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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그 여성분 그리고 울트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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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12-17 19:36 조회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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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입니다

옛날, 아주 어릴 적, 내가 사는 곳도 촌이지만, 이곳보다도 더 깡 산촌에 사시는
외삼촌댁에 놀러 가면 제일 신나는 게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 앞을 지나 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를 털털거리며 외삼촌댁에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한번, 거의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따라서 동네를 벗어나 인근
논에서 , 밭에서 농사일을 하던 동네 농부들은 이 버스가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를 가는 걸 보고서는 아, 점심 먹을 때가 되었다라고 알아차렸고, 그러고도 동구
밖으로 밥을 머리에 이고 오는 자기 아낙의 모습이 안보이오면 이놈의 여편네가 밥
빨리 안 내오고 뭐 하고 자빠졌는지 몰르겄네... 라고 하며 하던 일 팽개치고 논 두덩이로
올라와 담배 한 개비 물고는 연신 동네 쪽 방향만 도끼눈으로 바라보곤 도 하였었지요.

이 버스를 타고 외삼촌댁에 가면,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신 외삼촌께서는 이것, 저것
맛난 것을 잔뜩 먹여 주시면서, 그럴 수가 없는 줄 뻔하게 아시면서도, 맨날, 맨날,
놀러오라고 등을 다독거려 주시었는데, 내가 제일 신나는 일은 이제 조금 더 있어야
벌어집니다.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신나게 놀고는 이제 갈 시간이 다 되어 신작로
바깥까지 걸어가서 오후 늦게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면 외삼촌은 산골 마을
입구 버스 타는 곳 소나무 한 그루 뎅그러니 서 있는 곳 까지 따라 나오셔서는
차비나 하라고 나한테 돈을 집어서 내 주머니에 꼬옥 넣어주시고는, 혹시라도 빠질까봐
주머니 입구를 꼭꼭 눌러 주시고, 버스 타고 가면서 주머니 열리는 가 잘 보라고
일러 주시었습니다.

차비라야 내가 집을 나올 때 엄마가 왕복 차비를 ( 정확하게 왕복 차비, 여분의 돈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 헝겊에 싸서 돌돌 말아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어 주셨지만, 이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우리 외삼촌은 꼭 차비를 하라고 하시면서 돈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엄마가 알 수 없을 터이니 백 퍼센트 내 돈이 되고, 이 걸로 나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빵을 사 먹거나, 아이스 케키 서 너 개를 사서 주둥아리 주위가
밤색으로 도배될 때 까지 먹을 수 있었지요.

지금에야, 게 복진이 방금 버스 태워 보냈으니 해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 할 거라고
전화를 해 주던지 손 전화 때리면 되지만 그 때야 그야말로 상상도 못했지요.
외삼촌한테서 차비로 탄 용돈의 금액 또는 그러한 사실은 돌아오는 명절 때나 어른들
오시면 그 때 밝혀질 수 있으려나?? 좌우지간 영원한 비밀 같은 사실이나 다름없었지요.

문제는, 내가 오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그 당시 그렇게 주머니에 조금씩
찔러 넣어주시던 그 용돈의 가치효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입니다. 촌에서
백 날 가봐야 어디에서 구린 돈 한 푼 구경 못 해보던 그 시골 소년에게 외삼촌
집에 놀러가서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아 오던 그 돈의 감촉은 지금도, 아니 영원히
잊지 못하지요. 주머니 속 그런 거금을 손아귀에 꽉 쥐고 털털거리는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시달리다가 내 사는 동네 마을에 내리면 얼른 집 헛간에 가서 주머니의
돈을 꺼내보고 만족감으로 미소 짓던 그 시절. 차비나 하라고 주시던 외삼촌의
그 자상하신 마음씀씀이는 도대체 어느 고전, 누구 철학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
겠으나, 그 후로 잘 관찰해보면 그 당시 시골에서는 차비를 주네, 안 받네 하고
어른들끼리의 가슴 뿌듯한 실랑이를 아주 쉽게 자주 목격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감동어린 장면이었었지요.

몇 달 전, 나는 지방의 어느 도시를 갔다가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서 그
다음 날 서울로 귀경하게 되었었습니다. 그곳을 가려하면 조그만 읍내를 하나
통과해야 되는데, 이 곳에 내가 아는 유명하신 울트라 마라토너가 사시고 계셨습니다.
아직 뵌 적은 없지만 온. 라인 상에서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이 기회에 한 번
뵙고 차나 한 잔 하면서 인사를 드리게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전화를
드리니 깜짝 반가워하시며 당장 당신 댁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이미 늦은
밤 11 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요.

겨우, 겨우 사양해서 잠깐 길 가 편의점, 소읍이어서 마땅한 장소가
없더군요, 같은 곳에서 깡통 음료를 나누며 짧은 인사를 나누고서는 다시 지방
택시를 타고 다음 장소로 가려고 하는 데, 지금까지 당신 집으로 모시고 가지 못해
그렇게도 서운해 하시던 이 분께서 차비를 주시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 ! 나는 순간
돌아가신 외삼촌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행복했었던 나의 유년 시절이던가요.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요. 내가 남에게서 차비를 받다니요. 우선 외모로도 나는
이미 성년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남의 도움, 즉 차비를 제공받을 이유가
없지요. 우선 당장 현찰이 없다하더라도 , 그렇다면 까짓거 저는 뛰어가면 되니까요.
그러나 그 분의 말씀의 의미를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요. 알고도 남았지요.
내 집을 찾아온 손님 환대의 도리, 그래서 극히 자연스레 우러나오던 방법, 그 이상
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지요.

당시 우리는 첫 만남이지만 같은 마라토너로서, 울트라 마라토너로서의 그 짙은 동지애를
느꼈었기도 하였었겠지만, 아마도 그 분의 심성 밑바닥에는 위에 설명 드렸던 내 유년
시절의 나의 외삼촌과도 같았던 아주 착한 심성이 자리잡고 계셨음에 틀림이 없었을 걸
로 여겨집니다. 극구 사양하며 너무 늦은 시각, 너무 늦게 찾아 뵈워 미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택시를 발차 시키는데, 그 분은 빠이빠이 손을 흔들던 차 유리창 너머로 차비를
훌쩍 던져 넣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그런 행동이 어찌나 눈물겹게도 고맙던지요...
어찌나 감격이 되던지요.....

부르릉 !! 택시는 떠나 캄캄한 시골 길을 달리는데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가슴 밑바닥 언저리에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가만히 한바퀴 돌아 다시 가라앉는 것 같은 고요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지요.

네, 그 분이 오는 3 월 26 일, 모 울트라 마라톤을 개최하시는 모 울트라
마라톤 조직 위원님이시지요.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이 응대해 주시랴 정신이 없으시는
분, 김장 버무리시다가 양념 잔뜩 묻은 고무장갑 벗지도 못 하시고 그대로 전화 받
아 주시며 멍석 깔린 마당으로 갔다가, 전화기 있는 안방으로 갔다가 하루에도 수 십 번
집 안 달음질을 하시는 여성분이시지요. 당일 대회를 찾으시는 울트라 마라토너님들께
무얼 어떻게 해 드려야하나 라고 날밤 세우시며 걱정하시는 분,

조금 전 마라톤 행사 일에
서울에서 제가 도울 일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전화 드렸다가, 오늘 김장 하는 날이라
양념 묻은 고무장갑 낀 채 전화 받으신다고 깔깔 웃으시는, 지독히도 마라톤을 사랑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면 저는, 내 유년 시절 차비를 주시어 그 돈으로 내가 바라던 전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주셨던, 한없이 너른 마음을 가지셨던 , 돌아가신 외삼촌 생각이 많이
납니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을 지독히도 사랑하시는 그 분의 제 1 회 울트라 마라톤 성공적 개최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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