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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3 월 그리고 울트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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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5-01-12 22:33 조회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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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3 월 그리고 울트라 마라톤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요새 같은 엄동설한 혹한 중에도 새벽에 뛰시지요? 라는 질문을 저는 가끔 받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은, 저의 사무실에 들리셨다가 일을 보시며 저의
근황을 물으시는 애정 어린 안부 인사이지만, 어떤 때는 그 애정의 도를 넘어서
단순히 혹한을 무릅쓰고 새벽에 뛰는 것 말고 그 이상을 기대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분께서 혼자가 아니라 동행인이 계신데 그 분이 마라톤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
들을 잘 모르시는 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거 봐 ! 아무리 추워도 꼬박 꼬박 새벽에
뛴다니까! 오늘 새벽 영하 11 돈데 그래도 뛰었다 잖어!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니
까! 라고 그 분께 설명하시며 뛰는 사람들, 정말 못 말린다구! 라고 그 분이 더욱
신이 나셔서 마라톤으로 계속 화제를 끌어가십니다. 참 고맙지요.

아마도 제가 오늘 새벽 알몸으로라도 뛰었다면 그 분의 체면을 더 세워 드릴 수 있을
것이지만 유감이게도 저는 그런 용기는 없지요. 그저 뛰기를 좋아하는 보통 평범한
한 풀뿌리 달림이로서 당연히 저도 요즈음 같은 추위에 새벽 뜀질을 하려면 대단한
용기와 솔찬히 많은 망설임을 수반하게 됩니다. 뜨뜻한 양모 이불 속, 내게 와 닿은
보드라운 아내의 체온을 밀치며 침대에서 내려오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불 속을 나와 뛸 뜀질 복장을 갖추기 시작하면 따뜻한 이불 속 유혹은
금방 잊혀집니다. 그리고 떨며 졸고 있는 아파트 현관 보안등 밑을 지나고 강추위에
눈길 한 번 줄 온기도 없이 단지 안 주차장에서 웅크리고 있는 차량들 사이를 지나 새벽
한강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어둠 속을 달릴 때면 이미 추위는 내 생각의 주제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그 비결은 다름 아닌, 뛰면서 고향의 따뜻한 봄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

저는 어릴 적 학교를 다니는 데 기차로 통학을 했습니다.
믿기지 어렵겠지만 그 당시 칙칙폭폭 석탄연기 풀풀 나는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때 그 까까머리 친구들의 모임인 칙폭이 모임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때 나랑 같이 석탄 기차를 탔던 내 친구 하나는 지금은 아시아나 파일럿이 되어
21 세기 최신 여객기를 몰며 국제선 창공을 날고 있으니, 아 세월이여! 세월이여!


누렁이 개도 낮잠 자다 지쳐 머리를 두 다리 위에 걸치고 두 눈만 껌벅이는 한적한
호남평야의 한 시골 정거장 봄 날 오후, 학교를 파하고 통학차에서 내려 철도 침목을
따라 봄 아지랑이 피어나는 너른 들녘을 걸어갑니다. 제법 더워진 날씨에 까만 교복
웟 단추 하나는 헤쳐 풀고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들녘을 걸어갑니다. 짙은 곤색 투
피스 교복에 눈이 부시게 하얀 칼라를 한 동네 여학생 한 명이 가만히 서 너 발자국
간격을 두고 나의 뒤를 졸졸 따라옵니다.

한 사 오리 정도 되는 들녘을 가로질러 우리가 사는 동네를 가자면,
뻐신 타 동네 앞도 지나야 되고, 도깨비가 수시로 출몰하는 도깨비 방죽도
지나야 되고 음산한 측백나무 울타리 옆도 지나야 되기 때문에 그 여학생은 대낮인대도
무서워 혼자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동네 남학생 뒤를 따라 다소곳이 두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서는 두 어 걸음 뒤에 처져 나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여학생 걸음으로 나를 따라 걸어오려면 조금은 버거울 것 같기도 한데 잘도 따라옵니다.
어쩌다 눈앞을 나풀거리며 지나가는 노랑나비 한 마리에 눈길을 주어 잠시 멈춰 서
있으면 덩달아서 그 여학생도 무료하니 가방 든 오른 손에 왼손도 포개고서 앞으로 두 손
가지런히 모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걸으면 또 다시 따라오고....
그러면 따뜻한 봄날의 햇살은 아름다운 그 여학생의 봉긋한 가슴위에 얹혀 앉아 부드러운
그림자, 음영을 만들며 이 소년의 가슴을 콩당거리게 만들었지요.

지금에야 브래지어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어 앞가슴이 둥그스름하니 불룩한 곡선이 참 보기
에도 좋지만 그 당시 여학생들 브래지어는 끝이 뾰족했었습니다. 아니 속 둥근 브래지어를
감추고 있는 교복 그 부분이 뾰족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딸이 없어 마당의
바지랑대에 걸친 빨래 줄을 아무리 훑어봐도 이런 것은 확인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당시 아침 통학 기차의 열차 칸에서 남녀 학생 뒤섞이어 통학 길에 오르면,
콩나물시루 같은 통학 열차 안의 내 앞에 선 여학생 그 뾰족한 브래지어에 찔리면 나는
죽는 판이다! 라고 용을 쓰며 피하다가 결국 덜커덩! 기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으악!
그 곳에 내 몸이 맞닿아 찔리고야 말았는데 그 때 그 뾰족 찔림의 감촉은 어디로 가고,
세상천지 그렇게 부드러운 감촉은 또 얼마나 신기하든지요. 그 수수께끼는 몇 해를 두고도
풀리지 않고 그저 혼자 논두렁 걸을 때 나를 해죽거리게 만들었지요.

뒤 따라 걸어오는 저 여학생이 누구의 몇 번째 딸인지 모를 리가 없지만, 얼추 같은
또래의 남녀 이성간 학생이니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그 때는
남학생하고 여학생이 손만 잡아도 애가 생기는 줄 알았고, 설사 생기지는 않더라도 손목
잡았다고 동네에 소문 퍼지면 나는 끝장이었지요. 얼레? 그 얌전한 박 생원 셋째가 글쎄,
학교 갔다 오다 정거장에서 논두렁 걸으며 얌전이 손목을 잡았대요, 글쎄! 하면 나는
끝장이었지요.

그렇게 한 사 오리정도 되는 시골길을 자로 잰 듯한 거리를 두고 걷는 두 이성, 이름 하여
60 년대 대한민국 호남평야 한 구석 만경평야의 천진 무궁 시골 남학생과 여학생.
보랏빛 자운영이 너른 논배미를 온통 다 뒤덮고 있어 얼마 후 모내기 쟁기질을 기다리는,
아지랑이 소올 솔 봄기운에 취해 하늘 올려다보면 종달새 지지배배 푸른 창공 어디 메인지
도통 찾을 수 없어 머리 빙빙 돌리며 숨바꼭질 하게 하던 봄 날.

이윽고 마을 어귀까지 와 자갈길 신작로에 다다르면 금방 후닥닥! 내 앞을 후리릭 지나
가운데 고샅 자기 집 사립짝문을 밀치며 인정머리 반 푼도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들어가는
눈부시게 하이얀 교복 칼라의 얄미웠던 그 여학생,

...........

아, 나도 이제 오늘 뜀질을 거의 다 마치며 다시 아파트 입구 우리 집 앞에 다 와 갑니다.
영하 10 도 이 짝 저 짝인 이 강추위에 손은 비록 곱았지만, 안면의 위장 무늬 마스크에
서걱서걱 얼음 덩어리는 달렸지만 아주 기분 좋게 달린 오늘 새벽 뜀질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고향의 봄은 언제 생각해도 포근하고 따뜻합니다. 그리고 고향의 그 봄을 떠
올리며 이 혹한에 달려보는 새벽 뜀질은 더 더욱 포근합니다. 더구나 올해 일, 이월 다가고
삼월이 되면 나의 사춘기적 그 여학생 봉긋한 가슴 위에 내려와 자리하던 그 햇살을 받으며
내 고향 완산벌 전주 온고을을 한 바탕 뛰게 될, 제 1 회 전주 울트라 100 km 마라톤 대회를
생각하면, 나는 어쩌다 처음으로 기어 올라가 벽장 속의 꿀단지 본 가슴처럼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 벌렁해 집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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