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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며 읽은 포레스트 검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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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08-24 08:48 조회2,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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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면서읽은 포레스트 검푸


김 건수 일간스포츠 사진부장

영화를 읽는다니 있을 법한 일인가. 그것도 뛰면서.

어제(8월 19일)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막역한 친구들과 자정까지 세상사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늦게 자리에 들었는데 새벽녘에 굵은 장대비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동창을 열어 보니 시커먼 비구름이 길게 커튼같이 내려져 있었다. 아직 덜 깬 술 때문인지 몸이 천근이다. 다시 창가로 다가가서 하늘을 살핀다. 유리창에 성긴 물방울은 그 수만큼이나 세상의 뜻을 간직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많은 생각 끝에 달리기로 마음먹고 밖으로 나선다.

일산호에 다다르니 아무도 없다. 보통 때 같으면 매점에 들러 만원을 맡기고 음료수를 냉장고에 저장하고 호수를 한바퀴(4.7km) 돌 때마다 차거운 음료를 마음껏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다. 그런데 오늘은 밤부터 내린 긴 비로 매점도 열지 않았다. 참으로 난감하다. 오늘은 주중 계획표대로 라면 LSDT(Long Slow Distance Training)를 30K를 해야 하는데 달리는 중간의 음료 공급이 언제 열릴지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냥 달려보기로 한다. 지난주에는 32도의 땡볕에서 20K를, 지지난주에는 겨우 얻은 휴가로 일산 호수마라톤회원들과 3시간동안 25K LSDT를 마쳤다. '오늘은 분명 28Km 지점에서 한계를 맞게 되겠지'하고 천천히 달려나간다.

일산호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그 바로 밖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길을 가기만 하면 된다. 특히 자동차의 통행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교통사고나 매연으로부터 완전 해방이다. 서울 주변에서 달리기 환경이 이 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그곳을 바로 내가 혼자서 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란 착각에 빠져본다. 머릿속에 계산기를 그려놓고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열심히 따져본다. 엄청나다... 그 부질없는 생각으로 달려야만 하는 시간과 거리의 갈등을 해소해 본다. 지금 빗속을 달리는 만큼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산호를 달리는 데에는 하나의 유혹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은 꼭 20K 거리주(거리를 목표로 정하고 달리는 것)를 달성해야지' 하고 굳은 마음을 갖고 출발하더라도 한바퀴를 돌 때마다 유혹은 시작된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아니야?' '좌측무릎이 땡기지? 그만 하자.' '왜 이렇게 다리가 무거운 거야, 어제 술 마셨잖아...' 기타 등등의 유혹 때문에 나의 목표거리 완주율은 50%가 넘지 않는다. LSDT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으로는 반환점을 정해 놓고 뛰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중간에서 포기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
세 바퀴를 돌았다. 장대비는 가는 실비로 변해가고 있다. 아직도 매점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약간의 갈증이 시작된다. 할 수 없이 수돗물로 갈증을 축인다.

널찍한 화강석에 고인 물에 나무며 하늘이며 구름이 투영된다. 그 반사된 모습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된다. 거꾸로 보이는 세상이 계속된다. 수면 위에 투영된 나의 모습이 실상인가 ,뛰고있는 내 자신이 실상인가하며 장자를 생각해본다. 복잡하고 잘 모르겠다...

체온유지와 사타구니 마찰 때문에 바른 올리브 기름위로 빗방울이 굴러 대지로 가라앉는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던데, 빗방울은 중력의 방향에 대해 뛰는 '속도의 미학'을 날개에 달고 하강한다. 땀과 하나된 빗방울들은 마치 그린베레들이 '제로리모'를 외치며 낙하하듯 그 의미를 공중에서 산화한다.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불현듯이 포레스트 검푸가 생각난다. 그가 혼자 뛰던 모습이 뇌리를 맴돈다. 애리조나 사막과 그의 추종자들, 떨어져나가는 보형기의 날카로운 금속성, 애플 컴퓨터사의 상표, 검푸의 영원한 여인 제니역을 한 로빈라이트의 우수에 찬 표정, 인생의 의미를 담은 쵸콜렛, 버스를 걸러버리는 할머니의 호기심 어린 표정, 월남전과 휠체어, 새우잡이 배, 흰 운동화에 빨간 나이키 상표 등등의 모습이 발자욱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슬라이드 환등기 마냥 머리 속에서 명멸한다.

포레스트 검푸를 지금까지 4번 보았다. 비데오 대여방 아저씨도 이상한가 보다. 신 프로도 좋은 것이 많은데 몇 번씩이나 그 프로를 빌려가니 묘한 표정이다.

포레스트 검푸를 볼 때마다 나는 대학 2학년 때 읽은 Kurt Vonegurt의 'Jailbird'가 생각난다. 의식의 흐름의 새로운 기법이 그 소설의 특징이다. 시점의 연관성을 무시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상황 중심의 플롯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학점 때문에 열심히 몇 번씩이나 읽어서 그런지 능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그런 문체의 글을 한 번쯤은 꼭 쓰고 싶었다. 그 소설에서의 상황 변화의 모티프는 주인공이 세 번 박수를 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과연 시점상의 일직선 위에 존재하느냐 하는 의구심과 의식과 개념의 불일치를 현상학적으로 부연하고 있다.

포레스트 검푸에서도 비슷한 구성을 발견하게된다. 검푸의 일련의 과거가 사람들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불연속적인 단상과 같은 모습으로 줄거리 연결을 하는 것이다.

검푸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과연 연기를 잘하는 톰 행크스같은 모습일까 아니면 영화 전체의 흐름으로 미루어 다운증후군의 모습을 가진 사람일까? 그러나 그가 톰 행크스나 다운증후군 장애자라도 그 어떠한 모습도 원래의 검푸의 의미를 앞 설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뛰면서 검푸를 읽었다. 4 바퀴 째에 문을 연 매점에서 내가 즐겨 마시는 이온음료를 마셨다.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햇볕이 나기 시작한 여섯 바퀴 째는 상당히 힘이 들었다. 동아대회 때와 비교해 본다. 그때보다는 쬐금 나아진 것 같다.

장대비, 실비와 검푸가 아니었으면 오늘 나는 햇볕을 이기지 못 했으리라, 그리고 일산호에 숨은 유혹이란 복병에 뒷 덜미를 잡혀 완주를 못했을 것이고그에 대해 심한 자책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뛰면서 읽은 포레스트 검푸 덕으로 2시간 45분 동안의 LSDT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그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이다.

나는 그를 닮아 가고싶다.

20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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