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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마라톤 그리고 도끼 한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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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3-11-11 09:00 조회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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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마라톤, 그리고 도끼 한 자루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서울 비원 앞 안국동의 어느 사무실에서 신발 상담을 마치고
도로로 나왔습니다

만추의 도심,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후 벌써 하루의 그 중간, 늦은 오후,
운현궁 담을 따라서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조금 걸어가자니
웬지 모르게 가슴이 휑 ! 해지며, 걸으며 헛동작으로 옷깃이 여며집니다

포도에 나뒹구는 덩치가 볼썽 사납게 큰 죽은 나무잎새를 밟으며
죽어 가는 빠스삭, 빠삭 그 소리에 가만 귀를 기울여 보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2 기통 오토바이 소음은 그런 내 귀마저 밟고 내달려 갑니다

걸으며 생각해 봅니다

몸에서 떨어져 죽어 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보는 나무는
어쩌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아마 알지 못할 듯 합니다

생명을 이어가며 수 해를 그냥 그래왔고,
때 되면 내 몸 세포 자체가 계절에 저렇듯 순응해 주니,
왜 ? 라는 물음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인간의 질문임에 분명합니다
하릴없는 왜 ? 이지요

네 정말 그렇군요
길 가 가로수는 다가오는 겨울을 저렇듯 준비합니다

요란을 떨지 않고서 가만 가만 자기 몸의 무게만 줄여 나가며
북풍 한파를 견디고서 내년 삼 월의 훈풍 때까지
참고 떨며 목숨을 이을 최소 체중만을 향해 무게를 맞춰 갑니다

나도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 해 봅니다

지난여름 내내, 내 황홀한 여름의 마라톤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양평의 내 농막, 쏘나티네에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생각해 봅니다

앞산의 임도를 따라 친구들과 뛰었던 지난여름의 그 뜨거웠던 숨소리,
줄줄 흘러내리던 땀을 주체 못해 풍덩 냇가에 몸을 담갔을 때 그 시원한 웃음소리,
사방팔방 튀어가던 우리들의 유소년 적 물장구 같은 그 싱싱 파릇한 추억을
이제는 조용히 떨굴 때가 되었군요

한 여름의 밤하늘을 올려보며 팔 베개 하던 야외 데크에서 내려와
이제는 장작 모닥불을 지펴야 할 때입니다

두툼한 방한 점퍼 후드 깊숙이 목을 움추리고
호일에 싸서 던져 넣은 고구마를 뒤집으며
타들어 가는 장작불이 연출하는 붉은 불꽃의 굿을 응시하는,
이제는 조용히 그런 겨울을 맞이할 때가 되었군요

길 옆 대장장 철물점이 보입니다
멈춰 선 풀무 옆에 기대 서있는 커다란 도끼 앞에 나의 걸음이 멈춰집니다
투박한 물푸레나무로 만든 도끼자루가 강렬한 흡인력으로 나를 응시합니다

저 물푸레나무 도끼 자루를 허공에 휘둘러 장작을 패서
겨울의 배를 갈라 그 속에 활활 모닥불을 집어 쳐 넣고
그 위세에 눌려 오금 저리는 동장군의 항복을 받아내어 볼까요 ?

주말 저녁,
살을 베이는 북풍한파를 뚫고 눈 쌓인 허허 들판 뜀 질에서 돌아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웃옷을 벗어 화덕 불가에 널어 말리며
젖은 양말 나무 막대 가지에 꽂아 놓으면,
장작 모닥불은 고수되어 멋들어진 불 그림자 판소리를 만들겠지요

지난여름 황홀했던 내 뜀 질 이야기
그 보따리를 곱게 풀어 긴긴 겨울밤을 수 놓아줄 밤을 위해,
언 겨울밤을 녹이고 손에 든 찻잔 속에 아른거리는 마라톤 추억을 마시기 위해,
나는 오늘 한 자가 넘는 물푸레나무 손잡이 도끼 한 자루를 사고 셈을 청해봅니다

다가오는 요번 긴긴 겨울 여행의 내 동반자,
물푸레나무 손잡이 도끼 한 자루가 엮어줄 또 다른 추억을 위해
기꺼이 셈을 치루고 남은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걸으며 남녘의 내 친구 K 시인에게 손 전화를 걸어봅니다

K 시인 !

나 오늘 도끼 한 자루 샀다네 !
월백 설백 천지백,
달도 하얗고, 내려 쌓인 눈도 하얗고, 온 세상 천지가 하얀 그 들판을 내달려온 후,
장작을 패서 불을 지펴 겨울의 배속에 집어넣고,
내 언 몸을 녹여 동장군의 항복을 받아 내 줄 장작불을 지피려고

나 오늘 도끼 한 자루,
물푸레나무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도끼 한자루 사서
지금 내 농막으로 들고 간다네!

친구여,
하얗게 눈 내렸다 망설이지 말고 자네도 어서 오게나 !
싸게, 싸게 어서 오게나 !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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