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응모]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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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후 작성일04-03-10 22:57 조회4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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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떻든 서울마라톤은 한번 꼭 뛰어 보고 싶은 대회였다. 마라톤에 대한 호기심과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충동을 심어주신 분이 바로 그곳에 계시니 말이다. 70대의 나이에도 서울마라톤클럽을 이끌고 계신 박영석회장. 50세에 달리기를 시작해 이제 열두해가 두 번 지난 지금에도 꾸준한 달리기로 마라톤인구 저변확대를 위해 열정을 쏟고 계신 분이다. 그 분 노고에 100분의 1이라도 본받아 보자.
가족들과 주위에서 무어라 해도 다시 달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서울마라톤 하프코스에 신청했다. 마음 또한 홀가분하다. 그러던 것이 지난 2월1일 경남 고성군에서 열린 전국마라톤대회에 참가한 50, 60대 두 명이 달리던 도중에 쓰러져 숨진 사고가 일어났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충격적인 소식이다. 마라톤관련 글들을 세심히 다시 읽어보았다. 전문의들은 마라톤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자신의 체력만 믿고 사전에 적절한 훈련과 준비운동 없이 무리하게 달리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 풀을 완주한 이후 지난 연말을 지나며 절제를 넘은 음주 등으로 내 몸을 너무 돌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소진한 몸을 다시 추수리자. 대회를 한달 여 앞두고 마라톤 동호회에 나가 10km 연습과 개인훈련을 시작했다.
3월7일 일요일.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 아침. 올림픽대로를 타고 여의도를 향해 집에서 출발하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바람마저 불어서인지 강물은 여느 때보다 더 검푸르다. 한강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강변은 수북히 내린 눈에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오전11시. 3천5백명의 하프코스참가자들 대열에 서니 마음이 들뜨다. 강변 주로에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달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용솟음치다. 활력이 넘치는 현장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내가 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달리는 이곳에서만은 격차와 차별이 따로 없다. 그저 달리면 되는 것이다.
많은 참가자들 가운데는 회사이름을 등에 엎은 직장동호회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박차고 나간다. 마치 30-40년 전 우리기업들의 뛰는 모습 '한강의 기적'을 재현해 보이는 것 같다 . 주로 변 곳곳에서는 추위에 버티고 선 자원봉사자들이 열띤 구호를 외쳐되며 격려의 응원을 보내주는데 힘이 절로 난다.
어느새 국회의사당 옆을 지나고 있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뛰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많은 건각의 참가자들이 썩지 않으려 또 포기하지 않으려 바람 부는 강가에 나와 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벅차 올라 눈물이 핑 돈다. 모든 역겨움과 허망함은 강물에 던져 버리자. 달리면 희망을 볼 수 있기에...
성산대교를 지나 10km를 지날 때쯤 희끗한 머리에 동년배로 보이는 참가자 한 명이 나를 앞서며 달려나간다.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따라 붙으려 하는데 속도가 빠르다. 뒤에서 보아도 힘든 모습은 보이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힘차게 줄달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실버세대여, 일손을 놓았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반환점을 돌아 국회의사당이 보일 때쯤 한시간 반쯤을 뛰었을까 호흡도 거칠어지고 오른쪽 발다닥이 저려오는 것 같다. 참가자 서약의 글이 떠오르다. "대회당일 참자가에게 발생한 사고는 참가자가 책임집니다." 정형외과 원장인 마라톤동호회(휘마동) 김선기회장이 언젠가 조언해 준대로 호흡을 복식호흡으로 바꾸고 오른쪽 발다닥에 신경을 집중시키며 페이스를 조심조심 유지하다.
어차피 남은 목표지점 까지는 고행의 달리기가 되겠지... 저 흐르는 강물처럼 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멈추지 말고 또 새는 일도 없이 그저 바다까지 거침없이 뛰고 싶어라. 가만히 놓아두면 쌓이는 먼지. 뛰지 않고 쉬어 있으면 쌓이는 삶의 잡동사니들. 이 기회에 내몸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꺼내 흐르는 한강물에 던져버리자. 또 내 맘속의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欲)일랑 모두 닦아내 흐르는 강물에 씻어버리자. 어쩌면 이것이 내가 달리는 이유가 아닐까...
골인지점이 가까워온다. 마지막 주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외쳐대는 웅원소리에 마지막 힘이 솟구치다.
2004년 3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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