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만남의광장

가을 날에 질주한 44.1km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10-13 06:47 조회1,208회 댓글0건

본문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하늘은 잿빛으로 채색되었지만,
바람이 숨죽였기에 비가 쉽게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낮게 깔린 연무현상이 오히려 남한산성을 선명하게 했다.

오랜만에 찾은 올림픽공원은 새벽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여전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제(10/10일) 우편으로 집에 도착한 춘천마라톤 풀코스용 흰색 상의에 흰 반바지를
받쳐입고 가볍게 몸을 풀고 서서히 달려 보았다. 감각이 좋았다.

처음으로 뛰게 될 풀코스를 대비해서 언젠가 44.1km LSD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게으른 심성이 그 동안 시간 탓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서비스 한 셈치고 이번에는 기어코 44.1km를 달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벽 5시에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5분만 더 누워있기로 자신에게 통사정하고 눈을 붙쳤던 것이 1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괜히 화가 났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미숫가루라도 한 잔 타 먹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어 맹물만 한 컵 들이키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래도 44.1km를 뛸 예정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냉장고 안의 찐 고구마가 생각났다.

선선한 공기를 가르며 달리자 기분이 상쾌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게 된다고 자랑하고 싶어, 춘천마라톤 풀코스용 흰 색 상의를 입고
나왔는데,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 섭섭했다.
멋진 내 마라톤 복장을 보고, 누가 말 한마디만이라도 건네주었으면 좋겠는데......

올림픽공원을 차분한 속도로 1회 순환(3.15km)하고 시간을 체크 해보자 14:15초가 걸렸다.
그렇게 좋은 속도는 아니었지만
14회를 순환(44.1km)해야 했기에 이 정도로만 달리기로 했다.
곰말다리 쪽에 가자, 어떤 선수들이 언덕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옳지! 저들은 이 복장이 춘천마라톤 풀코스용인지 알겠지!
그렇다면 조금 속도를 내면서 저들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그래도 풀 코슨데..."
닭이 먼 산 보듯 했다.
'이상하네, 저들은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도 모르나?'
3회째를 순환하면서 그들이 포항스틸러스 프로축구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야외조형관쪽을 달리자, 노오란 빛이 완연한 은행나무들이 가을의 중심부를 알리고 있었다.
이 은행나무 잎이 피기 전인 올 이른 봄에
생전 처음으로 동아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려 이곳에 골인했었는데
벌써 계절이 만추(晩秋)를 향하고 있었다.
그 동안 각종 마라톤 대회에 하프코스만 13회 이상을 참가하였지만, 입상 한번 못해보고
완주기념 메달만 부지런히 챙겨왔다. 어찌 할 것인가? 실력이 안 되는데......
그래도 6살난 둘째 딸아이는 내 완주메달 모두를 금메달로 알고 있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면 먼저 금메달 따왔는지 내게 물어온다.
그러면 난 딸에게 금빛의 완주메달을 주었다.
"와! 우리 부자다! 아빠가 또 금메달 따왔어!"
유치원 친구들이며 친척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언제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 학부형 오래 달리기에 참가하여 1등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곳엔 금메달이 없단 말이지...
그 동안 많은 대회에 참가하여 물론 사람을 사귀고 완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왔지만,
입상권에 든 런너들이 트로피나 상금을 받는 것을 볼 때면 괜히 심통이나
시골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를 생각하곤 했다.

올림픽공원을 5회째 순환(15.75km)하고 있는데,
피크닉장 옆으로 흑인 두 명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들을 추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여름에 양키들과 새벽부터 스스로 정한 국제마라톤을 치렀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땐, 시드니올림픽에서 이봉주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예상하고
그들과 레이스를 벌렸지만, 이번에는 시드니 참패를 앙갚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상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흑인들이지 않는가?
서서히 속도를 내보았다.
점점 그들이 가까워졌다.
올림픽 우승자 아베라처럼 늘씬하게 쑥 빠지진 않았지만, 제법 달릴 만 해 보였다.
내가 점점 다가가자 그들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날 의식하고 그러는지, 아니면 둘이서 갑자기 무슨 내기를 걸었는지 스퍼트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질 내가 아니었다. 덩달아 스피드를 더 올렸다.
곰말다리를 지나 평화의 광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달리는 코스와 같았다.
바싹 뒤따르자,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호흡과 함께 한 명이 뒤처치고 앞선 주자를 향해 내가 달려가자
"헤이! #$%%^&"
뒷 주자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경계하며 달리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앞선 주자가 달리던 길을 멈추고 휙 돌아서지 않는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들 둘이서 올림픽파크텔 쪽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허망했다. 기권하려면 시드니올림픽에서나 하지,
우리 봉달이가 금메달을 딸 수 있게 해놓고 말이야!

이봉주 특집 MBC스페셜을 보면서 가슴이 미여질 것만 같았다.
금메달을 땄을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었을 프로가
23위라는 현실 앞에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탑깝게 했다.
미여져 터질 것만 같은 감정을 억지로 참으려 했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엄청난 훈련을 하다,
피멍이 들어 터져버린 이봉주 발가락을 보는 순간, 샘물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단 한번 넘어져 나타난 결과가 가져다주는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할 뿐이었다.
TV를 보고있던 아내도 연신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었고,
큰 아이 역시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 저기 있는 저 금메달 주면 되잖아?"
6살난 둘째 딸아이가 내 완주메달을 가리키며 나를 흔들었다.

올림픽공원 젊은이의 길을 10회 순환(31.5km)할 때까지는 상당히 순조로웠다.
지난 여름 이곳에서 처음으로 31.5km를 달렸을 때, 2:45:23초가 걸렸는데,
이번에는 2:23:15초에 통과하고 있었다. 무려 22분 여를 단축했다.
그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날씨가 덥지 않아 덜 지쳤는지......
달라진 점은 처음 시도할 당시, 8회 순환(25.2km)부터 힘들어 허느적 거렸는데
이번에는 31.5km를 가뿐하게 지나칠 수 있었다.
이제, 지금부터 달리는 거리는 내 마라톤 역사에 기록되는 거리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달려보지도 않았던 31.5km 이상- 미답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지금 이 정도 속도를 계속 유지만 하고 달린다면
44.1km를 3시간 10분대에 주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흥분되기 시작했다.
몽촌클럽을 지나 십이지상으로 경계석이 되어 있는 정자를 스치자,
노인들이 체조를 하면서 구령을 맞추고 있었다.
나도 신이 난 발걸음을 그 박자에 두 보폭씩 맞춰 보았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잿빛구름으로 덮여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달리기에는 안성맞춤 이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피크닉장 옆길에 이르자 왼쪽발목이 약간씩 시리기 시작했다.
몇 일전에 침을 맞아 완치된 걸로 알고있었는데,
다시 통증이 오자, 부상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참고 뛸 만 해서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속도는 자연스럽게 줄여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힘들다거나 다른 부위의 통증은 없어서
무사히 14회 순환(44.1km)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12회째 순환(37.8km)을 향해 뛰고 있는데,
오른 쪽 팔뚝 근육이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을 달리는 자세에서 풀어 돌려보기도 하고 주물러 보았으나
마비현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엎친 데 덥친격으로 심한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먼저 냉장고 안에 있던 찐 고구마가 생각났다.
'그래 그 것만 먹고 왔어도 조금은 나을텐데......'
평화의 광장옆, 식당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식사 됩니다."
그대로 들어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싶었다.
그러나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다. 차에다 모든 것을 놔두고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내게 외상으로 밥 줄 리는 만무하고, 할 수 없이 그냥 참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조각공원쪽에 이르자 야외학습을 나온 고등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에 한 학생이 벤취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거의 다 먹고 3조각이 남아 있었다.
"학생! 나 한 조각만 다오! 배고파 죽겠다."
"안돼요. 나 아침도 안 먹고 왔단 말이예요."
매정하게 몸을 틀면서 내 손을 뿌리쳐 버렸다.
'지독하다. 김밥 한 조각을 가지고 이렇게 홀대 받아야 되겠는가?'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냉장고 안의 찐 고구마가 계속해서 눈앞에 어른거렸다.

급수지점에서 물 배라도 채우고 싶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이슬비마저 슬슬 내리고 있었다.
13회째 순환(40.95km)으로 접어들자 발목시림 현상은 거의 없어 졌으나, 허벅지 뒷 근육이 심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또한 호흡은 아주 편한데, 다리가 천근 만근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걷지 않고 달려서 기어코 14회 순환(44.1km)을 마치고 싶었다.
속도 역시 현저하게 떨어져 걷는 건지 달리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있었다.
허기져서 힘도 없고 다리도 무거워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14회 순환(44.1km)을 완주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 몸만 축나는 게 아닌가?
그러나 14회 순환은 내 자신과의 약속이다.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고 할 수 있을까?
춘천마라톤대회 이전에 반드시 풀코스 거리의 공포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야 춘천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풀코스를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급수 지점마다 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리에 물을 적셨다.
뛰는 속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지 걷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것에만 위안을 받았다.
곰말다리를 지나 평화의 광장에 이르자,
아침부터 준비하고 있던 송파구 유아 마라톤대회가 출발을 위해 유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둘째 딸 아이가 속해 있는 어린이집 팻말이 보였다.
'하윤이도 오늘 달린다고 그랬지......'
점점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는 다리를 이끌면서 심한 갈등에 빠졌다.
그래도 마라톤을 즐긴다는 아빠인데,
사랑스런 자녀가 당장 눈앞에서 달리기를 하려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그래 빨리 내 운동을 끝내고 하윤이와 함께 뛰는 거다'
스스로 정한 44.1km의 골인점인 88광장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조각공원 오른쪽에서 오색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올림픽공원 미술관 기공식 축하 풍선 이였지만, 흡사 내 생애에 처음으로
시도된 44.1km LSD의 성공적인 완주를 축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골인지점을 향해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스퍼트를 했다.
88광장 반달 아치가 빙긋이 웃으며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보니 3:43:15초를 지나고 있었다. 비록 목표했던 3시간 10분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걷지 않고 달렸다는 통쾌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막판 스퍼트로 힘을 써서 인지 이제 걷기조차 힘들어 졌다.
허기져 먹을 것을 찾는 눈은 먹지 않고 태연히 입 맛만 다시고 있는 입을 탓하고 있었고
콧속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홍어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유아마라톤에서 딸아이와 함께 손잡고 뛰기 위해선 다시 평화의 광장으로 가야 했다.
삼거리 매점 쪽의 언덕을 경유해서 야외조형관을 지나고 있을 때,
이제, 다리가 퍽퍽해져 쥐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하윤이는 충분히 잘 달릴 수 있을 것같았기에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내가 함께 달려서 딸아이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평화의 광장에 이르자, 6, 7세 된 아이들이 1.32km의 호반 길을 달리기 위해
각 조별로 질서 있게 출발선상에 서고 있었다.
"아휴! 하윤이 아버님 아니세요?"
이미 안면이 많은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뜻밖에 찾아 온 날 보면서 정색하며 반가워했다.
공손하게 인사를 나눈 후, 아이들을 보자 모두 하나같이 귀엽고 깜찍하기만 했다.
"우와! 아저씨 마라톤 선수인가 봐?"
춘천마라톤 상의에 흰색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날 보고 애들이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우리 아빠 마라톤 잘 해!"
하윤이가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거들고 있었다.
"아저씨 올림픽에도 나갔어요?"
덩치가 조금 큰 애가 내게 물어 왔다.
"그래 우리 집에 우리 아빠가 딴 금메달 많아!"
"우와! 깨굴락!"
숨김없고 거침없이 놀고있는 애들이 한없이 이쁘기만 했다.

유아 마라톤대회 출발 총성이 울렸다.
꼬마 애들이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마비 증세가 점점 더 심하게 보이고 있는 다리로
저들을 도저히 따를 수 없을 것 같기에, 순간적으로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하윤이 한테 빨리 뛰지 말고 천천히 뛰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달리닌까 덩달아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 버렸다.
저 정도 속도면 무리 없이 sub3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면이 있지, 할 수 없었다. 마지막 힘을 낼 수밖에......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서 아이들은 이내 혀를 내놓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딸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달려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함께 가다, 다시 기를 쓰고 앞으로 달려가 버렸다.
중간중간에 애들이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었다.
손을 잡아주며 천천히 걸어가면 괜찮아 진다고 달래면서 1.32km의 호반 길을 달리고
있는데, sbs TV카메라가 딸아이와 나를 잡고 있었다.
리포터가 "잠깐만요!"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질문하는 말에 무조건 좋다고 하자, 골인지점을 향해서 멋지게 손을 들고 가라고 했다.

"아휴! 하윤이 아버님! 안뛰다가 오랜만에 뛰닌까 참 힘드시죠? 글쎄 방금 달리신 거리가 1km가 넘는데네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은 내가 아이들과 함께 무리하게 달려서 불편하게 걷는 줄 알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미안해 하고 있었다.

올림픽공원의 은행나무들이 잿빛의 가을을 멋스럽게 장식하기 위해
노오란 나뭇잎을 하나씩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을 때,
춘천마라톤을 위한 나의 준비는 어설프나마 끝나가고 있었다.

2000년 10월11일 송파세상 김현우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