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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마라톤 완주 못지 않게 힘겨웠던 대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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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석 작성일04-03-22 12:53 조회1,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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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이 날씨였으나, 최근에 와서는 인명사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3월 4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삼성의료원에서 '심폐소생술(응급조치)' 강습을 받고 돌아오는 밤길은 펑펑 쏟아지는 눈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이러다 대회를 못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바위가 길을 가로 막는 듯했다.

이를 어쩌지! 잠이 오지 않는다.

마라톤이 엘리트 선수만의 스포츠로 인식되던 90년대 중반 국내 메이저대회에서 마스터즈 부문이 신설되었으나, 당시 대회는 엘리트 선수 위주의 행사였으며 시민 런너를 위한 배려가 없어 심한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며 힘겹게 완주했었다.

달리기로 인해 인생이 바뀌어 마라톤의 매력에 심취한 10여명이 모인 것이 서울마라톤이었고, 달리는 사람이 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순수한 마라톤대회를 만들자는 뜻이 모아져 이루어낸 것이 98년 3월의 제1회 서울마라톤대회였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참가자의 격찬, 스텝들의 희생과 성금이 밑거름이 되어 7회 대회로 이어져왔다.

참가자가 만족하는 달리기 축제를 마련한다는 것은 마라톤을 완주하기 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다. 아무 보수 없이 몇 개월을 퇴근 후 모여 수고하는 스텝들의 진지한 모습과 함께 일하다 힘들어 주저앉는 모습간의 갈등,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마라톤대회로 인해 마라톤 공해라는 표현이 불거져 가는 현실에서 야기되는 대회의 목적이나 가치관의 혼동, 협찬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려움 등... 대회가 끝나면 이 고생을 왜 하지?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듯 하다가도 서울마라톤에 보내주는 동호인들의 애정과 성원이 힘이 되어 다시 일어서곤 한다.

7회 대회를 더 멋이 있는 대회로 엮어 보려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왔는데... 잠을 설치다 이른 아침 대회장으로 달려갔다. 차창에서 내려다보이는 대회 코스는 눈으로 덮여 식별할 수가 없다.
택시에서 내려 바라본 대회장은 사람이 들어서기 어려운 백설의 광장으로 변해 버렸다. 대회장과 주로를 걸어보니 20Cm 가까이 발이 빠져 이동하기도 힘들다. 걷기도 어려운 이런 상황에서 12,000명이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은 날씨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왔는데! 하늘이 너무 무심하다.... 어디에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 100년 만에 내린 3월의 대설에 서서 넋을 잃고 있는데 아찔한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희고 깨끗한 눈이 음산한 검은 숯가루로 변해버린 암흑에 휩싸인다. 정신을 차려 급히 신동희씨에게 연락을 했더니 걱정이 되어 한강으로 나갔다고 한다.

이 많은 눈을 치울 수도 없으니 염화가리를 몇 차 사서 뿌릴 생각으로 여의도지구 한강사무소에 가서 말했더니 한강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염화가리는 사용할 수 없으며 장비와 인력이 없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저 망설이고 있을 수도 없어 사무실로 와 제설장비 대여업체 몇 곳에 연락하여 소형 '스노우 로다'를 동원했으나 겨우 6대를 확보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스텝 몇 사람에게 연락하여 김대현씨는 천호, 김명호씨는 잠실, 신동희씨는 반포, 문성재씨는 가양지구를 담당하고 나는 장비 2대로 대회장과 여의도 지구를 맡아 32km주로의 제설작업이 시작되었다.
대회장은 잔디를 손상시킨다해서 작업을 못했다.

오후 7시 주로 제설작업을 끝내고, 3월 7일 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토요일에 다시 눈이 온다기에 제설장비들을 대기시켰으나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 9시 대회 용품과 장비들이 사무실에서 대회장으로 이동했으나 대회장의 치우지 못한 눈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쉴새없이 걸려오는 2대의 전화와 씨름하느라 여의도로 나갈 수가 없었다.
"대회를 진행하느냐?", "대회를 연기하라!", "천재지변으로 참가 못하니 참가비를 환불해달라!" .... 입이 마르고, 답변하기도 힘들지만 전화를 안 받고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오후 6시 반이 지나니 전화가 뜸해서 점심을 먹는데, 대회본부에서 고사를 지내니 속히 여의도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참가자들에게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은 했으나 주로 상황이 염려가 되어 고사보다는 코스를 점검해야겠기에 차를 몰고 광진교 풀코스 반환지점으로 갔다. 코스를 따라 여의도로 돌아가려고 천호대교 아래를 지나는데 노면의 빙판을 보고 달려보니 미끄러져 넘어질 듯 위험하다.

올림픽대교 주변 잠실 선착장주변, 탄천 다리 주변 노면상태가 심각하다. 대회본부에 연락하여 모래를 준비하고 하프코스도 점검하도록 부탁했다.

노량대교 아래는 400m가 얼음판이다.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7℃라니 몹시 걱정스럽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아치, 대회기, 천막, 무대장치 등의 설치가 완료되어 대회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윤현수 조직위원장과 스텝들의 노고가 돋보인다.

스텝 몇 사람이 대회장에서 밤을 세우기로 하고, 새벽 2시 반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부치고, 아침 6시에 여의도로 향했다. 7시에 모래 차가 주로로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인다.

11시 정각 함성을 지르며 힘차게 출발하는 주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100년 만에 내린 3월의 폭설도 마라톤의 열기를 식힐 수 없음을 실감했다.
추운 날씨에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골인하는 완주자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나도 감동스러웠다. 7시간 43분의 마지막 완주자를 마중 나가는 것으로 힘겨웠던 대회는 조용히 막을 내린다.

만남의 광장에 올린 많은 완주자의 진솔한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며 보람스러움이 감돌기도 한다. 완주자들이 성취한 벅찬 감동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면,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 이를 위해 봉사하는 일 모두가 얼마나 값진 일이겠는가! 엄청난 수고를 한 여러 스텝과 자원봉사자들도 고생한 보람과 위로를 다 같이 나누었으리라 믿는다.

『참가자, 스텝, 자원봉사자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 함께 희망의 내일을 기약하며 마라톤으로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 나갑시다!』



서울마라톤 박 영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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