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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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08-23 21:22 조회3,2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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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中走記
김 건수 일간스포츠 사진부장
khans@hk.co.kr
http//www.kimkhans.wo.to
요새 참 덥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여름비가 너무 좋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냥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빗속을 하염없이 거닐던 기억이 요즈음 와서 더욱 새롭다. 왜냐하면 여름에 비가 오면 그 시절 그 때의 감상의 자락을 부여잡고 한 낮에도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 계속되는 무더위에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인 토요일에 비가 왔다. 잠을 깨는 빗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둘레가 5km나 되는 호수가 있다. 나는 그곳을 뛸 때마다 예전에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려서 취재를 갔던 미국 버팔로의 이리호가 생각난다. 이리호는 너무 아름답고 큰 호수이다. 특히 새벽 안개가 인상적이다. '위대한 겟츠비'에 나오는 롱아일랜드의 적막한 안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약간의 우수가 안개 속에 담겨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 산보를 하러 호텔을 나서서 작은 걸음으로 거닐 때 안개 속으로부터 화들짝 다가오는 달리는 이의 동선은 실로 놀랍고도 아름다웠다. 조깅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본 것이었다. 온 몸으로 뿜어내는 호흡과 땀방울은 달림의 의지와 자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일산호수에는 얕은 안개가 수면 위에 깔린 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참 좋다. 수면 위를 구르는 듯 드리워진 안개는 버팔로의 그것을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왜 자꾸 아련한 기억 속에서 그 외국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뛰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는 그 부러웠던 '달림의 자유의 날개'를 달고 내가 뛰고있는 것이다. 달림은 의지를 함축하고 땀은 표상으로 드러난다.
일산호수가 서울 동북부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미 친근한 명소가 되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은 더 심하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삼오삼오 모여든다. 특히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는 좋은 피서 장소이다. 그곳에는 연인들의 풋풋한 향기를 느낄 수 있고, 가족들의 단란함을 볼 수가 있으며, 인라인스케이터들의 아름다운 묘기와, 스케이트보더들의 현란한 젊음을 만끽할 수 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자유를 느끼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한 밤중이라도 달리기 연습을 위해서라면 많은 사람들 사이를 뛰어야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왠지 달리기 복장을 하고 피서 나온 사람들 사이를 뛰는 것은 부끄럽기만 하다. 일산 지역은 서울 주변 지역보다 비가 덜 내린단다. 해서 이곳에서 나는 밭작물들은 풍부한 일조량 때문에 그 맛이 특별하다고 한다.
그런데 실로 오랜 폭염 뒤에 일산 호수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인데 비오시는 모습을 보고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며 달리기 팬티와 러닝 셔츠를 갈아입는 모양을 보고 아내와 아들과 딸은 아빠가 드디어 더위를 먹은 모양으로 보이나 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찌하랴 일일이 빗속을 달리고 싶어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내 변명이 너무 어눌하여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빗속으로 뛰어 나간다.
비는 인간들의 동선을 많은 부분에서 제한한다. 특히 폭우 때면 인간들의 동선은 여지없이 동강나버리고 만다. 91년 수해 때 일산 제방이 무너져 취재 헬기에서 내려다 본 고립된 일산의 모습은 마치 다도해의 모습과 비슷했다. 저 앞에 보이는 정발산도 하나의 섬이었고, 행신이나 화정 근처의 구릉지역도 모두 섬으로 변해버렸다. 자연을 거스른 인간의 어리석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날마다 자유로를 달리면서 이 길이 보강된 일산 제방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든든하지만 예전의 기억들과 중첩되어 인간들의 한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도 한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데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며 어두운 기억을 바람에 날려 버리고 호수 가장자리를 달려본다. 펼쳐진 산책로 위에 인적이 드물다. 예전에 군중 속에서 내달리며 느꼈던 고독함과 썰렁함과는 달리 몇 백 미터마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이제는 강렬한 친숙함을 느낀다. 일산호의 조경이 시작된 지 3년, 아직은 잘잘한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앞으로 10년 후쯤에는 엄청난 녹지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름드리 나무 가지 그늘 아래서 뛸 수 있겠지. 그랬으면 참 좋겠다.
포도 위에 움푹 팬 웅덩이에 맑은 빗물이 고여있다. 발로 차고 나가니 마라톤 신발에 물이 스민다. 참 시원하다. 몇 발자국 되지 않지만 그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나만의 특이한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몸의 어느 부분 보다 발이 젖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예전에 등산을 다닐 때 발 젖는 것을 꺼려해서 방수화를 몇 켤레 산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발이 젖는 것이 참 좋다.
내리는 빗방울이 안경에 성긴다. 안경을 벗고 달려 본다. 오히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이 미려한 모습으로 와락 다가온다. 선명하다.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도 비에 젖어 그들만의 놀라운 생명력에 가열찬 빛을 머금고 드러내고 있다.
온몸을 가랑비가 간질인다.빗방울은 솟아오르는 땀과 함께 내몸에서 더위를 짜내 버린다. 그 때 무풍지대를 지난 미풍이 온 몸을 휘어 감는다. 이것은 분명 자연과의 조화일 것이다.
땀은 심장이 펌프질 할 때마다 뿜어 나오는 두박자 율동의 음표이다. 나의 호흡은 네 박자의 반복되는 리듬이다. 바람은 끝없이 연결되는 오선지이다. 나는 정확히 4분의2박자 율동을 비와 바람과 안개와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출하며 어우러져 오중주로 빗속의 광시곡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황홀한가. 자연과의 하나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내가 빗속을 뛰면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느끼며, 고통 속에서 오히려 기쁨의 의미를 찾고, 따분한 반복 속에서 율동의 현란함을 보듬고 싶은 아주 '특별한 나만의 행복'의 가치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제 땀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스스로는 말하지만, 글쎄 그 의미가 그렇게 쉽게 결론 지울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지 남은 내 평생은 '땀'의 의미를 '삶의 화두'로 삼고 살아가야겠다.
넷마님들 더위에 몸 건강하십시요
김 건수 일간스포츠 사진부장
khans@hk.co.kr
http//www.kimkhans.wo.to
요새 참 덥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여름비가 너무 좋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냥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빗속을 하염없이 거닐던 기억이 요즈음 와서 더욱 새롭다. 왜냐하면 여름에 비가 오면 그 시절 그 때의 감상의 자락을 부여잡고 한 낮에도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 계속되는 무더위에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인 토요일에 비가 왔다. 잠을 깨는 빗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둘레가 5km나 되는 호수가 있다. 나는 그곳을 뛸 때마다 예전에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려서 취재를 갔던 미국 버팔로의 이리호가 생각난다. 이리호는 너무 아름답고 큰 호수이다. 특히 새벽 안개가 인상적이다. '위대한 겟츠비'에 나오는 롱아일랜드의 적막한 안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약간의 우수가 안개 속에 담겨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 산보를 하러 호텔을 나서서 작은 걸음으로 거닐 때 안개 속으로부터 화들짝 다가오는 달리는 이의 동선은 실로 놀랍고도 아름다웠다. 조깅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실제로는 처음 본 것이었다. 온 몸으로 뿜어내는 호흡과 땀방울은 달림의 의지와 자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일산호수에는 얕은 안개가 수면 위에 깔린 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참 좋다. 수면 위를 구르는 듯 드리워진 안개는 버팔로의 그것을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왜 자꾸 아련한 기억 속에서 그 외국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뛰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는 그 부러웠던 '달림의 자유의 날개'를 달고 내가 뛰고있는 것이다. 달림은 의지를 함축하고 땀은 표상으로 드러난다.
일산호수가 서울 동북부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미 친근한 명소가 되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은 더 심하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삼오삼오 모여든다. 특히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는 좋은 피서 장소이다. 그곳에는 연인들의 풋풋한 향기를 느낄 수 있고, 가족들의 단란함을 볼 수가 있으며, 인라인스케이터들의 아름다운 묘기와, 스케이트보더들의 현란한 젊음을 만끽할 수 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자유를 느끼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한 밤중이라도 달리기 연습을 위해서라면 많은 사람들 사이를 뛰어야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왠지 달리기 복장을 하고 피서 나온 사람들 사이를 뛰는 것은 부끄럽기만 하다. 일산 지역은 서울 주변 지역보다 비가 덜 내린단다. 해서 이곳에서 나는 밭작물들은 풍부한 일조량 때문에 그 맛이 특별하다고 한다.
그런데 실로 오랜 폭염 뒤에 일산 호수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인데 비오시는 모습을 보고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며 달리기 팬티와 러닝 셔츠를 갈아입는 모양을 보고 아내와 아들과 딸은 아빠가 드디어 더위를 먹은 모양으로 보이나 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찌하랴 일일이 빗속을 달리고 싶어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내 변명이 너무 어눌하여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빗속으로 뛰어 나간다.
비는 인간들의 동선을 많은 부분에서 제한한다. 특히 폭우 때면 인간들의 동선은 여지없이 동강나버리고 만다. 91년 수해 때 일산 제방이 무너져 취재 헬기에서 내려다 본 고립된 일산의 모습은 마치 다도해의 모습과 비슷했다. 저 앞에 보이는 정발산도 하나의 섬이었고, 행신이나 화정 근처의 구릉지역도 모두 섬으로 변해버렸다. 자연을 거스른 인간의 어리석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날마다 자유로를 달리면서 이 길이 보강된 일산 제방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든든하지만 예전의 기억들과 중첩되어 인간들의 한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도 한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데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바람을 가르며 어두운 기억을 바람에 날려 버리고 호수 가장자리를 달려본다. 펼쳐진 산책로 위에 인적이 드물다. 예전에 군중 속에서 내달리며 느꼈던 고독함과 썰렁함과는 달리 몇 백 미터마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이제는 강렬한 친숙함을 느낀다. 일산호의 조경이 시작된 지 3년, 아직은 잘잘한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앞으로 10년 후쯤에는 엄청난 녹지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름드리 나무 가지 그늘 아래서 뛸 수 있겠지. 그랬으면 참 좋겠다.
포도 위에 움푹 팬 웅덩이에 맑은 빗물이 고여있다. 발로 차고 나가니 마라톤 신발에 물이 스민다. 참 시원하다. 몇 발자국 되지 않지만 그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나만의 특이한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몸의 어느 부분 보다 발이 젖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예전에 등산을 다닐 때 발 젖는 것을 꺼려해서 방수화를 몇 켤레 산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발이 젖는 것이 참 좋다.
내리는 빗방울이 안경에 성긴다. 안경을 벗고 달려 본다. 오히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이 미려한 모습으로 와락 다가온다. 선명하다.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도 비에 젖어 그들만의 놀라운 생명력에 가열찬 빛을 머금고 드러내고 있다.
온몸을 가랑비가 간질인다.빗방울은 솟아오르는 땀과 함께 내몸에서 더위를 짜내 버린다. 그 때 무풍지대를 지난 미풍이 온 몸을 휘어 감는다. 이것은 분명 자연과의 조화일 것이다.
땀은 심장이 펌프질 할 때마다 뿜어 나오는 두박자 율동의 음표이다. 나의 호흡은 네 박자의 반복되는 리듬이다. 바람은 끝없이 연결되는 오선지이다. 나는 정확히 4분의2박자 율동을 비와 바람과 안개와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출하며 어우러져 오중주로 빗속의 광시곡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황홀한가. 자연과의 하나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내가 빗속을 뛰면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느끼며, 고통 속에서 오히려 기쁨의 의미를 찾고, 따분한 반복 속에서 율동의 현란함을 보듬고 싶은 아주 '특별한 나만의 행복'의 가치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제 땀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스스로는 말하지만, 글쎄 그 의미가 그렇게 쉽게 결론 지울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지 남은 내 평생은 '땀'의 의미를 '삶의 화두'로 삼고 살아가야겠다.
넷마님들 더위에 몸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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