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만남의광장

한강에서 구박받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성진 작성일05-01-31 18:27 조회1,024회 댓글0건

본문

겁도 없이 헬스클럽 멤버들까지 꼬드겨서
1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서울마라톤대회와 동아대회 모두
풀코스를 신청해놓고 탱자 탱자 놀다보니 대회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열심히 운동해야겠다는 다짐을
일주일 간격으로 하며 놓쳐버린 것이 몇 주째인지...
‘다음’은 없다. ‘지금’ 해야 한다.
다음은 또 지금이 되어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찾은 반달모임은 근사한 새 터, 새 집에,
다양한 시간대의 멋진 페이스메이커까지!
1시간 30분, 1시간 45분, 2시간...

잠깐 고민스럽다.
지금 컨디션으로 1시간 45분을 따라가긴 벅찰 것 같고,
2시간보다는 좀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고.
1시간 50분이 있으면 참 좋을텐데...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시간대별로 페이스메이커를 만드니
또 간사하게 이런 맘이 드는구나.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항상 운영하시는 분들이 힘드시겠지.
생각만으로도 잠시 죄송하다.

날도 춥고 하니 2시간대의 이장호, 김선화님을 따르기로 하고
땅꼬박사 행애언니, 같은 헬스클럽 멤버인 은영언니와 나란히 출발한다.
1시간 45분대의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가버린 신랑의 뒷모습이
유난히 춥게 눈에 밟힌다.

추위는 금방 사라진다. 상쾌하고 알싸한 강바람.
머릿속까지 씻겨나가는 것 같다.
이 바람에 쓸려 모든 상념도 사라져버렸으면...

몇 번의 구보가 있었던 터라 대오는 금방 정열된다.
앞사람 어깨를 보고 그저 가자니 금방 청담대교.
1킬로 앞당겨 출발을 해서 그런가, 거리가 가까운 듯 느껴진다.
예전 반환점을 앞두고 행애언니와 앞서 뛰니
1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들이 돌아온다.
따르는 주자보다 페이스 메이커가 더 많다.

2시간 진영의 사람들이 부러움 섞인 감탄을 한다.
‘진짜 빠르긴 빠르네!’

뒷사람들한테 잡힐까봐 열심히 달려 예전 반환점을 지났는데,
지금의 반환점이 안나타난다.
청담대교 빨리 보인다고 좋아했더니만 그만큼 반환점이 멀어졌네!
조삼모사(早三暮四)라...

조금 더 달려가니 1시간 45분 대열이 돌아온다. 부럽다.
대열 속의 신랑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

잠시 쉬고 돌아오는데, 바람이 장난 아니다.
15킬로 지점에서 이제부터 힘든 사람을 위해 페이스를 낮추겠다며
이장호님께서 힘이 남은 사람은 먼저 뛰어가라 하신다.
옆에서 별 말 없이 뛰던 은영언니가 쏜살같이 튀어나가고,
곧이어 행애언니까지 쭈욱 앞으로!

어-어- 하다가 엉겁결에 나도 나서긴 했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튀어 나온 몇몇 남자분들이 앞서 가신다.
이제 와서 도로 들어갈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몇 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행애 언니 뒷모습을 보며 뛰는데,
한남대교 앞에서 진재봉님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뛰는 모습이 보인다.
진재봉님은 1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였는데?
벌써 골인을 하고 다시 돌아오셨나? 하긴 썹쓰리 주자이니까...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쪽으로 뛰어오시는 모습.
설마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너무 빨리 뛰시는 분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며 왜 이렇게 천천히 뛰냐고,
빨리 앞사람들 잡으라고 하신다.
싫다고 했다. 싫은 게 아니고 못잡는 거지만.

그랬더니 뒤로 뛰시면서
‘뒤로 뛰는 나보다는 빨리 뛰어야지. 안그래요?’
대답안함.
‘게토레이 먹을래요?’
‘아니요’
‘왜요?’
‘전 원래 달릴 때 잘 안먹어요’
‘그럼 빨리나 뛰든가’
으이그, 서서히 열받는다.

‘김은영씬 잘 뛰네요’ 이젠 비교까지...
‘네, 원래 잘 뛰어요’
‘빨리 가서 잡아야죠.’
‘가서 잡으세요’
‘같이 가서 잡읍시다’
‘전 지금도 힘들어서 못잡아요’

잠시 침묵... 계속 뒤로 뛰면서 웃으시며
‘폼 좋고, 팔 자세도 좋고...’
고수가 폼이 좋다니까 약간 으쓱한 마음.
그 칭찬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슬몃 웃음이 삐질삐질...
‘그런데 왜 빨리 못뛸까?’
아, 머리 위로 김이 솟는다.

그렇게 실갱이 하고 있는데, 뒤에서 이장호님의 날벼락같은 목소리
‘조성진님까지 잡고!’
세상에! 돌아보니 2시간 대열에 남았던 분들이 다 계셨다.
잡혀버렸다. 차라리 튀어가지나 말걸.
나머지 분들은 튀어나간 사람들을 하나씩 잡으며 오셨단다. 챙피, 챙피...
그래도 여러분들 사이에서 뛰니 다시 기운이 난다.
1시간 55분 41초 골인!

힘들어서 숨을 고르며 텐트밖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니,
채성만님께서 나오셔서 나보고 너무 늦게 들어와
카메라 필름을 다 써버려서 사진도 못찍었다고,
1시간 30분에 들어와 기다리느라 밥도 못먹고 배고파 죽겠다고
또 구박을 하신다.

새벽부터 한강에 나와 칼바람 맞으며 죽어라 뛰고,
뛰면서 구박받고, 들어와서 구박받고...반달의 구박데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설움에도 굴하지 않고 떡이며, 국밥이며, 막걸리며,
돼지머리 고기까지 너무나 맛있게 먹고 그 시간을, 그 안의 사람들을 즐겼다.

아무리 구박해도 저는 또 나갑니다. 쭈욱-


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c) 2002 Seoulmarathon club All Rights Reserved. info@seoulmarathon.net
상단으로
M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