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세월버리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2-12-28 20:18 조회77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크리스마스
온전한 휴일이라 좋은 날이다.
오랫동안 미뤘던
거사를 치르기 좋은 날이다.
암호명: 세월버리기
마누라의 오랜 성화기도 했지만
더 이상 방치하기에는
허용된 공간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
애살이라 할까, 감성이라 할까,
어쩌면 요즈음 세상 살아가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그런것들이
지나치게 풍부한 나는 무엇이든지
쉽게 버리지 못한다.
책이랑, 서류랑 그냥 당장 보지 않는 것은
커다란 박스에 담아
마치 이사짐이나 피난보따리처럼
현관구석과 베란다에 쌓아두고
세월을 보냈는데
그 유보와 망설임과 미련이 10개를 넘었다.
마누라의 절실한 바램이
그걸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차일 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었고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오냐! 내 정리하리라!
그리하여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대에게 주리라!
작정을 하고 정리에 들어갔다.
아! 그러나 쉽지 않았다.
버림은 선택이란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작업이다.
거실에 10개의 박스를 늘어 놓고
내용물을 하나 하나 쏟아내어
버릴 것과 간직할 것
죽일것과 살릴 것을 결정하는
그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누라가 옆에서 이순신장군처럼 독려하며
과감할 것을 주문하지만
나는 결코 과감해지지 못했다.
고등학교때 쓰던 노트가 나올 때는
아스라한 추억이 누선을 자극했으며
최류탄냄새 섞인 듯한 대학시절 노트와 교과서는
기어이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재채기에 시달리게 했다.
아!
내 젊은 시절의
사유와 감성,
방황과 갈등이 담긴
빛바랜 원고지에 희미한 잉크로 가로 써내려간
한 때 나의 분신이기도 했던 습작들이 고개를 내밀 때
나는 기어이 꺼이꺼이 소리내며
서럽게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원고지는 30년가까운 세월에 풍화되어
스러지고 부스러졌으며
그 속에 담긴 내 젊은 시절의 언어들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되겠다. 아니되겠다. 도저하게 아니되겠다.
맨정신으로는 내 너희를 차마 어이 버리리
마누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모른척하고
술을 마셨다.
그리하여 과감과 非情의 힘을 동시에 빌렸다.
그러나 술을 마셔도 진척은 더디기만 했다.
한병을 더 마셨다.
과감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일을 거들었고
비정은 내 얼굴색을 최후의 결전에 나선
전사의 그것으로 바꿔놓았다.
머뭇거리며 상념에 젖을 때마다
마누라가 정곡을 찌르며 거들었다.
마라톤할 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 버리고 몸을 겨우 가릴만한
런닝/팬티만 걸치고 먼길을 뛰어서 가는
마라톤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인생은 마라톤이지
버리자 버리자꾸나.
이제 아득하게 살아 온 날보다
허덕이며 살아 갈 날들이 적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미련은 무엇이고 욕심과 소유는 무슨 의미랴!
어차피 남은 삶은 세월을 버리며 사는 것일진대...
작업의 진도가 빨라졌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치열한 버리기에
몸을 맡기니
10박스의 세월은 2박스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젊은시절 습작은 차마 버릴 수 없어
쓰레기장으로 옮기는 도중에 빼돌려
우편함에 넣어두었다가 회사책상서랍으로
피신을 시켰다.
나는 이제 이들을 통하여
내 젊은 시절을 다시부르고
또 복원할 것이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치열했던
내 사유와 감성을 그리고 그 몸짓을
세월을 넘어 다시
바라볼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달릴 때처럼
잊었던 젊은 시절
그 일상의 풍광속으로 몸을 던져
성취의 환희와 상실의 고통을
다시 아우를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나는 세월을 버렸다.
젊은 까닭에 낭비가 심했던
시간들도 함께 내다버렸다.
(인터넷의 메일도 완전히 정리해 버렸고
또한 내 머리속의 복잡한 생각과
미련도 아울러 씻어 버렸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알수없는 쓸쓸함과 막연한 허전함
그리고
버림이 가져다 준 낯선 불안감을
다독거리느라 징징거리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셨다.(2002/12/26)
morningstar 정병선
p.s. 상그니 형님! 버리는 기술 좀 가르쳐주세요!
온전한 휴일이라 좋은 날이다.
오랫동안 미뤘던
거사를 치르기 좋은 날이다.
암호명: 세월버리기
마누라의 오랜 성화기도 했지만
더 이상 방치하기에는
허용된 공간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
애살이라 할까, 감성이라 할까,
어쩌면 요즈음 세상 살아가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그런것들이
지나치게 풍부한 나는 무엇이든지
쉽게 버리지 못한다.
책이랑, 서류랑 그냥 당장 보지 않는 것은
커다란 박스에 담아
마치 이사짐이나 피난보따리처럼
현관구석과 베란다에 쌓아두고
세월을 보냈는데
그 유보와 망설임과 미련이 10개를 넘었다.
마누라의 절실한 바램이
그걸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차일 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었고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오냐! 내 정리하리라!
그리하여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대에게 주리라!
작정을 하고 정리에 들어갔다.
아! 그러나 쉽지 않았다.
버림은 선택이란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작업이다.
거실에 10개의 박스를 늘어 놓고
내용물을 하나 하나 쏟아내어
버릴 것과 간직할 것
죽일것과 살릴 것을 결정하는
그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누라가 옆에서 이순신장군처럼 독려하며
과감할 것을 주문하지만
나는 결코 과감해지지 못했다.
고등학교때 쓰던 노트가 나올 때는
아스라한 추억이 누선을 자극했으며
최류탄냄새 섞인 듯한 대학시절 노트와 교과서는
기어이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재채기에 시달리게 했다.
아!
내 젊은 시절의
사유와 감성,
방황과 갈등이 담긴
빛바랜 원고지에 희미한 잉크로 가로 써내려간
한 때 나의 분신이기도 했던 습작들이 고개를 내밀 때
나는 기어이 꺼이꺼이 소리내며
서럽게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원고지는 30년가까운 세월에 풍화되어
스러지고 부스러졌으며
그 속에 담긴 내 젊은 시절의 언어들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되겠다. 아니되겠다. 도저하게 아니되겠다.
맨정신으로는 내 너희를 차마 어이 버리리
마누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모른척하고
술을 마셨다.
그리하여 과감과 非情의 힘을 동시에 빌렸다.
그러나 술을 마셔도 진척은 더디기만 했다.
한병을 더 마셨다.
과감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일을 거들었고
비정은 내 얼굴색을 최후의 결전에 나선
전사의 그것으로 바꿔놓았다.
머뭇거리며 상념에 젖을 때마다
마누라가 정곡을 찌르며 거들었다.
마라톤할 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 버리고 몸을 겨우 가릴만한
런닝/팬티만 걸치고 먼길을 뛰어서 가는
마라톤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인생은 마라톤이지
버리자 버리자꾸나.
이제 아득하게 살아 온 날보다
허덕이며 살아 갈 날들이 적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미련은 무엇이고 욕심과 소유는 무슨 의미랴!
어차피 남은 삶은 세월을 버리며 사는 것일진대...
작업의 진도가 빨라졌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치열한 버리기에
몸을 맡기니
10박스의 세월은 2박스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젊은시절 습작은 차마 버릴 수 없어
쓰레기장으로 옮기는 도중에 빼돌려
우편함에 넣어두었다가 회사책상서랍으로
피신을 시켰다.
나는 이제 이들을 통하여
내 젊은 시절을 다시부르고
또 복원할 것이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치열했던
내 사유와 감성을 그리고 그 몸짓을
세월을 넘어 다시
바라볼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달릴 때처럼
잊었던 젊은 시절
그 일상의 풍광속으로 몸을 던져
성취의 환희와 상실의 고통을
다시 아우를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나는 세월을 버렸다.
젊은 까닭에 낭비가 심했던
시간들도 함께 내다버렸다.
(인터넷의 메일도 완전히 정리해 버렸고
또한 내 머리속의 복잡한 생각과
미련도 아울러 씻어 버렸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알수없는 쓸쓸함과 막연한 허전함
그리고
버림이 가져다 준 낯선 불안감을
다독거리느라 징징거리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셨다.(2002/12/26)
morningstar 정병선
p.s. 상그니 형님! 버리는 기술 좀 가르쳐주세요!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