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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즐겁고 의미있는 마라톤, 해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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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수태 작성일03-03-02 22:35 조회8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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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잘 뛰고 돌아와 이 글 씁니다.

사실 일주일 전에 10킬로를 뛰긴 했지만 직장을 다니느라 연습할 시간이 없어 어제 가볍게 2킬로를 뛰었는데 명치가 갑갑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어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조심을 했습니다. 식사를 8시 전에 끝내고 그것도 못미더워 활명수를 마시고 스포츠 음료를 준비하고 티도 대회에서 준 것 말고 목이 트이고 좀더 얇은 것으로 준비하는 등 신경을 무척 썼습니다.

출발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또 너무 붐벼서 서둘러봐야 인파를 뚫기만 힘들지 남들을 보니 몇 미터 더 나아가지도 못하더군요. 그래서 조율하는 셈치고 거의 경보에 가깝게 몸에 충격을 주지 않고 뛰어보았더니 우선 호흡에 무리가 오지 않더군요.

그런 상태로 약 10분을 뛰었더니 비로소 몸이 뜀박질에 적응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때부터는 무리를 하지 않는 가운데에서 뛰었더니 저절로 몇몇 사람을 젖히며 뛰게 되더군요.

참고로 저는 50 초반이고 하프는 첫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안양천을 주로 뛰지만 대개 혼자서 한가하게 뛰기 때문에 여럿이서 같이 뛰는 것은 좀 적응이 잘 안 되더군요.

LSD 달리기가 체질에 맞습니다. 또 가장 무리없이 달리는 것은 달린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젖어서 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그 동안 달리기를 해본 저의 체험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저는 주선(走禪)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습니다.

주선 상태로 뛰려고 했지만 남들과 함께 뛰니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오래 몸에 붙은 달리기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전체는 아니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예의 그 주선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때 그 때 엄습하는 생각에 좇는 것이 주선의 특징이지요.

오늘은 매우 긴 편지를 썼고 그 편지가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달리기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 밝힙니다.

달리다보니 어떤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함께 구호를 붙이며 달리는 가운데에 끼게 되었습니다. 하낫, 둘 혹은 영치기 영차를 외치는데 어떤 분은 "구령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힘이 솟는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선 주선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또 달리기의 호흡이 그 분들과 달라 그 구령에 발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구령과 비교해보니 저는 보폭이 좀 넓은 대신 템포는 좀 느린 것 같았습니다. 나이 탓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방해가 되니 구령을 좀 붙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야박한 것 같아서 한번은 앞질러 가고 다시 한번은 일부러 뒤로 쳐져서 달렸습니다.

30분을 넘어서니 드디어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두그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더군요. 파이팅을 외치며 선두그룹을 격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저는 파이팅이라는 말이 너무 호전적인 것 같아 외치지 않고 (주변에 외국인들도 많았잖아요) 그냥 손만 흔들어 주었습니다.

가양대교를 지나고 드디어 반환점. 물 공급은 사양하고 그냥 초코렛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달렸습니다. 되돌아오면서는 일부러 "(반환점이) 100미터 남았습니다", "이백미터 남았습니다" 하고 외쳐 주었습니다. 그게 힘이 될 것 같아서였지요. 또 저하고 비슷하게 나이가 든 분들에게는 "힘 내십시오"하고 격려도 했습니다.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을 격려하거나 준비요원들에게 "수고하십니다' 하고 외치면 그게 또 새로운 힘을 주기도 하지요.

오다가 한가지 준비를 못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 마라톤은 우리 가정에 있어서는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아이놈의 유학 성공 기원의 의미를 부여한 마라톤이었거든요. 아이놈에게 진작 그 이야기를 하고 여의도에 나오라고 단단히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물론 아이놈은 "안 나가겠다"고 일단 튕기는 소리를 했지만 저는 "종주하고 나서 너 안보이면 아빠는 한강물에 뛰어 들겠다"고 했지요. 물론 아이놈도 "뛰어들든 말든 아빠 맘이지만 뛰어들려면 생명보험 모조리 가입해 놓고 뛰어들라"고 역시 어긋장을 부렸지만 십중팔구는 제 엄마랑 나올 것이 분명했거든요.

뛰면서 생각하니 1미터 정도의 길다란 종이에 "이형식 이탈리아 유학 성공 기원 마라톤"이라는 플랑카드를 써서 마지막 진입시에 머리위에 펼쳐 들고 들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종이와 매직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에 나와 있는 진행요원들의 탁자를 흘끔거려 보아도 그런 것이 있을 법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설치된 한 매점에 뛰어 들어가 "혹시 매직이나 싸인펜을 파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이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지요. 다시 1-2킬로를 더 달리다가 또 다른 매점에 뛰어 갔더니 역시 없다고 해서 혹시 사용하는 것이라도 있느냐 했더니 볼펜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뛰면서 또 궁리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마라톤은 주선(走禪)이 되기는 커녕 주민(走悶)이 된 꼴이었지요. 궁리 끝에 꼭 종이에 적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것을 아빠가 펼쳐 들고 들어가면 아이놈 성격에 "쪽 팔린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 입고 있는 티가 값싼 흰색 티라 거기에 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멀리 쌍동이 빌딩이 보이자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졌습니다. 그 동안 가장 멀리 달린 것이 16킬로였는데 생각하니 18-19킬로 지점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차하면 볼펜으로라도 쓰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종주점 가까이 가서 한 매점에 들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혹시 매직이나 사인펜 있으시냐고 하니 겨우 플라서 펜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볼펜보다는 나았지요. 다자고자로 옆문을 통해 매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가 눈이 휘둥그래지고 낮잠을 자던 바깥양반이 얼굴을 찌푸리며 '뭐야' 하는 듯이 일어났습니다.

아주머니 "여기에 글씨 좀 써 주시겠어요?" 하니 "무슨 글씨요? 왜요? 옷에다가요?" 하면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 '형식아 해내어라' 이렇게만 써 주세요"했지요. 사실 그 밑에 '아빠도 해내었다'라고 쓰려 했는데 미안하기도 해서 그것은 생략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러나 할 것 같아 아주머니가 적는 동안 "어린 놈을 외국에 내보내려 하니 힘든 일도 많을 것이고 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헤쳐나가라는 뜻으로 그런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더니 그제야 웃더군요.

그런데 종주점을 향해 들어오며 좌우를 살폈는데 도무지 아내의 얼굴도 아이놈의 얼굴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매트를 밟고 나서 두립번거리며 찾아 보아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종주시간은 2시간 4분대. 출발전 시간을 빼면 실제로는 2시간 2분대였습니다. 2시간 15분 안에만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기록이었지요.

가족을 만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도시락과 메달을 받고 물품보관소로 가서 짐을 찾아 들고 공중전화박스를 찾아갔습니다. 전화를 하니 아이놈이 "아빠, 어디야? 벌써 들어왔어?"하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만나서 따져보니 아내가 교회를 마치고 집에와 아이놈 밥 먹이고 오느라 내가 들어온 시각보다 약 2-3분 늦게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아이놈과 함께 사진을 찍고 차량 식당에서 우동을 시켜 도시락 떡과 함께 먹었습니다. "이거 뭐야?"하고 아내가 그제서야 가슴팍의 글씨를 가리켰습니다. 아이놈은 종내 외면하는 눈치였지요. 저도 유학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유학비용을 보태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임을 모르지 않은 나로서는 역시 무심하게 "어떤 매점 아주머니에게 써달라고 했어. 그랬잖아. 형식이 이탈리아 유학 성공기념 마라톤이라고"하고 대꾸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저도 그 기억을 좋게 간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도전한 하프 마라톤을 좋은 컨디션에서 해내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아이놈의 장래에 대해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우는 데에로 돌렸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1만명이 뛴 마라톤에도 저마다의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로 부터 "왜 뛰느냐, 다리 아프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뛰는 데에는 건강을 위한다는 보편적인 이유 외에는 그냥 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처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거기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뛰는 의미가 매우 다채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함께 뛴 모든 분들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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