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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춘천 소감문 ] 악몽을 떨치고, 환상적인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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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경택 작성일00-10-31 23:22 조회1,124회 댓글0건

본문

[ 참가기 ] 악몽을 떨치고, 환상적인 현실로!

학교 운동장 2~3바퀴씩 달리기를 시작한지 410 여일 만에
큰 결실을 거둔데 대해서 기쁘게 생각 합니다.
풀코스 완주에 기록 03:04:45.49, 순위 115위!
달리기를 한지 14개월만에 좋은 결실이 있었던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인터넷 사이트 마라톤 교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참가한 춘천대회에 출사표를 쓰고 뛰었는데,
이 대회는 제게 많은 마라톤 추억을 갖게 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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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사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임하는 제 마음을 올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주시 청마회 오경택입니다.

저에게 출사표는 너무나 거창하지만, 대회 참가전
제 마음의 자세를 재주없는 글로 써봅니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412일, 첫 대회에 출전한지 11개월,
첫 풀코스를 뛴지 9개월된 제가 드디어 처음으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달릴때 제 스승이었던 조선일보 마라톤
사이트 "마라톤교실"에 기고하신 모든 분, 청마회 선배님들,
서울마라톤클럽의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경택 출사표]

1. 대회 주최측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겠습니다.
2. 달리기를 사랑하고 함께 달리는 모든 분과 우정을
나누며, 추월하는 분께는 응원을 추월 당하는 분께는
송구한 마음을 갖고 함께 달리겠습니다.
3. 제가 현재까지 달릴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과
교통 통제로 불편하신 춘천 시민들,자원봉사자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달리겠습니다.
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습한 만큼만 뛸수 있기를
희망하며, 완주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5. 초보자의 자세와 마음으로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42.195Km를 완주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5Km,10Km,풀코스에 참가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한 완주와 기억에 남을 멋진 마라톤 추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0년 10월 20일
청마회 오경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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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악몽속의 준비

대회 2일 전날 밤에 "출사표"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만남의광장에
글을 올리고, 잠을 잤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달리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악몽 이었습니다.
혹시나 나쁜일이 발생될까해서 대회가 끝날때 까지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저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꿈의 내용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꿈 내용(10/20일 밤)
: 춘천대회가 시작 되어 준비를 하려는데 마라톤화를
준비 못하고 슬리퍼를 신고 있지 않은가? 대회는 시작되어
할수없이 뛰기 시작했지만, 달릴수가 없어서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바닥이 너무나 아파서
뛸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신발가게에 들어가 마라톤화나
일반 운동화를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몇몇 가게를 들러봐도 운동화류는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가벼운 등산화를 구입하여 달리기를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보이지 않고 방향을 몰라 헤매다가
잠을 깨고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15분경 이었습니다.

대회 전 날인 다음날(10/21일) 두 가지 일이 발생 했습니다.
주차해 놓았던 제 차에 1m 이상의 긁힘이 발생했습니다.
나름대로 식이요법으로 밤에 마지막 음식을 섭취하고 양치질을 하는데,
치아 보철물이 빠지고 치아는 시큰 했습니다.음식물을 제대로 먹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치과에 갈 시간은 없고 대회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아! 악몽은 현실로 나타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이 온 몸에 느껴졌습니다.

꿈 내용은 말 못하고 악몽을 꾸었다고 하니 아내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며
충고를 해줬습니다. 준비물을 마라톤 일기에 적으며 준비 했습니다.
준비가 끝나고 10Km 단위의 주로 계획을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달리기1년
밖에 안되는 저에게 다소 무리라고 생각 하면서도 계획을 세웠습니다.
42분/42분/45분/42분/8분 (10K/20K/30K/40K/42.195Km) 총 예상
시간을 179분이라는 sub-3에 목표를 두고 뛰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주로에서 힘이들면 욕심내지 않고, 3시간 15분이내 완주를 목표로
수정 하기로 했습니다.

선택이 하나 남았습니다. 다름 아닌 마라톤화 선택이었습니다.
10개월여 동안 신었던 마라톤화(쿠션이 좋고 통풍성이 좋으나 뒤 굽이
높아서 발톱에 무리가가고 바닥이 미끄러워 물집이 생길 가능성이
높음)와 1회만 사용한 마라톤화(쿠션은 없으나, 기록을 내기에는
좋을것으로 생각됨)중에서 어느것을 착용 할것인가 였습니다.
30분 정도 생각하다가 기존에 사용하던 마라톤화는 바닥이 마모도
심하고, 하프대회에서 한 번밖에 신어보지 못했지만 새 마라톤화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새 마라톤화로 결정 했습니다.

항상 대회때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춘천 대회에서도 연습한 만큼
욕심내지 않고 뛰기로 하고 저녁 10시경에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내가 해준 찰밥을 먹고 모임 장소인 회사 정문으로
가서 현마회 회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버스에 탑승 했습니다.
마라톤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 한테도 전파해야 겠다고 회사내에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버스를 임대하여 함께 참가하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 했습니다.

- 현마회: "현대전자 마라톤 동호회(청주 사업장)"는 2000년 5월16일
회사내 인포멀 그룹으로 창립 되었고, 회원은 30여명 정도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만나서 정기 연습을 하고 있으며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 22명이 참가했고, 두 분이 첫 풀코스에 참가하여 완주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Ⅱ. 이동 (청주 → 춘천)

서청주 T/G에서 청마회 선배 회원님들과 6시 20분에 만났습니다.
버스 3대로 춘천을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1년 동안 기다렸던 큰 대회에
참가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마음은 주로에 가 있었습니다.
영동 고속도로 문막 휴게소 못가서 갑자기 정체 될때는 혹시
많이 지체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바로 빠져 나갈수
있었습니다. 3중 충돌의 교통사고 때문 이었습니다. 많은 부상이
없기를 바라면서 다시 휴식을 취해 보려고 눈을 감았는데, 어렸을때
소풍 갈때처럼 마음이 들떠 있어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춘천에 10시 20분 넘어서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은 춘천 공설운동장에
모여 있었습니다. 선수들과 가족들로 운동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Ⅲ. 환상적인 현실

가볍게 몸을 풀고 회원님들과 서로 격려를 하고 출발선에 섰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출발 직전이 저에게는 가장 즐겁습니다.
출발전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주위에 있는 가족들을 바라 보면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는 기분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출발 총성 소리와함께 시계의 타이머를 동작 시켰습니다. 워낙,
선수가 많아서 운동장을 빠져 나갈때는 "질서!, 질서!, ..."를 연호하며
나갔습니다. 서로 서로가 넘어지지 않고 질서를 위해 자발적으로
연호 할때는 우리 선수들의 높은 질서 의식을 생각 할수가 있었습니다.
거의 걷다시피하여 운동장을 나왔는데, 1Km까지는 주위에 선수가
많아서 뛰는 속도를 줄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멈춰져 있는게 아닌가?
페이스 메이커 역활을 해야할 시계가 멈춰 있으니, 순간 당황 했습니다.
운동장을 빠져 나올때 아마 "stop"스위치가 눌린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앞에서 청마회 선배님이신 하소언 선생님이 뛰고 계셔서 시간을
여쭤보니 5분이 경과했다고 했습니다. 즉시 스톱워치를 동작 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 5분"의 산수가 시작 되었습니다.

첫 언덕이 나오고 이후는 내리막이 이어졌습니다. 첫 5Km에서 시계를
보니 15분10초 정도 되었습니다. 이때 첫 산수를 했습니다.
"15분10초 → 20분 10초"
계획보다 조금은 빠르다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를 조금 늦췄습니다.
항상, 대회때마다 느끼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으로 감사해
하며 이온음료수를 마셨습니다.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매 급수대에서
물보다는 이온음료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계획보다 조금은 빠르다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를 조금씩 늦췄습니다. 의암교로 진입 할때는 등산
오셨던 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의 응원을 받으며 기분좋게 다리를 건넜습니다.

10Km 이후 계속되는 내리막길과 몸 상태가 좋아서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10Km에서 시계를 보니 34분 40여초로 40분 이내에 10Km를 통과
했습니다. 이 정도면 빠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주위에는 많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조선일보 춘천 대회는 전국의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참가 한다는 것을 실감 했습니다. 모두 마라톤화를 신고 마라톤 복을 입은
준비된 선수들 이었습니다. 15Km까지는 평지에 가까웠고 주변의 경치는
좋았습니다. 급수대가 나와서 이온음료가 새겨진 컵을 들어 마셨는데,
이온음료가 아니고 물이었습니다. 산에는 단풍이 멋있어서 달리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 하였습니다. 신문기사에 보도된 어느 분의 말씀대로,
달리기를 멈추고 감상하고 싶을 정도로 멋이 있었습니다.
점점 의암호에서 멀어지더니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이 나왔습니다.
동구밖까지 나와서 차가운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응원하는 어린 여자
아이들을 보니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함께 온 세 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라톤을 취미로 삼은 아빠 때문에 추위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상념이 머릿 속에 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20Km 부터는 급수대에서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이 따르는 용기가
이온음료인지 확인 하면서 해당 테이블의 컵을 들고 마셨습니다.
하프지점의 매트에 도달하여 스피드칩에 이상이 없음을 알수있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시계를 보니 1시간22분30여초 → 1시간27분30여초로
평소 하프대회의 최고 기록에 가까운 기록 이었습니다. 의외로 몸 상태는
좋아서, 잘하면 오늘 sub-3 하겠다고 처음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를 잘 운영해서 한 번 해보자 생각을 하니, 온몸에 긴장감의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후반 25Km 까지는 같은 페이스로 뛰고,
25Km~32.5Km 구간에서는 페이스를 줄여서 35Km 이후를 대비해야
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고 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을 뛰자니
조금은 힘이 들기 시작하고 몸이 무겁게 느껴 졌습니다.
1Km정도를 뛰는데 수 많은 사람이 추월해 갔습니다. 조금은
부러웠지만 그 분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했습니다. 오늘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응원을 하고 있는데, 점점 고개는
바닥을 쳐다보면서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이때, 또다시
추월하는 3명의 한 그룹이 있었습니다. 자세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제 더이상 쳐져서는 안되겠다 마음을 먹고 그 분들 뒤에 붙어서
뛰었습니다. 조금은 회복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람에 대한
저항도 줄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계속 그 분들 뒤에서만 뛸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나가서
뛰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뛰니 그렇게 좋을수 없었습니다.
힘도 훨씬 덜 들고 경쾌하게 뛸수가 있었습니다. 25Km에서 시계를 보니
거의 동일 페이스 였습니다. 왼편의 산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우측으로는 의암호가 있어서 경치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의암호 건너편에는 많은 선수들이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부러웠지만
그 분들이 흘린 땀을 생각하니 한편 존경스럽게 느껴 졌습니다.
처음으로 뛰는 춘천 의암호 코스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코스 였습니다.

그런데, 25Km 정도 부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 했습니다. 왼쪽 발가락과
발바닥 앞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도 똑같은 부위에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왼쪽 발이 더 심했습니다. 그래서, 무릎 이하에 힘을 더 빼고
최대한 가볍게 발을 옮기는데도 통증은 계속 되었습니다. 드디어 춘천댐을 건너고
있는데, 방송카메라를 비롯해 촬영하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해서 처음 몇번 대회에서는 카메를 의식하고 손도 들어
보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
저에게는 가장 멋진 포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춘천댐을 거의 건너려고 하니 오르막 길에 청마회 총무님이 보였습니다.
후반을 고려하여 페이스 조절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25Km 이후는 페이스를 줄이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총무님은 뒤로 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동호회를 위해 힘쓰시는 총무님께
오늘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 했는데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함께 뛰려고 하는데, 함께 가는것이 부담되는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으로 추월을 하였습니다.

30Km 부터는 발의 통증이 마비 되는것처럼 심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마라톤화의 쿠션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 해보았습니다. 쿠션이 좋은 마라톤화가 생각이 났지만 이제는
어쩔수 없는 상황, 최선을 다하자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틀전의
악몽이 생각 났지만, 모든 것이 준비 부족인 제 탓이지 절대로
꿈과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몽의 징크스를 극복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35Km 급수대 앞 500m에서 준비해간 쵸코렛을 꺼내 먹었습니다.
35Km 급수대에서 두 컵이나 이온 음료수를 마셨습니다. 시간을 보니 같은
페이스로 가면 sub-3가 가능해 보였습니다. 다시 속으로 힘/힘/힘을
외치고 달렸습니다.

소양교(나중에 이름을 알게됨)를 건너면서 보니 좌측 강에서는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다리를 건너니 시내가 시작 되었습니다.
수 많은 깃발중에 1Km 간격의 표지 깃발이 있었습니다. 계속 뛰면서
우측 인도에 있는 수많은 깃발을 보았습니다. 숨은 그림 찾듯이 1Km 간격의
깃발을 고대 하면서 뛰었습니다. 39Km 까지도 sub-3는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발가락과 발바닥의 통증이 심해서 뛰는 것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호흡이나 체력은 괜찮았는데, 발 문제로 멈추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수 없었습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작년 8월 이후 연습때나
대회에서 절대 걷지 말자는 소신을 꺽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첫 풀코스
대회에서 오버 페이스로 무릎이 아파서 100m 정도 걸은 과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양호하다 생각 하면서 천천히 뛰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월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비웠습니다. "sub-3는 다음으로
하고, 지금은 최선을 다해 걷지말고 마무리를 잘하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편안 해지면서 통증이 훨씬 덜한것 같았습니다.

인도에는 춘천 시민들이 웃으면서 열심히 응원을 해 주셨습니다.
교통 통제로 불편한 점이 많을텐데도, 마라톤의 도시 춘천 시민으로서
보내주는 따뜻한 정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역시 춘천은 마라톤 역사가
있는 도시라는 것을 실감 했습니다. 특히, 운동장 진입로 전에 힘들어하는
저에게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 왔습니다. 힘 내세요!"라고 할때, 온 몸에
흥분의 전율이 느껴지며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할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우측으로 돌아서니 운동장이 보였습니다. 너무도 기뻤습니다.
좋은 기록으로 완주 할수 있다는 사실과 조금만 더 가면 오랫동안 저를
기다렸던 어머니,아내,세 딸을 웃으며 만날수 있다는 사실로 힘들었던
모든것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운동장 문을 들어서니, 마치
엘리트 선수인양 기분이 좋았습니다. 확 트인 트랙을 들어서니 현마회
회장님이 기뻐하며 통제선 밖에서 함께 앞장서서 뛰어 주셨습니다.
발바닥과 발가락 통증 때문에 반사적인 페이스로 완주 하려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마지막 스퍼터를 했습니다. 골인지점에 있는 시계를 보니 3시간
4분대 였습니다. 기분좋게 메트를 밟으니 언제나 들어도 기분좋은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줬습니다. 양 손을 들고 골인하니 어머니/아내/아이들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 주었습니다. 모두 따뜻한 포옹을 했습니다.

물병을 들고 마시며 있자니 어머니가 다가와 웃으시며 껴안고, 눈물을
흘리 셨습니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따뜻한 모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이 " 내 아들도 어렸을때부터 달리기를
시작 했으면, 황영조선수 같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고 시합에서는 기진맥진하며
저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냅니다."라고 웃으며 말씀 드렸습니다.
( 달리기 하기전 맥박수 70 이던것이 이제는 최저 47/ 평균 53의 맥박수로
저도 어렸을때 마라톤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지만
아마츄어 마라톤맨을 더욱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라톤을
통해 삶을 배울수 있고 즐길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께서는 지난 8월 이전 까지만 해도 힘든 달리기를 왜 하냐고
말리 셨는데,이제는 대회에서 웃으며 골인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저보다 마라톤 대회를 더 즐거워 하시게
되었습니다. 대회 때마다 축제 분위기를 즐기셨고, 아들이 들어오는
모습에 누구보다 기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번 춘천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다음 대회가 언제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Ⅳ. 후기

1999년 말에 달리기를 시작할때 선배님들의 대회참가 소감문을
몇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눈이오나 비가와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2000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결과로
풀코스 완주를 했습니다. 악몽과 같은 징크스를 생각하는 나약함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현실로 완주한데 대해서 더욱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습한 만큼만 뛸수 있기를 .."의 출사표대로
좋은 결과에 만족합니다. 노력한 만큼만 결실이 있다는 사실(연습한
만큼만 완주와 성적이 나온다는 사실)과 같은 인생의 많은 교훈을
계속 배우며 자만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하는 달리기를 평생 즐길
생각입니다. 2001년에도 환상적인 의암호를 달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함을 느끼지만 점진적으로 준비하여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 해볼 계획입니다.
마라톤을 사랑하고 마라톤을 즐기시는 모든 분들의 계속된 "건강한
달리기"를 기원하며 부족한 글 끝을 맺겠습니다.


2000년 10월 31일
청주 청마회 오경택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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