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국토종단달리기 최종 구간 : 잠실-임진각(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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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신석 작성일03-01-07 09:51 조회7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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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er's Cafe 국토종단달리기에 가시면 편하게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4차 국토종단달리기 :
한민족 통일기원 국토종단 이어 달리기 2002.10.26-2003.1.5. 한라에서 백두까지. 제주도에서 임진각까지 약 2000km.
그날 우연히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토종단 이어 달리기는 1999년 찌는듯한 더위 속에 달리기 훈련하던 노총각 쉬리의 빛돌 윤석기님의 고집 속에서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는 거사를 위해 서둘기 시작했다. 그 해 중앙일보하프마라톤이 있던 9월 12일 전국의 네티즌마라토너들이 자리를 하는 기회를 빌려 대회장 인근의 식당에 전국의 네티즌 마라토너들이 모여 의기 투합을 했다. 지금은 지역 마라톤동호회의 모태가 된 장본인들이 거의 다 자리를 함께 했고, 자리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지역에서는 위임으로 참여 의식을 대신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백지이던 상황에서 윤석기님은 직장문제, 결혼문제를 젖혀두고 11월을 넘기기않고 출발하여 2000년 1월1일 임진각 입성을 위해 만사를 서둘러야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국종달은 남의 집 신세를 져야했다. 조선일보춘천마라톤 게시판 만남의 광장의 국종달의 열띤 대자보였다. 그 때 나는 지방에 있다는 핑계로 멀리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광주에서 역사적인 제1회 국종달 출발을 위해 전날 광주로 집결하였다. 중집위라 우리는 그렇게 일컬었다. 윤석기, 나금풍, 김윤회, 윤석기, 여수의 김종생, 대전의 박신석. 새벽이 열기기 전에 광주 금남로사거리에 각종 깃발을 늘어놓고 첫단추가 잘 꿰메어지지기를 한민족의 정성을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천지신명께 고하고 금남로를 새벽을 헤치며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국종달 이어 달리기는 전국을 면면 촘촘히 전국의 풀뿌리 마라톤 동호회를 묶으며 2000년 1월 1일 임진각에서 목을 놓아 북을 향해 고함을 칠 수 있었다.
그간 두번째와 세번째는 내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어 잠수의 음울함에 잠겨 멀리서 바라보아야했다.
이제 그 네번째. 임진각에 이르는 전 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겨우 3시간 정도로 눈을 붙이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아내가 잠을 설칠까 조용히 채비를 챙겼다. 밖은 올 겨울 들어 제일 추워 영하 14도를 예보하고있었다. 충청권에는 어제부터 대설주의보로 사방이 눈으로 덮혀있었다. 나는 채비를 단단히 하고 5시 첫 차를 타기 위해 조횽히 집을 나섰다.
눈 밭의 고속도로는 텅 빈채였다. 고속버스는 제한속도로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 나를 부려 놓았다.
지하철로 출발지인 잠실종합운동장 지하도에 도착하니 날씨가 추워 출발 전 스트레칭을 위해 모두 지하도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소풍나선 어린아이들 처럼 추위를 막기위해 온 몸을 감쌌지만 신명이 나 있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지하철 지하도에서 스트레칭

출발전 기념 촬영

출발

2002년 1월 5일 오전 8시. 약 250명의 풀뿌리 달림이들은 영하 14도의 추위를 밀어내며 한민족 통일기원의 의지를 전하기 위해 임진각을 향해 잠실종합운동장을 힘찬 함성과 함께 출발하였다. 추위로 넓어진 강남대로를 달리는 달림이들이 내뿜는 입김은 금새 눈섭과 입가에 성에로 남았고 목도리가 되어 허옇게 얼어붙었지만 달림이들의 열기를 막지는 못하였다.
첫번째 휴식장소인 흑석동 시민체육관 앞에는 이번 대회의 진행을 맡은 런너스클럽 회원들이 미리 도착하여 더운 물과 쵸코파이 등으로 첫 허기를 달랬다.
한강철교를 지나며 문득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는 것은 왠 일이었을까. 나는 문득 가슴 속에 뭉클되는 혈기를 쓸어내렸다. 셔터를 누르는 맨 손 끝이 금방 얼어붙는 것 같다.
한강철교 위에서

돌아가는 용산 삼각지를 지금은 전쟁기념관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다 전쟁을 곁에 두고 살고 있는 것이다. 멀리 남산타워가 국종달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서울역 앞을 지나며 동경역이 생각나는 것은 또 왠 일이었을까. 독립문 맞은편의 제2휴게소에서 나는 한 쪽 켠에 비켜서 있는 독립문을 바라보며 국종달과 민족의 애환을 되새겨본다.
서울역 앞

독립문 앞

겨울 햇살을 등에 지고 박석고개를 넘는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신자들이 박수를 보낸다. 처음 보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구파발에서는 일산호수마라톤동호회 일행들이 전국 제일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며 함께 한다.
내유초등학교 앞과 월롱역 앞 그리고 문산사거리 휴게소에 대회 주최측에서는 빵과, 떡, 양갱, 밀감, 바나나 등 먹거리를 넉넉하게 준비하였다. 이온음료와 찬 생수는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더운 물이 추위와 목마름은 다소나마 덜어주고 있었다.
출발지부터 함께한 4대의 버스에는 연신 지친 달림이들을 교대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문산사거리에서 임진각까지는 약 7km. 지난 해 10월 26일 제주에서 출발한 한민족 국토통일의 염원을 담은 전국의 풀뿌리 마라토너들이 밟은 거리는 약 2,00km. 이제 소한을 앞 둔 겨울 들녁 오후 3시 20분경 우리는 자유의 다리 앞에서 그 달리기를 멈춰야했다. 자유의 다리 앞에는 전 세계 64개 전장터에서 가져온 돌들이 전쟁의 아픈 상처를 대신해주고 있었다.
임진각 도착 1

임진각 도착 2

임진각 도착 3

임진각 도착 4

임진각 도착 5

임진각 도착 6

임진각 도착 7

임진각 도착 8

임진각 도착 9

임진각 도착 10

자유의 다리 명패

자유의 다리에 가로 막힌 철조망

자유의 다리

철조망으로 가려막힌 다리 건너의 초소병. 그리고 다리. 얼어붙은 임진강. 산하여 가슴을 열라. 그리고 이 달리기를 자유의 다리를 넘어 개성에서 사리원으로, 남포에서 평양으로, 신의주에서 약산 진달래를 밟으며 백두산에 이르게 하라. 고성에서 금강산으로, 원산에서 함흥으로, 나진에서 백두에 이르게 하라. 한 해 걸러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니, 만주벌판의 남북의 동포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달리게 하자. 염원을 담은 축문과 고사를 마치고 일산 아지매들이 준비한 따듯한 국밥과 막걸리로 정담과 덕담을 나누며 우리는 한 형제임을 확인하는 70일간의 대 장정은 다음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축문을 읽는 김승기

헌주하는 윤석기

단체 사진

런다이어리 가족

서울대학교병원 가족

일산아지매들

박영석 회장님

런너스클럽 알통가재 김승기

노고단내외

러너스코리아 권영동

런다이어리 푸른나루 김기선

늘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명현?

런너스클럽의

불새

* 관련 내용이나 사진에 본의 아니게 당사자에게 불편함을 끼치게 하신 분에게 사전에 양해를 얻지않았음을 사과 드립니다. 불편하신 부분은 연락주시면 바로 잡거나 시정하겠습니다.
수록된 사진은 사정상 조정을 하였습니다. 원본 인화을 위해 원본 파일을 원하시는 분은 제게 이메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 촬영된 많은 사진은 서버의 사정상 일일히 수록하지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제공되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4차 국토종단달리기 :
한민족 통일기원 국토종단 이어 달리기 2002.10.26-2003.1.5. 한라에서 백두까지. 제주도에서 임진각까지 약 2000km.
그날 우연히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토종단 이어 달리기는 1999년 찌는듯한 더위 속에 달리기 훈련하던 노총각 쉬리의 빛돌 윤석기님의 고집 속에서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는 거사를 위해 서둘기 시작했다. 그 해 중앙일보하프마라톤이 있던 9월 12일 전국의 네티즌마라토너들이 자리를 하는 기회를 빌려 대회장 인근의 식당에 전국의 네티즌 마라토너들이 모여 의기 투합을 했다. 지금은 지역 마라톤동호회의 모태가 된 장본인들이 거의 다 자리를 함께 했고, 자리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지역에서는 위임으로 참여 의식을 대신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백지이던 상황에서 윤석기님은 직장문제, 결혼문제를 젖혀두고 11월을 넘기기않고 출발하여 2000년 1월1일 임진각 입성을 위해 만사를 서둘러야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국종달은 남의 집 신세를 져야했다. 조선일보춘천마라톤 게시판 만남의 광장의 국종달의 열띤 대자보였다. 그 때 나는 지방에 있다는 핑계로 멀리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광주에서 역사적인 제1회 국종달 출발을 위해 전날 광주로 집결하였다. 중집위라 우리는 그렇게 일컬었다. 윤석기, 나금풍, 김윤회, 윤석기, 여수의 김종생, 대전의 박신석. 새벽이 열기기 전에 광주 금남로사거리에 각종 깃발을 늘어놓고 첫단추가 잘 꿰메어지지기를 한민족의 정성을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천지신명께 고하고 금남로를 새벽을 헤치며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국종달 이어 달리기는 전국을 면면 촘촘히 전국의 풀뿌리 마라톤 동호회를 묶으며 2000년 1월 1일 임진각에서 목을 놓아 북을 향해 고함을 칠 수 있었다.
그간 두번째와 세번째는 내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어 잠수의 음울함에 잠겨 멀리서 바라보아야했다.
이제 그 네번째. 임진각에 이르는 전 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겨우 3시간 정도로 눈을 붙이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아내가 잠을 설칠까 조용히 채비를 챙겼다. 밖은 올 겨울 들어 제일 추워 영하 14도를 예보하고있었다. 충청권에는 어제부터 대설주의보로 사방이 눈으로 덮혀있었다. 나는 채비를 단단히 하고 5시 첫 차를 타기 위해 조횽히 집을 나섰다.
눈 밭의 고속도로는 텅 빈채였다. 고속버스는 제한속도로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 나를 부려 놓았다.
지하철로 출발지인 잠실종합운동장 지하도에 도착하니 날씨가 추워 출발 전 스트레칭을 위해 모두 지하도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소풍나선 어린아이들 처럼 추위를 막기위해 온 몸을 감쌌지만 신명이 나 있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지하철 지하도에서 스트레칭

출발전 기념 촬영

출발

2002년 1월 5일 오전 8시. 약 250명의 풀뿌리 달림이들은 영하 14도의 추위를 밀어내며 한민족 통일기원의 의지를 전하기 위해 임진각을 향해 잠실종합운동장을 힘찬 함성과 함께 출발하였다. 추위로 넓어진 강남대로를 달리는 달림이들이 내뿜는 입김은 금새 눈섭과 입가에 성에로 남았고 목도리가 되어 허옇게 얼어붙었지만 달림이들의 열기를 막지는 못하였다.
첫번째 휴식장소인 흑석동 시민체육관 앞에는 이번 대회의 진행을 맡은 런너스클럽 회원들이 미리 도착하여 더운 물과 쵸코파이 등으로 첫 허기를 달랬다.
한강철교를 지나며 문득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는 것은 왠 일이었을까. 나는 문득 가슴 속에 뭉클되는 혈기를 쓸어내렸다. 셔터를 누르는 맨 손 끝이 금방 얼어붙는 것 같다.
한강철교 위에서

돌아가는 용산 삼각지를 지금은 전쟁기념관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다 전쟁을 곁에 두고 살고 있는 것이다. 멀리 남산타워가 국종달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서울역 앞을 지나며 동경역이 생각나는 것은 또 왠 일이었을까. 독립문 맞은편의 제2휴게소에서 나는 한 쪽 켠에 비켜서 있는 독립문을 바라보며 국종달과 민족의 애환을 되새겨본다.
서울역 앞

독립문 앞

겨울 햇살을 등에 지고 박석고개를 넘는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신자들이 박수를 보낸다. 처음 보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구파발에서는 일산호수마라톤동호회 일행들이 전국 제일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며 함께 한다.
내유초등학교 앞과 월롱역 앞 그리고 문산사거리 휴게소에 대회 주최측에서는 빵과, 떡, 양갱, 밀감, 바나나 등 먹거리를 넉넉하게 준비하였다. 이온음료와 찬 생수는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더운 물이 추위와 목마름은 다소나마 덜어주고 있었다.
출발지부터 함께한 4대의 버스에는 연신 지친 달림이들을 교대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문산사거리에서 임진각까지는 약 7km. 지난 해 10월 26일 제주에서 출발한 한민족 국토통일의 염원을 담은 전국의 풀뿌리 마라토너들이 밟은 거리는 약 2,00km. 이제 소한을 앞 둔 겨울 들녁 오후 3시 20분경 우리는 자유의 다리 앞에서 그 달리기를 멈춰야했다. 자유의 다리 앞에는 전 세계 64개 전장터에서 가져온 돌들이 전쟁의 아픈 상처를 대신해주고 있었다.
임진각 도착 1

임진각 도착 2

임진각 도착 3

임진각 도착 4

임진각 도착 5

임진각 도착 6

임진각 도착 7

임진각 도착 8

임진각 도착 9

임진각 도착 10

자유의 다리 명패

자유의 다리에 가로 막힌 철조망

자유의 다리

철조망으로 가려막힌 다리 건너의 초소병. 그리고 다리. 얼어붙은 임진강. 산하여 가슴을 열라. 그리고 이 달리기를 자유의 다리를 넘어 개성에서 사리원으로, 남포에서 평양으로, 신의주에서 약산 진달래를 밟으며 백두산에 이르게 하라. 고성에서 금강산으로, 원산에서 함흥으로, 나진에서 백두에 이르게 하라. 한 해 걸러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니, 만주벌판의 남북의 동포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달리게 하자. 염원을 담은 축문과 고사를 마치고 일산 아지매들이 준비한 따듯한 국밥과 막걸리로 정담과 덕담을 나누며 우리는 한 형제임을 확인하는 70일간의 대 장정은 다음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축문을 읽는 김승기

헌주하는 윤석기

단체 사진

런다이어리 가족

서울대학교병원 가족

일산아지매들

박영석 회장님

런너스클럽 알통가재 김승기

노고단내외

러너스코리아 권영동

런다이어리 푸른나루 김기선

늘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명현?

런너스클럽의

불새

* 관련 내용이나 사진에 본의 아니게 당사자에게 불편함을 끼치게 하신 분에게 사전에 양해를 얻지않았음을 사과 드립니다. 불편하신 부분은 연락주시면 바로 잡거나 시정하겠습니다.
수록된 사진은 사정상 조정을 하였습니다. 원본 인화을 위해 원본 파일을 원하시는 분은 제게 이메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 촬영된 많은 사진은 서버의 사정상 일일히 수록하지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제공되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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