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을 스쳤던 마라톤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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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10-30 02:46 조회1,0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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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농로(農路)같은 주로(走路)에 갑자기 번듯한 건물들이 보였다.
신매 삼거리에 이른 것이다.
주유소와 파출소 직전에 오른쪽으로 위도를 거처 춘천으로 갈 수 있는 신매대교가 있었다.
'이 길로 내 달려버리면 반칙이지만 내가 일등할 수 있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댐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자
서상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아직 20km도 지나지 않는 곳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이 하프 주자들의 출발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 22.195km도 더 남아있는데, 어떻게 여기가 하프 출발점이 될 수 있었을까?
하프마라톤이라면 21.0975km인데......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안은 채, 달려나가자 서춘천 농협 신매점에 못미처
20km 푯말과 함께 진행요원이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시간 이십팔분 사십이초!"(01:28:42)
5km를 22분10초대로, 거의 일정하게 달리고 있었다.
아직 충분한 힘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온음료 병을 맞잡고 두드리며 응원해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건네주는 쵸코파이는 사양하고 이온음료만 다시 두 모금을 마시면서 달렸다.
얼마가지 않아 스피드 칩을 체크하는 매트리스와 컴퓨터가 보였다.
하프지점이였다.
경쾌한 전자음이 들려왔다.(01:33:14)
이제부터 다시 강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산에산 유황오리집이 길옆에서 군침 나게 하고,(22.5km)
왼편에는 서상리 신라 3층석탑이 호젓하게 자리잡고 영겁(永劫)의 세월을 즐기고 있었다.
저 멀리 앞에 춘천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강 건너편을 보자, 등록선수 선두가 시계차량을 앞세우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은 마라톤만 먹고사는 마라톤 귀신들인가?'
아직, 내가 가야할 춘천댐도 아물거리는데,
저들은 그걸 돌아 벌써 약 31km정도를 달리고 있지 않는가?
'내 평생, 딱 한번만이라도 저토록 잘 달려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비탈진 산을 깎아 외롭게 나 있었다.
외로운 길은
가로수와 벗하며 흐르는 강물에 음률을 맞추면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 건너편에는 용산리 마을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앞에는 산밑에 강을 따라 서상1교(西上1橋)가
지리한 오르막을 대기시켜 놓고 마라톤 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리 입구에 도달하자 카메라맨들이 런너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온음료를 건네주었다.
가볍게 두 모금만 마시고 경쾌한 발놀림을 하자, 25km 표지판이 가깝게 다가왔다.(01:51:20)
거의 일직선으로 난 다리가 지루한 오르막으로 이어져 나를 지치게 했다.
이제까지 선행 주자들을 계속해서 추월해 왔는데,
다리 위에선 서로 발 맞추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필요 없이 오르막 길에서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그린넷마 로고를 셔츠 등뒤에 인쇄한 런너 2명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나를 추월해 갔다.
순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린넷마의 이병형님과 조성오님이 떠올랐다.
올 7월 서울하프마라톤 주로(走路)에서 인사를 나눈 후,
서로 이 메일만 주고받을 뿐, 그 동안 만난 적이 없었다.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각자 정확한 인상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속도를 내어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혹 실수할까 봐 망설여졌다.
오르막길을 가볍게 달려가는 뒷모습이 마라톤에 달관된 고수처럼 보였다.
지루한 오르막이 끝날 즈음에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전력생산을 위해 물을 방류할 예정이니
강가에 있는 사람들은 빨리 높은 곳으로 피신하라고 했다.
북한강 상류인 모진강을 가로막아 1965년에 완공된 춘천댐에 도달한 것이다.
춘천댐은 의암댐과 같이 카플란(Kaplan)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발전소이다.
댐길이가 453m로 총저수량에선 의암댐보다 2배에 가깝지만
유효저수량에선 의암댐에 비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춘천댐 2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나가자 차들이 런너들이 뛰는 방향으로 씽씽 지나갔다.
길 가장자리로 조심스럽게 달리면서 춘천호를 바라보자,
검푸른 호반위로 민물고기 횟집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향어회가 생각났다.
시원스런 내리막길이였다.
저절로 속도가 붙었다.
화천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자
관광버스 기사와 진행요원이 차량통제 문제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내리막길은 용산2리 산수가든까지 이어졌다.(27.5km)
물스펀지를 받아 얼굴과 목 그리고 양쪽 다리까지 문질렀다.
피로감이 오기 시작했으나 달릴만한 여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내려왔던 것만큼 다시 오르막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탈진 산을 깎아 만들어 경사가 조금 심한 편이였다.
자세를 앞쪽으로 향하면서 5m 전방만 보면서 숏피치로 달려 올라갔다.
함께 뛰고 있는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걷고있는 런너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춘천 8km라는 거리 표지판이 보였다.
아직 30km도 채 달리지 못했는데 춘천 8km라니, 다 와 간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조금 지나자
과적차량 검문소 1km 라는 안내 표지판이 오르막이 끝나는 부분에 걸려 있었다.
지리한 오르막이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급수대 자원봉사자들이
이온음료 컵을 주자들에게 내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많은 주자들이 이온음료와 바나나를 먹으면서 쉬고 있었다.
별로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이온음료만 두 모금 마시고 달리자
이 지점이 30km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02:13:23)
강 건너편을 보자 이제 하프지점을 빠져나온 주자들부터
형형색색으로 꼬리를 무는 마라톤 행렬이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용줄기가 춘천댐을 휘감아 돌아
춘천시내을 향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라톤은 30km 이후라고 했는데......
바나나를 조금 먹고 뛰는 건데 내가 잘못한 것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되돌아가서 바나나를 먹을 수 없는 문제이고,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어디에서 바나나를 주면, 그 때 가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30km이후, 어디에서 바나나를 줄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괜히 허기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가에 가게를 달리면서 기웃거려 보았다.
출발 전에 면장갑속에다 만원 짜리 한 장을 비상금으로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허기로 탈진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은근히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다행히 과적차량 검문소에 이르자, 그 곳에서도 바나나를 주고 있었다.
반갑게 하나를 집어들고 먹으면서 서서히 달려나갔다.
길 한쪽에 이동식 화장실이 보였다.
출발 전부터 참아왔던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이제 조금 더 가뿐한 몸으로 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달리면서 먹었던 것이 잘못 되었는지 서서히 복통이 오고 있었다.
뛰면서 오른 손으로 복통부위를 문질러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다 허벅지 뒷근육이 무거워지면서 당기기 시작했다.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많은 주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를 추월해가고 있었다.
속수무책 이였다.
달리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뿐, 누구와 속도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모진강은 보이지 않고 달리는 왼쪽으로 군부대가 연달아 위치하고 있었다.
군부대들이 끝나고 오른 쪽 방재뚝 옆에 "배터매운탕"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배터]는 "배터지는 집"이 아니라, 배를 탈 수 있는 [뱃터]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중도(中島)로 가는 배편이 있나 보다.
중도는 의암호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다.
소양강과 모진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퇴적토가 쌓인 삼각주로 농경에 유리하였고
둘레의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거주하여
곳곳에서 청동기유물과 철기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된 이후 물이 불어 중도는 상중도 와 하중도로 나누어졌으며
지금은 하중도에 각종 위락시설이 완비된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무거워진 다리로 달리는 것이 점점 괴로워 졌다.
내가 추월할 수 있는 주자는 걷고 있는 사람뿐,
달리고 있는 주자는 모두 나를 추월해가고 있었다.
걷고있는 주자를 보면, 갑자기 다리가 더 무거워져 덩달아 걷고 싶었다.
그러나 걷는 것은 마라톤이 아니라고 공언했기 때문에 스스로 걷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누가 날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걷는 것는 자신이 용서할 수 없었다.
수많은 주자들이 추월해가고 있었지만, 상관할 수 있는 힘마저 없었다.
단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No give up No because No past" 라는 문구를 등뒤에 붙인
울산 헤르메스 런너 두 명이 나란히 달리면서 날 추월해가고 있었다.
한없이 그들이 부러웠다.
소양댐으로 가는 길목인 삼거리(32.5km)에서
"네티즌 마라토너 장재신"이라는 실명(實名)을 등에 단,
장재신님이 나를 막 추월해서 스펀지로 다리에 물을 적시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분만은 내가 따라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4차선으로 길이 넓어지자 집중력이 저하되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이제 오른 쪽 어깨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팔을 펴서 빙빙 돌려보고 주물렀으나,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럴까?
바나나를 먹기 전 까진 다른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잘 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먹고, 복통이 시작되면서 허벅지 뒷 근육이 당기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먹지 않았어야 했는가?
아니면 이것이 내 체력의 한계인가?
갑자기 나타난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신매대교로 나눠지는 삼거리에 가까워지자 길은 왕복 8차선으로 바뀌었고
런너들은 차량이 없는 편도 4차선 도로 위를 일렬로 달려가고 있었다.
넒은 길에 대한 부담을 없애기 위해 차선을 따라 5m 전방만 보면서
하얀 차선이 내뒤로 숨는 것을 세면서 달려 보았다.
달리는 왼쪽으로 신매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신매 삼거리에서 반칙으로 신매대교를 가로질러 건넜더라면
지금쯤 춘천공설운동장 잔듸 밭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텐데......'
자꾸 쓸데없는 생각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에도 거침없이 내달리는 주자들이
한없이 나를 추월해갔다.
앞을 보자 과속차량 감지 카메라가 나즈막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지금 나를 추월해가고 있는 저들 모두 속도위반으로 스티커가 분명히 발부될 거야.'
다시 길은 왕복 4차선으로 좁아져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나 아까부터 헐렁거리던 고장난 심박계가 가슴을 쓰리게 하고 있었다.
오른 팔의 마비 현상은 점점 심해지는데 심박계마저 속을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찬 시계는 다행히 제대로 작동되어 각 구간별로 랩타임을 체크할 수 있었다.
심박계를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보려고 했으나, 등쪽에서 걸려 내려갈 생각을 않했다.
한발 두발 뛸 때마다 계속해서 앞가슴 부위에서 헐렁거리고 있었다.
짜증이 나고 귀찮기만 했다.
칼이 있으면 확! 잘라버리고 싶었다.
오른손은 마비현상 때문에 가슴부위까지 올릴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런닝복을 올려 가슴부위를 보자, 벌겋게 허물이 벗어져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울고만 싶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앞을 보았다.
아파트 신축현장이 눈에 들어 왔다.
고려산업개발에서 짓고 있는 현대아파트 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온음료수를 주면서 힘내라고 소리를 질러 주었다.
카메라맨이 외롭게 달리는 나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 없었다.
길옆에 35km 표지판이 보였다.(02:40:50)
길가의 시민들이 마라톤행렬에 박수로 격려 해주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커다란 물통을 가져와 종이컵에 물을 따라서
런너들에게 주면서 박수를 치고 응원하고 있었다.
호반의 도시에서 마라톤 도시로 바꿔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내 일이 아니여도 남을 위해 손수 봉사하시는 정신이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 동안 남을 위해 얼마나 봉사했고, 그들을 위해 어떻게 배려하며 살아 왔던가?
먼저, 자신의 잇속을 생각해서 남에게 봉사하는 척, 배려하는 척 하지나 않았는가?
남들에게 내놓고, 나는 이제까지 사회에 이렇게 봉사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없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라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것이 온갖 어려움을 인내하며 달리는 마라톤 정신일지도 모른다.
주로(走路)는 소양호쪽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격려와 함께 길이 갑자기 왕복 6차선으로 변했다.
달리는 길이 넓어진 만큼 마음에 부담이 왔지만, 멀리 소양2교 아치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러나 직선으로 나있는 도로여서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왼쪽에 봉의산(301m)을 배경으로 소양강 중앙에서 분수대가 힘차게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고래가 등줄기로 물을 품어내는 것 같았다.
시원해 보였다.
바람이 봉의산쪽으로 부는지 솟아오른 물이 안개처럼 그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신매 삼거리에 이른 것이다.
주유소와 파출소 직전에 오른쪽으로 위도를 거처 춘천으로 갈 수 있는 신매대교가 있었다.
'이 길로 내 달려버리면 반칙이지만 내가 일등할 수 있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댐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자
서상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아직 20km도 지나지 않는 곳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이 하프 주자들의 출발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 22.195km도 더 남아있는데, 어떻게 여기가 하프 출발점이 될 수 있었을까?
하프마라톤이라면 21.0975km인데......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안은 채, 달려나가자 서춘천 농협 신매점에 못미처
20km 푯말과 함께 진행요원이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시간 이십팔분 사십이초!"(01:28:42)
5km를 22분10초대로, 거의 일정하게 달리고 있었다.
아직 충분한 힘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온음료 병을 맞잡고 두드리며 응원해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건네주는 쵸코파이는 사양하고 이온음료만 다시 두 모금을 마시면서 달렸다.
얼마가지 않아 스피드 칩을 체크하는 매트리스와 컴퓨터가 보였다.
하프지점이였다.
경쾌한 전자음이 들려왔다.(01:33:14)
이제부터 다시 강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산에산 유황오리집이 길옆에서 군침 나게 하고,(22.5km)
왼편에는 서상리 신라 3층석탑이 호젓하게 자리잡고 영겁(永劫)의 세월을 즐기고 있었다.
저 멀리 앞에 춘천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강 건너편을 보자, 등록선수 선두가 시계차량을 앞세우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은 마라톤만 먹고사는 마라톤 귀신들인가?'
아직, 내가 가야할 춘천댐도 아물거리는데,
저들은 그걸 돌아 벌써 약 31km정도를 달리고 있지 않는가?
'내 평생, 딱 한번만이라도 저토록 잘 달려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비탈진 산을 깎아 외롭게 나 있었다.
외로운 길은
가로수와 벗하며 흐르는 강물에 음률을 맞추면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 건너편에는 용산리 마을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앞에는 산밑에 강을 따라 서상1교(西上1橋)가
지리한 오르막을 대기시켜 놓고 마라톤 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리 입구에 도달하자 카메라맨들이 런너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온음료를 건네주었다.
가볍게 두 모금만 마시고 경쾌한 발놀림을 하자, 25km 표지판이 가깝게 다가왔다.(01:51:20)
거의 일직선으로 난 다리가 지루한 오르막으로 이어져 나를 지치게 했다.
이제까지 선행 주자들을 계속해서 추월해 왔는데,
다리 위에선 서로 발 맞추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필요 없이 오르막 길에서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그린넷마 로고를 셔츠 등뒤에 인쇄한 런너 2명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나를 추월해 갔다.
순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린넷마의 이병형님과 조성오님이 떠올랐다.
올 7월 서울하프마라톤 주로(走路)에서 인사를 나눈 후,
서로 이 메일만 주고받을 뿐, 그 동안 만난 적이 없었다.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각자 정확한 인상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속도를 내어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혹 실수할까 봐 망설여졌다.
오르막길을 가볍게 달려가는 뒷모습이 마라톤에 달관된 고수처럼 보였다.
지루한 오르막이 끝날 즈음에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전력생산을 위해 물을 방류할 예정이니
강가에 있는 사람들은 빨리 높은 곳으로 피신하라고 했다.
북한강 상류인 모진강을 가로막아 1965년에 완공된 춘천댐에 도달한 것이다.
춘천댐은 의암댐과 같이 카플란(Kaplan)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발전소이다.
댐길이가 453m로 총저수량에선 의암댐보다 2배에 가깝지만
유효저수량에선 의암댐에 비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춘천댐 2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나가자 차들이 런너들이 뛰는 방향으로 씽씽 지나갔다.
길 가장자리로 조심스럽게 달리면서 춘천호를 바라보자,
검푸른 호반위로 민물고기 횟집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향어회가 생각났다.
시원스런 내리막길이였다.
저절로 속도가 붙었다.
화천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르자
관광버스 기사와 진행요원이 차량통제 문제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내리막길은 용산2리 산수가든까지 이어졌다.(27.5km)
물스펀지를 받아 얼굴과 목 그리고 양쪽 다리까지 문질렀다.
피로감이 오기 시작했으나 달릴만한 여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내려왔던 것만큼 다시 오르막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탈진 산을 깎아 만들어 경사가 조금 심한 편이였다.
자세를 앞쪽으로 향하면서 5m 전방만 보면서 숏피치로 달려 올라갔다.
함께 뛰고 있는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걷고있는 런너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춘천 8km라는 거리 표지판이 보였다.
아직 30km도 채 달리지 못했는데 춘천 8km라니, 다 와 간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조금 지나자
과적차량 검문소 1km 라는 안내 표지판이 오르막이 끝나는 부분에 걸려 있었다.
지리한 오르막이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급수대 자원봉사자들이
이온음료 컵을 주자들에게 내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많은 주자들이 이온음료와 바나나를 먹으면서 쉬고 있었다.
별로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이온음료만 두 모금 마시고 달리자
이 지점이 30km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02:13:23)
강 건너편을 보자 이제 하프지점을 빠져나온 주자들부터
형형색색으로 꼬리를 무는 마라톤 행렬이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용줄기가 춘천댐을 휘감아 돌아
춘천시내을 향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라톤은 30km 이후라고 했는데......
바나나를 조금 먹고 뛰는 건데 내가 잘못한 것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되돌아가서 바나나를 먹을 수 없는 문제이고,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어디에서 바나나를 주면, 그 때 가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30km이후, 어디에서 바나나를 줄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괜히 허기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가에 가게를 달리면서 기웃거려 보았다.
출발 전에 면장갑속에다 만원 짜리 한 장을 비상금으로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허기로 탈진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은근히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다행히 과적차량 검문소에 이르자, 그 곳에서도 바나나를 주고 있었다.
반갑게 하나를 집어들고 먹으면서 서서히 달려나갔다.
길 한쪽에 이동식 화장실이 보였다.
출발 전부터 참아왔던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이제 조금 더 가뿐한 몸으로 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달리면서 먹었던 것이 잘못 되었는지 서서히 복통이 오고 있었다.
뛰면서 오른 손으로 복통부위를 문질러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다 허벅지 뒷근육이 무거워지면서 당기기 시작했다.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많은 주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를 추월해가고 있었다.
속수무책 이였다.
달리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뿐, 누구와 속도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모진강은 보이지 않고 달리는 왼쪽으로 군부대가 연달아 위치하고 있었다.
군부대들이 끝나고 오른 쪽 방재뚝 옆에 "배터매운탕"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배터]는 "배터지는 집"이 아니라, 배를 탈 수 있는 [뱃터]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중도(中島)로 가는 배편이 있나 보다.
중도는 의암호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다.
소양강과 모진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퇴적토가 쌓인 삼각주로 농경에 유리하였고
둘레의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거주하여
곳곳에서 청동기유물과 철기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된 이후 물이 불어 중도는 상중도 와 하중도로 나누어졌으며
지금은 하중도에 각종 위락시설이 완비된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무거워진 다리로 달리는 것이 점점 괴로워 졌다.
내가 추월할 수 있는 주자는 걷고 있는 사람뿐,
달리고 있는 주자는 모두 나를 추월해가고 있었다.
걷고있는 주자를 보면, 갑자기 다리가 더 무거워져 덩달아 걷고 싶었다.
그러나 걷는 것은 마라톤이 아니라고 공언했기 때문에 스스로 걷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누가 날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걷는 것는 자신이 용서할 수 없었다.
수많은 주자들이 추월해가고 있었지만, 상관할 수 있는 힘마저 없었다.
단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No give up No because No past" 라는 문구를 등뒤에 붙인
울산 헤르메스 런너 두 명이 나란히 달리면서 날 추월해가고 있었다.
한없이 그들이 부러웠다.
소양댐으로 가는 길목인 삼거리(32.5km)에서
"네티즌 마라토너 장재신"이라는 실명(實名)을 등에 단,
장재신님이 나를 막 추월해서 스펀지로 다리에 물을 적시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분만은 내가 따라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4차선으로 길이 넓어지자 집중력이 저하되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이제 오른 쪽 어깨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팔을 펴서 빙빙 돌려보고 주물렀으나,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럴까?
바나나를 먹기 전 까진 다른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잘 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먹고, 복통이 시작되면서 허벅지 뒷 근육이 당기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먹지 않았어야 했는가?
아니면 이것이 내 체력의 한계인가?
갑자기 나타난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신매대교로 나눠지는 삼거리에 가까워지자 길은 왕복 8차선으로 바뀌었고
런너들은 차량이 없는 편도 4차선 도로 위를 일렬로 달려가고 있었다.
넒은 길에 대한 부담을 없애기 위해 차선을 따라 5m 전방만 보면서
하얀 차선이 내뒤로 숨는 것을 세면서 달려 보았다.
달리는 왼쪽으로 신매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신매 삼거리에서 반칙으로 신매대교를 가로질러 건넜더라면
지금쯤 춘천공설운동장 잔듸 밭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텐데......'
자꾸 쓸데없는 생각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에도 거침없이 내달리는 주자들이
한없이 나를 추월해갔다.
앞을 보자 과속차량 감지 카메라가 나즈막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지금 나를 추월해가고 있는 저들 모두 속도위반으로 스티커가 분명히 발부될 거야.'
다시 길은 왕복 4차선으로 좁아져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나 아까부터 헐렁거리던 고장난 심박계가 가슴을 쓰리게 하고 있었다.
오른 팔의 마비 현상은 점점 심해지는데 심박계마저 속을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찬 시계는 다행히 제대로 작동되어 각 구간별로 랩타임을 체크할 수 있었다.
심박계를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보려고 했으나, 등쪽에서 걸려 내려갈 생각을 않했다.
한발 두발 뛸 때마다 계속해서 앞가슴 부위에서 헐렁거리고 있었다.
짜증이 나고 귀찮기만 했다.
칼이 있으면 확! 잘라버리고 싶었다.
오른손은 마비현상 때문에 가슴부위까지 올릴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런닝복을 올려 가슴부위를 보자, 벌겋게 허물이 벗어져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울고만 싶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앞을 보았다.
아파트 신축현장이 눈에 들어 왔다.
고려산업개발에서 짓고 있는 현대아파트 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온음료수를 주면서 힘내라고 소리를 질러 주었다.
카메라맨이 외롭게 달리는 나를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 없었다.
길옆에 35km 표지판이 보였다.(02:40:50)
길가의 시민들이 마라톤행렬에 박수로 격려 해주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커다란 물통을 가져와 종이컵에 물을 따라서
런너들에게 주면서 박수를 치고 응원하고 있었다.
호반의 도시에서 마라톤 도시로 바꿔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내 일이 아니여도 남을 위해 손수 봉사하시는 정신이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 동안 남을 위해 얼마나 봉사했고, 그들을 위해 어떻게 배려하며 살아 왔던가?
먼저, 자신의 잇속을 생각해서 남에게 봉사하는 척, 배려하는 척 하지나 않았는가?
남들에게 내놓고, 나는 이제까지 사회에 이렇게 봉사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없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라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것이 온갖 어려움을 인내하며 달리는 마라톤 정신일지도 모른다.
주로(走路)는 소양호쪽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격려와 함께 길이 갑자기 왕복 6차선으로 변했다.
달리는 길이 넓어진 만큼 마음에 부담이 왔지만, 멀리 소양2교 아치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러나 직선으로 나있는 도로여서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왼쪽에 봉의산(301m)을 배경으로 소양강 중앙에서 분수대가 힘차게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고래가 등줄기로 물을 품어내는 것 같았다.
시원해 보였다.
바람이 봉의산쪽으로 부는지 솟아오른 물이 안개처럼 그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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