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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제4회 서울울트라(100km)대회[참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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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후근 작성일03-11-10 16:20 조회1,7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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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서울울트라마라톤참가[후기응모] ('03.10.26)



지난해 제3회 서울울트라대회(100km)에 첫 참가를 하고 난 후, 그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무려 9시간18분대의 기록으로 완주를 했었지만 올해는 지구력훈련과 스피드훈련을 겸비해서 여름철 지루한 장마우기 내내 엄청 난 훈련들을 소화해 내었다. 올해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서 3:20분대의 페이스메이커를 맡아서 가볍게 하고 서울울트라100km에서 8:30분대의 기록을 달성한다는 계획으로 훈련에 임했었다.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42.195km의 풀코스도 재미가 있었지만 울트라대회는 긴 흥분 속에 오래도록 그 감동의 여운 또한 오래 간다는 이유가 내가 깊이 빠진 이유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춘천에서 Sub-3(2:56:09초)를 달성했을 때보다도 올해는 스피드가 월등히 뛰어남을 몇 번의 기록측정으로 감지할 수 있었고 춘천에서 정상적으로 달린다면 2:40분대 초반에는 충분히 달릴 수 있는 컨디션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춘천마라톤대회 불과 1주일 후에 서울울트라대회가 있었기에 둘 중, 하나는 포기를 하거나 즐겁게 달리기를 해야만 했었다. 작전은 춘천대회에서 가볍게 페이스메이커를 하고 난 후, 제4회서울울트라에서 기록경신을 해야지하고 춘천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를 하였다.


그러나 페이스메이커의 임무수행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만만하게 생각을 하고 초반부터 호루라기를 불면서 적당히 구호도 외치며 주자들과 희희낙락거리며 겨우 10km를 못 달리고 숨이 헐떡거리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큰 소리로 공개한 목표시간의 완주는 커녕 중간에 포기하는 건 아닐까는 불안한 예감과 위기감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가볍게 달린다고 페이스메이커자원봉사를 맡았는데 내가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니? "좋다! 이미 시작을 했으니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한번 해보는 거다."며 오기가 생겨 달려 들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주로에서 흥분된 분위기와 동반주하시는 분들의 격려에 넘어가고 말았다. 20km에서 30km가 지나가면서 내가 쓰러지더라도 결승점에서 힘을 남겨 골인을 해서는 안된다며 5km부터 쉬어버린 목소리를 30km를 넘겨 계속외치며 달려갔었다. 이런 상태로 40km까지 달려 공개한 기록(3:18분대)보다도 4분을 초과한 기록으로 힘겹게 결승점을 밟아 임무를 완수했었다.


이제 서울 울트라까지 남은 1주일동안에 체력을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춘천대회가 끝난 다음날 심한 몸살감기와 콱 잠겨버린 목소리에 전화조차도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여지껏 이렇게까지 몸이 탈진한 적이 없었는데 겨우 걸음을 옮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병원에서 감가몸살로 주사를 맞고 약처방도 받았지만 하루이틀에 해결될 것도 아니기에 서울울트라대회까지 몸이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뿐이었다. 나에게 신(神)이 있다면 빌고 또 빌고싶은 맘으로 기다렸지만 호전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막상 대회에 임하면 괜찮아지겠지. 포기하고 싶은 맘보다도 훨씬 희망적인 생각만 가득들었다. 대회날을 이틀 남겨두고서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가 고민끝에 전화로 아내에게 말을 끄집어 내었다. 사실 울트라대회는 불참이고 함께 대회에 참가하시는 분들의 응원도 하고 가방을 지켜드리는 가방지기로써 서울 올라간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가방지기로 올라 간다고 하니까 도저히 믿지를 못하고 반문을 하기에,
"소위 마라톤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실을 여지껏 모르고 살았느냐"고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직도 풀리지 않은 쉰 목소리로 달겨 드니까 겨우 한풀 꺽이며 믿었는지 속았는지 모르지만 겨우 허락을 하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 몰래 울트라대회 준비물들을 장록속에 은밀히 감춰오던 것들을 퇴근 후 끄집어내어 도망을 치듯이 집을 빠져 나왔다.


김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낯선 곳으로 간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뿌연 안개 속을 날아오르는 비행기는 초조하고 가슴 떨리는 것은 여전했었다. 눈부신 햇살과 어우러진 새하얀 솜뭉치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솜뭉치 사이로 사뿐히 내려 안아도 좋을 것 같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가도 가도 뜯어서 풀어헤친 솜뭉치 같은 구름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함께 대회참가를 하시는 창원철인클럽의 63.3km부부참가자 종합1위를 차지한 손무학님, 조양순내외분과 클럽회원님들은 조용하다. 비행기안의 다른분들도 긴장감 때문인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하룻밤을 묵을 숙소는 연고가 있는 용산역근처에 풀었다. 방배정을 마치고 양재시민의 숲 전야제 행사에 참가를 하였다. 지난해엔 다소 긴장된 듯한 분위기가 신나는 풍물패의 한바탕 소리울림으로 풀어졌었는데 또 올해는 어떤 분위기일까?


양재시민의 숲 야외무대에 도착하니 흥겨운 음악이 숲 속에 가득 울러퍼지고 있었고 무슨 동화책속에서 나오는 숲 속 왕국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잔치같았다. 등록선수들의 지급품이 부문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교부되고 있었고 서로 친분 있는 분들을 만나면 끌어안고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들이 시장바닥같이 왁자지껄하다. 이장호님, 김선화내외분, 달리는 의사 이동윤님의 밝은 모습, 철인고수 김홍중님등의 분들을 만난다. 손님맞이에 박영석회장님과 울트라대회조직위원장 윤현수님, 운영조직위 윤석기님, 이하 스탭진들은 분산히 움직이신다. 배번호와 칩을 수령하는 선수들의 얼굴엔 다부진 각오와 엄숙함이 넘친다. 대략 얼굴들을 보면 초보자인지 고수인지 얼굴에 나타나는 것 같다. 고수는 활짝 웃으시며 여유가 있는 듯하고 초보자는 군대에서 신병교육대에 들어온 것 같이 낯선 분위기에 몸이 굳어있고 말도 별로 없으시다. 이런 표정들을 놓칠세라 따뜻한 미소를 띄우시며 크다란 카메라렌즈를 들이대며 대회장 분위기를 돋우시는 여성분이 있었다. 바로 사진촬영 자원봉사자이신 황영애님이시다. 참가선수 누구에게나 사진 모델이 되어주신다면 모델료를 두둑히 주실 것처럼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하시기에
"혹시 일본에서 오신 여기자분인가요?"하고 물으니 아니라며 우리말로 회답하신다. 무대는 젊고 발랄한 고교생들로 구성된 보컬그룹의 음악과 남여혼성 댄서공연으로 어둠 속의 대회장분위기는 싸늘한 추위 속인데도 불구하고 한층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무대 양옆으로 한국, 일본양국 대형태극기가 당당히 아래로 드리워져 있고 무대앞으로 둘러 늘어선 스탠드엔 많은 선수들이 가득 메워졌다. 화려하게 불꽃놀이와 음악이 어우러진 가운데 세민정보고교 디자인과 교사이자 울트라 사진팀장을 맡으신 사용웅님의 유창한 사회로 서울마라톤클럽 박영석회장님의 인사말씀과 동시에 개회가 선언되었다. 이 자리에 모두들 함께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감개무량함을 억누르듯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다. 이어 서울서초구 조남호구청장님의 축사와 일본 도톳리현의 신지 히라이부지사님의 축사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양재숲 속을 가득히 메웠다. 신지 히라이부지사님은 무대에 서자마자 우리말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말을 했을 때 통역은 일본어로 통역이 되었고 또 우리말로
"서울에서 훌륭하신 울트라마라톤 러너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하셨을때 역시 일본어로 통역이 되어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되었었다. 오히려 뒤바뀌어 통역이 되었으니까 모두들 웃을 수밖에. 다음부터는 일본어로 하겠습니다며 축사가 이어졌다. 내용 중,
"내일은 한국서울의 날씨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씨가 곱고 착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이면 날씨도 하늘이 도와 화창하게 좋아진다는 속담이 있지요?"
"내일 선수여러분들의 마음씨가 곱고 착할 지 어떨지는 날씨를 보면 증명이 될 것입니다."라고 축사를 하여 큰 폭소를 자아 내셨다. 이미 싸늘한 가을 밤하늘 가엔 별 빛이 수를 놓은 듯이 총총히 반짝이고 있었기에 마음씨 착하게 되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재차 머리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 보곤하였다.


다음엔 일본울트라선수(총21명. 남15, 여6)들의 무대위인사가 이어졌다. 지난해 니치난 오르치울트라대회(100km, 7:12:12초)에서 1위을 하신 이마초선수의 소개에 이어서 지난해에 역시 니치난대회에서 우승 및 그리이스희랍 스파르타슬론246km우승하신 키가 작은 여자분이신 사카모도 아끼꼬(49세)선수가 소개되었을 땐 놀라운 함성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본은 울트라강국임에 틀림없다. 울트라역사는 유럽이 100년, 일본이 20년 정도이며 100개이상의 울트라대회가 있을 정도이니 알만하다. 또한 아시아 및 일본울트라마라톤의 선두주자이신 가이호 미찌요시(남, 61세)의 얼굴도 뵐 수 있었다. 일본 울트라러너로서
"Runner of the 2001"을 수상했으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Trans America 4,500km"를 2회나 완주하셨다. 지난해 코리언울트라러너스가 주최한 초청 강연회에서는
"달리면서 이빨이 무려 7개나 빠져 버렸지만 그 성취감과 자아 발견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울트라도전은 이이질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셨던 분이시다.


저녁만찬 식사를 시간을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접시를 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식사를 하였다. 갖가지의 음식들을 마주하고 내일의 고행 길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접시를 들고서 만나는 분마다 많이 드시라는 인사들을 건넨다. 학교 다닐 때 조금 익힌 실력으로 일본인에게 인사를 하였더니 반가워하시며
"내일 100km를 몇 시간이 걸려서 완주할 겁니까?"며 물으신다. 난 8시간30분대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더욱 환하게 웃으시며
"그럼, 200km기록은 몇 시간이세요?" 아직은 없다고 하였더니 그래도 좋다며 식사를 많이 하시라고 인사를 건넨다. 역시 마라톤은 국경를 초월한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한계를 넘나드는 운동이라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좋다.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창원철인클럽의 황봉규님(83km지점 기권함), 윤재섭님, 강말조님, 김상길님, 다섯명이 한방에 누웠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화장실에 들락거리기도 하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게 흡사 무슨 여자고등하교앞에서 자는 기분이다. 여기가 용산역 홍등가 앞이라고 하던가? 밀고 당기고 무슨 밤새도록 저러지? 이러다가 정말 기권하는 불운(?)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뜬 눈으로 밤잠은 한심도 못자고 겨우 새벽 2시에 기상을 하여 각자 제1관문에 맡길 유니폼, 신발, 양말, 장갑등의 옷가지들을 챙기느라 모두가 분주스럽다. 군대에서 야간행군을 위한 비장한 각오로 군장을 꾸리는 거와 흡사하다. 얼굴에 검은 숯덩이로 위장만 안하는 것 뿐이지. 겨드랑이, 사타구니, 젖꼭지, 발바닥에 찰과상 방지를 위해서 바셀린을 바르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인다. 가장 염려스러운 건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억울하게 절룩거리는 것이다. 군대에서 완전군장에 100km행군을 심심찮게 했었기에 물집 예방을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 한다. 첫째 물집이 잡힐 만한 부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그 위에 여자 스타킹을 신고서, 양말을 신은 상태로 신발과 양말사이에 바셀린을 바르면 절대로 물집은 잡히지 않는다.


새벽 4시에 대회장도착, 몸을 푸는 사람들로 분산하다. 아직 대회출발시간은 1시간이나 남았다. 따뜻한 물을 한 컵 들이키니 입가엔 뽀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새벽 밤하늘 별빛은 눈부시게 빛난다. 선남선녀들이 많이 모였으면 날씨도 좋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맞았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모두들 은장도를 간직한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움직인다.


시간은 05:00정각, 장내 아나운서의 연호에 맞추어서 출발총성과 함께 드디어 출발!


출발선에 도열한 선수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간다. 참가자 700여명의 함성소리가 밤하늘을 찌를 듯이 울려퍼지며 새벽여명을 사정없이 잡아 흔들어 놓는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듯이 이제 반은 완주한 것이나 다름없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양재숲을 천천히 빠져 나간다. 어차피 초반에 뛰어나가면 골인지점을 들어올 땐 뛰어나간 속도보다도 몇 배 느리게 들어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앞사람 등만 보며 달린다. 머리엔 검은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 장갑, 목도리, 유니폼 위에 겨울 스웨터, 긴 타이즈위에 바람막이 비닐을 뒤집어 썼다. 다른 곳에서 이렇게 희한하게 흉칙한 모습으로 달렸다간 괴한내지는 약간 물이 넘은 사람으로 오해받고도 남을 것이다. 하기사 지금은 어둠 속이라 누가 누군지 분간을 할 수가 없기에 다행이다. 5도c 안밖의 싸늘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양재천의 합수지점에 이르니 어두움이 조금씩 사리지기 시작한다. 우둠 속을 뚫고 1시간가량을 달려오니 몸은 천근만근이다. 이러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기권을 할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몸이 회복이 되어서 컨디션이 좋아지겠지.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달려간다. 잠실대교, 올림픽대교를 지나서 암사동 반환점을 향해가는 도중 정신은 계속 몽롱하다. 20km통과 시간이 2시간 7분이 걸렸다. 이쯤되면 계획을 대폭 수정 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비몽사몽간에 달린다. 이젠 관문제한 시간을 걱정하고 염려하기보다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더. 여지껏 한번도 대회 중에 몸이 무거워서 포기하거나 걸었던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절망적이다.


몸이 허락하는 대로 달려야 한다. 억지 춘향이처럼 한발 한발 움직인다. 많은 분들이 추월해가며 격려를 하신다. 춘천에서의 과도한 피로누적과 1주일 내내 감기증세로 기침을 하며 지내지 않았던가? 행여나 몸이 회복되지는 않을까 바랬었는데 역시나 나 혼자서 착각을 했었다는 후회가 불안감을 넘어서 공포감마져 엄습한다. 대회출발 전에 이미 감지하였듯이 난 지금 100km를 달려서 200km부터 달려가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달린다. 이번에 만약에 완주를 한다면 다음엔 200km도 아주 우습게 보고 완주하리란 생각에 또 웃음이 나온다. 앞서 달리시던 금풍도사 나금풍님의 얼굴이 보인다. 노랑머리 가발에 모자까지 쓰시곤 신나게 달려나간다. 외국 산악대회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울트라에 좋은 기록을 위해서 분발을 하시는 것 같다. 춘천대회에서도 양복을 입고서 달리시며 보는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한껏 선사 해 주신다. 이제 마라톤은 내 혼자서 달리는 게 아니라 더불어 보는 즐거움으로 외국 선진국처럼 축제로 승화시켜야 한다며 앞선이의 모범을 보이신다. 코리언 울트라런너스 송파세상 김현우님은 오늘 입상을 하실 작정인지 더욱 탄력이 넘치는 힘찬 모습이다.


40km가 가까워지며 한강의 영동, 성수, 동호, 반포대교등의 대교가 수 없이 많다. 63빌딩을 지날 즈음엔 거대한 건물의 유리창에서 반사되는 햇볕이 너무나 눈부시다. 하지만 그 열기가 이렇게 따스할 줄이야. 63빌딩 유리창에서 햇볕에 반사된 열기가 몸을 덥혀준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 학교뒷산에서 솔방울을 주워서 난로를 피우곤 했었는데 난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느끼던 것처럼 포근하고 고마웁게 느껴진다. 차가운 한강바람에 체온이 떨어진 때문이다. 힘이 빠질 수록 각 급수대마다 배치된 음료수와 과일들을 억지로 마시고 삼킨다. 자원봉사자님들의 응원하시는 나팔소리에는 화답조차 할 수 없어 그저 두 손을 모두며 합장으로 대신한다. 목소리가 안나올 뿐 만 아니라 힘이 들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표시이다. 53km 제1관문이 가까워 오고 여수의 윤상대님을 만난다. 사모님은 어떡하고 혼자서 달리시는지? 양산의 털보선수이신 박동철님을 만나서 힘을 외치며 달린다.


53km 제1관문에 도착 시간이 5시간20분이 경과 되었다.


관문에서 동향인 김해의 김병문님, 대구의 향기부부 이태재님등의 많은 분들을 만나니 한없이 반가워 흥겨움은 더해 간다. 몰아쉬는 가쁜 숨이지만 다시 새로운 유니폼과 신발을 교체하고 나니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오늘은 아무리 힘들어도 급수대 앞에서는 멈춰서 급수를 하지 않는다고 각오했었기에 곧장 물 컵을 들고 달린다. 이제는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몸의 압각통각등의 감지센스가 망가져 버렸는지 덤덤하다.


여의도 55km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 선수들의 모습들이 그렇게 힘있어 보일 수가 없다. 부산 황령마라톤의 신영우님도 보인다. 언제나 만나면 활짝 웃으시며 서로가 손을 꼭 잡는다. 나는 주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좋아라하며 손을 꼭 잡던지 아니면 포옹을 하며 반가움을 표시하곤 한다. 또 부산 금정산지기 장영수님의 얼굴도 보인다. 한 갑자를 월장한 띠동갑(?)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이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그들과 함께라면
바보가 되어도 좋기 때문이고

내가 힘들게
오래 달리는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깨끗하고 티없는 마음으로
인생을 달리는
하얀 마음을 지닌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정산지기님께서 런다에서 밝혔듯이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얀 마음을 지닌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그만 더 가면 65km지점에서 전복죽이 지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자원봉사하시는 분들께서 격려를 해 주신다. 기대속에 달려도 달려가도 까마득하다. 지난해 문정복사장님께서 끊여주신 전복죽 맛을 알기에 군침을 삼키며 가는데 저 멀리서 흰 요리사복장을 하신 몇몇 분들이 간이 포장마차처럼 늘어서 있다. 도착즉시 못 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못 먹어서 못 달리는 사람인양 허겁지겁 먹는다. 누가 시비를 걸기라도 하면 당장 덤벼들 표정이다. 개가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을 건드리면 물어뜯을 기세로 정신없이 연거푸 두 그릇을 게 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고 나서 그때서야 고마움에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네 드린다. 문정복사장님과 자원봉사자님들의 표정은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자손손 가업을 걸고 하는 "원조 전복죽가게"라는 자부심에서 풍기는 전문 숙련공과 다름없이 비장한 모습이다. 이제 배가 부르니 감사한 마음에 사람얼굴이 똑 바로 보이는 건지 모르지만. 밥을 3일만 굶기면 세상에 도둑질 안 할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역시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표시로 가볍게 합장을 하며 발길을 또 옮긴다. 이제는 뛴다는 표현보다도 차리리 옮긴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2관문 제한 시간안에는 충분히 들어가는 시간이다.


75km지점에서 힘겹게 의지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스쳐 지나는 박정숙님과 이태재님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서울의 박정숙님은 춘천에서 내가 3:20분대페이스메이커를 했었다는 걸 알아보시고는 반가워하신다. 이번엔 기어코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 뛰실 태세이다. 이태재님은 훌륭하신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며 과찬의 말씀을 던지신다. 오히려 이번엔 내가 좋은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며 화답을 겨우 하였다. 이젠 오로지 자기자신의 정신력으로 타협과 흥정을 하며 달릴 뿐이다.

80km를 9시간을 넘게 달리고 있는데 누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 앞에서 달리는 선수의 자세가 우스울 만치 특이하다. 히말라야, 알프스의 등정을 하는 자세와 다를 바 없다. 한발 한발 혼신의 힘으로 겨우 버텨내는 듯이 보인다. 알고보니 일본인 이노 히로미님(65세)이시다. 강빠래(힘)!하고 일본말로 격려를 해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신다. 추월 해가며
"당신은 정말 훌륭하신 마라토너입니다."
"아니! 울트라러너입니다."
"힘내세요!"하고 이국인의 인사말에 더욱 고맙다며 화답하신다. 추월해 가면 어느새 앞에서 달리신다. 어찌나 눈앞에서 혼신을 실은 듯한 이노 히로미님의 자세가 인상적이셨던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도 언젠가는 일본울트라대회에 참가를 해 보아야지하는 당찬 생각도 들었다. 결승점은 나보다도 무려 30분이나 먼저 통과를 하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눈앞에 90km가 가까워오고 10시간을 넘겨서 달리고 있다. 이젠 지칠 데로 지쳤다. 한강 강물이 자꾸만 바라다 보인다. 힘이 없으니까 헛것들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저 강물들은 어디로 흘러갈까? 흘러가고 싶은 데로 흘러가겠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쉬지 않고 유유히 가고 싶은 데로 말이야. 지금쯤은 아내와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도 이번 울트라는 포기하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쉬어야 한다며 만류했었지. 기어코 서울에 함께 참가하시는 분들의 가방지기를 위해서 올라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올라 왔었는데.....


또 다른 일본인이 뒤로 쳐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처절하게 고장난 장난감처럼 비틀비틀 거린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땀과 범벅이 되어 있다. 다까오시 찌토오님(46세)이신것 같다.
"강빠래!(힘)"
"조그만 가시면 골인점입니다."하고 뒤를 돌아보며 크게 외쳐드렸더니 지치셨는지 말은 못하시고 먼저가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겨우 치시고는 고개를 푹 쑥이신다. 국경을 초월한 서울울트라대회이기에 다같이 격려와 함께 양국의 친목을 도모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고 하는 말뜻을 그네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요즘은 일본내 소수 극우파들의 망언들은 우릴 실망케도 하지만 우호적인 동반자라 이웃한 나라이기에 울트라마라톤을 통해서 더욱 좋은 이웃한 친구가 되었으면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이제 지루하게 길고도 험난했었던 100km 골인지점을 11시간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나는 사실은 90km가 마지막 골인지점으로 여기며 달려왔다. 남은 10km는 덤으로 편안히 달릴 수 있는 길이라 전혀 힘들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찌되었던 기어서 가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다. 오기에 찬 마음은 비몽사몽간의 착오였다는 사실은 얼마 못 가서 느낄 수 있었다. 어제저녁에 잠을 한심도 못 들었던게 이제야 육체가 인지한 모양이다. 용산역 근처의 홍등가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들과 밀고 당기는 모습들이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직업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다는 직업이기에 사회의 필요악이라고도 말하곤 한다. 우스운 얘기지만 장인과 사위가 이런 골목길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모두 술을 한잔 걸치고서 사위는 작업(?)을 하려 들어가는 중이고 장인어른은 일을 마치고 나오는 중에 만났기에 서로가 당황할 수밖에. 사위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본 순간 몸 둘 바를 몰라 머리를 껄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은 잠깐 망설이다가 태연한 척, 어험!하고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이보게 이 사람!"
"무얼 그렇게 꾸물대고 있나?"
"저 쪽 두 번째 골목길을 돌아서 쭉 들어가면 첫 집 파란 대문이 나올 걸세."
"그 집이 서비스가 참 좋다네....." 하시고는 촘촘히 골목길을 황급히 빠져나가 가로등 불빛사이로 자취를 감춰버리셨다는 장인과 사위의 얘기는 홍등가에서 일어났던 일화 중, 삶에서 최대의 비극(?)이라고도 하며 또는 남자들만의 깊은 정에서 풍기는 자상한 의리(?)라고도 얘기하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잡생각에 어느새 마지막 95km 탄천을 지나 양재천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해는 기울어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고 석양 무렵의 햇살을 받은 양재천 변, 억새풀들이 더욱 하얗게 빛나 보인다. 새벽 5시에 캄캄한 어둠 속을 출발하여 오후4시가 넘어서 출발했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연어가 알을 품으려 태어났었던 곳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나도 그렇게 힘겹게 거슬러 오르고 있고 부산 을숙도마라톤의 박상희님도, 울트라고수 최수철님도, 서울의 박정숙님도, 마중 나온 부군이신 박동형님도 모두 함께 양재숲의 무지개다리를 흥겹게 올라간다. 모두가 승승장구한 개선장군이기에 여기엔 꼴찌도 일동도 없는 승리자들이다.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골인!
11시간05분이 걸려서 드디어 완주를 하였다.


긴 거리를 오래 달린 만큼이나 크게 흥분되어 있는 감격을 억누르며 숨을 고른 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심초사 기다렸다는 듯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온다. 오늘 가방지기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잘 수행했다고 하고선
"여보! 빨리 내려 갈 께."라며 곧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바른말을 했다간 그 성화를 어떻게 다 받아 들일까를 염려해서이다. 조직위에서 준비한 포도주 한잔을 들이 킨 후 생각해 보니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만약에 전화를 걸어서
"여보! 사실은 오늘 나 울트라를 뛰었어. 거짓 말해서 미안해" 하는 순간에 대답은 뻔하게 "뭐라구요? 정말 미쳤어요?
"내가 못 산다. 못살아!"할 것이다.
그것도 11시간 넘게 걸려서 달렸다고하면 처가집에 보따리를 싸고 도망갈지도 모른다. 고민끝에 용기를 내어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을 향하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큰소리로
"여보! 아따, 울트라는 장난 아니네?"
"살살 놀면서 달렸더니 잠까지 오더 라구?"
아내 왈, "농담은 내려와서 하세요."
" 아이들 빨리 밥 먹이고 숙제 거들어야 한단 말이예요?"
.....
"으으 응, 알았어!"
"그-으럼,.. 전화 끄-끈ㅎ을게?."
.....
.....


<추신>
오래 달린 거리만큼 소감도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으주신 님들께 감사를 드리구요. 미천한 저의 글이 추위를 인내하시며 자원봉사 하신 분들과 대회운영위 스탭진, 그리고 함께 달렸었던 선수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만남의 정을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또한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 버리던 아내 김정희님과 큰딸아이 영현, 막내아들 준우에게도 고맙구요. 그리고 장차 한.일 양국의 울트라마라톤대회가 발전하는 데에도 우호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바램입니다.


수요모임/김해마라톤 이후근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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