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만남의광장

친구여, 나의 친구여 !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12-27 08:53 조회540회 댓글0건

본문

친구여, 나의 친구여 !


성탄절 휴일이 끝난 12 월 26일 오늘 오전,
바깥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 치어 영하 8 도를 가리킨
서울 잠실 롯데 월드 호텔 앞,

나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애용하는 진한 곤색 스웨타를
와이셔츠 위에 더 겹쳐 입고,
아내가 20 년 전에 아파트 단지 임시 야시장에서
철 지났을 때 싸게 사준 비버리 ( 버버리가 아니고 )를 입고

머리카락이 짧아 추위를 더 타는 머리 위에 털실로 짠 벙거지 모자를 쓰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정 벙거지에 하얀 자수로 영국의 유명한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수 놓아진 이 모자를 쓰고 있으면 아내는 나를 외국 영화 " 나 홀로 집에 " 나오는
어리벙벙한 그 도둑 같다고 못쓰게 하지만,
그래도 이 모자는 영국 리젠트 거리에서 겨울 출장 중에 너무 추워 비싸지만
할 수 없이 샀기 때문에 안 쓰면 왠지 더 손해일 것 같아 나는 기를 쓰고 쓴다

오늘은 친구가 나랑 같이 자기 차로 손수 운전을 해서,
서울 외곽 도시 어느 곳을 같이 가기로 돼 있어
나는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 이곳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각 10 시,
친구가 정확하게 약속 시간에 나타났다
평소의 치밀하고 정확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는 대목이다
나는 시간 약속이 철저한 사람이 정말 좋다.
오늘 점심 식사는 내가 내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내가 밝은 표정으로 장난 삼아 영어로 말하자
친구는 이탈리어로 대꾸한다. 6 년 넘게 그곳에서 살았기에
너무 자연스럽다. 이탈리아인의 약간은 호방하고 낙천적인 기질,
친구말로는 대륙적인 기질도 있다하는데 그 기질도 많이 가져 왔을 게다.

친구의 차에 올라타자 발 밑에 무슨 두꺼운 전선 같은 게 밟힌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니 이건 보통 전선이 아니다.
구리로 만든 매우 커다란 왕 빨래집게가 양쪽 끝에 달려 있는,

이를테면,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시동 꺼진 차량이 밧데리 집에 신고하면 이 줄을 가지고 와서
자기 차 밧데리에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 줄 때 쓰는
밧데리 연결 시동 줄이다.

나는 내 엉덩이에 불안정하게 말리어져 깔린 불편한 내 비버리 옷자락을
다시 펴서 편편하게 하는 동작을 하려고 약간 일어섰다 앉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 웬 시동 밧데리 줄 ?? 시동 안 걸려 아침에 어쨌는데 ?? "

나의 물음 속에는 요즈음에도 시동 안 걸리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
하는 약간은 재미난 뜻도 있었으며, 한편으로 아침에 시동이 안 걸리어 애를 먹었을
친구를 위로해 주려고 나의 경험담을 마악 꺼내려 하였다.

내가 풀어놓을 나의 아주 오래 전 경험담으로 친구의 오늘 아침 수고,
곤혹스러움을 조금은 보상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친구는 말하기를,
그건 추운 겨울날 어디를 지나 가다가 시동이 꺼져 곤경에 처한 차를 발견하면
언제라도 달려가 도와주려고 항시 차안에 가지고 다니는,
남을 도울 비상용 시동 밧데리 전선이라고 천천히 말하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화제를 금방 바꾸려 했다

아 !
나는 화제를 바꿀 수 없었다.
나는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워 중심이 안 잡혔다

휴대용 차량 소화기를 구입, 비치해서 가지고 다니다가
불이 난 차량을 발견하면 달려가 던져 주려고 마음먹고
광교 근처의 소방 기구 파는 곳에 들러 몇 번 값을 물어보고는
아직 실행에 못 옮긴 나에게 주는 아주 현실적인 가르침이었다.

추운 겨울 아침, 시동이 안 걸려 발을 동동 구르는 운전자에게
이 전선줄을 가지고 다가와 친구 차량의 밧데리에 연결하여서,
시동을 걸어 주고 유유히 갈 길을 가는 나의 친구,
나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뜨뜻해짐을 느꼈다.

곤경에 빠진 타인에 대한 이 작은 친절, 이 작은 배려 ,
나는 지금 더 이상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

어제는 성탄절,
우리는 어쩌면 모두 너무 거창한 자비, 너무 큰 선행을 위해
진심으로 가까이 에서 할 수 있는 진정한 선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
작지만 결코 작을 수 없는 선의 이행 방법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운전을 계속하는 나의 친구,
나는 그저 그 작은 당당함에, 당연하지만 돋보이는 그 의연함에,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숭고한 인간애에
덩달아 가슴이 뿌듯해져만 갔다.

친구여, 나의 아름다운 친구여 !

성탄 그 이튿날,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