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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혹달고 서울가서 '울더라'가 '웃더라' 되던 날 ![울트라마라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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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달곤 작성일04-11-08 10:10 조회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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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혹달고 서울가서 ‘울더라’가 ‘웃더라’ 되던 날 !

서울 가기 전에 깐포도를 애써 구하려다 이마에 큰 혹을 달 때에만 해도 엄청난 “울더라”를 예고했었지요. 사실상 그렇게 풍성한 잔치를 벌일 줄 진작에 알았으면 혹은 안 달고 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거의 2.5키로 마다 수박, 멜론, 깐포도가 아니라 (건)포도, (건)딸기, 배, 귤, 바나나 등의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과일과 다양한 음료에다가 온갖 종류의 빵은 물론 김밥 및 약밥에서 전복죽까지 적재적소에 놓아두었습디다. 찰떡파이와 젤리, 비타민 씨도 있었지요.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먹은 것만 열거했습니다.

다리를 펼 공간이 좁은 것이 흠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티엑스의 좌석에 앉자마자 나의 왼쪽무릎에 이상신호가 왔습니다. 괜찮겠지 하면서 서울교육문화회관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을 때에는 “내일 뛸 수나 있으려나 ?”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무릎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마의 혹이 예고했듯이 말입니다.

불혹의 나이로 마라톤에 입문한지 4년째인 올 한해는 100키로 울트라마라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매번 같은 장소에서의 훈련보다는 새로운 장소와 분위기 속에서 달릴 수 있는 다양한 대회참가가 효과적이라는 신념으로 말입니다. 연초 고성(풀)에서부터 출발하여 청년시절의 추억을 되찾아간 밀양하프와 클럽의 단합을 보여주기 위해 단체로 참가한 대구강북하프, 덤으로 2005년도 보스톤행 티켓(개인기록 3시간 17분)을 마련한 동아마라톤, 화려하게 맞이해준 전주-군산 간 벚꽃 백오리길,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과 함께 뛴 성주참외하프, 근지구력 강화를 위해 찾은 금산느재산악마라톤과 김해숲길하프,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훈련한 세계최초(?)의 10키로 합천 황강의 수중마라톤, 머루포도로 버틴 42.195의 LSD(경산마라톤), 친구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보낸 진주남강마라톤, 그리고 울트라를 위한 최종 점검차원으로 42.195를 달리고도 더 달릴 수 있는 페이스(3시간 45분)를 춘천마라톤에서 확인하면서 백키로 울트라에 대한 약간의 희망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 많은 노력과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심정을 이해하실 런지요 ?

더욱이 6대1의 높은 경쟁의 예심(신청한 우리클럽회원들의 출전 포기)을 거쳐“대구강북철인클럽”의 대표주자로 왔는데 말입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잠을 청했지요. 고행을 앞두고 무릎이 놀라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나를 포함하여 한방에 배정된 모두가 철인클럽 회원들이더군요. 대구철인클럽의 현종찬님, 변성택님, 그리고 춘천철인클럽의 그 유명하신 길광수님이었습니다. 그나마 술판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의 일이었지요.

새벽 3시반경에 일어나니 일단 무릎은 괜찮은 듯 했습니다. 사실 이상이 있어도 뛰기는 뛰어야 할 상황이었겠지만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새벽 5시 정각에 후미에서 출발을 하였는데 비몽사몽 앞사람들을 따라가니 어느덧 10키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납디다. 1시간 10분이 소요되었지요. 구간페이스는 대략, 10키로부터 50키로까지 10키로 당 1시간 5분, 50키로 에서 90키로까지는 다시 10키로 당 1시간 10분, 그리고 마지막 10키로 에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마지막구간에서는 근전환차원에서 이.삼키로 걸었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뛸 힘이 없어 걸었다는 것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평균 10키로 당 1시간 10분 소요되어 최종기록은 11시간 39분 26초입디다. 42.195이상은 한번도 뛰어보지 못한 내가 이정도 기록이면 스스로 자랑할만하지 않을 까요 ?

그런데 달리는 중에 우려했던 왼쪽 무릎에 통증이 몇 차례 찾아 왔지만 다행히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집에서 걱정을 하고 있던 아내의 “화이팅 !”의 영향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으로 말입니다. 긴 시간이라 심심할 것 같아서 휴대폰을 들고 뛰었는데, 42키로 지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울더라’가 시작되는데 ‘웃더라’가 되면 다시 전화할께.” 그 이후 내가 전화하기 전에 힘들어 걸으려고 할 때쯤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왔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화이팅 !”을 외쳐주더군요. 그리고 좀 과장하면 울트라마라톤 참가자 수만큼의 자원봉사자들이 주자의 이름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데 어떻게 걸을 수가 있겠습니까 ? 그것도 몇 백미터의 간격인지라 걸을 틈을 허용하지 않았지요.

64키로 반환지점에서 맡겨둔 그 문제의 깐포도를 찾았지만 별로 생각이 없었지요. 복숭아통조림과 함께 주위의 주자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긴 상의를 짧은 상의로 갈아입었습니다. 아직도 아득하기만 한 여정 ! 한편으로는 내가 걷지 않고 그 긴 거리를 뛰어왔음에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서서히 출발하였지요. 이제는 풀코스거리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 이후의 시간은 울트라마라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힘들수록 목표가 달성되면 그 성취감은 큰 법 ! 짜릿한 감동을 자아내는 그 종착점을 향해 나의 다리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요. 휘니쉬라인 몇 백미터 전에는 골인장면의 멋찐 포즈를 위해 옷차림을 단정히 하였답니다. 무릎의 테이프도 제거하고 발톱보호와 물집예방을 위해 양말 안에 신었던 스타킹도 발목으로 말아 붙였으며, 100키로 동안 땀 닦는데 사용했던 흰장갑도 벗고 멋있는 골인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지요. 뼈와 살을 깎는 그 긴 시간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 ! 모든 완주자가 승자였지요.

운동화의 칩까지 자원봉사자가 해결해 주고 난 다음 다시 시상대에서 월계관을 쓰고 완주메달과 완주패를 들고 다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언제 한번 시상대에 오를 기회가 있겠습니까 ? 그날은 완주자 모두가 장편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승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무언가 모르게 기분이 좋은 가운데 밤 11시경 집에 도착하니 아내의 대우가 완전히 달라집디다.(그렇다고 보통 때 대우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랍니다. 대회 때마다 새벽밥상을 차려주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거든요.) 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얘기해도 잘 해주지 않던 ‘우엉뿌리구이’요리(이거 만들려면 힘이 많이 든다나요 ?)를 준비해 두고 언제 도착할지 예상하여 집밖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안마서비스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지요. “아이언맨코스 완주에다가 울트라완주자로 업그레이드되니까 예우가 달라지나 ?” 라고 말입니다. 아내는 “백키로를 달리는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백키로는 이제 그만...” 이라고 대답하더군요.

100키로 울트라 !
100키로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기 전의 생각은 수순에 따라 200키로, 한반도 횡단과 종단, 그리고 사하라사막마라톤까지도 도전목표에 포함되었지만, 현재의 심정으로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습니다.(시간이 지나면 그 심정이 변할 수도 있나요 ?) 그러나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울마라톤클럽에서 개최한다면 말입니다. 모두 가을이 깊어가는 한강변에서 감동의 순간을 한번 만들어 보시길...




서울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다녀와서

2004. 11. 1. 김 달 곤




100키로를 완주한지 하루지난 오늘은 42.195키로를 완주했을 때보다 몸상태가 좋습니다. 무릎에도 이상이 없고 근육통도 별로 없는 것이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혹시나 워낙 장거리라서 내일부터 후유증이 올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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