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만남의광장

가을날의 달리기 추억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건수 작성일00-10-31 10:31 조회1,138회 댓글0건

본문


월계수와 마라톤

김 건 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추첨으로 들어간 학교는 서울 만리동에 자리잡은 양정 중학교였다. 아는 이는 다 알겠지만 양정은 우리 민족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선수의 모교이다. 양정학교는 산을 깎아서 만든 학교여서 운동장의 높이가 다르다. 1층 운동장과 2층 운동장 사이에는 손기정 선배님의 베를린 올림픽 제패 기념비가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모든 양정인의 표상이었다.
양정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야 할 이가 손기정 선배이다. 물론 그 어른을 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그의 마라톤 정신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책을 통해서 손기정 선배님의 영광스런 역사를 잘 알고있지만, 초등학생 태가 나는 꼬마 중학생에게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지금 당시 선생님들의 말씀 속에서 기억 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새벽마다 남산을 뛰어 올라 갔다고 하는 사실뿐이다. 손 선배님은 지금 얘기로 하면 언덕 훈련을 날마다 하셨던 것이다. 손기정 선배의 그늘에 가리어진 선배님들도 많았다. 1932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6위에 입상한 김은배님과 베를린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남승룡 선배와 1950년 보스톤에서 우승한 함기용, 그리고 1956년 멜보른 올림픽 4위, 1958년 도쿄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이창훈 선배도 양정 출신이다.
이런 마라톤 명문에서 매년 개교 기념일 행사 중의 으뜸은 10km 단축마라톤 대회이다. 전교생이 참석해야하며 예외란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면제된 입시를 치러 좋은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낮 밤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대회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체력장도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등한시되던 시절, 마라톤 대회는 기어이 열리게 된다.
가을 어느날, 구파발에서 삼송리간 왕복 10km대회 전교생이 오렌지 육상복을 입고 출발한다. 서로 장난을 하며 뛰어 가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오합지졸의 달리기였지만 오렌지빛의 흐름은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를 연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500여m까지는 늠름하게 달려나갔다. 100m를 달리는 수준으로, 선두그룹을 유지하며...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다음부터는 숨이 차서 뛸 수가 없었다. 이미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다. 그 대회를 치루기 전에는 많이 뛰어봐야 몇 백m인데 10km를 뛰어야 한다니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 20분 정도 뛰거나 걸었다. 내 앞을 달려나간 동창생 녀석들이 600여명 정도, 전교생이 700명이니 거의 꼴찌이다. 그런데 저 앞에 흙먼지를 내며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 한 무리가 있다. 육상부와 축구부가 서로 1위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네들 중에 2명이 우리반인데 한 친구는 축구부이고 한 녀석은 육상부에서 마라톤을 하는 친구였다. 평소에도 앙숙지간인데 오늘은 선두 각축을 한다니 참으로 진풍경이었다. 우리 꼴찌를 바라보며 뛰는 그들의 모습에는 엄숙함이 서려있다. 그리고 그들의 땀에 젖은 얼굴에는 전혀 아이답지 않은 진지한 전의가 불타고 있었다. 특히 마라톤을 하는 녀석은 내가 학교를 가기 위해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무악재를 넘으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 가파른 고개를 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뭔가는 나와 다르구나 생각했는데, 대회 1위 그룹에서 요즘 TV에서나 볼 수 있는 마라토너의 모습으로 질주를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위엄있는 인상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그 아이는 날마다 학교에서 구파발까지 왕복하고 수업에 참석하였다. 정말로 악바리 같은 친구였다.
처음 달리는 10km는 정말로 힘이 들었다. 특히 언덕을 넘을 때는 아예 걸어 버렸다. 아무튼지 거의 걷다시피 하여 10km를 완주하였다. 나는 너무 진이 빠져서인지 그 이후로는 절대로 달리기 같은 것은 안 하기로 마음먹는다. 700명 중에서 거의 680등 정도 한 것 같다. 달린 시간은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아마 1시간 40분 정도에 마친 것 같다. 어린 중학생들의 마라톤대회는 이렇게 고통 속에서 끝났다.
그런데 그 단축 마라톤 때문에 학교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축구부가 육상부를 이겨 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리반 축구부 친구가 육상부를 따돌리고 우승을 한 것이다. 양정의 마라톤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우리반에서 유일하게 새벽을 달리는 그 친구가 진 것이다. 나도 새벽을 다리는 친구가 우승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회가 끝나고 그렇게 서럽게 훌쩍이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본 순간 나의 눈시울도 적셔지고 있음을 느꼈다. 들리는 말로는 육상부 친구들은 하도 맞아서 걸어서 집에 못 갔고, 일등한 축구부 녀석은 육상부로의 영입이 추진되었으나, 그 친구는 축구를 계속했다. 지금은 이름마저 가물거리는 녀석들의 얼굴이 이 가을에 참 그립다.
양정의 상징색은 오렌지빛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운동복도 오렌지색이다.
그 오렌지색은 가을빛을 닮아 있다. 풍요로움의 절정이고, 원숙함이 드러나 있고, 강렬한 열정을 담고 있는 색채였다. 특히 늦가을의 월계수 단풍의 색조와는 너무 흡사하다.
지금은 학교가 목동으로 이사를 갔지만, 만리동 시절 양정학교 실내 체육관 앞에는 20여m가 넘는월계수가 있었다.
손기정 선배님의 기념비가 마라톤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면, 월계수는 그에 대한 실체였다. 아마 양정 출신이라면 그 오렌지빛 월계수 낙엽을 추억의 책갈피에 간직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졸업할 때 쓴 시가 교지에 실렸는데, 나도 그 시가 실린 쪽에 월계수를 간직한 기억이 새롭다.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선배들의 마라톤 정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불혹의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도 해 본다.
세월이 많이 지난 이 가을에 나는 양정학교의 동창생 녀석들과월계수가 그립다. 지금 내가 그 때로 돌아가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참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런 착각에 빠지게 하는 이 가을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월계수를 찾는 작은 여행을 마련해야겠다.

추신: 넷마님들 안녕하십니까.너무 오랜만에 글을 띄웁니다.이가을 에 문뜩 떠오르는 옛 추억을 몇자 적어봅니다. 직장 생활에 대학원 공부등에 너무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제가 11월 3일 뉴욕으로 떠납니다. 잘 다녀 오겟습니다. 몸 건강 하십시요
추천 2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