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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호반을 스쳤던 마라톤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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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10-30 02:49 조회1,1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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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湖畔)을 스쳤던 마라톤 이야기

41km 지점을 알리는 하늘색 깃발이 보였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 깃발이던가? 참았던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자 자신도 모르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점점 마비되어 오는 다리를 이끌면서 걷지 말고 뛰어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갖 갈등과 유혹을 뿌리치고 달려온 41km!
이제 남은 거리는 1.195km! 마비된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달려서 완주하리라!
달려야 한다는 것은 마라톤이 내게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춘천경찰서를 지나 공지천 공지교(孔之橋)위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춘천종합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기가 그렇게도 참고 헤매며 달려왔던 결승점이지!'
거리의 시민들과 이미 골인한 런너들이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주자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나 자신도 그들 사이에서 박수를 받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저 달려서 42.195km를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어떤 빈틈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길에서 춘천종합운동장 쪽으로 꺾어 접어들자
수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든 채, 양옆에 도열해서 들어오는 주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지만 박수로 격려는 해주고 있었다.
그 중에는 초록 선녀와 분홍 선녀로 분장한 여학생들도 보였다.
출발했던 직4문을 통과하여 운동장으로 접어들자,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양옆으로 나란히 도열한 채
운동장 트랙을 달리는 주자들의 장면을 카메라에 잡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혼자 달려왔던 것처럼 누가 나를 반겨주지 않을지라도
나 홀로 자신을 신뢰하기 위해서 라도 이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자
어디에 숨어있던 힘이 솟아났는지 활기찬 모습으로 달리면서 결승점을 지날 수 있었다.

출발 전에 서해에서 동해까지 밤낮으로 뛰었던 울트라멤버들에게 공언했던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원없이 달려 본 거리였다.

울트라멤버들과 해후로 시작되었던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시발점인 춘천공설운동장!
출발 전, 흥분과 긴장은 출발 총성과 함께 달려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변해
뛸 수 없는 극한상황을 극복하면서 기어코 달려서 완주함으로써
나의 풀코스 첫 도전인 춘천마라톤의 대단원은 막이 내렸다.

2000년 조선일보 춘전마라톤은 출발에 앞서 울트라멤버들과 서로 만나 정답게 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도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분들이야 울트라 코스를 비롯해서 풀코스를 여러 번 뛰어 보았기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마라톤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 자신은 생전 처음으로 풀코스를 접하기에 긴장과 걱정 뿐이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홀로 그 대열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긴장된 몸을 풀기 위해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운동장을 천천히 돌아 보았다.
단체로 참가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달려가기에
나도 기죽지 않으려고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따라 돌았다.
그러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왠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도 완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시원스럼을 느끼지 못했다.
운동장 밖으로 나가 보았다.
수많은 현수막들이 걸려있어 전국 최대의 마라톤 축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직 출발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여 출발선 근처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싶었다.
각 시간대 별로 팻말을 들고 자원봉사자들이 서 있었다.
어느 시간대에서야 할 것인가?
풀코스 완주 경험이 없었기에 망설이다, 3시간대에 서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했다.
과연 내가 여기에 서 있는 주자들과 발을 맞출 수 있을까?
그래서 3시간 30분대 주자들 사이에 서기로 했다.
그런데 울트라 멤버들에게 3시간 10분대에 완주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다시 3시간 팻말 뒤로 섰다.
불안하고 긴장되어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 5분전!
움집해 있는 수많은 주자들을 뚫고 화장실로 간다는 것이 불가능 해 보였다.
그냥 참기로 했다.
달리다 화장실이 있으면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마라톤 열기로 가득한 출발지에는 오히려 후덥지근했다.
대부분 일행들끼리 서로 예상 기록 등을 이야기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긴장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홀로 발끝서기 스트레칭에만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시간 11시!
그러나 출발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안내 방송만 하고 있었다.
대여 받은 심박 측정기를 보았다.
첫 풀코스 도전으로 인한 긴장과 흥분 때문인지 심박수가 110을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 총성이 울렸다.
총성과 함께 달려나가는 주자들은 곧바로 직4문에서 거대한 모래시계 알갱이가 되어
영차! 영차! 하면서 혼란을 질서로 바꾸면서 빠져나갔다.
직4문을 나서자, 곧바로 널찍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자 비스듬히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선두권을 따르는 무리들이 차선을 가득 메운 채
단풍 들어 아름다운 산을 향해 줄지어 소풍 가는 것처럼 보였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 되지 않는 속도로 달려 나가자 어디서 기관차가 달려오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이한 호흡법으로 달리는 주자였다.
같이 발을 맞추며 달려가기가 거북해서 조금 속도를 내버렸다.
한없이 넓은 산길을 따라 산 속으로 올라가는 마라톤 행렬을 보면서
'이대로 모두가 출가해서 선승(禪僧)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알간 단풍잎과 노오란 은행잎이 어울려 한껏 멋을 부리고 있는 올림픽동산에서
한가한 휴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달리는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몬주익 마라톤 영웅 황영조 동상도 우리를 격려하려 달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지리한 오르막길은 대우아파트를 지나면서
산과 나무들이 가장 호사스럽게 치장한 채로 런너들에게 내리막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가로수는 곱디고운 색만 추려 아름다운 가을 수채화를 그려 놓았고,
산들은 이에 질세라 오색을 한꺼번에 촤악 흩뿌려 놓은 것 같았다.

춘천종합사격장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의암빙상장 삼거리를 조금 더 가서 5km 팻말과 함께 첫 급수대가 보였다. (22:10)
풀코스는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기에 목이 마르지 않았어도
이온음료 두 모금을 달리면서 마시고 앞으로 나가자
의암낚시터 입구 장승들이 어서 오라는 듯 정겹게 맞아 주고 있었다.
이제, 고요한 의암호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달려가는 주자들에게 가장 한가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거기에다 호수를 뒷 배경으로 淸風 金裕貞(1908-1937) 文人碑가
고적한 산길 나그네들을 반기며 떨잎 지는 소리에 음률을 읊고 있었다.

호수 건너편 삼악산쪽을 보자,
등록선수 선두가 시계차량을 앞세우고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저들은 힘이 많아 오버페이스도 모른 가 보다.'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달렸다고 저렇게까지 앞서 간단 말인가?'
'내 평생 저런 힘이 있어, 선두에 한번 서서 저토록 힘있게 달려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바위를 가르고 낸 길, 오른편
이곳에 입을 맞추면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인어상(人魚象) 쪽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서
카메라맨들이 주자(走者)들을 촬영하려고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런너들은 런너들 나름대로 손을 들어 답례하기에
나도 덩달아 두 손을 들어 한껏 멋진 포즈를 취해 보았다.
'이런 내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을까?' 괜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곳에 있는 옷바위 이름을 따서 옷 의(衣)와 바위 암(岩)자를
넣어 작명한 의암(衣岩)댐이 눈에 들어 왔다.

의암댐은 60년대초 사회간접자원이 절실할 때, 전력생산을 위해 착공하여
1967년 12월에 완공한 북한강 수로에 건설된 네 번째 댐(길이 273m)으로
카플란(Kaplan) 수차로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수력발전소이다.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의암호(衣岩湖)라는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는데
이로 인해 춘천시내 중심부가 호수와 인접하게 되어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의암호가 생기기 전에 모진강과 소양강이 서로 만나 흐르던 강을 신연강이라 했었다.
지금은 신연강이 의암호에 묻혀 버렸고
'신연교'와 '신연아리랑' 정도가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댐을 건너서 왼쪽으로 산을 끼고 평평한 주로(走路)를 달려가자
등산복차림의 등산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격려를 보내 주었다.
호수 수평선 멀리 붕어섬 너머로 춘천시내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 왔다.
주로에는 물스펀지를 건네면서 자원봉사 학생들이 악을 쓰며 응원하고 있었다.(7.5km)
날씨도 선선하고 맞바람까지 불어왔기에 물스펀지를 무시하고 그냥 달려나가자
삼악산(645m) 등산로 매표소가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마다 산행을 즐기던 때,
삼악산 8부능선에서 적송(赤松)들 사이로
구름이 듬성듬성 깔린 의암호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산은 산이 모두가 산이 아니오,
물은 물이 모두가 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삼악산에서 내려보는 산과 호수는 구름 위에 떠 있었기에
산 속의 산행객들이 언제라도 훌쩍 호수로 뛰어 들면,
낮게 깔린 구름들이 가볍게 날려 받아 호수 위를 훨훨 날아다니게 할 것만 같았다.

간판이 근사하게 치장된 카페 11월을 지나자, 또 다른 삼악산 등산로 표지판이 보였다.
서면 파출소 조금 못미처 호숫가에 화장실이 설치된 자그만 한 낚싯배들이 강태공들을
유혹하면서도 런너들에겐 썰렁한 눈빛을 주고 있었다.
덕두원교(德斗遠橋)를 중심으로 길이 디귿 자형으로 굽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뒤 주자들을 볼 수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끝이 보이지 않은 오천여명의 마라톤 행렬이
흡사 승천(昇天)을 앞두고 화려하게 치장한 용이 의암댐을 휘감아 돌고
호숫가를 따라 올라가면서 단풍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길은 거침없는 왕복 2차선으로 곧게 나있고 깎아지는 절벽에서 바위가 떨어질까 봐
안전철망으로 보호대를 설치 해놓은 성어촌 앞에 10km를 알리는 푯말이 보였다.(44:20)
호흡도 좋고 기분도 상쾌했다. 이온음료 두 모금으로 입을 적신 후 심박계를 보았다.
왠걸! 시간만 제대로 작동될 뿐, 심박은 측정되지 않고 있었다.
가슴에는 제대로 부착되어 있는데, 원래 고장난 것을 모르고 빌려 준 것같았다.
갑자기, 괜히 가슴에 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임대 받은 것이라 내 맘대로 버릴 수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땡그랑! 또르륵~~~"
그 때, 내 앞으로 동전이 날아가 길가에 누웠다.
옆에서 달리고 있던 배번호 5218번 주자가 버린 것이다.
"아니! 돈을 다 버리십니까?"
웃으면서
"무거워서요."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보내면서도 씁쓸했다.
무겁다고 동전마저 버리는 판국인데,
고장 나 쓸모 없는 심박계를 차고 뛰어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고장난 심박계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수 쪽을 보자,
붕어섬 1/3인 지점을 달리고 있었다.
붕어섬 너머로 보이는 춘천시내 모습은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붕어섬은 섬 모양 자체가 붕어 형상을 하고 있지만, 섬 안에서 낚시가 허용될 때,
유난히도 붕어가 많이 잡혔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붕어섬이다.
지금은 섬 안에서 낚시가 전면 금지되어 있고,
앞으로 남이섬처럼 개발한다는 말만 오가고 있을 뿐이다.

달리는 길을 따라 산아래 화단에 노오란 국화꽃들이 단정하게 피어 있고
연세대학교 야외실습장 표시판이 잘 정돈 된 돌무지담과 어울려 런너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얼마가지 않아 왼쪽으로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담한 한옥이 맞배지붕을 하고 있었다.
可山 李孝石(1907-1942)의 서정성(抒情性)이 엿보이는 카페처럼 보였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카페 주인과 함께 可山의 작품세계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작가의 작품을 빌러 상호를 정했다면
그 작가에 대해 충분히 해박하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의암레이크라는 카페에 이르기 전부터 이제 주로 상에선 호수를 볼 수가 없었다.(12.5km)
전형적인 농촌 모습이 나타났다.
길가에 할머니들까지 박수를 치면서 런너들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연례적으로 지나는 마라톤 행렬에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 장절(壯絶) 신숭겸(申崇兼)의 묘로 유명한 방동리 입구
현암교를 건너 SK주유소를 지나서 굽은 길에 15km 표지판이 보였다.(1:06:32)
달리면서 이온음료 두 모금만 마시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호흡도 좋고 다리도 가벼워 이 정도 속도로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공언했던 3시간 10분대 보다 빨리 완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풀코스를 처음 뛰는 것치고 아주 당당한 기록을 세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을 보자, 서춘천 농협 건물에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어렸을 때, 태권도 배운다고 야밤에 5리의 시골길을 달려 다녔던 생각이 났다.
주로(走路) 양쪽 논밭에 가을 배추가 많이 보였다. 일부는 수확을 해서 차에 싣고 있었다.
농부들에게 가을은 곡식을 거두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고향, 시골 형님들의 올 농사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수확기에 태풍이 불어닥쳐 큰 피해는 안 보았는지......

길가 오른 쪽에 여양진씨(驪陽陳氏) 사당 월송사(月松祠) 입간판과
"신매리 錦山里 현암리"라고 쓰인 커다란 바위석이 횡대로 나란히 서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동안 평탄하던 길만 달려왔는데, 이제 한번, 힘 써 보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짧은 주법으로 오르자 싱겁게 오르막이 끝나 버렸다.
오른쪽으로 금산초등학교가 호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약 50m를 지나 왼쪽 약간 높은 언덕 위에서
강서중학교가 기다란 마라톤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덕아래 주로(走路)를 통과할 즈음에
MBC헬기가 막 이륙하면서 운동장 흙먼지를 마음대로 길가에 내팽개쳐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숨쉬기마저 어려웠다.
뿌연 흙먼지 때문에 도저히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주위 런너들의 욕설이 들려왔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간간이 참으면서 흙먼지 소굴을 통과하자
17.5km의 푯말이 월송2리 안내판과 이웃하고 있었다.
열렬히 소리를 지르면서 주자들에게 물스펀지를 주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스펀지로 흙먼지가 가득한 얼굴과 목 등을 닦고 앞을 보자,
의암호수를 향해 거대한 학이 활강하려는 모습을 본 뜬, 스텐레스로 된 강원경찰 충혼탑이
조국을 위해 한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린 전몰 경찰의 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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