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도전기(김동진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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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0-09-19 16:05 조회1,8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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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님께서 지난 3, 4월에 연재하셨던 풀코스 도전기를 정리하여 보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보아도 달리기의 맛을 생생히 표현하여 주신 글이어서 다시 올립니다. 김동진님께 감사드리면서 추후 "달리기 에세이"란에 옮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김동진님께서는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 운영자)
입문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도전기
(마라톤을 완주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 읽어보시라고 저의 마라톤 도전기를 써 봅니다. 전체분량은 13회에 걸쳐 구성되어 있으며,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라톤 입문과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완주
2. 1999년 6월 20일과 그 후 며칠간의 고통스런 기억들....
3. 마라톤목표를 설정하다 (99년 6월 27일부터 중앙마라톤 전까지)
4. 땅바닥에 떨어진 물을 주워 먹으며 달렸던 중앙마라톤 대회
5. 중앙마라톤이후 통일마라톤을 거쳐 춘천마라톤 전까지.....
6. 싱그런 가을느낌과 함께 한 춘천마라톤
7. 1999.11.7. 마침내 하프 2시간 벽을 돌파하다. 그리고 맞이한 침묵의 시기.....
8. 2000년 1월 4일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다 (주중마라토너로의 변신)
9. 감동의 서울마라톤 (1) - 풀코스 완주를 위한 3가지 전략
10. 감동의 서울마라톤 (2) - 4: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11. 감동의 서울마라톤 (3) -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38-40키로 구간, 그리고 한강대교 아래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12. 서울마라톤에 대한 평가 및 감사의 글
13. 도전기를 맺으며 (되돌아 본 10개월)
1. 마라톤 입문과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완주
내가 마라톤에 처음 입문한 것은 1999.6.20일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8개월 보름후인 2000년 3월 5일 제3회 서울마라톤에서 드디어 4시간 32분 45초의 (제가 보기에는 매우 대단한) 기록으로 첫 완주 달성!! 내가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99년 초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내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누구누구가 10키로나 20키로씩을 달린다는 것이었다. 잉?? 이럴수가!! 선수가 아니고서야 보통사람이 어찌 몇 키로씩을 달릴 수 있지? 언뜻 고3학년때의 대입시를 위한 체력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83년 11월(65년생)에 있었던 고3체력장 이후, 난 99.6.20까지 1키로 이상을 뛰어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복무도 적당히 (빽을 쓴 건 아니고, 시력이 나빠서) 떼우다 보니, 구보할 기회도 없었던 터였다. 1키로 뛰고 난 후 하늘이 노래져서 운동장에 넘어져 있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내게 회사동료들이 10키로나 20키로를 뛴다는 것은 내게는 경이 그 자체였다.
게다가 하필 마라톤이라니 그 많고 많은 운동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운동을 하다니, 대체 이해가 안되었다. 수영도 있고 등산도 있고 아니면 골프를 하든지 테니스, 농구, 축구같은 재미있는 운동이 얼마나 많을텐데 왜 마라톤을 할까? 조선조 시절 테니스가 처음 도입되던 때 테니스 경기를 보던 양반왈 ‘저렇게 힘든 것은 하인들이나 시키지.. 왜 직접 해’라고 하였다던데 (믿거나 말거나), 정말 마라톤은 하인(?)들이나 시켜야 할 운동이 아니던가
중고교시절을 돌아보면 학교운동장에서 아침조회를 하는 시간이 간혹 있었는데,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난 조회대열 맨 끝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어지러워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중3때 고입시를 위한 체력장에서는 반에서 서너명을 빼고는 전부 20점 만점을 받았는데, 난 19점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졸업무렵 갑작스런 기침에 피를 토하는 일이 있었고, 결국 폐결핵 1기 판정(당시 키는 171cm, 몸무게는 48kg)을 받았다. 그로부터 처음6개월간 매주 2대의 주사를 맞았고 또 1년동안은 매일 엄청난 양의 알약들을 먹은 적도 있던 터였다.
어쨌든 대학교입학, 졸업, 취직, 결혼 등을 이어가며 99.6월 당시 나의 키는 177cm, 몸무게는 69키로였으니, 체형으로는 괜찮은 편이다. 건강한 체질이랄 정도는 아니지만, 언뜻 보아 건강을 걱정할 정도도 아니었고, 다만 최근 1-2년 사이에 이젠 나이가 서서히 들어가니 운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회사내의 마라톤팀과 점심을 자주 하던 중 99.6월의 어느 날, 99년 9월초 정도에 마라톤을 시작해서 99 춘천마라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겠노라고 (별 생각없이) 말하곤 말았다. 두 어달 연습하면 10키로 정도야 뛰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마라톤을 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회사내 마라톤 팀의 권유에 못 이겨, 마침내 99.6.20일 아침 6시 40분에 반포 고수부지에 나가게 되었다.
2. 99년 6월 20일과 그 후 며칠간의 고통스런 기억들..
7시가 조금 못 되어 반포고수 부지에 도착해보니 반달모임(익히 들어서 어떤 모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에 참여할 분들이 벌써 몇몇분 계셨고 회사 동료분들(엄밀히 말해서 반달소속은 아니다)도 속속 도착했다. 원래 반달모임과 따로이 뛰기로 내부에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갑자기 반달모임의 멤버들 속에 우리 팀이 섞여 버렸고, 그래서 회사동료분들은 오늘은 반달팀과 함께 뛸려는 것이었다.
입문 첫 날에 마라톤의 최고수들과 함께 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뒤로 슬쩍 빠져서 강가로 나가, 혼자 뛰기 시작했다. 반달모임의 달리기 코스와 중복이 안되게 뛰려고 한강물가로 최대한 이리 저리 둘러가는 길을 뛰어 성수대교까지 왕복했는데, 1시간 27분이 걸렸다. 한남대교 아래에서 보이는 반포대교는 한없이 멀어보여 절망감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뛰다 (사실 남들이 보면 분명 걷는 것일게다)보니 반포대교가 코앞에 다가오기는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전체거리가 약 10.5키로란다. 속도야 느릴 바 그지 없지만, 달리기 첫날에 한번도 안쉬고 10.5키로를 뛴 것은 분명 잘한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얼마나 멀리 뛰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10키로를 뛰었다고 했더니, 1키로 뛰고서 0을 하나 덧붙여 거짓말하는 것으로 믿는 눈치다. 겨우 1키로 뛰고서 그 정도냐고 하루종일 놀리는게 정말 1키로 밖에 안뛴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다리가 좀 이상했다. 마치 하반신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하반신이 없는 것도 같고... 깜짝 놀라 발가락을 움직였더니 그나마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아휴, 고장난 것은 아니겠구나 하면서 일단 안심은 하였지만, 계단오르내리기는 커녕 걷는 것 조차 어려웠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계단의 난간에 의지하여 계단을 한칸씩 한칸씩 발을 모아가며 내려가니, 주위에 지나가는 분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기 어렵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발목은 괜찮아서 그런지 운전은 할 수 있었으나, 사무실에서 놀림감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서 있는 나를 누군가 장난삼아 뒤로 밀면 (보통같으면 그냥 뒤로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난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거짓말 좀 보태서) 거의 기어다녔다. 계단의 난간을 잡지 않고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 수요일, 다리에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된 것은 금요일에서였다.
마라톤 입문 후의 첫 주는 이처럼 고통속에서 지나갔다.
3. 마라톤목표를 설정하다 (99년 6월 27일부터 중앙마라톤 전까지)
얼떨결에 이루어진 마라톤 입문 후 고통속의 1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에 내가 한 일은 동대문운동장쪽의 스포츠상가에 나가 마라톤화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몇몇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유명회사의 제품을 구입하였는데, 일단 보기에 마라톤화로 되어 있고 또 아주 가벼운 신발이어서 장거리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화로는 적격이라 생각하였다 (이는 오산이었음을 얼마 안가 깨닫게 되었다. 신발에 관한 이야기도 이 글의 어느 부분에선가 하고 싶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한다).
입문 두 번째 날인 6월27일에는 평소 신어보지 못하였던 마라톤화(그 당시에는 상당히 좋은 신발이라고 생각했었다)를 처음으로 신고 반포고수부지에 나가니 마음은 하늘을 나는 듯 하였다. 그 날은 14키로를 1시간41분 동안 뛰었는데, 이 역시 둘째날 치고는 주위의 사람을 놀라게 하기 충분하였다. 수영의 강자(나는 수영장에서 평영으로 3키로 정도까지 한 적이 있으며, 1년에 2-3번 밖에 가지 않지만, 갈 때마다 1키로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다)가 회사내 마라톤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세번째 날인 다음 일요일에는 18.2키로를 2시간동안에 달렸고, 입문 네번째날 (기간으로는 입문 후 3주만이다)에는 드디어 처음으로 하프(반달모임이 뛰는 코스)를 완주하는데 성공하였다. 비록 소요시간은 2시간 19분이었지만, 달리기 4번만에 그만한 기록을 낸 것은 나로서도 놀라왔다. 또한 연습 4번동안 달리기도중에 한번도 걸은 적이 없어서 나로서도 아주 만족스웠다. 주중에는 연습을 할 처지가 못되어 주말에만 연습하다보니 회사내 마라톤팀에서 주말마라토너라는 별명을 듣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거리를 늘리고 시간을 단축하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마라톤에 대한 중독증상(?)이 깊어가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다섯번째 연습을 하던 7월17일에는 회사내 선배이신 박**님과 함께 뛰면서 반포에서 잠실대교까지 왕복(약23키로이다)하게 되었는데, 이 날은 돌아오는 길에 동호대교를 지나 그만 걸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프이상의 장거리를 뛰면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경우에는, 허벅지나 겨드랑이의 쓸림현상과 젖꼭지부분의 마찰에 따른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를 여러 번 들었지만, ‘설마 나 같은 초짜에게야’싶어서 아무런 주의를 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 날은 반포에서 출발하여 영동대교를 지나갈 때부터 허벅지 사이가 좀 좋지 않아서 손으로 계속 땀을 닦아주면서 달렸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호대교를 지나 19키로 지점에서 도저히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설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서서 양다리 허벅지 안쪽을 보고는 난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소위 쓸림현상… 양다리가 벌겋게 달아올라서 건드리기만 해도 따가왔다. 하는 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어서 반포출발지까지 돌아왔으니, 결국 하프이상 뛰지는 못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일요일부터는 장마 때문에 (작년은 장마가 늦게 왔었다) 연습을 잘 하지 못하였다. 단체연습은 못하고 개인적으로 주당 4-5키로 정도뛰는 선에서 3주가 지나갔다. 이 때 즈음 회사내에 황영조 선수를 잘 아시는 분이 계서서 그분의 주선으로 회사내 마라톤팀이 황선수로부터 두어시간 지도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 그 날 나는 다른 사정으로 참석치 못하여 못내 아쉬웠다.
8월초 한강물이 고수부지를 덮치고 지나간 후, 마라톤팀이 한 번은 남산에 가서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평소에 평지만 달리던 나로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남산코스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서울마라톤클럽에서 혹서기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던 8월15일에도 우리 마라톤팀은 여전히 반달코스를 달렸는데, 그 날의 날씨는 정말 지옥처럼 더웠다. 한동안 연습을 제대로 못한데다가, 그날의 무더운 날씨는 결국 하프반환점을 돌아 성수대교 지점까지 뛰고 있던 나를 멈추게 하곤 말았다. 그 날은 정말 달릴 수가 없었다.
머리는 빙빙돌고 땀은 비오듯 흐르는 그 무더운 날의 레이스를 하면서 ‘내가 미쳐도 한참 미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먹고 뭐 할 짓이 없어서 이런 걸 하고 있나’싶은 생각도 들었다. 계속 걷다보니 하프이상의 거리를 연습하고 있던 회사동료 박**님이 나를 부른다. 도저히 못가겠다고 먼저 가라 했더니 웬걸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아마도 걷고싶었는데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나 보다. 동호대교까지 오니 서울여자마라톤클럽 회원 두 분이 혹서기 마라톤대회를 위한 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우리더러 시원한 물을 마시라 하였다. 우리는 대회참가자가 아니라고 하였지만, 괜찮다고 하면서 주시길래 얼음물과 초코파이를 얻어 먹었는데 정말 고마운 순간이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마라톤에 관한 두 가지 목표를 세운 것은 아마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다.
첫째, 언젠가는 풀코스를 4시간내에 완주하여 보겠다는 것이다. 이미 4시간을 넘어 3시간 초반에 뛰는 분들도 상당히 많겠지만 4시간 내에만 들면 난 충분히 만족할 것 같고 그래서 목표시간을 4시간으로 세웠다.
둘째, (만약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내 나이가 70이 넘은 후 최소한 한 번은 풀코스를 완주하여 보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현재에도 이 같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사회에서 은퇴후 60이 넘었을 내가 여전히 마라톤을 하고 있을 미래를 그려보면, 그 때를 위해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8월15일 이후부터 중앙마라톤까지는 일요일이 3번 있었는데 매 주말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연습을 제대로 못하였다. 3번중에 한번은 전혀 못하고 한번은 6키로, 중앙마라톤 직전의 일요일에는 5키로 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입문 후 첫 한달여동안은 주말마다 열심히 뛰었지만, 그 이후 한달 반 이상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중앙마라톤 대회를 맞았으니, 그 또한 안될 일이었다. 하프까지 연습한 것은 결국 딱 한 번 밖에 없는 셈이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는 중앙마라톤에서 내가 겪은 고초에 대한 전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
4. 땅바닥에 떨어진 물을 주워 먹으며 달렸던 중앙마라톤 대회
공식 마라톤 대회에의 첫 출전이라는 들뜬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종합운동장 근처에 갈수록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막연한 설레임이 느껴지면서 종합운동장에 들어섰다. 물품을 맡기고 옷을 갈아입고 하는 아수라장속에서도 나의 기분은 묘하게 흥분되어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속에서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이미 다들 출발지점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5키로 부문 출전자와 함께 출발지로 가서 하프출전자 그룹까지 헤치고 앞쪽으로 가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래서 출발할 때 나는 뒷편에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덕분에 총성이 울리고도 뛰는 자세를 취하는데 2분이 넘게 걸렸다. 첫 출전의 흥분속에 거리를 뛰었으나, 물이 부족하여 무척 힘들었고 교통통제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들으며 뛰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5키로지점에서 물 한 잔 먹은 후, 15키로 지점에서 급수차에서 나오는 구정물같은 물을 2잔 먹고, 앞서 가던 분이 버린 생수병에 남은 물 없나 하고 발로 툭툭 차면서 뛰어야 했던 터라, 욕이 절로 나오는 대회였다. 거의 탈진 상태로 골인지점에 들어온 후에도 물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2시간 21분의 참담한 기록 속에 마라톤 첫 출전의 막이 내렸다.
5. 중앙마라톤이후 통일마라톤을 거쳐 춘천마라톤 전까지..
첫 출전의 지옥 같은 경험과 함께 얻은 기록은 2시간20분46초… 마라톤 시작 4번만에 하프를 완주하면서 얻었던 첫 기록인 2시간 19분보다도 못할 정도였으니, (비록 연습부족도 있었지만..) 중앙마라톤 그 날의 고통은 정말 너무 하였다. 그래서 9.19일에 있었던 하남시 마라톤은 포기하였다. 회사내 마라톤팀에서도 통일마라톤에 대비하여 대회에 너무 자주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당초 계획과 달리 하남시 마라톤에 아무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 이후 통일마라톤까지는 중간에 두 번의 일요일이 있었는데, 두 번 다 반달코스에서 하프를 뛰었다. 시간은 2시간20분(9.19일)과 2시간 9분(9.26일) 그리고 통일마라톤(10.3)에서도 하프(2시간7분53초)를 뛰었으니, 되돌아보면 4주 연속 하프를 뛴 기간이다.
9.19일은 날씨가 아주 흐렸다. 아침에 비까지 조금 내렸다. 나가지 말까 하다가 이 정도의 날씨에는 연습해야지 하는 생각에 반포로 나갔더니 반달모임은 없는 듯 하였다. 다들 하남시 대회에 나가나 보다’하고 생각하면서 회사내 선배인 이**님과 뛰기로 하였다.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비를 약간씩 뿌렸는데, 탄천다리밑에서 (올림픽대로를 지붕으로 하여) 비를 조금 피하다가 이**님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그 날따라 이**님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하프까지 뛰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님은 그 때까지 하프를 뛴 경험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뛰어 보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솔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하프반환점까지 갔다가 반포로 뛰었다.
돌아오는 길에 성수대교를 지날 즈음 이**님께서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일부러 속도를 늦추어 나란히 뛰면서 (사실 나도 실력없는 주제에) 하프 첫 완주를 도와주게 되었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철탑을 지날 때 즈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그 근처에는 비를 피할데도 없어서 체념하고 폭우속을 뛰어 반포로 돌아 왔는데 반포대교 밑의 고개를 넘어올 때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운전자들이 우리를 보면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거나 ‘한국육상의 차세대 기둥’이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하면서 하프를 마무리 하였다. 소요시간이 2시간 20분이었는데, 나혼자 뛰었으면 2시간 15분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9.26일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반달분들도 꽤 나오신 것 같았다. 그날은 2시간9분에 뛰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기록이었다. 그러니까 하프완주 4번만에 2시간 10분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전 주에 하프 첫 완주를 하였던 이**님은 2시간 6분정도의 기록을 세우셔서 나로서는 상당히 놀랍고 부러웠다.
10.3 통일마라톤에는 전철을 타고 구파발로 갔다. 회사마라톤팀에서는 9명이 출전했는데, 마라톤팀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도전하는 분이 3명 있었다 (우리 마라톤팀으로서는 사상 첫 도전이었다). 나를 비롯한 6명은 하프에 출전하였다. 하프출발지점까지 차를 타고 가서 중간지점에서 출발하였는데, 출발 후 얼마 못 가 마라톤팀중에서는 가장 뒤로 쳐졌다. 아무래도 실력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았고 가을들녘은 하염없이 싱그러웠다. 그 날은 100회마라톤’이라는 옷을 입은 어떤 할아버지을 몇 키로 못 가서 만났는데, (비록 마라톤실력과 나이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저런 모습을 한 할아버지에게 조차 내가 뒤진다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할아버지는 작은 키에 허리가 구부정한 듯 하였고 연세는 최소한 65세, 아마도 70세는 넘어 보였다. 내가 더 젊다(난 당시 만 33세였다)는 자존심에 할아버지를 경쟁삼아 뛰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였는데, 할아버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멀어지다가 10여키로 지점에서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멀거니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서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나 자신에 대한 허망함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지구력이 안되시는지 1-2키로를 남기고는 내가 다시 따라 잡았는데, 좌우간 대단한 분이시라는 생각을 했다. 끝없이 길 것만 같던 통일대교를 지나 2시간 8분으로 마침내 골인하니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우리 마라톤팀에서는 내가 꼴찌였지만, 나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9.19.일에 처음으로 하프를 완주한 이**님은 그날 1시간 53분을 기록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반대편으로 아직도 뛰고 있는 풀코스 주자들 속에서 우리 팀원 세 분을 찾아 보았는데, 이 먼거리를 어떻게 뛰나’라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가장 기록이 좋은 이**님이 4시간6분, 박**님이 4시간 12분이었고, 또 다른 박**님은 5시간 10분에 완주하였는데 당시 통일마라톤의 풀코스 공식 꼴찌였다. 골찌한 박**님은 회수차량이 계속 탈 것을 권유하였으나,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중도포기하였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오기로 끝까지 뛰었다고 하였다.
우리 팀원들이 과연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반 기대반을 하였는데, 어쨌든 완주한 3분은 내게는 마치 개선장군 같은 존재였다.
이 즈음 오른발 발목에 통증이 왔는데, 7-8년전 계룡산 산행에서 발목을 삔 후유증이었다. 발목을 삔 후 등산을 할 때면 조금씩 아팠는데, 통일마라톤 바로 전 일요일 경부터 아파왔다. 통일마라톤을 뛴 다음 일요일에 조금 뛰었는데, 부상의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아 결국 다른 연습을 전혀 못하고 춘천마라톤에 나가게 되었다. (난 원래 주중연습은 할 처지가 못 되었다)
6. 싱그런 가을느낌과 함께 한 춘천마라톤
아침 5시 30분 자명종시계소리에 눈을 떴다.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야근을 한 피로가 아직 쌓여 있음을 느끼면서, 집사람을 깨웠다. 서둘러 준비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아들녀석을 다독거리며, 청량리로 출발!
지난 통일마라톤 대회이후 이런 저런 사유로 집근처에서 2-3키로를 뛴 것이 전부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또 오른쪽 발목이 계속 이상해서 혹시 오늘은 완주조차도 못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마라톤 열차에서 회사동료 (저를 포함하여 9명 출전. 5명은 풀, 4명은 하프) 및 가족들을 만나, 즐거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춘천으로 갔다. 춘천역에 내려 전세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으로 가서 본부석 쪽 스탠드에 자리 잡았다.
10시가 훨씬 넘어서, 버스를 타고 서상초등교에 도착하여 풀코스 선두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선두가 지나간 후 출발지점으로 이동하여, 나도 여럿 틈에 섞여 뛰기 시작했다. 3주만에 뛰는 거라서 그런지, 출발부터가 힘들다. 얼마 가다 보니, 어떤 분이 내게 인사를 건네길래 황급히 나도 인사하였다. 자세히 보니 한강변에서 좀 뵌 분이다. 아마 반달 소속이신 듯..
5백미터도 못갔는데, 누가 내게 말을 건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풀코스를 뛰는 회사 동료다. 30키로 정도 지점에서 나를 추월하겠다고 했는데, 아니 이럴 수가... 가볍께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만 하다. 좀 더 뛰다 보니, 아니..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순간 이상했다... ‘아니 뭐 이래.. 이런 대회가 겨우 저렇게 물을 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 조선일보에서 주는 게 아니라 길가의 주민이 자비로 종이컵을 준비하여 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무척 놀라왔다.
5키로 지점에 가니 28분! 조금 오버페이스다. 그런데, 돌아보니, 정말 다들 잘 뛴다.. 난 솔직히 죽겠는데.. 에구 힘들어.. 그 때까지 같이 뛰던 회사동료가 조금 앞서더니,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나를 추월하면 좀 부끄럽기도 했다. 격려하는 춘천시민들에게 인사도 하고, 길가의 어린이들이 손바닥을 내밀고 있으면 그 쪽으로 뛰어가면서 까지 손바닥을 마주 치며 웃어 주었다. 멀리 있는 시민들이 환호성을 보내면 난 손을 들어 흔들어주기도 하면서, ‘잘 뛰지도 못하는 녀석이 마라톤 선수나 된 것처럼 하네’라는 생각도 하였다.
왜 이리 10키로 지점이 멀게 느껴지는지.. 10키로에 오니, 58분! 어휴.. 어떻게 1시간을 더 가지 라는 걱정부터 앞선다. 좀 더 가니 길은 한 없이 넓어지고, 통제되어 서 있는 차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니 35키로(풀코스 기준) 지점이 나왔다. 포카리를 두 컵 들이키고, 7키로 남았으니 승부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나길래, 빨리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상당히 제치고 앞으로 나갔다. 지난 번 통일 마라톤 기록(2시간 8분)보다는 빨라야지 하는 생각에, 힘을 냈다. 근데, 다리를 건너기 조금 전부터 힘이 빠진다. ‘에구 역시 7키로를 뛰기는 힘이 드는구나’ 다리를 넘어서 큰 도로를 접어드는데, 회사동료가 저만치 앞에 가고 있고, 난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다. ‘아 힘들어...’ 한없이 속도는 느려지고 계속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나간다. 이젠 남들이 나를 추월하든 말든.. 만사가 귀찮다. 머리를 푹 숙이고 좀 가다 보니, 회사동료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40키로 지점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꽉막힌 차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좌회전 하니, 버스정류소 근처에, 마지막 급수처가 있다. 여기가 40키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54분 (19키로를 뛴 것이다). 푹 쳐저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건넨다. 70은 되신 것 같다. “풀코스 뛰는거야?” 하시길래 “아닙니다. 하프예요.”하면서 그 분 배번을 살폈다. ‘에구. 풀이구만..’ “할아버지는 풀이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였더니, 대답은 들은 듯 마는 듯 하시고 앞으로 나가신다. 아마 자랑하시고 싶은가 보다.
다시 우회전하여 가니,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계속 추월당하면서, 그리도 찡그런 얼굴을 들고 가기도 뭣해서 고개를 숙이고 낑낑 대며 갔다. 그렇게 땅만 보고 가는데, 또 누가 말을 건넨다. “저기예요?” 하는 것인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보니, 뭔가 보인다. 순간 난 이제야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디움이 보이니 어쨋든 다 온 것이다. 도로를 벗어나서 스타디움 쪽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좌우에 있다. 사람들은 계속 나를 추월한다. 특히 풀코스 주자들도 엄청 많은 것 같다.
스타디움에 들어서기 직전 웬 꼬마가 나를 앞질러 간다. 등에 불인 이름을 보니 윤지용군이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용군을 꽤 응원을 한다.
푹푹 처져 가며 집사람과 아들녀석을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트랙에 들어가서도 마지막 스퍼트는 커녕 뛰기도 힘들다. 마지막 몇 미터를 두고서도 다들 나를 추월한다. ‘에구... 이제야 살았구나...’ 시계를 보니 2시간 13분이 넘엇다. 나의 시계를 보니 2시간 9분 48초다. (조직위원회 공식 기록은 2시간 12분으로 되어 있다)
통일 마라톤 보다는 2분 정도 뒤진 기록이지만, 뿌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오른쪽 발이 좀 불편하기는 하엿지만, 그래도 완주는 하였으니까..
다른 회사동료들과 인사도 하고 기록도 주고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만 제외하고 다들 잘 하신 것 같다. 출발하자 마자 나를 추월한 풀코스주자는 3시간 30분도 안되어 들어왔고, 그리고 4시간 17분즈음 들어오신 분도 있고, 첫 풀코스 출전한 분은 4시간 48분이란다.
좌우간에 풀코스 5명 하프코스 4명 모두 완주했다. 춘천역에 가서 닭갈비 먹고 돌아오는 기차간에서는 늘어지게 잠만 잤다.
7. 1999.11.7. 마침내 하프 2시간 벽을 돌파하다. 그리고 맞이한 침묵의 시기.....
춘천마라톤을 뒤로 하고 다시금 신발을 신고 나선 것은 바로 다음 주 토요일이었다. 업무 후에 회사동료 몇 몇과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제2회 서울마라톤에 참가한 바 있는 동료들로부터 서울마라톤 출발점 및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반포까지 왕복(약 13키로)하였는데, 기록은 아주 저조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11.7)에는 서울마라톤과 동일한 코스에서 서울시장기대회가 있었는데, 사무실내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하였다. 춘천마라톤을 계기로 회사내의 마라톤서열이 (고정멤버 10명중) 9위에서 10위로 밀렸던 터라, 역시나 출발 후 골찌로 바로 처졌다. 반포를 지나 한남대교로 달려가면서 바로 앞에서 뛰어가던 회사동료 2명과 합류하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뛰어 갔는데, 이미 반환점을 돌아 뛰어오는 많은 주자들을 보면서 존경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연세가 60-70은 족히 되고도 남을 주자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움, 그리고 이어지는 부러움, 내가 과연 저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 저만큼 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정도까지는 가야겠지 하면서 뛰고 있는데, 아니 이럴 수가!! 한남대교에서 동호대교의 중간지점에서 하프반환점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에게 무척 놀랐다. 55분밖에 안되었는데 10.5키로를 뛰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날씨도 무척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아 1시간 51분대에 결승점에 들어왔더니 회사동료들이 전부 놀란다. 나 스스로도 너무 잘 뛴 것 같아 아무래도 이상하고, 다들 기록을 조사해보니.. 대략 1키로 정도는 거리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러면 20키로를 1시간 52분정도에 뛴 것인데, 이 정도만 해도 하프거리를 2시간 이내에 뛴 것으로 보아도 될 터였다.
마라톤 시작 5개월만에 그제서야 (그리고 내게는 한참이나 높아만 보였던) 하프 2시간벽을 깬 것이다.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10분을 뛰고 겨우 2주만에 별다른 연습없이 2시간을 돌파하고 나니 그지없이 기분이 좋았다. 돌이켜 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날씨가 무척 좋았고 또 숏피치에 대한 깨달음덕이었다. 그 때까지 마라톤 사이트에서 초보에게는 숏피치가 적당하다는 글은 자주 보았으나 실제 키큰 (177Cm이다) 사람에게는 숏피치라는 것이 안 맞을 것 같았고, 또 실제 적용하려고 해도 발걸음이 어색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숏피치를 적용하게 되었고, 짧은 보폭의 빠른 발놀림으로 뛰고 있음에도 피로가 훨씬 덜한 것을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 라스트스퍼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날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1999년에 마라톤을 한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훈련 및 경기참가를 합하여 6월20일부터 11월 7일까지 뛴 거리는 21번에 전부 282키로였다. 하프보다 멀리 뛴 것은 한 번도 없었고, 하프는 전부 6번 뛰었다) .
8월에 한 두번 밤늦은 시각에 동네에서 3-4키로씩을 뛴 것을 제외하고는 주중연습이 어려워 난 항상 주말에만 연습하였는데 날씨가 추워지고나니 주말에 연습하러 나가기도 쉽지 아니하였다. 또한 몇 개월동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되던 반포에서의 우리 마라톤팀의 일요달리기 모임도 추운 날씨로 인하여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니, 그로써 달리기 생활이 멈춰지고 만 것이다.
그 기간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다음 2가지이다.
춘천마라톤에 함께 갔다 온 집사람이 갑자기 동네 근처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평일에 동네근처에서 달리기를 계속하더니, 11.14일에 열린 서울여자마라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여 1시간의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시작 17-18일 만에 10키로를 한 시간에 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또 하나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년말에 (당시) 선기자님과 송코디님을 만난 것이다. 선기자님이 타이즈 공동구입을 주선하시면서 나는 사무실내의 수요를 파악해 단체 주문했는데, 그로 인해 선기자님과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가깝게 근무하고 있으니 (직장이 광화문근처임)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마추어 마라톤계의 거목중의 하나이신 선기자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사무실내의 마라톤팀내에서 화제로 떠 올라 여러 명 같이 가기로 했으나 연말연시이다 보니 당일 시간내기가 어려워, 회사내 선배인 이**님과 동료인 최**님과 함께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마침 송코디님도 같이 나오셔서 나는 한 꺼번에 두 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라톤 사이트에서 성함 및 글만으로 알게 된 두 분을 직접 만나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사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 차원이 다른 마라톤의 달인들이셨다.
하여간, 전혀 뛰지 않은 기간이 50여일을 넘어가면서 내게는 마라톤을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어느 새 새즈믄해가 가까이 다가 와 있었다.
8. 2000년 1월 4일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다 . (주중마라토너로의 변신)
두어달 가까이 한 번도 안뛰면서도 마라톤은 내 머리속에서 항상 맴돌았다. 식사 후에 내 자리로 돌아와서는 춘천마라톤 사이트에 접속하여 만남의 광장에 올라 있는 글을 읽는 것이 하나의 일과이기도 했다. 새해에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야 할텐데 하면서 첫 대회인 서울마라톤에서 어느 종목에 나갈지가 고민이었다. 1999년을 돌아보면 하프코스 정도는 충분히 뛸 것 같기는 하였는데, 이제는 나도 풀코스 한 번 나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은 차라리 무모에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1월에는 회사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한가해지는 계절이라 1.4일에는 느닷없이 회사근처의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3키로를 뛰는데 20여분이 걸렸는데, 그나마 겨우 그 정도 뛰면서 느꼈던 고통은 ‘내가 이걸 왜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컸던 것 같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트레드밀에서 뜀박질을 시작한 것이다. 그날부터 16일동안 연속으로 헬스클럽에 나갔다. 뛸 자리가 안나서 자전거만 타고 돌아온 하루를 포함해서 16일 연속해서 운동을 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원래 주말에만 운동하여 왔기 때문에, 한달에 고작해야 4-5번 뛰었던 내가 아니던가. 평일에는 회사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매일 5키로씩, 주말에는 집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일일 회원으로 매 번 7-10키로를 뛰었다.
트레드밀에서의 뜀뛰기는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한강변에서 10키로를 뛰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만, 트레드밀에서는 5키로를 뛰는 것도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1월20일이 넘어서면서 회사업무가 점차 바빠지기 시작하여 주중 운동은 매주 1-2회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처지로 바뀌고 말았지만, 서울마라톤과 동아마라톤 둘 중에 하나는 풀코스에 출전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작년에 하프코스를 6번 완주하였지만 그보다 더 먼거리를 뛴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두어달 가까이 전혀 안뛰다가 다시 시작하여 열심히 뛰기는 했지만, 가장 멀리 뛰어 본 것은 겨우 10키로였다. 어떻게할까 하다가, 시간제한을 하는 동아마라톤보다는 걸어오는 주자를 위해서도 기다려주는 서울마라톤에서 풀코스로 나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마라톤에 정작 풀코스로 신청하고 나니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회사내 마라톤 팀원들은 동아마라톤 풀코스 출전을 목표로 하다 보니 서울마라톤에서는 전부 하프에 나가고 나와 동료인 이**님(1999 춘천마라톤 3시간 20분대)만 풀코스에 나가게 되어, 같이 뛸만한 동료마저 없는 상태였다. 적어도 풀코스에 나가려면 25키로 내지 30키로는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1.30일(일요일) 트레드밀에서 25키로를 뛰었는데, 이는 하프보다 멀리 뛴 첫 경험이었다. 소요시간도 2시간 33분 걸려 생각보다 괜찮았다. 1월에는 총 19회에 걸쳐 120키로 가량을 연습했다.
2월에는 총 12회에 걸쳐 100키로 가량을 뛰었다. 트레드밀에서 하프 1번 (2시간6분), 한강변에서 하프 1번(1시간58분)을 뛰었고, 여의도 출발지점에서 성수대교를 왕복하는 23키로거리를 1번 (2시간31분) 뛰었다. 야외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트레드밀을 합하여 겨우 두 번째로 하프보다 멀리 뛰었던 2월19일(토)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날씨도 꽤 쌀쌀했고 바람도 불었으며, 출발점인 여의도 야외음악당 앞으로 돌아왔을 때 난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서울마라톤이 겨우 보름남은 시점에서 23키로를 2시간31분에 뛰고서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뻗어버릴 정도라면 풀코스는 어떻게 뛴담?
암담했다. 원효대교 밑에 있는 매점에서 동료들과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보름 후에 있을 풀코스의 중압감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젠 연습할 시간조차 없다는 생각에 미치니, ‘쓸데없이 까분다고 풀코스를 신청한 것은 아닌가’하는 후회마저 나를 감싸고 돌았다. 그렇다고 지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5시간내에 완주할 자신이 있느냐는 동료들의 말에 안되면 ‘완보라도 하지요 뭐..’라고 웃으며 대꾸는 하였지만, ‘에구구... 완보라도 하겠나’ 싶었다. 풀코스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중풍환자처럼 손발이 떨리는 것도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3.1절대회에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서울마라톤에 대비하여 난 3.1절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서 헬스클럽에서 13.5키로 (1시간20분)를 뛰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연습하고 싶었는데, 야속하게도 3월4일이 성큼 다가왔고, 그리고... 그날 오후 2시40분경이었던 것 같다.
함께 풀코스에 나갈 회사동료 이**님과 다음 날 일정에 대하여 말하다가, 24시간이후 (3월5일 오후 2시40분)에 과연 내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2시40분이면 출발후 4시간 40분, 내가 만약 63빌딩을 바라보며 열심히 뛰고 있다면 이는 대성공일텐데, 혹시 반달출발장소 근처에서 퍼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주자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는 나의 모습이 상상속으로 들어 왔다. ‘에쿠.... 이제 난 죽었다’ 나도 몰래 가벼운 탄성이 흘러 나왔다. 2.26일(토)에 하프를 뛴 후 3.1일에 13.5키를 뛴 것을 제외하고는 달리기 폼조차 잡아보지 못하던 터였다.
그 날은 8시가 다되어 퇴근을 하면서 헬스클럽에 들렀다. 3키로를 20분에 뛰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마라톤에 나갈 준비를 하여 두고, 11시가 조금 넘어 잠들었다. 잠을 못자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항상 잠이 부족하였던 처지라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서울마라톤 전까지 회사내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분은 전부 5명이었다. 3시간27분, 4시간12분, 4시간48분, 4시간54분 그리고 5시간18분. 여섯번째로 도전하는 내가 목표로 했던 시간은 4시간 40분이었다. 내 생각에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10-20%정도인 것 같았고, 5시간내에 들어올 확률은 60-70%, 아무리 늦어도 5시간 18분까지는 완주 (또는 완보)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와 함께 풀코스에 나갈 동료 이**님은 보스톤출전권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3시간 10분이내에 들어야 했다.
동시에 출발하여 이**님이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우리 두 명이 서로 마주치게 되는 곳을 계산해 보니, 잠실철교 정도인 것으로 계산되었다. 목표시간이 1시간30분 차이가 났는데, 만약 차이가 1시간30분이 넘게 나면 이**님이 이기는 것으로 하고 차이를 1시간30분이내로 좁히면 내가 이기는 것으로 해서 내기를 하는게 어떻냐는 말들이 회사내에서 오고 갔는데,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이길 것으로 보는 분은 거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무모한 짓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는 집사람에게 먼저 완주 후 집에 가서 차를 몰고 반포고수부지로 나오라고 일러 두었는데, 2시정도(출발후 4시간)에 나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런데, 회사선배인 박**님은 그나마 내가 생각보다 잘 뛸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셨던지라 박**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집사람에게 1시40분(출발 후 3시간40분)부터 2시 20분까지 나와 있으라고 하였다.
하여간 아침 7시에 맞추어 놓은 자명종소리에 눈을 떠 보니, 서울마라톤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9. 감동의 서울마라톤 (1) - 풀코스 완주를 위한 3가지 전략
자명종소리에 일어나 집사람부터 깨웠다. 집사람도 10키로 부문에 출전하기 때문에, 아들녀석은 아이의 이모네에 맡기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터였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영양갱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 후, 차를 타고 가서 아이를 맡긴 다음, 광화문쪽으로 차를 몰았다. 여의도가 붐빌 것 같아 아내와 함께 지하철로 갈아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나루역이 가까워지니 마라톤화를 신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9시경에 드디어 도착...... 설레는 마음으로 내려다본 대회장에는 온갖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동료들과 의무실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사실 나의 마음은 그보다 더 추웠던 것 같다. 한 쪽에서는 에어로빅으로 몸을 푸는 사람도 있었지만, 따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집사람과 둘이 서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우리에게 짐을 맡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 혼자 뛰고 집사람은 응원차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였다. 둘 다 뛸 거라고 하면서 짐 맡기는 곳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즉, 너무 붐벼서 시간내에 못 맡길 것 같아서 그런다고 하였다. ‘잉.....’ 갑자기 초조해졌다. ‘짐 맡기는 것부터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는데....’ 일단 짐을 맡기고 다시 동료들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들은 것과 달리 짐을 수월하게 맡길 수 있었다. 상의를 반팔로 할 것인지 긴팔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긴팔로 입기로 했다. 노란색 비닐을 둘러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만 보니 짐 맡길 때 쓰는 비닐이었다. 주최측에서 나누어 주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저러다가 짐을 보관해야할 비닐이 모자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동료들을 만났다. 오늘 함께 풀코스를 뛰어야 할 이**님은 상하 모두 짧은 옷 차림이었다. 난 하의는 짧은 것으로, 상의는 긴 것으로 입었다. 왔다갔다하다보니, ‘아뿔사.....’ 깜빡 잊어버리고 바세린을 바르지 않았다. 다시 가서 가방을 달라고 하자니 나 때문에 번거로울 것 같고 또 날씨가 추운만큼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뛰기로 했다. 의무실앞에 가서 좀 더 기다리니 동료들이 더 모여 들었다. 각자 인사를 나누고 격려하기도 하고..... 20여분이 금방 흘렀다.
드디어 풀코스 주자들은 출발선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들린다. ‘아...후...’ 집사람에게 “1시40분까지 반포에 와”라는 말을 남기고 하프뛰는 동료들로부터 격려를 받은 후, 출발선으로 향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출발선에 가보니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드디어 개회사가 시작되고 금번에 참가하는 외국인이 5백수십명이라는 말에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로빅과 함께 분위기는 고조되고 드디어 출발신호가 울렸다.
풀코스에 처음 출전하면서 완주를 위하여 내가 세웠던 전략이 3가지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회참가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별 내용은 아니지만...) 꼭 실천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프는 무작정뛰기만 하면 어쨌든 완주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25키로 1번, 23키로 1번밖에 뛰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30키로 이후 내 몸이 과연 어떠한 상태가 될 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30키로 이후인 것이다.
그래서 첫째,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기로 하였다. 달리는 도중에 목이 마르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라고 동료들로부터 누차 들어 왔기 때문에, 목이 마르든 마르지 않든 출발 전과 출발 후 매 5키로마다 물은 충분히 먹기로 했다.
둘째, 입과 코를 모두 이용하여 숨을 쉬어 보기로 하였다. 난 그 때까지 입으로 숨쉬는 것이 (공해 때문에) 폐에 안 좋은 것 같아 코로만 숨을 쉬었는데, 근육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려면 입을 이용하여 숨을 쉬어야 하고, 그래야먄 장기레이스를 견딜 수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셋째, 오버페이스를 예방할 수 있도록 심박시계를 하나 샀다. 서울마라톤 사이트에 소개된 광고를 보고 하나 사서 트레드밀에서 미리 심박수치를 측정해 보았다. 트레드밀에서 시속10키로의 경우 분당 150번, 시속 11키로의 경우 분당 160번, 시속 12키로의 경우 분당 170번이 나왔다 (그러나 동일속도라도 트레드밀위에서의 심박동수치보다 실제 레이스에서의 심박동수치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목표로 삼았던 4시간40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9.04키로 정도의 속도가 필요했고, 초반에는 10.5키로 정도의 속도로 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심박동수치를 분당 155-160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회사선배 박**님으로부터, 레이스 초반에 선수들이 느낌으로는 몸에 아무 이상이 없고 따라서 별로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들 달리지만, 느낌보다는 실제로 무리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심박동수치로도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즉, 출발직후, 의식적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심박동수치가 높게 올라가게 되고 이는 결국 오버페이스를 의미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또, 레이스 후반부에서는 심박동수치는 동일하더라도 속도는 갈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10. 감동의 서울마라톤 (2) - 4: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출발신호와 함께 나도 풀코스를 향한 대열에 끼여 있었다. 그래 뛰어보는 거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사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한이 있을지라도 포기는 안해야지 라고 되뇌었다. 몇 걸음을 나서는데 천호대교가 머릿 속에 그려졌다 (구간별로 나누어 뛰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강에 자주 나오다보니, 그 때 이미 난 서울마라톤 풀코스 전구간을 뛰어본 경험이 있었다). 왼쪽앞으로 힐끗 쳐다보니, 천호대교는커녕 동작대교도 잘 안 보였다. ‘어휴..... 살아 돌아오려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난 대열의 앞쪽에 서 있었는데, 1백미터도 못 가 심박동시계를 힐끗 보니 벌써 175를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 155-160을 유지하려 했는데, 출발직후라 그런지 심박동이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어 심박동을 160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이럴 수가......’ 좌우 양편으로 모두들 나를 추월해서 지나간다.
원효대교즈음 가니, 대열의 거의 꼬투리에 선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내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하며, 오늘은 처음으로 25키로를 넘어 뛰는 날인만큼 힘을 최대한 비축한다는 전략을 새겼다. 느릿느릿 가다보니, 한강철교를 좀 못 간 지점에서 주해선님이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제1회 여자마라톤 풀코스에서 마지막주자로 완주한 분이었다. 나보다 더 늦게 마라톤을 시작한 분으로서 풀코스를 완주하였다는 소식을 작년에 듣고 상당히 부러웠던 기억이 났다.
어쨌든 나보다는 풀코스 선배이니 오늘은 저 분을 뒤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10여미터 뒤에서 따랐는데, 같이 뛰는 다른 분들도 좀 있는 것 같았다. 1키로 정도의 거리동안 뒤를 따르는데, 심박동이 자꾸 150이하로 내려가길래 심박동을 157정도로 계속 유지했더니 자연스레 주해선님을 추월하게 되었다.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가 안 보이나 해서 앞 뒤를 둘러 보았지만, 페이스메이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앞에 간 것 같기도 했는데, 심지어 5시간 페이스 메이커도 안 보이니, 4시간 40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내가 과연 제대로 뛰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길고 긴 노량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내 머리속에서 지우지 못했던 것은 과연 4시간 후 내가 어디즈음 있을까, 여기를 다시 지나갈 때 과연 나는 무슨 표정을 할 것인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과연 뛰고 있을까, 아니면 걷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고..... 그리고 마침내 급수대가 보였다. 자원봉사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조금 더 가니 5키로 지점 표시가 보였다 (32분 경과).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다. 심박동을 계속 신경쓰면서, 반달출발점을 지나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구간에 접어들었다. 4시간40분을 목표로 하는 것 치고는 속도가 조금 느리지 않나 싶었지만, 심박동을 160이하로 유지한다는 생각만으로 뛰어갔다. 뒤쪽에서 뛰어서 그런지, 주자가 많지 않았고 그냥 다른 분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달렸다. 그런데 한남대교에 다가갈 무렵 어떤 분이 나를 추월하는데 등에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대회가 끝나고서야 김승언 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어! 뒤에서 오네.’ 하여간 무척 반가왔다. 사람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진 것도 정말 오랫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따라붙으면서 말을 걸었다. “4시간40분 페이스 메이커이시군요.”
그는 듬직하게 달리고 있었다. 맨 뒤쪽에서 출발했단다. 페이스메이커임을 표시하는 풍선이 터졌다고 하면서 등에 쓰인 글이 잘 보이냐고 묻길래 잘 보인다고 대꾸했다. 그가 말을 한다. “저는 1980년생입니다. 저보다는 한참 형님이신 것 같군요.” 나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나를 자기보다 한 10년 즈음 선배로 보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저는 1965년생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풀코스 첫도전이며 지금까지 25키로보다 멀리 뛰어 본 적이 없다는 등, 이번 목표는 4시간40분이어서 아까부터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열심히 찾았다고 하였더니, “첫 도전은 완주를 목표로 하셔야죠. 4시간40분은 쉽지 않습니다” 한다. ‘음메..... 기죽어’ 같이 뛰다 보니, 아까 보다 속도가 올라간 것 같아 심박동을 보니 계속 163근처에 있다. 속도를 늦추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은 김승언님을 따라가기로 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남대교를 지나고 급수대가 보였다. 내게 “빨리 가지 않을 테니 물을 충분히 드세요”하길래 한층 더 마음을 푸근히 가지고, 물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10키로 지점 통과시간은 1시간 1분 22초. 현재까지는 괜찮은 기록이다.
우리는 성수대교를 지나 영동대교를 넘어가는 쪽 뻗은 길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승언님은 철인클럽 회원이란다. 작년 12월부터는 단 한 번도 뛰지 않았고 오늘 아침 서울마라톤에 나오기 위해 마라톤화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을 만큼, 지난 겨울에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동아마라톤에서도 페이스메이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30키로까지만 뛸거라고 하였다. 30키로까지 밖에 못 뛴다는 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15키로지점 도착시간이 1시간 32분. 거의 시속 10키로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급수대에서 다시 물을 마시고 잠실주차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나서 앞을 보니, 선두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 대단한 사람들!’ 내가 16키로를 조금 더 뛰었는데, 이 분들은 벌써 16키로가 남은 것이다. 그러면 이미 26키로를 뛰었다는 말인데, 음... 음.... 계속하여 마라톤의 고수들이 달려오기에 박수를 계속 쳐 주었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달려오기에 박수치는 것은 포기하고, 회사 동료 이**님을 찾기 시작했다. 3시간 10분을 목표로하는 이**님을, 예상대로라면 잠실철교 근처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잠실대교를 지나서 조금만 가니 이**님이 지나간다. 생각보다 이**님은 빨리 달리고 있었다. 파이팅을 외쳐주고, 조금 더 가니 김정숙님이 지나간다. 아는체 하였지만, 무리 속에 섞여 못보았는지 그냥 달려만 간다.
김승언님은 오랫만에 뛰어서 그런지 숨소리가 쌕쌕거리며 힘들어 하는 눈치다. 나는 아직 견딜만 했다. 날씨와 기온, 이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즐거운 기분을 계속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다. 20키로(2시간 2분)에 도달하니 김승언님이 나더러 먼저 가란다. 이 정도로 뛰면 내가 오늘 목표시간인 4시간40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거라는 말을 남기고 옆으로 빠졌다. 아마 여기서 포기하는가 보다 싶어서 인사를 하고 혼자 달려 나갔다.
드디어 천호대교가 보이고, 마침내 하프지점에 도달(2시간 8분 35초)했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하프에 출전하여 2시간 10분에 완주하고도 뻗어 버렸는데, 그 때보다는 훨씬 낫다. 물을 두 컵 마시고 바나나를 하나 까서 다시 출발할 때가 2시간 9분 40초 가량 되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포기한 줄 알았던 김승언 님이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프정도에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4시간 37분으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충분히 다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대단한 분이다).
인사를 나누고, 더 가다보니 소변이 마려워서 주로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려고 섰는데, 아니 이게 웬걸 양다리가 떨리는게 아닌가 계속 뛸 때는 몰랐는데, 서 있으려니까 양 허벅지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하면서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11. 감동의 서울마라톤 (3) -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38-40키로 구간, 그리고 한강대교 아래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잠시 서 있을 때는 양다리가 후들거리더니, 그래도 다시 뛰다 보니 별달리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잠실철교와 잠실대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반대편에 지나가는 주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뛰는 주자들도 간격이 멀어지면서 사실상 혼자 뛰는 형국이었다. 25키로 지점의 통과시간은 2시간 36분이었다. 그런데 잠실대교를 몇 백미터 지난 지점에서 최고령 할아버지께서 달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약간은 상체가 기울어 있는 자세로 비록 느리기는 하였지만 분명 뛰는 자세였다. 바로 앞 주자와의 간격이 너무 멀어 주최측이 혹시 할아버지께서 뛰고 계심을 모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25키로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뛰는 것인만큼 감회가 새로왔다. 다행히도 아직 지친 기분은 아니었고, 마음은 매우 가벼웠다. 탄천을 넘어서 청담대교를 지나고 꾸준히 나의 속도대로 나아갔다. 영동대교를 지나 500미터 정도 갔을 때 30키로 지점이라고 쓰인데를 지나면서는 깜짝 놀랐다. 시계를 보니 3시간 1분을 경과하고 있었는데, 이럴리가 없다싶어서 30키로 지점을 추산해 본 즉, 1키로 정도 위치가 틀린 것 같았다. 즉 성수대교에 500미터 정도 못간 지점이 30키로 이어야 했다. 25키로지점의 통과시간과 비교해도 30키로 라고 쓰인 지점은 29키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30키로 지점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3시간 8분에 통과했다. 성수대교를 지난 후 약간의 오르막을 뛰면서 다리가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견딜만 했다. 32키로 지점(3시간 23분)을 지나면서 물을 마시고 한남대교를 지났다. 집사람이 반달출발 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한 시각이 3시간 40분 경과한 시점부터였는데, 예상보다 잘 달리다보니 3시간 40분 경과 전에 반달출발점을 지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남-반포대교사이의 구간을 뛰면서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주위에 있는 분들은 거의 모두가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나는 걷지 않고 계속 뛰다보니 다른 주자들을 끊임없이 추월하였다. 35키로 지점은 3시간 42분에 통과하였고 반포대교 아래의 언덕구간을 넘어가면서는 집사람이 저 앞에 와 있나 싶은 생각에 시선을 멀리 두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다.
저 앞에 집사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리에 힘이 좀 더 생기는 것 같았고 집사람의 사진촬영 세례속에 반달출발지점을 통과하였다 (3시간 45분 경과). 반달출발지점을 넘어가면서 페이스는 더욱 느려졌고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오늘 따라 동작대교는 왜 이리도 멀리 있는지….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만난 이후 심박동수는 계속 163으로 유지하였지만, 갈수록 속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여의도가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난 기계적으로 팔다리를 놀리는 형국이었다. 나의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졌고, 그 거칠어진 숨소리가 내귀에도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가 다른 주자들을 추월할 때 마다 모두들 나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놀라 나를 힐끗 쳐다보곤할 정도였다.
동작대교를 지나고 5키로 남은 지점을 지날 때가 3시간 59분이었다. 급수대에 잠시 서서 물을 두 컵 마신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드디어 출발…. 지칠대로 지치고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두 다리가 마치 천근같이 느껴졌다. 이제 난 그 지리한 노량대교 구간을 지나가야 한다. 간혹 달리고 있는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나의 머리는 마치 텅빈 느낌이었다. 3시간 30여분 전에 이 구간을 지나던 때가 갑자기 생각났지만, 퍼져버린 내 몸의 피로는 이내 그러한 생각들을 묻어 버렸다. 곧 이어 4키로 지점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길래 시계를 보았더니, 아무래도 4키로 지점이 너무 가까이 표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3키로 지점은 여기서부터 1키로 이상을 가야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량대교 밑에 있는 약간의 언덕구간을 올라가는 것도 너무나 힘겹게 느껴지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 때 누군가 나를 약간만 밀치면 아마 난 그 자리에서 넘어졌으리라. 작년에 우리 마라톤 팀이 황영조 선수로부터 지도를 받을 때 황선수가 풀코스 마지막에는 팔을 흔드는 힘으로 앞으로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다른 동료들이 누차 내게 말하였고, 그래서 난 양 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의식적으로 팔의 모션을 크게 하려 애
입문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도전기
(마라톤을 완주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 읽어보시라고 저의 마라톤 도전기를 써 봅니다. 전체분량은 13회에 걸쳐 구성되어 있으며,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라톤 입문과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완주
2. 1999년 6월 20일과 그 후 며칠간의 고통스런 기억들....
3. 마라톤목표를 설정하다 (99년 6월 27일부터 중앙마라톤 전까지)
4. 땅바닥에 떨어진 물을 주워 먹으며 달렸던 중앙마라톤 대회
5. 중앙마라톤이후 통일마라톤을 거쳐 춘천마라톤 전까지.....
6. 싱그런 가을느낌과 함께 한 춘천마라톤
7. 1999.11.7. 마침내 하프 2시간 벽을 돌파하다. 그리고 맞이한 침묵의 시기.....
8. 2000년 1월 4일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다 (주중마라토너로의 변신)
9. 감동의 서울마라톤 (1) - 풀코스 완주를 위한 3가지 전략
10. 감동의 서울마라톤 (2) - 4: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11. 감동의 서울마라톤 (3) -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38-40키로 구간, 그리고 한강대교 아래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12. 서울마라톤에 대한 평가 및 감사의 글
13. 도전기를 맺으며 (되돌아 본 10개월)
1. 마라톤 입문과 8.5개월만의 풀코스 첫 완주
내가 마라톤에 처음 입문한 것은 1999.6.20일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8개월 보름후인 2000년 3월 5일 제3회 서울마라톤에서 드디어 4시간 32분 45초의 (제가 보기에는 매우 대단한) 기록으로 첫 완주 달성!! 내가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99년 초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내에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누구누구가 10키로나 20키로씩을 달린다는 것이었다. 잉?? 이럴수가!! 선수가 아니고서야 보통사람이 어찌 몇 키로씩을 달릴 수 있지? 언뜻 고3학년때의 대입시를 위한 체력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83년 11월(65년생)에 있었던 고3체력장 이후, 난 99.6.20까지 1키로 이상을 뛰어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복무도 적당히 (빽을 쓴 건 아니고, 시력이 나빠서) 떼우다 보니, 구보할 기회도 없었던 터였다. 1키로 뛰고 난 후 하늘이 노래져서 운동장에 넘어져 있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내게 회사동료들이 10키로나 20키로를 뛴다는 것은 내게는 경이 그 자체였다.
게다가 하필 마라톤이라니 그 많고 많은 운동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운동을 하다니, 대체 이해가 안되었다. 수영도 있고 등산도 있고 아니면 골프를 하든지 테니스, 농구, 축구같은 재미있는 운동이 얼마나 많을텐데 왜 마라톤을 할까? 조선조 시절 테니스가 처음 도입되던 때 테니스 경기를 보던 양반왈 ‘저렇게 힘든 것은 하인들이나 시키지.. 왜 직접 해’라고 하였다던데 (믿거나 말거나), 정말 마라톤은 하인(?)들이나 시켜야 할 운동이 아니던가
중고교시절을 돌아보면 학교운동장에서 아침조회를 하는 시간이 간혹 있었는데,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난 조회대열 맨 끝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어지러워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중3때 고입시를 위한 체력장에서는 반에서 서너명을 빼고는 전부 20점 만점을 받았는데, 난 19점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졸업무렵 갑작스런 기침에 피를 토하는 일이 있었고, 결국 폐결핵 1기 판정(당시 키는 171cm, 몸무게는 48kg)을 받았다. 그로부터 처음6개월간 매주 2대의 주사를 맞았고 또 1년동안은 매일 엄청난 양의 알약들을 먹은 적도 있던 터였다.
어쨌든 대학교입학, 졸업, 취직, 결혼 등을 이어가며 99.6월 당시 나의 키는 177cm, 몸무게는 69키로였으니, 체형으로는 괜찮은 편이다. 건강한 체질이랄 정도는 아니지만, 언뜻 보아 건강을 걱정할 정도도 아니었고, 다만 최근 1-2년 사이에 이젠 나이가 서서히 들어가니 운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회사내의 마라톤팀과 점심을 자주 하던 중 99.6월의 어느 날, 99년 9월초 정도에 마라톤을 시작해서 99 춘천마라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겠노라고 (별 생각없이) 말하곤 말았다. 두 어달 연습하면 10키로 정도야 뛰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마라톤을 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회사내 마라톤 팀의 권유에 못 이겨, 마침내 99.6.20일 아침 6시 40분에 반포 고수부지에 나가게 되었다.
2. 99년 6월 20일과 그 후 며칠간의 고통스런 기억들..
7시가 조금 못 되어 반포고수 부지에 도착해보니 반달모임(익히 들어서 어떤 모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에 참여할 분들이 벌써 몇몇분 계셨고 회사 동료분들(엄밀히 말해서 반달소속은 아니다)도 속속 도착했다. 원래 반달모임과 따로이 뛰기로 내부에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갑자기 반달모임의 멤버들 속에 우리 팀이 섞여 버렸고, 그래서 회사동료분들은 오늘은 반달팀과 함께 뛸려는 것이었다.
입문 첫 날에 마라톤의 최고수들과 함께 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뒤로 슬쩍 빠져서 강가로 나가, 혼자 뛰기 시작했다. 반달모임의 달리기 코스와 중복이 안되게 뛰려고 한강물가로 최대한 이리 저리 둘러가는 길을 뛰어 성수대교까지 왕복했는데, 1시간 27분이 걸렸다. 한남대교 아래에서 보이는 반포대교는 한없이 멀어보여 절망감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뛰다 (사실 남들이 보면 분명 걷는 것일게다)보니 반포대교가 코앞에 다가오기는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전체거리가 약 10.5키로란다. 속도야 느릴 바 그지 없지만, 달리기 첫날에 한번도 안쉬고 10.5키로를 뛴 것은 분명 잘한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얼마나 멀리 뛰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10키로를 뛰었다고 했더니, 1키로 뛰고서 0을 하나 덧붙여 거짓말하는 것으로 믿는 눈치다. 겨우 1키로 뛰고서 그 정도냐고 하루종일 놀리는게 정말 1키로 밖에 안뛴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다리가 좀 이상했다. 마치 하반신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하반신이 없는 것도 같고... 깜짝 놀라 발가락을 움직였더니 그나마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아휴, 고장난 것은 아니겠구나 하면서 일단 안심은 하였지만, 계단오르내리기는 커녕 걷는 것 조차 어려웠다.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계단의 난간에 의지하여 계단을 한칸씩 한칸씩 발을 모아가며 내려가니, 주위에 지나가는 분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기 어렵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발목은 괜찮아서 그런지 운전은 할 수 있었으나, 사무실에서 놀림감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서 있는 나를 누군가 장난삼아 뒤로 밀면 (보통같으면 그냥 뒤로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난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거짓말 좀 보태서) 거의 기어다녔다. 계단의 난간을 잡지 않고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 수요일, 다리에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된 것은 금요일에서였다.
마라톤 입문 후의 첫 주는 이처럼 고통속에서 지나갔다.
3. 마라톤목표를 설정하다 (99년 6월 27일부터 중앙마라톤 전까지)
얼떨결에 이루어진 마라톤 입문 후 고통속의 1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에 내가 한 일은 동대문운동장쪽의 스포츠상가에 나가 마라톤화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몇몇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유명회사의 제품을 구입하였는데, 일단 보기에 마라톤화로 되어 있고 또 아주 가벼운 신발이어서 장거리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화로는 적격이라 생각하였다 (이는 오산이었음을 얼마 안가 깨닫게 되었다. 신발에 관한 이야기도 이 글의 어느 부분에선가 하고 싶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한다).
입문 두 번째 날인 6월27일에는 평소 신어보지 못하였던 마라톤화(그 당시에는 상당히 좋은 신발이라고 생각했었다)를 처음으로 신고 반포고수부지에 나가니 마음은 하늘을 나는 듯 하였다. 그 날은 14키로를 1시간41분 동안 뛰었는데, 이 역시 둘째날 치고는 주위의 사람을 놀라게 하기 충분하였다. 수영의 강자(나는 수영장에서 평영으로 3키로 정도까지 한 적이 있으며, 1년에 2-3번 밖에 가지 않지만, 갈 때마다 1키로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다)가 회사내 마라톤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세번째 날인 다음 일요일에는 18.2키로를 2시간동안에 달렸고, 입문 네번째날 (기간으로는 입문 후 3주만이다)에는 드디어 처음으로 하프(반달모임이 뛰는 코스)를 완주하는데 성공하였다. 비록 소요시간은 2시간 19분이었지만, 달리기 4번만에 그만한 기록을 낸 것은 나로서도 놀라왔다. 또한 연습 4번동안 달리기도중에 한번도 걸은 적이 없어서 나로서도 아주 만족스웠다. 주중에는 연습을 할 처지가 못되어 주말에만 연습하다보니 회사내 마라톤팀에서 주말마라토너라는 별명을 듣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거리를 늘리고 시간을 단축하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마라톤에 대한 중독증상(?)이 깊어가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다섯번째 연습을 하던 7월17일에는 회사내 선배이신 박**님과 함께 뛰면서 반포에서 잠실대교까지 왕복(약23키로이다)하게 되었는데, 이 날은 돌아오는 길에 동호대교를 지나 그만 걸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프이상의 장거리를 뛰면서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경우에는, 허벅지나 겨드랑이의 쓸림현상과 젖꼭지부분의 마찰에 따른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를 여러 번 들었지만, ‘설마 나 같은 초짜에게야’싶어서 아무런 주의를 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 날은 반포에서 출발하여 영동대교를 지나갈 때부터 허벅지 사이가 좀 좋지 않아서 손으로 계속 땀을 닦아주면서 달렸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호대교를 지나 19키로 지점에서 도저히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설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서서 양다리 허벅지 안쪽을 보고는 난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소위 쓸림현상… 양다리가 벌겋게 달아올라서 건드리기만 해도 따가왔다. 하는 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어서 반포출발지까지 돌아왔으니, 결국 하프이상 뛰지는 못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일요일부터는 장마 때문에 (작년은 장마가 늦게 왔었다) 연습을 잘 하지 못하였다. 단체연습은 못하고 개인적으로 주당 4-5키로 정도뛰는 선에서 3주가 지나갔다. 이 때 즈음 회사내에 황영조 선수를 잘 아시는 분이 계서서 그분의 주선으로 회사내 마라톤팀이 황선수로부터 두어시간 지도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 그 날 나는 다른 사정으로 참석치 못하여 못내 아쉬웠다.
8월초 한강물이 고수부지를 덮치고 지나간 후, 마라톤팀이 한 번은 남산에 가서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평소에 평지만 달리던 나로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남산코스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서울마라톤클럽에서 혹서기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던 8월15일에도 우리 마라톤팀은 여전히 반달코스를 달렸는데, 그 날의 날씨는 정말 지옥처럼 더웠다. 한동안 연습을 제대로 못한데다가, 그날의 무더운 날씨는 결국 하프반환점을 돌아 성수대교 지점까지 뛰고 있던 나를 멈추게 하곤 말았다. 그 날은 정말 달릴 수가 없었다.
머리는 빙빙돌고 땀은 비오듯 흐르는 그 무더운 날의 레이스를 하면서 ‘내가 미쳐도 한참 미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먹고 뭐 할 짓이 없어서 이런 걸 하고 있나’싶은 생각도 들었다. 계속 걷다보니 하프이상의 거리를 연습하고 있던 회사동료 박**님이 나를 부른다. 도저히 못가겠다고 먼저 가라 했더니 웬걸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아마도 걷고싶었는데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나 보다. 동호대교까지 오니 서울여자마라톤클럽 회원 두 분이 혹서기 마라톤대회를 위한 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우리더러 시원한 물을 마시라 하였다. 우리는 대회참가자가 아니라고 하였지만, 괜찮다고 하면서 주시길래 얼음물과 초코파이를 얻어 먹었는데 정말 고마운 순간이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내가 마라톤에 관한 두 가지 목표를 세운 것은 아마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다.
첫째, 언젠가는 풀코스를 4시간내에 완주하여 보겠다는 것이다. 이미 4시간을 넘어 3시간 초반에 뛰는 분들도 상당히 많겠지만 4시간 내에만 들면 난 충분히 만족할 것 같고 그래서 목표시간을 4시간으로 세웠다.
둘째, (만약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내 나이가 70이 넘은 후 최소한 한 번은 풀코스를 완주하여 보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현재에도 이 같은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사회에서 은퇴후 60이 넘었을 내가 여전히 마라톤을 하고 있을 미래를 그려보면, 그 때를 위해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8월15일 이후부터 중앙마라톤까지는 일요일이 3번 있었는데 매 주말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연습을 제대로 못하였다. 3번중에 한번은 전혀 못하고 한번은 6키로, 중앙마라톤 직전의 일요일에는 5키로 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입문 후 첫 한달여동안은 주말마다 열심히 뛰었지만, 그 이후 한달 반 이상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중앙마라톤 대회를 맞았으니, 그 또한 안될 일이었다. 하프까지 연습한 것은 결국 딱 한 번 밖에 없는 셈이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는 중앙마라톤에서 내가 겪은 고초에 대한 전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
4. 땅바닥에 떨어진 물을 주워 먹으며 달렸던 중앙마라톤 대회
공식 마라톤 대회에의 첫 출전이라는 들뜬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종합운동장 근처에 갈수록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막연한 설레임이 느껴지면서 종합운동장에 들어섰다. 물품을 맡기고 옷을 갈아입고 하는 아수라장속에서도 나의 기분은 묘하게 흥분되어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속에서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이미 다들 출발지점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5키로 부문 출전자와 함께 출발지로 가서 하프출전자 그룹까지 헤치고 앞쪽으로 가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래서 출발할 때 나는 뒷편에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덕분에 총성이 울리고도 뛰는 자세를 취하는데 2분이 넘게 걸렸다. 첫 출전의 흥분속에 거리를 뛰었으나, 물이 부족하여 무척 힘들었고 교통통제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들으며 뛰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5키로지점에서 물 한 잔 먹은 후, 15키로 지점에서 급수차에서 나오는 구정물같은 물을 2잔 먹고, 앞서 가던 분이 버린 생수병에 남은 물 없나 하고 발로 툭툭 차면서 뛰어야 했던 터라, 욕이 절로 나오는 대회였다. 거의 탈진 상태로 골인지점에 들어온 후에도 물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2시간 21분의 참담한 기록 속에 마라톤 첫 출전의 막이 내렸다.
5. 중앙마라톤이후 통일마라톤을 거쳐 춘천마라톤 전까지..
첫 출전의 지옥 같은 경험과 함께 얻은 기록은 2시간20분46초… 마라톤 시작 4번만에 하프를 완주하면서 얻었던 첫 기록인 2시간 19분보다도 못할 정도였으니, (비록 연습부족도 있었지만..) 중앙마라톤 그 날의 고통은 정말 너무 하였다. 그래서 9.19일에 있었던 하남시 마라톤은 포기하였다. 회사내 마라톤팀에서도 통일마라톤에 대비하여 대회에 너무 자주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당초 계획과 달리 하남시 마라톤에 아무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 이후 통일마라톤까지는 중간에 두 번의 일요일이 있었는데, 두 번 다 반달코스에서 하프를 뛰었다. 시간은 2시간20분(9.19일)과 2시간 9분(9.26일) 그리고 통일마라톤(10.3)에서도 하프(2시간7분53초)를 뛰었으니, 되돌아보면 4주 연속 하프를 뛴 기간이다.
9.19일은 날씨가 아주 흐렸다. 아침에 비까지 조금 내렸다. 나가지 말까 하다가 이 정도의 날씨에는 연습해야지 하는 생각에 반포로 나갔더니 반달모임은 없는 듯 하였다. 다들 하남시 대회에 나가나 보다’하고 생각하면서 회사내 선배인 이**님과 뛰기로 하였다.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비를 약간씩 뿌렸는데, 탄천다리밑에서 (올림픽대로를 지붕으로 하여) 비를 조금 피하다가 이**님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그 날따라 이**님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하프까지 뛰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님은 그 때까지 하프를 뛴 경험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뛰어 보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솔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하프반환점까지 갔다가 반포로 뛰었다.
돌아오는 길에 성수대교를 지날 즈음 이**님께서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일부러 속도를 늦추어 나란히 뛰면서 (사실 나도 실력없는 주제에) 하프 첫 완주를 도와주게 되었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철탑을 지날 때 즈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그 근처에는 비를 피할데도 없어서 체념하고 폭우속을 뛰어 반포로 돌아 왔는데 반포대교 밑의 고개를 넘어올 때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운전자들이 우리를 보면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거나 ‘한국육상의 차세대 기둥’이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하면서 하프를 마무리 하였다. 소요시간이 2시간 20분이었는데, 나혼자 뛰었으면 2시간 15분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9.26일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반달분들도 꽤 나오신 것 같았다. 그날은 2시간9분에 뛰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기록이었다. 그러니까 하프완주 4번만에 2시간 10분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전 주에 하프 첫 완주를 하였던 이**님은 2시간 6분정도의 기록을 세우셔서 나로서는 상당히 놀랍고 부러웠다.
10.3 통일마라톤에는 전철을 타고 구파발로 갔다. 회사마라톤팀에서는 9명이 출전했는데, 마라톤팀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도전하는 분이 3명 있었다 (우리 마라톤팀으로서는 사상 첫 도전이었다). 나를 비롯한 6명은 하프에 출전하였다. 하프출발지점까지 차를 타고 가서 중간지점에서 출발하였는데, 출발 후 얼마 못 가 마라톤팀중에서는 가장 뒤로 쳐졌다. 아무래도 실력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았고 가을들녘은 하염없이 싱그러웠다. 그 날은 100회마라톤’이라는 옷을 입은 어떤 할아버지을 몇 키로 못 가서 만났는데, (비록 마라톤실력과 나이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저런 모습을 한 할아버지에게 조차 내가 뒤진다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할아버지는 작은 키에 허리가 구부정한 듯 하였고 연세는 최소한 65세, 아마도 70세는 넘어 보였다. 내가 더 젊다(난 당시 만 33세였다)는 자존심에 할아버지를 경쟁삼아 뛰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였는데, 할아버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멀어지다가 10여키로 지점에서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멀거니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서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나 자신에 대한 허망함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지구력이 안되시는지 1-2키로를 남기고는 내가 다시 따라 잡았는데, 좌우간 대단한 분이시라는 생각을 했다. 끝없이 길 것만 같던 통일대교를 지나 2시간 8분으로 마침내 골인하니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우리 마라톤팀에서는 내가 꼴찌였지만, 나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9.19.일에 처음으로 하프를 완주한 이**님은 그날 1시간 53분을 기록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반대편으로 아직도 뛰고 있는 풀코스 주자들 속에서 우리 팀원 세 분을 찾아 보았는데, 이 먼거리를 어떻게 뛰나’라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가장 기록이 좋은 이**님이 4시간6분, 박**님이 4시간 12분이었고, 또 다른 박**님은 5시간 10분에 완주하였는데 당시 통일마라톤의 풀코스 공식 꼴찌였다. 골찌한 박**님은 회수차량이 계속 탈 것을 권유하였으나,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중도포기하였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오기로 끝까지 뛰었다고 하였다.
우리 팀원들이 과연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반 기대반을 하였는데, 어쨌든 완주한 3분은 내게는 마치 개선장군 같은 존재였다.
이 즈음 오른발 발목에 통증이 왔는데, 7-8년전 계룡산 산행에서 발목을 삔 후유증이었다. 발목을 삔 후 등산을 할 때면 조금씩 아팠는데, 통일마라톤 바로 전 일요일 경부터 아파왔다. 통일마라톤을 뛴 다음 일요일에 조금 뛰었는데, 부상의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아 결국 다른 연습을 전혀 못하고 춘천마라톤에 나가게 되었다. (난 원래 주중연습은 할 처지가 못 되었다)
6. 싱그런 가을느낌과 함께 한 춘천마라톤
아침 5시 30분 자명종시계소리에 눈을 떴다.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야근을 한 피로가 아직 쌓여 있음을 느끼면서, 집사람을 깨웠다. 서둘러 준비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아들녀석을 다독거리며, 청량리로 출발!
지난 통일마라톤 대회이후 이런 저런 사유로 집근처에서 2-3키로를 뛴 것이 전부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또 오른쪽 발목이 계속 이상해서 혹시 오늘은 완주조차도 못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마라톤 열차에서 회사동료 (저를 포함하여 9명 출전. 5명은 풀, 4명은 하프) 및 가족들을 만나, 즐거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춘천으로 갔다. 춘천역에 내려 전세버스를 타고 종합운동장으로 가서 본부석 쪽 스탠드에 자리 잡았다.
10시가 훨씬 넘어서, 버스를 타고 서상초등교에 도착하여 풀코스 선두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선두가 지나간 후 출발지점으로 이동하여, 나도 여럿 틈에 섞여 뛰기 시작했다. 3주만에 뛰는 거라서 그런지, 출발부터가 힘들다. 얼마 가다 보니, 어떤 분이 내게 인사를 건네길래 황급히 나도 인사하였다. 자세히 보니 한강변에서 좀 뵌 분이다. 아마 반달 소속이신 듯..
5백미터도 못갔는데, 누가 내게 말을 건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풀코스를 뛰는 회사 동료다. 30키로 정도 지점에서 나를 추월하겠다고 했는데, 아니 이럴 수가... 가볍께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만 하다. 좀 더 뛰다 보니, 아니..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순간 이상했다... ‘아니 뭐 이래.. 이런 대회가 겨우 저렇게 물을 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 조선일보에서 주는 게 아니라 길가의 주민이 자비로 종이컵을 준비하여 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무척 놀라왔다.
5키로 지점에 가니 28분! 조금 오버페이스다. 그런데, 돌아보니, 정말 다들 잘 뛴다.. 난 솔직히 죽겠는데.. 에구 힘들어.. 그 때까지 같이 뛰던 회사동료가 조금 앞서더니,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나를 추월하면 좀 부끄럽기도 했다. 격려하는 춘천시민들에게 인사도 하고, 길가의 어린이들이 손바닥을 내밀고 있으면 그 쪽으로 뛰어가면서 까지 손바닥을 마주 치며 웃어 주었다. 멀리 있는 시민들이 환호성을 보내면 난 손을 들어 흔들어주기도 하면서, ‘잘 뛰지도 못하는 녀석이 마라톤 선수나 된 것처럼 하네’라는 생각도 하였다.
왜 이리 10키로 지점이 멀게 느껴지는지.. 10키로에 오니, 58분! 어휴.. 어떻게 1시간을 더 가지 라는 걱정부터 앞선다. 좀 더 가니 길은 한 없이 넓어지고, 통제되어 서 있는 차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니 35키로(풀코스 기준) 지점이 나왔다. 포카리를 두 컵 들이키고, 7키로 남았으니 승부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나길래, 빨리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상당히 제치고 앞으로 나갔다. 지난 번 통일 마라톤 기록(2시간 8분)보다는 빨라야지 하는 생각에, 힘을 냈다. 근데, 다리를 건너기 조금 전부터 힘이 빠진다. ‘에구 역시 7키로를 뛰기는 힘이 드는구나’ 다리를 넘어서 큰 도로를 접어드는데, 회사동료가 저만치 앞에 가고 있고, 난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다. ‘아 힘들어...’ 한없이 속도는 느려지고 계속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나간다. 이젠 남들이 나를 추월하든 말든.. 만사가 귀찮다. 머리를 푹 숙이고 좀 가다 보니, 회사동료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40키로 지점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꽉막힌 차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좌회전 하니, 버스정류소 근처에, 마지막 급수처가 있다. 여기가 40키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54분 (19키로를 뛴 것이다). 푹 쳐저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건넨다. 70은 되신 것 같다. “풀코스 뛰는거야?” 하시길래 “아닙니다. 하프예요.”하면서 그 분 배번을 살폈다. ‘에구. 풀이구만..’ “할아버지는 풀이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였더니, 대답은 들은 듯 마는 듯 하시고 앞으로 나가신다. 아마 자랑하시고 싶은가 보다.
다시 우회전하여 가니,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계속 추월당하면서, 그리도 찡그런 얼굴을 들고 가기도 뭣해서 고개를 숙이고 낑낑 대며 갔다. 그렇게 땅만 보고 가는데, 또 누가 말을 건넨다. “저기예요?” 하는 것인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보니, 뭔가 보인다. 순간 난 이제야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디움이 보이니 어쨋든 다 온 것이다. 도로를 벗어나서 스타디움 쪽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좌우에 있다. 사람들은 계속 나를 추월한다. 특히 풀코스 주자들도 엄청 많은 것 같다.
스타디움에 들어서기 직전 웬 꼬마가 나를 앞질러 간다. 등에 불인 이름을 보니 윤지용군이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용군을 꽤 응원을 한다.
푹푹 처져 가며 집사람과 아들녀석을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트랙에 들어가서도 마지막 스퍼트는 커녕 뛰기도 힘들다. 마지막 몇 미터를 두고서도 다들 나를 추월한다. ‘에구... 이제야 살았구나...’ 시계를 보니 2시간 13분이 넘엇다. 나의 시계를 보니 2시간 9분 48초다. (조직위원회 공식 기록은 2시간 12분으로 되어 있다)
통일 마라톤 보다는 2분 정도 뒤진 기록이지만, 뿌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오른쪽 발이 좀 불편하기는 하엿지만, 그래도 완주는 하였으니까..
다른 회사동료들과 인사도 하고 기록도 주고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만 제외하고 다들 잘 하신 것 같다. 출발하자 마자 나를 추월한 풀코스주자는 3시간 30분도 안되어 들어왔고, 그리고 4시간 17분즈음 들어오신 분도 있고, 첫 풀코스 출전한 분은 4시간 48분이란다.
좌우간에 풀코스 5명 하프코스 4명 모두 완주했다. 춘천역에 가서 닭갈비 먹고 돌아오는 기차간에서는 늘어지게 잠만 잤다.
7. 1999.11.7. 마침내 하프 2시간 벽을 돌파하다. 그리고 맞이한 침묵의 시기.....
춘천마라톤을 뒤로 하고 다시금 신발을 신고 나선 것은 바로 다음 주 토요일이었다. 업무 후에 회사동료 몇 몇과 함께 여의도로 향했다. 제2회 서울마라톤에 참가한 바 있는 동료들로부터 서울마라톤 출발점 및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반포까지 왕복(약 13키로)하였는데, 기록은 아주 저조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11.7)에는 서울마라톤과 동일한 코스에서 서울시장기대회가 있었는데, 사무실내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하였다. 춘천마라톤을 계기로 회사내의 마라톤서열이 (고정멤버 10명중) 9위에서 10위로 밀렸던 터라, 역시나 출발 후 골찌로 바로 처졌다. 반포를 지나 한남대교로 달려가면서 바로 앞에서 뛰어가던 회사동료 2명과 합류하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뛰어 갔는데, 이미 반환점을 돌아 뛰어오는 많은 주자들을 보면서 존경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연세가 60-70은 족히 되고도 남을 주자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움, 그리고 이어지는 부러움, 내가 과연 저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 저만큼 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정도까지는 가야겠지 하면서 뛰고 있는데, 아니 이럴 수가!! 한남대교에서 동호대교의 중간지점에서 하프반환점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에게 무척 놀랐다. 55분밖에 안되었는데 10.5키로를 뛰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날씨도 무척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아 1시간 51분대에 결승점에 들어왔더니 회사동료들이 전부 놀란다. 나 스스로도 너무 잘 뛴 것 같아 아무래도 이상하고, 다들 기록을 조사해보니.. 대략 1키로 정도는 거리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그러면 20키로를 1시간 52분정도에 뛴 것인데, 이 정도만 해도 하프거리를 2시간 이내에 뛴 것으로 보아도 될 터였다.
마라톤 시작 5개월만에 그제서야 (그리고 내게는 한참이나 높아만 보였던) 하프 2시간벽을 깬 것이다.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10분을 뛰고 겨우 2주만에 별다른 연습없이 2시간을 돌파하고 나니 그지없이 기분이 좋았다. 돌이켜 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날씨가 무척 좋았고 또 숏피치에 대한 깨달음덕이었다. 그 때까지 마라톤 사이트에서 초보에게는 숏피치가 적당하다는 글은 자주 보았으나 실제 키큰 (177Cm이다) 사람에게는 숏피치라는 것이 안 맞을 것 같았고, 또 실제 적용하려고 해도 발걸음이 어색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숏피치를 적용하게 되었고, 짧은 보폭의 빠른 발놀림으로 뛰고 있음에도 피로가 훨씬 덜한 것을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 라스트스퍼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날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1999년에 마라톤을 한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훈련 및 경기참가를 합하여 6월20일부터 11월 7일까지 뛴 거리는 21번에 전부 282키로였다. 하프보다 멀리 뛴 것은 한 번도 없었고, 하프는 전부 6번 뛰었다) .
8월에 한 두번 밤늦은 시각에 동네에서 3-4키로씩을 뛴 것을 제외하고는 주중연습이 어려워 난 항상 주말에만 연습하였는데 날씨가 추워지고나니 주말에 연습하러 나가기도 쉽지 아니하였다. 또한 몇 개월동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되던 반포에서의 우리 마라톤팀의 일요달리기 모임도 추운 날씨로 인하여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니, 그로써 달리기 생활이 멈춰지고 만 것이다.
그 기간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다음 2가지이다.
춘천마라톤에 함께 갔다 온 집사람이 갑자기 동네 근처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평일에 동네근처에서 달리기를 계속하더니, 11.14일에 열린 서울여자마라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여 1시간의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시작 17-18일 만에 10키로를 한 시간에 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또 하나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년말에 (당시) 선기자님과 송코디님을 만난 것이다. 선기자님이 타이즈 공동구입을 주선하시면서 나는 사무실내의 수요를 파악해 단체 주문했는데, 그로 인해 선기자님과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가깝게 근무하고 있으니 (직장이 광화문근처임) 서로 얼굴 한 번 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마추어 마라톤계의 거목중의 하나이신 선기자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사무실내의 마라톤팀내에서 화제로 떠 올라 여러 명 같이 가기로 했으나 연말연시이다 보니 당일 시간내기가 어려워, 회사내 선배인 이**님과 동료인 최**님과 함께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마침 송코디님도 같이 나오셔서 나는 한 꺼번에 두 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라톤 사이트에서 성함 및 글만으로 알게 된 두 분을 직접 만나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사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 차원이 다른 마라톤의 달인들이셨다.
하여간, 전혀 뛰지 않은 기간이 50여일을 넘어가면서 내게는 마라톤을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어느 새 새즈믄해가 가까이 다가 와 있었다.
8. 2000년 1월 4일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다 . (주중마라토너로의 변신)
두어달 가까이 한 번도 안뛰면서도 마라톤은 내 머리속에서 항상 맴돌았다. 식사 후에 내 자리로 돌아와서는 춘천마라톤 사이트에 접속하여 만남의 광장에 올라 있는 글을 읽는 것이 하나의 일과이기도 했다. 새해에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야 할텐데 하면서 첫 대회인 서울마라톤에서 어느 종목에 나갈지가 고민이었다. 1999년을 돌아보면 하프코스 정도는 충분히 뛸 것 같기는 하였는데, 이제는 나도 풀코스 한 번 나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은 차라리 무모에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1월에는 회사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한가해지는 계절이라 1.4일에는 느닷없이 회사근처의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3키로를 뛰는데 20여분이 걸렸는데, 그나마 겨우 그 정도 뛰면서 느꼈던 고통은 ‘내가 이걸 왜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컸던 것 같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트레드밀에서 뜀박질을 시작한 것이다. 그날부터 16일동안 연속으로 헬스클럽에 나갔다. 뛸 자리가 안나서 자전거만 타고 돌아온 하루를 포함해서 16일 연속해서 운동을 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원래 주말에만 운동하여 왔기 때문에, 한달에 고작해야 4-5번 뛰었던 내가 아니던가. 평일에는 회사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매일 5키로씩, 주말에는 집 근처의 헬스클럽에서 일일 회원으로 매 번 7-10키로를 뛰었다.
트레드밀에서의 뜀뛰기는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한강변에서 10키로를 뛰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만, 트레드밀에서는 5키로를 뛰는 것도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1월20일이 넘어서면서 회사업무가 점차 바빠지기 시작하여 주중 운동은 매주 1-2회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처지로 바뀌고 말았지만, 서울마라톤과 동아마라톤 둘 중에 하나는 풀코스에 출전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작년에 하프코스를 6번 완주하였지만 그보다 더 먼거리를 뛴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두어달 가까이 전혀 안뛰다가 다시 시작하여 열심히 뛰기는 했지만, 가장 멀리 뛰어 본 것은 겨우 10키로였다. 어떻게할까 하다가, 시간제한을 하는 동아마라톤보다는 걸어오는 주자를 위해서도 기다려주는 서울마라톤에서 풀코스로 나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마라톤에 정작 풀코스로 신청하고 나니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회사내 마라톤 팀원들은 동아마라톤 풀코스 출전을 목표로 하다 보니 서울마라톤에서는 전부 하프에 나가고 나와 동료인 이**님(1999 춘천마라톤 3시간 20분대)만 풀코스에 나가게 되어, 같이 뛸만한 동료마저 없는 상태였다. 적어도 풀코스에 나가려면 25키로 내지 30키로는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1.30일(일요일) 트레드밀에서 25키로를 뛰었는데, 이는 하프보다 멀리 뛴 첫 경험이었다. 소요시간도 2시간 33분 걸려 생각보다 괜찮았다. 1월에는 총 19회에 걸쳐 120키로 가량을 연습했다.
2월에는 총 12회에 걸쳐 100키로 가량을 뛰었다. 트레드밀에서 하프 1번 (2시간6분), 한강변에서 하프 1번(1시간58분)을 뛰었고, 여의도 출발지점에서 성수대교를 왕복하는 23키로거리를 1번 (2시간31분) 뛰었다. 야외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트레드밀을 합하여 겨우 두 번째로 하프보다 멀리 뛰었던 2월19일(토)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날씨도 꽤 쌀쌀했고 바람도 불었으며, 출발점인 여의도 야외음악당 앞으로 돌아왔을 때 난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서울마라톤이 겨우 보름남은 시점에서 23키로를 2시간31분에 뛰고서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뻗어버릴 정도라면 풀코스는 어떻게 뛴담?
암담했다. 원효대교 밑에 있는 매점에서 동료들과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보름 후에 있을 풀코스의 중압감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젠 연습할 시간조차 없다는 생각에 미치니, ‘쓸데없이 까분다고 풀코스를 신청한 것은 아닌가’하는 후회마저 나를 감싸고 돌았다. 그렇다고 지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5시간내에 완주할 자신이 있느냐는 동료들의 말에 안되면 ‘완보라도 하지요 뭐..’라고 웃으며 대꾸는 하였지만, ‘에구구... 완보라도 하겠나’ 싶었다. 풀코스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중풍환자처럼 손발이 떨리는 것도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3.1절대회에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서울마라톤에 대비하여 난 3.1절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서 헬스클럽에서 13.5키로 (1시간20분)를 뛰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연습하고 싶었는데, 야속하게도 3월4일이 성큼 다가왔고, 그리고... 그날 오후 2시40분경이었던 것 같다.
함께 풀코스에 나갈 회사동료 이**님과 다음 날 일정에 대하여 말하다가, 24시간이후 (3월5일 오후 2시40분)에 과연 내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2시40분이면 출발후 4시간 40분, 내가 만약 63빌딩을 바라보며 열심히 뛰고 있다면 이는 대성공일텐데, 혹시 반달출발장소 근처에서 퍼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주자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는 나의 모습이 상상속으로 들어 왔다. ‘에쿠.... 이제 난 죽었다’ 나도 몰래 가벼운 탄성이 흘러 나왔다. 2.26일(토)에 하프를 뛴 후 3.1일에 13.5키를 뛴 것을 제외하고는 달리기 폼조차 잡아보지 못하던 터였다.
그 날은 8시가 다되어 퇴근을 하면서 헬스클럽에 들렀다. 3키로를 20분에 뛰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마라톤에 나갈 준비를 하여 두고, 11시가 조금 넘어 잠들었다. 잠을 못자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항상 잠이 부족하였던 처지라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서울마라톤 전까지 회사내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분은 전부 5명이었다. 3시간27분, 4시간12분, 4시간48분, 4시간54분 그리고 5시간18분. 여섯번째로 도전하는 내가 목표로 했던 시간은 4시간 40분이었다. 내 생각에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10-20%정도인 것 같았고, 5시간내에 들어올 확률은 60-70%, 아무리 늦어도 5시간 18분까지는 완주 (또는 완보)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와 함께 풀코스에 나갈 동료 이**님은 보스톤출전권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3시간 10분이내에 들어야 했다.
동시에 출발하여 이**님이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우리 두 명이 서로 마주치게 되는 곳을 계산해 보니, 잠실철교 정도인 것으로 계산되었다. 목표시간이 1시간30분 차이가 났는데, 만약 차이가 1시간30분이 넘게 나면 이**님이 이기는 것으로 하고 차이를 1시간30분이내로 좁히면 내가 이기는 것으로 해서 내기를 하는게 어떻냐는 말들이 회사내에서 오고 갔는데,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이길 것으로 보는 분은 거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무모한 짓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10키로 부문에 출전하는 집사람에게 먼저 완주 후 집에 가서 차를 몰고 반포고수부지로 나오라고 일러 두었는데, 2시정도(출발후 4시간)에 나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런데, 회사선배인 박**님은 그나마 내가 생각보다 잘 뛸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셨던지라 박**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집사람에게 1시40분(출발 후 3시간40분)부터 2시 20분까지 나와 있으라고 하였다.
하여간 아침 7시에 맞추어 놓은 자명종소리에 눈을 떠 보니, 서울마라톤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9. 감동의 서울마라톤 (1) - 풀코스 완주를 위한 3가지 전략
자명종소리에 일어나 집사람부터 깨웠다. 집사람도 10키로 부문에 출전하기 때문에, 아들녀석은 아이의 이모네에 맡기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터였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영양갱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 후, 차를 타고 가서 아이를 맡긴 다음, 광화문쪽으로 차를 몰았다. 여의도가 붐빌 것 같아 아내와 함께 지하철로 갈아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나루역이 가까워지니 마라톤화를 신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9시경에 드디어 도착...... 설레는 마음으로 내려다본 대회장에는 온갖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동료들과 의무실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사실 나의 마음은 그보다 더 추웠던 것 같다. 한 쪽에서는 에어로빅으로 몸을 푸는 사람도 있었지만, 따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집사람과 둘이 서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우리에게 짐을 맡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 혼자 뛰고 집사람은 응원차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였다. 둘 다 뛸 거라고 하면서 짐 맡기는 곳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즉, 너무 붐벼서 시간내에 못 맡길 것 같아서 그런다고 하였다. ‘잉.....’ 갑자기 초조해졌다. ‘짐 맡기는 것부터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는데....’ 일단 짐을 맡기고 다시 동료들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들은 것과 달리 짐을 수월하게 맡길 수 있었다. 상의를 반팔로 할 것인지 긴팔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긴팔로 입기로 했다. 노란색 비닐을 둘러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만 보니 짐 맡길 때 쓰는 비닐이었다. 주최측에서 나누어 주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저러다가 짐을 보관해야할 비닐이 모자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동료들을 만났다. 오늘 함께 풀코스를 뛰어야 할 이**님은 상하 모두 짧은 옷 차림이었다. 난 하의는 짧은 것으로, 상의는 긴 것으로 입었다. 왔다갔다하다보니, ‘아뿔사.....’ 깜빡 잊어버리고 바세린을 바르지 않았다. 다시 가서 가방을 달라고 하자니 나 때문에 번거로울 것 같고 또 날씨가 추운만큼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뛰기로 했다. 의무실앞에 가서 좀 더 기다리니 동료들이 더 모여 들었다. 각자 인사를 나누고 격려하기도 하고..... 20여분이 금방 흘렀다.
드디어 풀코스 주자들은 출발선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들린다. ‘아...후...’ 집사람에게 “1시40분까지 반포에 와”라는 말을 남기고 하프뛰는 동료들로부터 격려를 받은 후, 출발선으로 향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출발선에 가보니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드디어 개회사가 시작되고 금번에 참가하는 외국인이 5백수십명이라는 말에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로빅과 함께 분위기는 고조되고 드디어 출발신호가 울렸다.
풀코스에 처음 출전하면서 완주를 위하여 내가 세웠던 전략이 3가지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회참가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별 내용은 아니지만...) 꼭 실천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프는 무작정뛰기만 하면 어쨌든 완주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25키로 1번, 23키로 1번밖에 뛰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30키로 이후 내 몸이 과연 어떠한 상태가 될 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30키로 이후인 것이다.
그래서 첫째,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기로 하였다. 달리는 도중에 목이 마르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이라고 동료들로부터 누차 들어 왔기 때문에, 목이 마르든 마르지 않든 출발 전과 출발 후 매 5키로마다 물은 충분히 먹기로 했다.
둘째, 입과 코를 모두 이용하여 숨을 쉬어 보기로 하였다. 난 그 때까지 입으로 숨쉬는 것이 (공해 때문에) 폐에 안 좋은 것 같아 코로만 숨을 쉬었는데, 근육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려면 입을 이용하여 숨을 쉬어야 하고, 그래야먄 장기레이스를 견딜 수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셋째, 오버페이스를 예방할 수 있도록 심박시계를 하나 샀다. 서울마라톤 사이트에 소개된 광고를 보고 하나 사서 트레드밀에서 미리 심박수치를 측정해 보았다. 트레드밀에서 시속10키로의 경우 분당 150번, 시속 11키로의 경우 분당 160번, 시속 12키로의 경우 분당 170번이 나왔다 (그러나 동일속도라도 트레드밀위에서의 심박동수치보다 실제 레이스에서의 심박동수치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목표로 삼았던 4시간40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9.04키로 정도의 속도가 필요했고, 초반에는 10.5키로 정도의 속도로 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심박동수치를 분당 155-160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회사선배 박**님으로부터, 레이스 초반에 선수들이 느낌으로는 몸에 아무 이상이 없고 따라서 별로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들 달리지만, 느낌보다는 실제로 무리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심박동수치로도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즉, 출발직후, 의식적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심박동수치가 높게 올라가게 되고 이는 결국 오버페이스를 의미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또, 레이스 후반부에서는 심박동수치는 동일하더라도 속도는 갈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10. 감동의 서울마라톤 (2) - 4: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출발신호와 함께 나도 풀코스를 향한 대열에 끼여 있었다. 그래 뛰어보는 거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사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한이 있을지라도 포기는 안해야지 라고 되뇌었다. 몇 걸음을 나서는데 천호대교가 머릿 속에 그려졌다 (구간별로 나누어 뛰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강에 자주 나오다보니, 그 때 이미 난 서울마라톤 풀코스 전구간을 뛰어본 경험이 있었다). 왼쪽앞으로 힐끗 쳐다보니, 천호대교는커녕 동작대교도 잘 안 보였다. ‘어휴..... 살아 돌아오려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난 대열의 앞쪽에 서 있었는데, 1백미터도 못 가 심박동시계를 힐끗 보니 벌써 175를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 155-160을 유지하려 했는데, 출발직후라 그런지 심박동이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어 심박동을 160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이럴 수가......’ 좌우 양편으로 모두들 나를 추월해서 지나간다.
원효대교즈음 가니, 대열의 거의 꼬투리에 선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내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하며, 오늘은 처음으로 25키로를 넘어 뛰는 날인만큼 힘을 최대한 비축한다는 전략을 새겼다. 느릿느릿 가다보니, 한강철교를 좀 못 간 지점에서 주해선님이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제1회 여자마라톤 풀코스에서 마지막주자로 완주한 분이었다. 나보다 더 늦게 마라톤을 시작한 분으로서 풀코스를 완주하였다는 소식을 작년에 듣고 상당히 부러웠던 기억이 났다.
어쨌든 나보다는 풀코스 선배이니 오늘은 저 분을 뒤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10여미터 뒤에서 따랐는데, 같이 뛰는 다른 분들도 좀 있는 것 같았다. 1키로 정도의 거리동안 뒤를 따르는데, 심박동이 자꾸 150이하로 내려가길래 심박동을 157정도로 계속 유지했더니 자연스레 주해선님을 추월하게 되었다.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가 안 보이나 해서 앞 뒤를 둘러 보았지만, 페이스메이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앞에 간 것 같기도 했는데, 심지어 5시간 페이스 메이커도 안 보이니, 4시간 40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내가 과연 제대로 뛰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길고 긴 노량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내 머리속에서 지우지 못했던 것은 과연 4시간 후 내가 어디즈음 있을까, 여기를 다시 지나갈 때 과연 나는 무슨 표정을 할 것인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과연 뛰고 있을까, 아니면 걷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고..... 그리고 마침내 급수대가 보였다. 자원봉사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조금 더 가니 5키로 지점 표시가 보였다 (32분 경과).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다. 심박동을 계속 신경쓰면서, 반달출발점을 지나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구간에 접어들었다. 4시간40분을 목표로 하는 것 치고는 속도가 조금 느리지 않나 싶었지만, 심박동을 160이하로 유지한다는 생각만으로 뛰어갔다. 뒤쪽에서 뛰어서 그런지, 주자가 많지 않았고 그냥 다른 분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달렸다. 그런데 한남대교에 다가갈 무렵 어떤 분이 나를 추월하는데 등에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대회가 끝나고서야 김승언 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어! 뒤에서 오네.’ 하여간 무척 반가왔다. 사람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진 것도 정말 오랫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따라붙으면서 말을 걸었다. “4시간40분 페이스 메이커이시군요.”
그는 듬직하게 달리고 있었다. 맨 뒤쪽에서 출발했단다. 페이스메이커임을 표시하는 풍선이 터졌다고 하면서 등에 쓰인 글이 잘 보이냐고 묻길래 잘 보인다고 대꾸했다. 그가 말을 한다. “저는 1980년생입니다. 저보다는 한참 형님이신 것 같군요.” 나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나를 자기보다 한 10년 즈음 선배로 보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저는 1965년생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풀코스 첫도전이며 지금까지 25키로보다 멀리 뛰어 본 적이 없다는 등, 이번 목표는 4시간40분이어서 아까부터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열심히 찾았다고 하였더니, “첫 도전은 완주를 목표로 하셔야죠. 4시간40분은 쉽지 않습니다” 한다. ‘음메..... 기죽어’ 같이 뛰다 보니, 아까 보다 속도가 올라간 것 같아 심박동을 보니 계속 163근처에 있다. 속도를 늦추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은 김승언님을 따라가기로 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남대교를 지나고 급수대가 보였다. 내게 “빨리 가지 않을 테니 물을 충분히 드세요”하길래 한층 더 마음을 푸근히 가지고, 물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10키로 지점 통과시간은 1시간 1분 22초. 현재까지는 괜찮은 기록이다.
우리는 성수대교를 지나 영동대교를 넘어가는 쪽 뻗은 길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승언님은 철인클럽 회원이란다. 작년 12월부터는 단 한 번도 뛰지 않았고 오늘 아침 서울마라톤에 나오기 위해 마라톤화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을 만큼, 지난 겨울에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동아마라톤에서도 페이스메이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30키로까지만 뛸거라고 하였다. 30키로까지 밖에 못 뛴다는 것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15키로지점 도착시간이 1시간 32분. 거의 시속 10키로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급수대에서 다시 물을 마시고 잠실주차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나서 앞을 보니, 선두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 대단한 사람들!’ 내가 16키로를 조금 더 뛰었는데, 이 분들은 벌써 16키로가 남은 것이다. 그러면 이미 26키로를 뛰었다는 말인데, 음... 음.... 계속하여 마라톤의 고수들이 달려오기에 박수를 계속 쳐 주었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달려오기에 박수치는 것은 포기하고, 회사 동료 이**님을 찾기 시작했다. 3시간 10분을 목표로하는 이**님을, 예상대로라면 잠실철교 근처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잠실대교를 지나서 조금만 가니 이**님이 지나간다. 생각보다 이**님은 빨리 달리고 있었다. 파이팅을 외쳐주고, 조금 더 가니 김정숙님이 지나간다. 아는체 하였지만, 무리 속에 섞여 못보았는지 그냥 달려만 간다.
김승언님은 오랫만에 뛰어서 그런지 숨소리가 쌕쌕거리며 힘들어 하는 눈치다. 나는 아직 견딜만 했다. 날씨와 기온, 이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또 즐거운 기분을 계속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다. 20키로(2시간 2분)에 도달하니 김승언님이 나더러 먼저 가란다. 이 정도로 뛰면 내가 오늘 목표시간인 4시간40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거라는 말을 남기고 옆으로 빠졌다. 아마 여기서 포기하는가 보다 싶어서 인사를 하고 혼자 달려 나갔다.
드디어 천호대교가 보이고, 마침내 하프지점에 도달(2시간 8분 35초)했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하프에 출전하여 2시간 10분에 완주하고도 뻗어 버렸는데, 그 때보다는 훨씬 낫다. 물을 두 컵 마시고 바나나를 하나 까서 다시 출발할 때가 2시간 9분 40초 가량 되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포기한 줄 알았던 김승언 님이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프정도에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4시간 37분으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충분히 다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대단한 분이다).
인사를 나누고, 더 가다보니 소변이 마려워서 주로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려고 섰는데, 아니 이게 웬걸 양다리가 떨리는게 아닌가 계속 뛸 때는 몰랐는데, 서 있으려니까 양 허벅지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하면서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11. 감동의 서울마라톤 (3) -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38-40키로 구간, 그리고 한강대교 아래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잠시 서 있을 때는 양다리가 후들거리더니, 그래도 다시 뛰다 보니 별달리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잠실철교와 잠실대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반대편에 지나가는 주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뛰는 주자들도 간격이 멀어지면서 사실상 혼자 뛰는 형국이었다. 25키로 지점의 통과시간은 2시간 36분이었다. 그런데 잠실대교를 몇 백미터 지난 지점에서 최고령 할아버지께서 달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약간은 상체가 기울어 있는 자세로 비록 느리기는 하였지만 분명 뛰는 자세였다. 바로 앞 주자와의 간격이 너무 멀어 주최측이 혹시 할아버지께서 뛰고 계심을 모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25키로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뛰는 것인만큼 감회가 새로왔다. 다행히도 아직 지친 기분은 아니었고, 마음은 매우 가벼웠다. 탄천을 넘어서 청담대교를 지나고 꾸준히 나의 속도대로 나아갔다. 영동대교를 지나 500미터 정도 갔을 때 30키로 지점이라고 쓰인데를 지나면서는 깜짝 놀랐다. 시계를 보니 3시간 1분을 경과하고 있었는데, 이럴리가 없다싶어서 30키로 지점을 추산해 본 즉, 1키로 정도 위치가 틀린 것 같았다. 즉 성수대교에 500미터 정도 못간 지점이 30키로 이어야 했다. 25키로지점의 통과시간과 비교해도 30키로 라고 쓰인 지점은 29키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30키로 지점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3시간 8분에 통과했다. 성수대교를 지난 후 약간의 오르막을 뛰면서 다리가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견딜만 했다. 32키로 지점(3시간 23분)을 지나면서 물을 마시고 한남대교를 지났다. 집사람이 반달출발 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한 시각이 3시간 40분 경과한 시점부터였는데, 예상보다 잘 달리다보니 3시간 40분 경과 전에 반달출발점을 지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남-반포대교사이의 구간을 뛰면서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주위에 있는 분들은 거의 모두가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나는 걷지 않고 계속 뛰다보니 다른 주자들을 끊임없이 추월하였다. 35키로 지점은 3시간 42분에 통과하였고 반포대교 아래의 언덕구간을 넘어가면서는 집사람이 저 앞에 와 있나 싶은 생각에 시선을 멀리 두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다.
저 앞에 집사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리에 힘이 좀 더 생기는 것 같았고 집사람의 사진촬영 세례속에 반달출발지점을 통과하였다 (3시간 45분 경과). 반달출발지점을 넘어가면서 페이스는 더욱 느려졌고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오늘 따라 동작대교는 왜 이리도 멀리 있는지….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만난 이후 심박동수는 계속 163으로 유지하였지만, 갈수록 속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여의도가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난 기계적으로 팔다리를 놀리는 형국이었다. 나의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졌고, 그 거칠어진 숨소리가 내귀에도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가 다른 주자들을 추월할 때 마다 모두들 나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놀라 나를 힐끗 쳐다보곤할 정도였다.
동작대교를 지나고 5키로 남은 지점을 지날 때가 3시간 59분이었다. 급수대에 잠시 서서 물을 두 컵 마신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드디어 출발…. 지칠대로 지치고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두 다리가 마치 천근같이 느껴졌다. 이제 난 그 지리한 노량대교 구간을 지나가야 한다. 간혹 달리고 있는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나의 머리는 마치 텅빈 느낌이었다. 3시간 30여분 전에 이 구간을 지나던 때가 갑자기 생각났지만, 퍼져버린 내 몸의 피로는 이내 그러한 생각들을 묻어 버렸다. 곧 이어 4키로 지점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길래 시계를 보았더니, 아무래도 4키로 지점이 너무 가까이 표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3키로 지점은 여기서부터 1키로 이상을 가야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량대교 밑에 있는 약간의 언덕구간을 올라가는 것도 너무나 힘겹게 느껴지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 때 누군가 나를 약간만 밀치면 아마 난 그 자리에서 넘어졌으리라. 작년에 우리 마라톤 팀이 황영조 선수로부터 지도를 받을 때 황선수가 풀코스 마지막에는 팔을 흔드는 힘으로 앞으로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다른 동료들이 누차 내게 말하였고, 그래서 난 양 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의식적으로 팔의 모션을 크게 하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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