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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풀섭을 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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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09-15 23:12 조회1,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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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풀섭을 스치며......

달리기에 중독된 내게 중추절에 찾는 고향이라고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새벽 6시!
가뿐한 몸으로 농로(農路)를 따라 달리자, 백로들이 박자를 맞추는 듯
커다란 날개로 새하얀 자태를 한껏 자랑하며 유유히 하늘을 향해 유영하고 있다.
이슬먹은 황금벌판에 현란한 광채들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반갑다는 개구리는 물을 핑기며 개울 속으로 젖어든다.
자갈과 웅덩이가 많은 농로에 살포시 자리잡은 풀섭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향긋한 흙냄새가 아름드리 내게 다가와 정답게 안긴다.
냇가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물안개는 하늘을 향해 한껏 여유를 부리고
새벽 참을 찾는 물총새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물가를 정신없이 헤치고 있다.

스치는 발길은 어느 덧 사인바우에 가까이 다가가서 서있었다.

사인정!
커다란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산에 소나무와 어울려 자리잡은 정자!
뭇시인들의 가슴을 울리며 풍류를 절로 즐기게 하는 탐진강이 굽어보인다.
수많은 개발의 명목을 멀리하고 1급수를 유지하여 은어들이 여유를 부리는 탐진강!
여름 한 철 투망을 던져 회쳐먹는 은어는 그 향긋한 맛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지금은 상수원 보호라 해서
사인정 근처에서 투망질은 물론 낚시까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로를 지나 포장된 길을 벗어나자 풀섭으로 우거진 제방이 기다리고 있다.
이 제방을 우리는 대부뚝이라 불렀다.
소 풀을 먹인다며 대부뚝 밑에다 소를 풀어놓고 말타기와 전쟁놀이로 해지는 줄 몰랐었다.
놀다가 지치면 감내보에 가서 물장구치다 어떨 결에 헤엄치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곤 했었다.
감내보는 감천을 막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다지 깊지 않는 물이기에 어릴 적, 우리들의 수영장 구실을 해 주었다.

감내보를 뒤로하고 평바우쪽으로 달려가자,
풀섭으로 우거진 길이 마라톤화를 거추장스럽게 했다.
잔디밭은 아니지만 맨발로 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운동화를 벗어 버렸다.
결초보은(結草報恩)!
어릴 적 풀섭을 묶어놓아 지나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한 적이 있었다.
누구를 쫓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잘못한 일도 없지만 어릴 적 죄때문에
결초보은(結草報恩)을 당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달렸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누가 이렇게 총을 쏘는 것일까?
혹시 나를 겨냥하지나 않는가?
바싹 긴장되었다.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총소리 나는 쪽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총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엎드려 운동화를 다시 신고 전속력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와 도망쳐 버렸다.
전쟁중도 아닌데 한적한 평원에 도대체 누가 총을 쏘고 있을까?
나중에 집에 가 형님들에게 총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파안대소를 하며 새 쫓는 기계에서 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허수아비가 이미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지금
총소리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총소리마저 허수아비 신세가 되지 않을련지 궁금해진다.

총소리를 멀리하고 풀섭사이를 달리자,
이제 거의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도깨비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뭄을 대비해서 보(洑)를 만들려고 사람들이 돌무더기를 냇가에 갖다 놓았더니
하룻밤 새에 도깨비가 보를 지어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洑)가 완성된 뒤에도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자주 도깨비가 출몰하여
보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불을 비춰주는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도깨비보를 지나 연동마을에 이르자 말끔히 단장된 연동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노두(징검다리)를 건너뛸 때, 물에 빠질까 봐 무서워했던 곳이다.
선거철만 되면 다리를 놔주겠다고 공약(公約)을 남발해놓고
항상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던 곳이다.
학교 수업 중에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석동마을에 사는 애들이 이곳 노두를 건널 수 없기에
곧바로 하교(下校)해야만 했던 곳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연동다리를 보면서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연동다리를 지나 연하개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김일바위!
김일바위!
이 바위 이름은 손윗 형님과 나밖에 모른다.
60년대 중반, 프로레슬러 김일선수! 어린 내게는 거의 신화적 이였다.
아무리 강한 상대도 김일 박치기면 모든 것이 끝났다.
박치기 한방에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상대를 보면서
김일선수 박치기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을 것같았다.
논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김일바위!
형하고 나는 내기를 했다.
나는 저 바위를 옮길 수 있는 것은 김일 선수밖에 없다고 했고,
형은 불도저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장에 다녀오시자 우리는 서로 자기가 맞다고 우기면서 여쭤보았다.
아버지 답변은 바위가 너무 커 불도저로도 옮기기 어렵다고 하셨다.
나는 김일선수가 박치기로 받아버리면 옮겨질 수 있다고 끝까지 우겼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김일바위!
그때 내 나이 5-6살 때였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
그 당시 어린 시절을 상상하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내 아이들이 지금 내게 비슷한 질문을 해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할 것인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한없이 그리울 뿐이다.

말끔히 포장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차가 뜸한 사안리길을 뒤로하고
장흥남국민학교로 향했다.
미군들이 막사로 쓰던 건물을 급조하여 만들었다는 교실들이 그리웠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옛날의 정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웠던 시절! 한없이 좋아 보이던 건물들은 모두 헐리고 없었다.
나무 판자로 지어졌기에 유난히도 불조심을 강조했었고,
복도에서 항상 뒷굼치를 들고다니라고 주의를 받아야 했던 교실들이
콘크리트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한 때는 학생수가 1000명에 육박했었는데, 지금은 10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운동장에도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학교를 돌아 나와 학교 앞 매점에 이르렀다.
매점은 여전했지만 구수했던 풀빵은 보이지 않았다.
저축의 날, 저금한다고 20원을 가지고 학교에 갔지만
선생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셔서 저금돈을 받아주지 않았다.
집에 가려는데 코끝을 스치는 풀빵 냄새는 나를 저절로 매점으로 향하게 했다.
2원을 주고 풀빵 4개를 사먹어 버렸다.
집에서 어머님에게 발칵 되어 200원어치 이상을 회초리로 두들겨 맞아야 했다.
이제 팔순을 훌쩍 넘겨버린 어머님은 회초리를 잡고 때리시던 그런 힘은 어디 가고
명절 때나 찾아오는 막내아들 손을 잡고 그렁그렁한 눈물만 흘리고 계신다.

학교앞 매점을 지나서 감천교쪽으로 달려갔다.
누군가가 뒤에서 자동차로 "빠방"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형님 이였다.
아침부터 팬티만 입고 뛰는 미친놈이 있기에 누군가하고 보았는데,
바로 동생이 미쳐있었다고 했다.
나는 연습 때에도 항상 마라톤 전문복을 입고 달린다.
마라톤 전문복이 보수적인 시골에선 아주 민방스러운 복장이었나 보다.

다음 날!
장흥에서 병영까지 왕복해서 달려보기로 했다.
잘 포장된 2차선 도로이지만 차량이 3, 4분만에 한 대씩이나 다니는 한적한 도로이다.
고갯길은 찾아볼 수 없는 평지 길이지만 꼬블꼬블하게 감천(甘川)을 따라 나있는 길은
주변산세와 어울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왕복 약 24km로 마라톤 하프코스로 적당한 거리였다.

매년 5월이면 장흥의 제암산 철쭉이 산 전체를 화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화원을 따라 걷는 산행객은 자연스럽게 꽃향기에 취해 무릉산원의 신선이 된다.
이에 맞춰 장흥에선 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여기에 장흥읍에서 병영까지 왕복코스로 마라톤대회를 개최했으면 싶다.
좋은 경관에 지루하지 않는 평탄한 코스를 달리면
의식하지 않는 기록일지라도 최고기록은 달성될 것이다.
보너스로 제암산 철쭉제에 참가하여 마음껏 신선놀음에 빠져들면
아름다운 장흥으로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남게 되고
장흥군 역시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어, 군 재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고향의 풀섭을 스치며 달릴 때 찾아드는 상념들은 한없이 커진 풍선이 되어 버렸다.
커진 풍선이 현실로 다가올 날을 기대하면서 서울을 향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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