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 후기 응모-왜 전엔 달리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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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근영 작성일04-03-11 14:03 조회3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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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어 달리는 차에 뛰어 들고 싶을 정도였다는.......
절절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 때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오죽했으면 달리는 차에 뛰어 들고 싶을까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심정을 머리속에서만 헤아릴 수 있었다.
머리속에서.
그 때 나는 달리지 않았고, 마라톤은 내 인생에 들어있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때였다.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즐거운 일이, 행복한 일이 더 많던 그런 때였다.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는 달리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가야할 곳이,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은 나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 그럴 것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는 마라톤을 재미삼아 들여다보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스포츠 경기로 치부한 채 오로지 누가 1등을 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고작인 그런 때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도 고통도 아픔도 눈물도 모른다.
오직 1등을 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순위 경쟁에 흥미를 느낄 뿐이다.
그렇게 세월은 갔고, 수많은 마라토너들이 포도 위에서 명멸하는 사이에 내 나이도 사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십.
불혹의 나이라는 사십의 언저리에서 나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길들의 흔적을
더듬어 보다가 문득 불혹의 의미를 꼽씹어 보았다.
나는 과연 불혹한가! 결론은 아니었다.
흔적도 없이 채워진 수십 수백개의 계절을 반추해 봐도 혹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겨우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존재의 가치나 이유를 스스로 안위해 가며 빙판위의 나무 팽이처럼 위태위태 세상을 지쳐온 늙은 몸뚱이만 인식할 뿐이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내 인생에는 기타 하나 동전 한 잎을 읖조릴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공연히 서글퍼졌다. 서글프고 서글퍼서 주위를 둘러봐도 내 시선을 받아줄 그 누구도 없었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쇠락해 가고 있는 몸 하나 달랑!
축복은 간절하게 소망하는 자에게 내려진 세상의 선물이라 했건만 내게 과분한 축복이 하나 내려졌다.
간절히 소망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나를 찾는 길 하나를 발견했다.
나를 찾는 길! 그것은 정말 벼락같이 찾아왔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순간에 내 몸이 먼저 그 길을 원하고 있었다.
센치한 궁상을 이기지 못해 초등학교 운동장 야외학습장에서 생을 다하고 떨어지는 플라타나스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문득 몸을 일으켰다.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만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다니는 운동장을 내 다리가 걷고 있었다. 그렇게 십분 그렇게 이십분......
서서히 몸이 속도를 냈다. 나는 뛰고 있었다. 심장이 펌프질을 빨리했다.
빨라진 심장의 뻐근함을 느끼며 삼십여분을 무의식속에서 발을 놀리고 멈춰선 순간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츄리닝 속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전신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나는 그 자리에 붙박혀 서 있어다. 언젠가 분명히 느껴본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머리속에서는 이미 화석처럼 굳어있는 그 느낌을 몸은 기억해 낸 것이었다.
2002년 11월 5일 이후 나는 달리고 있다.
때론 게으름도 피우지만 달리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리는 것이 나를 깨우는 일임을 나를 발견하는 일임을 내 삶에 윤기를 더해주는 일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7일.
나는 네 번째로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추위를 뚫고 나는 21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맞바람을 맞으며 파득파득 바람막이 비닐 소리를 앞세워 길지 않고 짧지 않은 그 거리를 달렸다. 강물에 빨려 찬기운을 잔뜩 머금은 차디찬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얼얼해진 허벅지에 생경한 느낌을 껴안으며 나는 달렸다.
1분 10분 한 시간...기록 단축도 생각지 않고 바람을 마시며 하늘을 안으며 그렇게 달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렀어도 나는 게의치 않았다.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같은 길을 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좀더 일찍 달리기 시작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미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달리고 있고, 달릴 수 있다. 물론 인간인지라 욕심도 생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욕구 없이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아직은 이른 나이여서일 게다.
1시간 48분. 최고기록 치고는 내놓을 정도가 못 된다. 비록 내놓지 못하더라도 자랑스럽다. 뿌듯하다. 운동회에서 1등 상을 탄 초등학생 같이 서재 제일 위쪽 상단에 꽂아놓은 기록증을 꺼내어 확인하기까지 한다.
지금 내 인생길에는 서른 세 살의 아내와 다섯 살의 찬, 네 살의 진이가 있다.
어느 순간 내 인생과 맞부딪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도 처음으로 같이 뛰어 10km를 완주했다. 고맙다. 기특하다. 고맙고 기특하다. 완주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 뜻을 헤아려주고 내 길을 '우리' 길로 여며두어서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이 되고 이순이 되고 고희가 되고....내 몸이 뜀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뛰고 뛰고 뛸 것이다. 좀 더 일찍 뛰지 못했으니 살아갈 날들은 더 열심이 뛸 것이다.
가끔, 눈 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는 그 느낌을 떠올린다. 가슴이 파열되는 고통을 끌어안고 피니쉬 라인을 밟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그 때마다 나는 신기록을 세운다. 기록의 신기록이 아니라 내 인생의 신기록을 세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인생 신기록을 위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어 달리는 차에 뛰어 들고 싶을 정도였다는.......
절절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 때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오죽했으면 달리는 차에 뛰어 들고 싶을까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심정을 머리속에서만 헤아릴 수 있었다.
머리속에서.
그 때 나는 달리지 않았고, 마라톤은 내 인생에 들어있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때였다.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즐거운 일이, 행복한 일이 더 많던 그런 때였다.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는 달리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가야할 곳이,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은 나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 그럴 것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는 마라톤을 재미삼아 들여다보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스포츠 경기로 치부한 채 오로지 누가 1등을 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고작인 그런 때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도 고통도 아픔도 눈물도 모른다.
오직 1등을 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순위 경쟁에 흥미를 느낄 뿐이다.
그렇게 세월은 갔고, 수많은 마라토너들이 포도 위에서 명멸하는 사이에 내 나이도 사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사십.
불혹의 나이라는 사십의 언저리에서 나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길들의 흔적을
더듬어 보다가 문득 불혹의 의미를 꼽씹어 보았다.
나는 과연 불혹한가! 결론은 아니었다.
흔적도 없이 채워진 수십 수백개의 계절을 반추해 봐도 혹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겨우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존재의 가치나 이유를 스스로 안위해 가며 빙판위의 나무 팽이처럼 위태위태 세상을 지쳐온 늙은 몸뚱이만 인식할 뿐이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내 인생에는 기타 하나 동전 한 잎을 읖조릴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공연히 서글퍼졌다. 서글프고 서글퍼서 주위를 둘러봐도 내 시선을 받아줄 그 누구도 없었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쇠락해 가고 있는 몸 하나 달랑!
축복은 간절하게 소망하는 자에게 내려진 세상의 선물이라 했건만 내게 과분한 축복이 하나 내려졌다.
간절히 소망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나를 찾는 길 하나를 발견했다.
나를 찾는 길! 그것은 정말 벼락같이 찾아왔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순간에 내 몸이 먼저 그 길을 원하고 있었다.
센치한 궁상을 이기지 못해 초등학교 운동장 야외학습장에서 생을 다하고 떨어지는 플라타나스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문득 몸을 일으켰다.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만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다니는 운동장을 내 다리가 걷고 있었다. 그렇게 십분 그렇게 이십분......
서서히 몸이 속도를 냈다. 나는 뛰고 있었다. 심장이 펌프질을 빨리했다.
빨라진 심장의 뻐근함을 느끼며 삼십여분을 무의식속에서 발을 놀리고 멈춰선 순간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츄리닝 속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전신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나는 그 자리에 붙박혀 서 있어다. 언젠가 분명히 느껴본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머리속에서는 이미 화석처럼 굳어있는 그 느낌을 몸은 기억해 낸 것이었다.
2002년 11월 5일 이후 나는 달리고 있다.
때론 게으름도 피우지만 달리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리는 것이 나를 깨우는 일임을 나를 발견하는 일임을 내 삶에 윤기를 더해주는 일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7일.
나는 네 번째로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추위를 뚫고 나는 21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맞바람을 맞으며 파득파득 바람막이 비닐 소리를 앞세워 길지 않고 짧지 않은 그 거리를 달렸다. 강물에 빨려 찬기운을 잔뜩 머금은 차디찬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얼얼해진 허벅지에 생경한 느낌을 껴안으며 나는 달렸다.
1분 10분 한 시간...기록 단축도 생각지 않고 바람을 마시며 하늘을 안으며 그렇게 달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렀어도 나는 게의치 않았다.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같은 길을 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좀더 일찍 달리기 시작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미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달리고 있고, 달릴 수 있다. 물론 인간인지라 욕심도 생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욕구 없이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아직은 이른 나이여서일 게다.
1시간 48분. 최고기록 치고는 내놓을 정도가 못 된다. 비록 내놓지 못하더라도 자랑스럽다. 뿌듯하다. 운동회에서 1등 상을 탄 초등학생 같이 서재 제일 위쪽 상단에 꽂아놓은 기록증을 꺼내어 확인하기까지 한다.
지금 내 인생길에는 서른 세 살의 아내와 다섯 살의 찬, 네 살의 진이가 있다.
어느 순간 내 인생과 맞부딪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도 처음으로 같이 뛰어 10km를 완주했다. 고맙다. 기특하다. 고맙고 기특하다. 완주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 뜻을 헤아려주고 내 길을 '우리' 길로 여며두어서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이 되고 이순이 되고 고희가 되고....내 몸이 뜀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뛰고 뛰고 뛸 것이다. 좀 더 일찍 뛰지 못했으니 살아갈 날들은 더 열심이 뛸 것이다.
가끔, 눈 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는 그 느낌을 떠올린다. 가슴이 파열되는 고통을 끌어안고 피니쉬 라인을 밟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그 때마다 나는 신기록을 세운다. 기록의 신기록이 아니라 내 인생의 신기록을 세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인생 신기록을 위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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