐르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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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희영 작성일00-10-16 13:06 조회1,2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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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20분 반포로 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주 모임이 없어서 인지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짐을 느꼈다. 집을 출발한 시각도 예전 보다 10분 정오 늦었다. 조급한 마음에 두 차례 정도 신호위반을 했다. 평상 시에 안하던 행동을 내가 왜 하고 있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급할수록 돌아 가라는 격언도 있는 데, 하물며 이른 아침 달리기하러 가는 사람이 이러면 안되지 하며 속도를 줄였다. 달리기의 고수들은 어떻게 차를 운전할 까 생각하니,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판단이 섰다.
6시 50분경 반포의 반달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대형시계가 보이고, 원뿔형 통을 출발지점에 배열하는 분들과 서울마라톤클럽의 현수막을 거시는 분들이 보였다. 살며시 다가가서 같이 했다. 반달모임 참가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내 일이라는 의식이 생긴 것일까 요즈음에는 일찍 오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출발준비를 돕는 일을 한다. 윤현수님의 지도로 스트레칭을 하였다. 다음 주의 춘천마라톤 때문인지, 달리기에 좋은 시절이어서 인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가를 하였다. 무슨 일인지 참가자가 많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반달모임에 처음 나오신 분들의 자기소개가 있었고, 하프코스의 반환점에서 급수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있었다.
지난 월례대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달린 분과 이 날도 같이 달렸다. 달리는 도중 MBC에서 촬영협조를 요구해 달리던 분들 모두가 약간의 연출을 하느라 달리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날과 변함없이 달렸다. 우리 두 사람은 이날도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마라톤으로 화제가 미치자, 님은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단다. 이유인즉 결혼 후 3년간 거기에서 유학을 하셨단다. 달리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줄 알았는 데 반드시 그렇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유독 다른 대회와는 달리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참가제한을 두는 지도 알았다. 님의 말에 의하면 보스턴은 계획된 도시라기 보다는 자연발생적인 면이 강하단다. 그래서 길도 넓지 않고 일방통행로도 참 많단다. 그러니 마라톤 참가자를 제한할 수 밖에.
성수대교인지 동호대교인지 부근을 달리는 데 썬글라스에 검은 색 타이츠를 입으신 분이 우리 옆을 지나 가신다. 연제환님이셨다. 님은 런너스클럽의 회장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반달모임에서 달리고 있다. 왜 님은 런너스클럽의 토달모임에서 달리지 않고 반달모임에서 달리시는 걸까? 님이 지나간 후에 혼자 생각을 했다. 혹시 런러스클럽의 회원들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봉사하느라 님은 토요일 모임에서 못 달리시는 게 아닐 까 한다. 문득 반달모임의 박영석회장님이 떠 올랐다. 나는 지난 4개월 동안 님이 반달모임에서 달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하프코스의 반환점에서 물을 공급하시던 모습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님께서 일본에서 열리는 100K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하셨단다. 언제 어디서 훈련을 하셨기에 칠순이신 분이 100K를 달리신단 말인가? 남을 위해 자신의 즐거움을 기꺼이 버리시고 봉사하시는 연제환님과 박영석회장님의 마음을 조금은 읽은 듯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짐을 느꼈다.
반환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점에 오니 앞서 가던 미국인 세 분이 돌아 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 분 중 한 분은 2주 전 반달모임에도 나오신 분이였다. 오늘은 자기와 안면이 있는 한국인 친구들이 안나와서 흥이 나질 않는가 보다. 2주전 미국인의 뒤에 따라 가며 그들이 주고 받던 대화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언제간 그 분들과 안면이 익으면 나도 몇 마디 하며 달리기를 해야지 생각하니 달리기가 더욱 재미있어진다.
결승점에 들어오니 대형시계가 1시간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MBC촬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윤현수님은 달리지 못하고 출발지점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서 계셔서 인지 추위를 타는 듯 했다. 또 다시 연제환님과 박영석회장님 등 조직을 이끌고 가는 분들의 희생과 봉사정신이 떠 올랐다. 아마 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오늘 달리기를 포기했으리라. 역사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자라는 토인비의 말이 생각났다. 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도 빠지지 말고 반달모임에 나와야지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마라톤과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김현우님의 '흐르는 물 처럼, 나는 새 처럼 달리고 싶다'는 표현과, 송재익님이 시드니 올림픽 여자마라톤우승자에 대한 평에 나오는 '풀코스를 달리고서도 기친 기색이 없이 마치 산보를 하고 온 듯 해맑은 모습'의 표현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 중의 하나를 오늘은 경험한 듯 했다. 비록 풀코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는 하프달리기에서 기친 기색없이 산보를 방금 마치고 온 듯 해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게끔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같이 달려 준 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언젠가는 흐르는 물 처럼, 나는 새 처럼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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