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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호반을 스쳤던 마라톤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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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10-30 20:47 조회1,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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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허벅지 뒤쪽이 점점 심하게 당기면서 마비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또한 왼쪽 발목이 땅을 내딛을 때마다 시큰거려 약간씩 절뚝거려 졌다.
만사를 제쳐놓고 물 속에 다리를 담그고 발목과 허벅지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마라톤은 일시 멈춤이나 걷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호흡은 아주 편했다.
오른쪽 팔이 마비되는 것을 제외하곤 상체는 별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엉치뼈부터 하체부위가 심하게 과부화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소양2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들자
한가한 중도가 의암호를 유람하고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중도로 가는 뱃터가 있는 곳에서 물스펀지를 나눠주고 있었다.(37.5km)
멈춰버리면 도저히 다시 뛸 수 없을 것 같기에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스펀지를 받아들고 얼굴보다 다리에 중점적으로 물을 적셔주었다.
계속해서 많은 주자들이 나를 추월해갔다.
내가 추월할 수 있는 런너는 여전히, 뛰지 못하고 걷고 있는 사람들뿐 이였다.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펄펄 힘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은 무얼 먹었길레 막판까지 저리도 잘 달릴까?

춘천마라톤을 앞두고 올림픽 공원에서 44.1km LSD를 할 때,
허기로 인해 하늘이 뱅뱅 도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풀코스를 뛰기 전에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을 남겨두고 3일 동안 육류만 매끼니마다 먹으닌까,
집사람이
"마라톤 하면 돈 안 든다더니 고깃값이 마라톤을 잡아먹겠네!"
그러자, 옆에 있던 큰 딸 하린이가
"맞어! 아껴야 잘 살지! 아빠!"
하면서 지네 엄마 말에 맞장구를 쳤다.
"좋잖아! 날마다 불고기 먹고......"
6살난 하윤이가 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3일 동안은 고기를 먹지 말고 탄수화물 종류만 먹어야 한다기에
맨밥위주로 식단을 맞추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은행나무 축제를 한다고
나더러 시간을 내어 통돼지 바베큐를 책임지라고 했다.
이틀 동안 통돼지 바베큐를 팔면서, 그 좋은 바베큐에 소주 한 잔 못하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마라톤을 원없이 탓해야만 했다.

뱃터를 지나 널따란 길이 달리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굽어져 있었다.
마비되어오는 다리의 통증을 잊으려고 흰 차선 갯수를 계속 세면서 달리고 있는데
3시간 30분 짜리 페이스메이커가 대여섯명과 어울려 나를 추월해갔다.
순간, 허탈했다.
어떻게든 3시간 10분대에 결승선을 통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30분대 주자들에게 추월 당하고 있으니 자신이 한심스러울 수밖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도로가 호수 쪽이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선 심박측정계 마찰로 인해 이제 피가 나고 있었다.
마비된 것같은 오른 팔을 연신 왼손으로 주물러서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들어올릴 수는 있었다.
두 손으로 천천히 가슴부위의 심박계를 내려 허리부근에다 놓았다.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피는 가슴에서 흐르고 있었다.
런닝복이 빨간 색이 섞여 있어서 밖으로 표시는 잘 나지 않았다.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쪽에서 군악대가 마라톤 행렬을 위해 연주를 하고 있었다.
30분대 페이스 메이커를 따르는 런너들은 손을 흔들면서 답례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손을 흔들만한 힘이 없었다.
하지만 30분대에라도 골인하려면 저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도를 따를 만큼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만 달리기로 했다.
길은 넓은데다가 끝이 아물한 일직선 이여서 앞을 보면 금방 질려 버렸지만
멀리 청와아파트가 보였다.
그래, 저기까지만 달려서 가자, 걸어도 그 이후에나 걷자!
왼쪽 발목이 시큰거려 절뚝거리고,
종아리 와 허벅지 근육은 점점 더 마비 증상이 심해지고
양쪽 엉치뼈 부근의 통증은 망치로 몇 번씩 두들겨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타협하기로 했다.
'달려서 완주한들 누가 알아서 상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몸 망가지면 나만 손해일 뿐......'
'그렇다고 풀코스 마라톤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다음에 더 멋지게 더 좋은 기록으로 달려서 완주하면 된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저기까지만 가면 걷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전방 5m 백색 차선에 맞춘 시선을 들어 앞을 보자, 또다시 질려 버렸다.
'저기서 걷는 들, 여기부터 걷는 들 무슨 차이람?'
'그래 여기서부터 걷자, 걸어!'
'안돼! 걸으면 안돼, 저기까지는 달려야 돼'
'방금, 자신하고 약속했잖아?'
'그래, 저기까지만 달리자!'
수없이 자신과 대화로 싸우면서, 이제까지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위해
훈련했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영상이 되어 스쳐지나 갔다.

2000년 3월 19일 동아마라톤 하프코스를 뛰는 것으로 마라톤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마라톤 사이트에 들어가서
중요한 정보를 얻으면서 SUB-3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평생에 3번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완주한다는 목표인 줄 알았다.
그러다 그 것이 3시간 이내에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의미로 알았을 땐,
난,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마라톤 선수들이 2시간 10분대를 전후로 해서 풀코스를 뛰기 때문에
내가 뛰면 적어도 2시간 40분대에는 완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것은 황영조 선수가 96년 동아마라톤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도
2시간 40분대에 완주하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평소에 갖게 되었다.
지난 3월, 동아마라톤 하프코스를 뛸 때에는 맨 뒤에 서서 출발하는 바람에
초반에 제속도로 거의 달려보지도 못하다, 신설동을 넘어서야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었기에 동아마라톤 하프기록(1:38:45)은 스스로 무시하고 있었다.
두 번째 하프마라톤 도전이 분당탄천검푸대회였다.
기록이 1:28:39초이여서 이런 상태로 훈련만 열심히 하면
2시간 40분대는 어려워도 3시간이내에 풀코스를 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풀코스 목표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맞추기로 했다.
그러나 달리면 달릴수록 마라톤이 만만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뛰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 따랐지만, 완주의 기쁨 때문에 각종 대회에 나가
이제까지 하프코스만 13회 이상을 달려 보았다.
그래서 하프코스 마라톤은 어떻게 공략해야 한다는 것을 나름대로 터득하게 되었다.
하프마라톤대회를 앞두고 훈련을 못했어도 요령껏 뛰면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무난히 완주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회 전날 늘어지게 술먹고
다음 날 아침, 머리가 아픈 상태에서도 대회에 나가 달리기도 했었다.
잦은 하프마라톤대회 참가는
일종의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겨냥한 훈련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풀코스를 뛸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무시하고 오직 하프만 고집하고 달렸다.
그러나 평상시 훈련에는 술 먹어서 쉬고, 비가 와서 못 뛰고, 몸이 안 좋아서......
갖가지 핑계로 일주일에 두세 번 연습하면 다행 이였다.
춘천대회를 앞두고도 약 15일전까지 새벽에 수영만 하고 빈둥빈둥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다급해진 마음에 올림픽공원에 가서 44.1km를 한번 달리고 나서
춘천마라톤 풀코스 준비는 끝났다고 선언해버렸다.
그 결과가 처참하게 30km 이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
올림픽공원에서 44.1km LSD를 할 때에도 팔과 다리에 지금과 똑같은 마비증상이 있었다.
그 때는 식이요법도 안하고 배가 고파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식이요법을 잘하고 아침밥만 먹고 뛴다면,
그 동안 하프코스를 많이 달려 보았기에, 풀코스도 쉽게 완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오만하고 안이한 생각이 후반레이스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청와아파트가 눈앞에 다가왔다.
걷고싶은 생각과 수없이 싸우면서 달려온 것이다.
초반에는 급수대가 필요 없이 자주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친 상태에서 목이 마르는 데, 급수대는 요원하기만 했다.
물주는 데는 어디에나 있는지, 앞이 아물아물 거렸다.
청와아파트 조금 못 미쳐서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종합운동장" 직진하라고 되어 있었다.
번쩍! 눈이 떠졌다!
내가 골인할 "종합운동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았다.
청와아파트를 지나서 걷겠다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마비되어 오는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달리리라!
그래서 나의 첫 풀코스 도전을 달려서 완주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리라!

주로(走路)는 이제 退溪 李滉의 짚여물이 고기로 변했다는 전설을 가진 공지천(孔之川)!
그 옆으로 접어들었다.
종합운동장 직진하라는 또다른 도로표지판이 선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얼마가지 않으면 운동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숨어 있던 힘이 새로 나기 시작했다.
사거리 조금 못미처 도로 중앙에서
아주머니들이 스텐레스 물통을 가져와, 주자들에게 물을 따라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사막의 오아시스라 했던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컵을 받아들면서 몇 번이고 반복하고 싶었다.
도로 왼쪽에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도로 표시판대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경찰이 직진을 못하게 하고 왼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시 힘이 퍽 빠져 버렸다.
직진하면 곧바로 종합운동장이 나오는데, 도대체 왜 돌아가라는 것인가?
교차로에 많은 차들이 마라톤 행렬 때문에 밀려 있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있는 자세로 달려가고 싶었다.
공중전화 부스를 지나 마지막 급수대가 보였다.
철교 밑으로 향하려는데 교각에 40km 지점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이온음료 한 컵을 달리면서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앞으로 남은 거리 2.195km!
하프마라톤이라면 최고 속도로 스퍼트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지금은 몸이 따라 주지 않고 있다.
이제까지 달렸던 속도를 유지하며 지친 몸으로 홀로 어렵게 달려가고 있는데
"미남 아저씨 화이팅!"
오잉! 어떤 여자 목소리였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만 춘천에서 살고 있네!
힘이 불끈 솟기 시작했다.
괴롭히고 있던 모든 마비증상도 일순에 사라진 것 같았다.
내 힘 모두를 이 순간에 소비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100m 뛰는 속도로 달려 버렸다.
그러나 사거리에 이르자, 다시 더 기진맥진해져서 달릴 수가 없었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차들도 아물거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쇳덩이를 차고있는 것처럼 더욱 무겁게 느껴져 한발 두발 내딛고 있는 내 모습이
사형장에 이끌려 가는 사형수처럼 무겁고 처량하기만 했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뛰고 있는 자신도 구분하기 힘들어 졌다.
차라리 편하게 걷고 싶었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달려야 한다! 달려야 한다! 기어이 달려서 완주해야 한다."
'그래! 달려보자! 그래, 끝까지 달려보는 것이다. 이 몸이 으스러질지라도......'
아침에 춘천역에서 종합운동장으로 버스로 갈 때,
미리 보아 두었던 마샬웨딩프라쟈 앞에 있던 41km 표시 깃발이 보고 싶었다.
그 깃발만 보인다면 내가 달려서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깃발이 내 시야에 빨리 나타나야 할텐데......'
마비되는 다리를 이끌고 깃발이 있을 쪽만 보고 계속 달려나갔다.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마비되어 가는 다리 때문에 순간 순간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이 정도이면 있을 텐데......'
'깃발을 누가 치워 버렸을까?'
한없이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주로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있는 사이로 하늘색 깃발이 언뜻 언뜻
저기서 나부끼고 있었다.
다 왔다는 해방감과 성취감이 가슴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내가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서 완주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화하기 위해 촬영하는 신문기자로 보였다.
주로 양쪽, 수많은 카메라들 사이로 달려가는 내 모습은
올림픽에서 선두로 골인점을 향하고 있는 자신으로 환영(幻影)되어 왔다.
귓가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울리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산들바람에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 대지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있을 때
마라톤은
내게 소리 없이 다가왔다.
숲속 뻐꾸기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무더운 햇살이 이글거리다가
갑자기 천둥번개와 비바람 몰려와서
나를 지치게 할 때에도
마라톤은 나와 함께 있었다.
곡식을 수확하는 계절,
아름다운 호반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사냥해 가는
내 발길이
땀으로 무겁게 적셔지고 있을 때,
결승점이 저 앞에서
아련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붉은 운동장 트랙에 마라톤을 향한 내 마지막 열정을 다 쏟아내고 골인점을 보자,
배번호 165번을 촬영하기에 분주한 Imedia 카메라맨의 눈은 독수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아내가 원석이를 업은 채, 하린이와 하윤이의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달려오는 나를 향해서 한없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쾌감에서 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애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갔다.(03:24:32)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환상(幻想)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움집해 있는 운동장에는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까지 홀로 달려왔던 것처럼......
운동장 잔디밭에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듯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누구하나 눈빛을 주지 않았다.
마비되어 오는 몸을 이끌고 끝까지 달렸는데, 알아주는 사람은 나 혼자일 뿐......

바람이 황량하게 운동장 어귀를 때리자, 흩어져 있던 운동장 쓰레기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내 마라톤의 열정도 그들을 따라 말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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