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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윌버 하디씨 그리고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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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01-03 16:00 조회6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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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윌버 하디 씨 그리고 카푸치노



해외를 돌아다니며 사귄 많은 사람 중에 윌버 하디 라는 분이 있습니다.
나 보다 많이 년상 이지만 만나면 항상 죽마고우처럼, 서로 막역합니다

이 분은 미국인인데 60 연대 말, 70 연대 초쯤 에 한국에서 근무했다 합니다
밝히기가 좀 멋 합니다만 일종의 군 범죄 수사 계통인데 거짓말 탐지기
전문 기술자라 합니다. 은퇴하였으나 지금도 어려운 사안이 있을 때는
정부에서 초빙해서 자문을 받아 간다고 합니다

귀국해서는 와싱턴이 가까운 메릴랜드에 사시다가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고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의 멜보른 이라는 작은 소읍에서 퇴직 연금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65 살 정도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윌버씨는 한국에 대해 꽤 자상히 알고, 한국 및 한국 국민에 대해 애정이 굉장히
깊습니다. 다만 이 애정이 우리가 산업화되기 이전, 아주 궁핍했을 때
가졌던 동정이 가미된 감정이었을 것이기에 나는 이점이 좀 아쉽습니다.

이 분이 한국에 머무를 때 찍은 아주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움큼을 ,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주라고 저에게 건네주었을 때 자세히 보니,
그 사진들은 윌버씨가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애정의 바탕이 무엇인지
저에게 잘 암시 해주고 있었지요.

검정 광목 치마에 하얀 저고리, 물동이 머리에 이고 가는 시골 아주머니의
짧은 저고리 아래로 감춤 없이 다 들어 난 허연 젖가슴. 동네 개울물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들과, 빨래 방망이 한 손에 들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몸뻬 아줌마.
부산항 근처 산동네의 개딱지 같은 판자촌들.... 땔나무 지게를 진 아저씨 사진 등....

우리 대한민국 현재의 경제나 문화나, 예술이나 우리가 그 후에 가꾸고 키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현실을 제대로 아시고 계실는지 가 궁금하고 또 그럴까봐
나는 이 분과의 대화 중에는 의도적으로 화제를 이 방면으로 돌려
만일 이 분이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릇된 정보를 수정해 주려 했었지요.

예를 들어 우리 영화가 유럽의 어느 영화제에서 일등상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무척 좋아 하지만, 자기가 한국에 있을 때를 회상하며 정말 그랬을까 ?
하고 믿어지지가 않은 듯 자꾸 옛날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가설 극장 앞에서 나팔
불며 관객을 불러모으던, 자기가 보았던 60 연대의 한국 극장가의 모습을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미국의 동부 쪽에 출장 가면 꼭 이 분의 집에 들어 주말을 같이 보내며
밤을 세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키가 거의 2 미터 가까이 되는 윌버씨는
내가 그레이 하운드 터미널에 내리거나, 암트랙 기차 정거장에 내리거나, 비행기
타고 와서 워싱턴 비행장에 내리거나 꼭 마중을 나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는데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반가움이 역력한데도 그 감정 표현에 내가 오히려 더
불편해 할까봐 아주 세심하니 신경을 써주곤 합니다.

우리 식처럼, 더 쉬었다 가라, 밥 더 먹어라 하는 과잉 친절은 없지만 언제고 나의
계획,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존중하여 불편 없게 하여 줍니다. 진정한 친구를
대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요. 정말 우정에 나이가
있을 수 없다는 산 증거입니다

그리고요, 우리가 만나면 어김없이 둘이서 꼭 하는 의식이 있지요.
도착 다음 날부터 내가 그 곳을 떠나는 날 까지 매일 아침은 둘이서 같이
아침 조깅을 나가는 겁니다. 윌버씨는 대단한 조깅광 이었는데 달리기를 좋아하는
저와 꿍짝이 맞아 사실, 미국 출장 중에 일부러 윌버씨 집을 들리는 이유중의 하나는
주말에 현지의 그림 같은 곳을 같이 뛰고 싶어서 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면 윌버씨는 아주 신이 나서 새로운 조깅 코스를 개발했다느니, 몇 마일
지점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는데 정원 손질이 제대로 안되어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 졌다느니, 몇 마일 지점에 Sand Crane 이라는 그곳 토종새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났는데 운이 좋으면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느니

또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플로리다 멜보른 집에서는 우리가 가는 조깅 코스
몇 마일 지점 늪에 악어가 사는데 어느 사진 기자가 사진 찍다가 물렸다느니
등등 사연이 구구해서 같이 달리는 내내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달리기 반환점은 항상 쎄븐 일레븐 이라는 편의점이 되었는데
이건 아마도 윌버씨가 좋아하는 카푸치노 커피를 싸게 먹을 수 있어 항상 새로운
달리기 길을 개발 할 때는 이 점이 고려의 대상이 되는 모양입니다.

반바지 주머니에 일 불 짜리 지전 몇 개를 넣고 와서 반환점에서
땀을 훔치며 새벽에 마시는 편의점 카푸치노 커피 한잔의 그 기막힌 맛 , 저는 지금도
그 맛을 못 잊어 거리를 가다가도 카푸치노 커피점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지요. 이 커피를 마시면 윌버씨와 같이 아침 조깅을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혼자 달릴 때면 어서 집에 가서 씻고 아내가 타주는 카푸치노 한 잔 먹어야지
하는 간절한 욕구도 감출 수가 없지요.

수많은 나의 해외 달리기 추억 가운데 정말 잊기 아까운 윌버씨와의 아름다운
달리기 추억 그리고 쎄븐 일레븐 에서의 카푸치노 추억입니다

그런데 슬픈 소식이 왔군요.
나의 오랜 미국 친구 윌버씨가 심장이 안 좋아져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아직도 자세한 병명을 몰라 수술을 해야 되는지, 안 해도 되는지 지금은
처방이 아직 안 내려진 상태라고 하는군요.

병원 진료기관을 두 세 군데 거친 모양인데 아직 호전되지 않은 상태라 산소 통을
비상용으로 항상 옆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군요.
내일이라도 내가 플로리다에 오면 리어카에 산소통 싣고 밀면서 같이 뛰자고 하는
그 농담에 콧등이 시큰해져, 그저 가만히 눈 내리는 하늘만 바라보았지요

아주 평범한 한 미국 시민과의 오랜 우정,
같이 뛰며 나눈 아름다운 마라톤 이야기.
아주 오래 전 나에게 처음으로 카푸치노를 알게 해준 마라톤 반환점 그 가게.
특별하지 않지만 고만 고만 꾸밈없이 살아가는 미국 중.상층 보통 사람들의
행복해 보이는 주택가 아름다운 모습, 그들의 고귀한 가치관.

나는 당분간,
뛰지 못하고 항상 산소통 옆에서 맴돌아야만 하는 윌버씨를 생각하며,
그 분의 빠른 쾌유를 빌며,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어느 날 너무 늙어져서 더 뛰지 못하는 그 상황에
우리는 믿기지 않는 그 운명을 어떻게 맞아야되나 하는 무거운 삶의 주제 중 하나를
생각하며 카푸치노를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깥은 아직도 눈이 펑펑 내리고 있군요.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이 글은 글쓴이의 고정 칼럼 " 박복진의 마라톤 이야기 "
러너스 코리아 ( www.runnerskorea.com )
웹. 싸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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